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의 왕 예수님(히브리서 6:13-7:3)
  • 조회 수: 109, 2013.10.31 06:53:52
  • 1980년 기쁜 성탄을 맞이하여 주님의 사랑과 축복과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 위에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말은 이 세상에 평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쉬운 예로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저희 마음에 평화가 상실되었을 뿐 아니라 가인이 그 형 아벨을 죽인 비극이 발생하여 오늘까지 인류가 사는 이 세계에는 전쟁이 그친 날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오늘 우리나라는 더욱 그러합니다. 경우 없이 덤벼드는 북한 괴뢰는 언제 남한으로 밀려 내려올는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안보 제일을 내세우고 이 나라를 북한 괴뢰의 남침에서 지켜야겠다고 전 국민의 총화를 호소하며 부심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국민이 이와 같은 불안에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위정자와 국민이 하나가 되어 서로 믿고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서 힘껏 나가지 아니하면 안될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광복 후 35년을 지내는 동안 위정자는 국민을 속여 왔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사사오입 통과라는 일찍이 없었던 역사의 오점을 남겼고 부정투표로 헌법을 개정하므로 부끄러운 과거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4. 19를 낳았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잊을 수 없었던 일은 고 이승만 박사께서 하야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저항할 줄 아는 백성이 있는 한 그 백성은 살았습니다. 그리고 산 국민이 있는 한 그 나라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사실 그분은 인의 장막에 휩싸여 국민의 형편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전연 모르고 있다가 세종로에서 꽃 같은 학생들이 총탄에 맞아 쓰러지는 것을 보고야 그 자신이 하야했습니다.

    작년에 작고하신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도 정말 애국애족의 정신을 가지고 혼란했던 질서를 바로 잡고 침체되었던 경제를 성장시키며 ‘하면 된다’는 민족적인 긍지를 가지게 하는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런데 의욕이 지나쳐서 ‘나 아니면 안된다’는 판단이 생겨 유신 체제를 만들어 굳어지고 굳어지다가 결국은 비참한 종말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국민들은 얼마나 아쉬워하는지 모릅니다. 그분이 유신 체제만 만들지 않고 하야했었더라면 역사적으로 존경받는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을 뻔했는데... 사실 이것은 국가나 민족의 비극입니다.

    이제는 35년 동안 이렇게 믿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지내왔기 때문에 누가 나선다고 해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국민 앞에 양심적인 공약을 해도 ‘누군 안그랬나?’ 하면서 돌아섭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오늘 위정자들의 고충을 가히 짐작하며 동정이 갑니다.

    국민이 위정자를 믿지 못하는 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불신이 있는 곳에 불안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제 정치 일정에 따라서 내년 초에는 계엄령을 해제할 수밖에 없을 것인데 그렇게 되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우리는 일찍이 당해보지 못했던 불황을 맞이하였습니다.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금년 한해 동안에 도산된 기업체와 문을 닫은 공장이 1,200이 넘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실업자가 수십만으로 늘어났습니다. 내년이 되어도 경기회복은 거의 희망이 없다고들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긴장과 불안은 영혼의 질병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참 평화가 어디에 있습니까?

    새는 공중을 날 때 안식을 얻습니다. 물고기는 물 속에서 헤엄칠 때 쉼을 얻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혼은 주안에서 살 때에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인간의 본거지입니다. 거기에 대한 증거가 될 만한 것으로는 올바른 신앙 생활에서 얻어지는 긍정적인 결과입니다.

    주안에 있는 신앙은 열매를 맺습니다. 평화, 기쁨, 사랑, 소망, 용기와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의심은 우리의 속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자연히 두려움과 의심과 근심 그리고 적의와 실망 같은 것을 낳게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 두려움과 불안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외적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마음에 있습니다. 이것이 더욱 심각합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품고 있는 동안 인간에게서 불안이나 공포 같은 것은 없어질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조상이 범죄한 다음 저희는 하나님이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에덴 동산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동산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잘못되었습니다. 죄지은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전 세계 인류는 두려움과 불안, 의심과 적의, 근심과 실망 속에서 초조하게 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 10절에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의 한 장면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복된 좋은 소식이란 뜻입니다. 우리에게 두려움과 불안, 근심과 실망을 안겨주는 소식이 아니라 평화와 기쁨, 소망과 용기를 안겨주는 소식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에게, 그래서 공포와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죄의 속박에서 완전히 해방시켜 구속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크리스마스를 기뻐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완전하며 완벽합니다. “동에서 서가 먼 것 같이 그가 우리의 허물을 멀리 옮겨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그의 평안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도다”고. 주님께로 나아오면 그분이 우리를 용서해 주시리라는 것을 믿을 때 정말 그분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화평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때 우리의 심령이 평정을 느끼게 되며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 속에 죄로 말미암아 불안에 떨고 있지는 않습니까? 평화의 왕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그를 의지하세요. 그에게 회개하세요. 우리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소서.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를 용서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의 십자가가 바로 주님의 용서를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뜻깊은 크리스마스에 여러분이 예수님께 이렇게 주님의 용서를 구하신다면 여러분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해 보세요. “주님, 나는 죄를 범한 사람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내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주님, 내게도 용서가 필요합니다. 주님의 구속의 사랑으로 나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나를 깨끗케 하옵소서. 주님, 나는 용서의 주님을 믿습니다. 저를 구속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저를 사랑하심을 감사합니다. 아멘.”

