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언 23:12-25/ 믿는 부모와 자녀
  • 조회 수: 86, 2013.11.08 19:59:32
  • 믿는 부모와 자녀에 대해서 주신 말씀을 통해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12절 말씀에 “훈계에 착심하며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하였습니다. 또한 13절에는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고 하면서, 잘못이 있을 때 자식을 때리는 일이 있는데 물론 이것이 자식에게나 부모에게 괴로운 일이지만 사실은 자식에게 큰 유익이 되는 일이라며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고 했습니다. 
    17절에는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그리고 19절에 보면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정로로 인도할지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합니다. 따라서 자녀를 둔 부모에게는 자녀를 통해서 오는 기쁨이 있습니다. 
    가령 어린이들의 예쁜 얼굴을 보는 부모의 기쁨이 있습니다. 요사이 산과 들에 아름다운 꽃들이 많이 핍니다만 꽃이 어린이들의 얼굴보다 더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어머니는 자기 아이보다 예쁜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어린아이가 다 예쁘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좀 더 예쁜 아이가 있고 좀 그렇지 못한 아이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아이의 어머니는 자기 아이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눈으로 보면 다 예뻐 보입니다.
     
    어느 아이 어머니나 아이를 낳으면 찾아간 손님에게 아기를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자기에게는 더 없이 예뻐 보여서 그럽니다. 그런 경우 그런 아기를 보면서 “아기 참 잘 생겼네요. 아기 너무 예쁘네요”라고 말해 주는 것이 예의 아니겠어요.
    제가 아는 어느 가정에서는 결혼해서 4~5년 동안 어린아이가 없어서 무척 기다리다가 딸 아이를 하나 낳았습니다. 젊은 부모는 기다리던 애를 낳으니까 얼마나 기뻐하는지 몰라요. 더구나 얼마나 그 애를 예뻐하는지요. 그런데 부모가 아닌 사람의 눈으로 보면 아무리 보아도 그렇게 예쁘다고 말하기는 좀 그래요. 저뿐만 아니라 업고 나가면 “아기 참 예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제가 언젠가 목회 경험이 많으신 목사님한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교인 가정에서 어린아이를 낳고 그렇게 기뻐하고, 그렇게 예뻐하는데 예쁘지 않다고 하면 실망할 것 같아서 “야, 이 아기 참 Baby구나”라고 말씀했대요. 무슨 말을 하긴 해야겠는데 아무리 보아도 예쁘게 생기지 않은 아기를 예쁘다고 하면 거짓말이 되겠고, 그렇다고 남의 아기, 더구나 부모가 그렇게 예뻐하는 아기를 밉게 생겼다고 하면 실례가 될 것 아닙니까? 

    어린아이 엄마에게는 자기 아이가 제일 잘 생기고 제일 예뻐 보입니다. 더구나 몇 달 지나 히죽히죽 웃기 시작하면 웃는 아기 얼굴처럼 귀엽고 예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좀 더 자라서 저 혼자 뒤집기를 하게 되면 그것도 귀엽습니다. 배밀이를 해서 앞으로 나아가면 그것도 사랑스럽니다. 벌렁벌렁 기어 나아가면 그것도 볼 만합니다. 어린아이의 동작 하나 하나에서 부모들은 기쁨을 가집니다.
    그러다가 이 어린아이가 좀 더 자라서 “엄마,” “아빠” 하게 되면 그 목소리를 듣는 부모가 얼마나 좋아합니까? 그래서 이때쯤 되면 엄마들이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많이 합니다. 아이 엄마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재미있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아이가 더듬거리면서 말 몇 마디 하면 아이 엄마는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을 합니다. “우리 애는요, 벌써 못하는 말이 없어요.” 그저 말 몇 마디 하는 것 같아도 엄마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스러워서 그래요. 
    그리고 백일이 되면 백일잔치 하느라고, 돌이 되면 돌잔치 하느라고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모릅니다. 아기 엄마는 아기에게 젖먹이는 재미도 대단히 좋다고 합니다. 아기를 업고 다니거나 안고 다니거나 유모차에 끌고 다니는 기쁨도 크다고 합니다. 

    전에 어느 교회에서는 예배 시간에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시다가 떠드는 어린아이 때문에 집중이 되지 않으니까 말씀 증거를 중단하고 “저 떠드는 어린아이 어머니는 아이를 업고 밖으로 나가세요”라고 지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그때 얼마나 서운했는지 그 교회에서 아예 나가 버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아기 데리고 오시는 부모님들을 환영합니다. 사실 아기 데리고 교회에 오시는 것이 얼마나 정성인지 모릅니다. 교회에서는 아기를 데리고 오시는 분들을 위해서 자모실을 따로 마련합니다. 아이들끼리 좀 떠들어도, 아이가 없으신 분들은 이해를 하기 어려워도 아이를 데리고 오신 분들은 이해를 하시거든요.

