• 하나님께 감사하라(시편 100:1~5)
  • 조회 수: 304, 2013.03.10 23:14:34
  •  미국의 10대 재벌중의 한사람이었던 하이네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입니다. 그가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그 사업이 놀랍게 번창하여 백만장자가 됩니다. 사업이 번영하면서 바뻐지기 시작한 하이네가 교회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멀리하기 시작합니다. 모든 사업이 자기 노력과 지혜로 잘 되는줄 알고 기고 만장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고 자기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다가 어느날 시련이 몰아쳐 파산하게 되고 그는 경제 사범으로 몰려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때 그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하나님께 회개하면서 가족들에게 주려고 남겨두었던 1만 5천불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몽땅 바쳤습니다.

     

     하이네가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던 목사님은 하이네가 출소하자 그를 불렀고 그는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교회가 그를  돕기로 하고 교회가 성금을 모아 그가 다시 사업을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후에 그는 변하여 자신의 사업이 내 사업이 아니라 여호와의 기업으로 믿고 범사에 감사하며 사업에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큰 은혜와 큰 축복을 받고 다시 사업이 번창하여 대 재벌이 되었습니다.

     

     감사는 천륜이고 인륜입니다. 감사는 반드시 해야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사람보다는 감사치못하고 사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에 비해 감사할 조건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의 본질은 하나님께 대하여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속에서 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교훈받고자 합니다. 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까?

     

     첫째, 그가 우리 하나님이요. 우리의 창조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의 존재를 생각할 때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지배하고 관리하도록 맨 마지막에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셔서 에덴동산을 관리케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에서는 창조주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이 전제를 빼놓고는 나 스스로가 존재한 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근본적인 태도는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나는 그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늘 확인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신앙고백을 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내가 믿사오니"라고, 피조물된 인간의 삶의 목적은 창조주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그를 영화롭게 해드리는데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언제나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아야 하며 우리가 하나님
    의 것이라는 확신이 분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고 주관하시는 창조주이시기에 우리는 그의 백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우리에게 귀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가정도, 우리의 자녀도, 우리의 물질도 중요하고, 우리의 사업도 중요합니다. 또한 우리 자신도 중요하며 우리의 건강이나 생명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땅에서 내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내 모든 존재가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내 몸, 내 자녀, 내 재산, 내 건강, 내 생명까지도 다 하나님것이라는 고백과 겸손이 떠나지 않을 때에 "그에게 감사하라"는 말씀이 피부에 와 닿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마치 열흘피어 있지 못하는 꽃과 같습니다. 안개도 사라지며 꽃도 떨어집니다. 여러분 얼마나 건강하십니까? 얼마나 가지셨습니까?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지셨습니까? 경력을 얼마나 가지셨습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식을 가질 때 우리는 겸손해질 수 있으며 자기를 낮출 수 있으며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요 그는 우리를 지으신자요 우리는 그의 것입니다. 그에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왜 그에게 감사해야 합니까? 그가 우리를 보호하시고 기르시기 때문입니다. 3절 말씀에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라고 했습니다. 양은 제 갈길을 모르는 동물입니다. 하나님은 양같이 제 갈길을 모르는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시니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다윗은 시편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의
    삶은 참 쉼과 참 행복이 있는 곳으로 인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만족해서 기쁨으로 드리는 감사와 눈물로 드리는 감사입니다. 내가 비록 가진 것이 없고 고통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해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눈물로 드리는 감사야말로 가장 값진 감사입니다. 기쁨의 감사와 눈물의 감사. 여러분은 어느쪽입니까? 행복은 감사에 달려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감사하는 말. 감사하는 행위. 그 자체가 행복입니다. 내가 지금 아무리 많이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족한 줄 모르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싸운다면 참다운 행복을 맛보지 못합니다. 제 아무리 건강하다고 해도, 제 아무리 모든 일이 형통한다고 해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하고 불만가는데 있다면 참 행복이 아닙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왔다가 원망의 문으로 나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감사는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바울은 고전10장에서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라고 했습니다.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시비를 걸 사람은 없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은 나에게도 좋고 남아게도 좋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더 없이 좋은것이 "감사합니다"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감사하다는 말에 인색합니까? 왜 그럴까요? 왜 그토록 그 소리가 힘이 들까요? 어쩌다 못된 병에 걸렸기에 감사하다고 하면 내가 손해보는 것 같고 낮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감사하다는 말을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하고 꿀꺽 삼켜 버리는 것입
    니다. 감사의 말도 억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 안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켜주시며 함께 해주시는 그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보면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창조이후 지금까지 인간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그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집을 나간 왕자의 아버지가 문을 열어놓고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랑입니다. 세상은 이기적입니다. 자기 중심적입니다. 내게 이익을 남길 때 사랑을 줍니다. 그렇지 않으면 배척해 버립니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그 죄의 값으로 인하여 영원히 멸망받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고, 그 아들을 희생하셔서 죽기까지 복종케하시고 십자가에 죽게하시므로 속죄의 제물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하시며, 또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시며,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게 하셨기에 그에게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같은 죄인이 무엇이기에 죄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셔서 죽게하셨습니까? 그 은혜가 너무도 크고 귀하고 아름답기에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입이 내게 있어도 그 입 다가지고 내구주 주신 은총을 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감사에는 세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일차원적인 감사입니다. 무엇 무엇 때문에 드리는 감사입니다. 우리는 흔히 "비를 주셔서, 가정을 주셔서, 친구를 주셔서, 직업을 주셔서, 좋은 학교에 입학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말을 합니다. 축복된 것들을 계산해가며 드리는 감사입니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감사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인류의 비극은 이 당연한 감사의 표현 조차 거부하고 있다는데 기인하고 있습니다.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의 행위는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나 무엇 무엇 때문에 드리는 감사에는 커다란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 무엇 무엇이 주어지지 아니할 때는 감사의 조건이 없어 감사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결국 원망과 불평으로 바꾸이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것 때문에 감사하는 일은 우리의 당연한 의무이지만 이 일차원의 감사는 초보단계의 감사표현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무엇 무엇 때문이 아니라" 무엇무엇 임에도 불구하고의 감사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욥의 감사를 보며 모세의 감사를 보며 청교도들의 감사를 봅니다. 이것은 신앙의 깊은 경지에서 드릴 수 있는 감사입니다. 이것은 사명에 대한 감사이며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총에 대한 감사입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나. 하나님과 원수되어 마귀의 자녀되었던 나. 구제 불능의 나를 위하여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그 사랑을 확증해 주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는 영원한 것이요 절대적입니다. 바로 이 은혜와 은총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에게 감사하라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고난중에 있다 하더라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유익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어떠한 고난을 당한다하더라도 다시한번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을 깨닫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숙한 기독교인이라면 이제는 무엇을 더 받으려는 소망보다는 이미 받은 은혜를 감사하면서 은혜를 보답하는데 힘쓰며 살아가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그들과 함께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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