    자, 여러분, 이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긍지를 가지십시오. 주님이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심을 믿습니까? 죄의 용서를 받았으면 더 이상 괴로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바울 사도는 이미 선언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를 받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걷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존경과 사랑으로 그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을 통하여 그분을 닮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의 삶에 목적이 분명해집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생의 목표에 생기를 불어넣게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생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그 목표에 어떤 정신이 들어 있습니까?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용서함을 받고 믿음으로 구속받게 될 때 우리의 심령은 건강하고 능력있는 삶을 찾게 됩니다. 세상에서 그 심령이 불안정한 사람은 모두가 불확실하고 끊임없이 변해가는 자아를 만족시키려고 아무 일에나 손을 댑니다.

    옛날 중국 고대사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왕이 너무도 불안하고 자신감이 없고 긴장에 억눌린 나머지 그는 자기 궁궐 안에 틀어박혀 지냈습니다. 이 왕은 자신감을 키워 보려고 커다란 거울을 걸어 놓고 거기에 자신의 모습을 비쳐 보곤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자기는 위대한 통치자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그의 인생의 유일한 목표는 자신의 중요성을 자신이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이 왕이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기울이고 도취되어 있는 동안 백성들은 관리에게 토지를 빼앗기고 착취를 당해야만 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백성들은 극도로 빈곤해져서 굶주리고 헐벗게 되었습니다. 길가에는 비참한 모습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궁내 대신 가운데 한 현명한 사람이 있었는데 왕이 이럴 때 어떤 단안을 내려 일을 해야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꾀를 냈습니다. 어느 날 밤 왕이 들여다보고 자기 도취에 빠지곤 하는 그 거울을 치웠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다 밖을 살필 수 있도록 그 거울과 꼭 같은 크기의 유리창을 만들었습니다. 아침에 이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거기로 가서 습관대로 거울 앞에 섰습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기의 모습이 아니라 거리에 벌어지고 있는 처참한 광경이 보였습니다.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서 고달프게 걷고 있는 여인이 보였습니다. 그는 또한 먹을 찌꺼기라도 찾으려고 애쓰는 굶주린 어린아이들을 보았습니다. 누더기를 걸친 채 피곤에 지쳐 있는 노인과 젊은이를 보았습니다.

    왕은 놀라서 외쳤습니다. “내 불쌍한 백성에게 무슨 일이 생겼느냐?” 이때 이 꾀를 낸 충실한 신하는 왕에게 밖에서 벌어진 일들을 설명했습니다.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을 다 잊은 채 왕은 백성들에게로 나아갔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자기가 관심을 두어야 할 일에다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땅에는 번영이 오고 백성들도 만족했고 굶주림을 물리칠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충실한 일꾼들이 있으면 오늘과 같은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윗사람은 잘 해보려고 나서는데 보좌하는 사람들이 윗 분의 눈을 가리워 버립니다. 민정을 시찰하겠다고 하면 미리 나가서 연습시켜 놓아서 그저 잘 되어가는 줄로만 알고 있는 세상입니다. 군인들이 나라 지키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하는데 맛을 들여 중이 고기맛 안 것처럼 되면 큰 일입니다.

    여러분, 평화의 왕 예수님은 우리의 생에 있는 거울을 바꾸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창문을 내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에 관한 것을 다 잊고 다른 사람과 그들이 갖고 있는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해주십니다. 그리고는 이 상처받은 이들을 도와줄 수 있도록 우리에게 자신감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삶의 목적을 분명하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목표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는 것입니다.

    누가 저 더러 어디서 인생의 의미를 찾느냐? 고 물으면 저는 서슴지 않고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말합니다. “저분이 나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내게 삶의 긍지를 다시 찾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삶의 의미를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생에 주님이 임재해 계신 것을 믿습니까? 저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거기로부터 나오는 그윽한 평화와 안정을 얻습니다. 한 시간 한 시간, 하루하루 미지의 세계를 살아가면서 저는 분명히 하나님이 내 길을 이끌고 계시며 내 미래를 예정하고 계시다는 것을 강렬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에 어떤 자리에서도 마음의 평화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 앞날에는 결코 어려운 일이나 환난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장담이 아닙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놀라운 평화를 맛보게 해주시는 보이지 아니하는 위대한 손이 있다는 것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역사하셔서 모든 일을 협력해서 선을 이루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어떤 위기에 처했을 때도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게 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바로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길입니다.

    옛날 신앙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고통 중에 하나님은 나를 더욱 큰 자로 만드셨나이다.” 암담한 시기일수록 거기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아냅시다. 마음의 평화가 넘쳐날 것입니다. “주여, 내 환난을 통해서 나를 큰 인물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합시다. 어두움이 내리면 별들이 나옵니다. 이 세상에 절망적인 상황은 없습니다. 단지 소망을 읽은 사람들, 소망이 끊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기쁜 크리스마스에 불안과 공포, 근심과 실망 가운데 헤매이는 인류를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평화의 왕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우리 가정에, 우리 나라에 모시므로 평화를 누리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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