    그리고 영아부를 두어서 어린아이들을 될 수 있는 대로 영아부에 맡기고 예배드리고 예배 끝난 후에 영아부에 가서 아이들을 찾아가시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의 어린애 엄마들은 아이들을 특별히 예뻐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영아부에 맡기는 것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꼭 자기가 데리고 다닙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영아실을 만들어 어린아이를 맡길 수 있는 분들은 맡기게 하고 맡길 수 없는 분은 자모실에서 어린아이들과 같이 예배드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제가 손님 목사님이 오시면 설교를 안 하니까 여러 방에서 예배드리는 형편을 살펴보면서 자모실에 들려 보곤 합니다. 그런데 어린아이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부모님들의 모습이 그렇게 명랑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자모실에서는 강단이 보이지 않아도 예배드리는 데 별로 지장이 없을 것 같아요. 가만히 보면 어머니들은 강단을 별로 보지 않고 아이들에게만 그 시선이 가 있어요. 좀 분주하기는 하지만 어린이 방에서 예배드리면서 얼굴 찡그리는 어머니는 거의 없습니다. 어린이들은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그러다가 애가 점점 자라서 유치원에 가면 얼마나 예쁩니까? 가방 메고 “엄마 유치원 갔다 오겠습니다”하며 인사드리고 유치원을 향해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 얼마나 대견스럽습니까? 유치원에 가서 그림 하나 그려 오면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천재 같습니다. 뭐든지 다 잘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어떤 어린아이는 피아노, 미술, 노래, 영어, 태권도, 무용, 축구 교실, 암기 학원까지 해서 여덟 가지 과외 수업을 한다고 합니다. 너무 장해 보이고 무엇이든지 다 잘 할 것처럼 보여서 그럽니다. 그래서 소위 조기교육을 시킨다고 합니다. 

    이 아이가 초등 학교 가면 얼마나 귀엽고 자랑스럽습니까? 혹시 상장이라도 하나 타 가지고 오면 얼마나 훌륭해 보입니까? 그래서 아이 방에다 사진틀에 넣어서 다 걸어 놓습니다. 
    흔히 학생들 엄마들 사이에 ‘치맛바람’이란 말이 있는데 왜 그런 말이 들리게 되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애들이 너무너무 예뻐서 학교에서 공부하는 모습도 보고 싶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관심이 있고 해서 여기저기 분주히 다니다 보니까 자연히 치마에 바람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어린이는 가정에 화평을 가져옵니다. 부부가 같이 잘 살아가다가도 어떤 때는 의견이 잘 맞지 않아서 의견의 충돌이 생기고 언쟁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한 방에 있으면서도 얼굴이 시뻘겋게 되어 말도 하지 않고 등을 돌리고 앉아 있다가도 애가 학교에 갔다 오면서 “아빠 엄마 학교에 다녀왔습니다”하고 인사할 때 화가 나서 얼어붙었던 부모의 얼굴이 봄동산의 눈처럼 녹아 버립니다.

    어떤 가정에서는 부부 싸움이 좀 심해서 “나는 이런 집에선 못살아” 하면서 부인이 보따리를 싸가지고 문밖으로 나갑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자존심도 있으니까 “갈 테면 가라, 가. 자기가 가면 어디를 가?” 하면서 버티고 앉아 있습니다. 이쯤 되면 남편이 따라나와서 붙들 줄 알았는데 붙들지 않고 앉아 있습니다. 그러니 부인은 더 화가 납니다.
    갈 곳도 없이 한참 가는데 밖에서 놀고 있던 어린아이가 “엄마, 어디가?” 하고 달려오는데 엄마는 가는 데가 있어야 대답하지요. 머뭇거리면서 얼굴만 시뻘개져 있으니까, 아이들 눈치가 더 빨라요. “엄마 못 가, 엄마 나하고 살아”하고 울면서 매달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붙드는 사람이 없어서 그저 가고 있었는데 아이가 붙드니까 못 견디는 척하고 더 가지 못하고 집으로 들어옵니다. 
    이혼 방지하는 데는 가정법원 판사보다 어린아이가 낫다고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아이가 있는 가정보다 아이가 없는 가정이 더 많이 이혼하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초등 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할 때도 부모에게 기쁨이 있습니다. 얼마나 대견스럽습니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렇게 어려운 대학에 입학할 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쁨이 있지 않습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면 얼마나 흐뭇합니까? 결혼해서 가정을 이뤄도 부모에게는 큰 기쁨이 있습니다. 이처럼 자녀는 부모에게 많은 기쁨을 가져옵니다. 

    그런데 오늘 주신 말씀 15~16절에,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했습니다. 그리고 24~25절에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했습니다. 
    신약성경 요한삼서에 보면 사도 요한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부모가 자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소식을 듣는 중에 무슨 소식이 가장 기쁜 소식입니까? 사업에 성공했다는 말도 귀하지요. 기다리던 손자를 낳았다는 소식도 기쁘지요. 아들이 진급했다는 소식도 즐거운 것이지요. 그런데 그 중에서도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는 말을 들을 때 제일 기쁘다고 했습니다.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말은 참된 신앙생활을 한다는 뜻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죄를 멀리하려고 애쓰는 생활,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생활, 그 계명을 지키려고 힘쓰는 생활, 범사에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생활, 성결과 겸손과 진실과 충성, 절제와 사랑의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생활을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교회 일은 적극적으로 합니다. 열심으로 복음을 전파합니다. 교육하는 일에 힘씁니다. 봉사하는 일에 참여합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도 정성껏 일합니다. 무슨 일을 맡았든지 책임성 있게, 성실하게 일해서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 이 얼마나 부모에게 기쁨이 되는 일입니까?
    믿는 부모로서 제일 큰 기쁨, 목회자로서의 제일 큰 기쁨이 무엇입니까? 내 아들과 내 딸이 신앙으로 사는 것을 볼 때입니다. 목사의 기쁨이 무엇입니까? 교인의 가정이 사업에 성공하고 사회적으로 출세하는 것도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기쁜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믿음으로 사는 것을 볼 때입니다. 어려움이 닥쳐도 주님과 함께 믿음으로 이겨 나가는 것을 볼 때 그것처럼 흐뭇한 것이 없습니다. 

    저는 지방에 가서나 외국에 가서 우리 갈보리교회 식구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 교회 목사님이 “갈보리교회에서 오신 그 아무개 교인 정말 신앙생활 잘하십니다. 교회 봉사에도 앞장서시고요, 모든 성도에게 모범이 됩니다”라고 칭찬할 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목회자의 보람입니다.
    왜 이것이 그처럼 큰 기쁨이 됩니까? 이것은 기도의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이 사사가 될 때 그 어머니 한나가 얼마나 기뻐했을까 상상해 보세요. 한나가 그 아들 사무엘을 위해서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습니까?
    그리고 이것은 교육의 열매이기 때문에 기쁜 것입니다. 가정교육이나 교회 교육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람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가르치고, 기도를 가르치고,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수고의 보람이기 때문에 기쁩니다. 내 자녀가 믿음으로 진리 안에서 사는 것이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바로 부모의 수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고 없이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훌륭한 자녀가 있습니까? 그 배후에는 훌륭한 부모님의 수고가 있었음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어거스틴이 어거스틴이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부모의 수고가 있었고, 이 수고의 열매로 귀한 사람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더구나 이것은 신앙의 계승이기 때문에 기쁜 것입니다. 내가 살았을 때는 내가 십자가의 깃발을 들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십자가의 깃발, 이 배턴을 놓을 때가 옵니다. 그런데 내가 이 깃발을, 이 배턴을 물려주어 나대신 그 깃발, 그 배턴을 잡고 주님을 따라 가는 것을 볼 때 얼마나 기쁨이 크겠습니까. 그 기쁨이야말로 하늘 나라의 영원한 기쁨을 의미합니다. 
    하늘 나라에 가서도 온 가족이 모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나만이 의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 아니고 내 아들과 내 딸이 같이 면류관을 받을 것을 생각할 때 영원한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삼서의 말씀을 거꾸로, 반대로 읽으면 어떻게 될까요?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치 아니한다 하는 소식을 듣는 것보다 더 슬픔이 없도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믿는 부모의 가장 큰 슬픔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셨습니까?
    다윗의 일생을 기억하시지요. 그의 일생에서 가장 큰 슬픔의 장면이 언제였습니까? 그의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를 반역하고 역적 행동을 해서, 요샛말로 하면 아들이 아버지를 반역해서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한때 다윗이 쫓겨난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아들 압살롬이 결국은 대세가 불리하게 되어 도망을 치다가 그 머리카락이 나무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반역자, 반란자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놈 못되게 굴더니 종래 죽었구나. 제 죄값이지. 잘 죽었지.” 이렇게 말했습니까? 아닙니다. 성경에 보세요.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네 대신 죽었으면 좋을 뻔하였구나” 하면서 대성통곡했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녀가 진리 안에서 행하지 아니할 때 믿는 부모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슬픔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출세하고, 공부 많이 하고, 돈 많이 벌고, 명예를 얻었다고 할지라도 진리 안에서 행하지 않는 자녀는 결국 부모에게 가장 슬픔을 안겨 주는 것입니다. 진리 따라 믿음으로 살지 아니하게 되면 결국은 신앙의 대가 끊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나는 십자가의 깃발을 높이 들고 열심히 달렸고 이제 내가 이 깃발을 놓을 수밖에 없는 때가 오는데 이 깃발을 나 대신 들고 갈 사람이 없습니다. 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뿐만 아닙니다. 내 자녀가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 부모에게는 영원한 슬픔을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 가서도 온 가족이 모이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구원을 받았지만 내 식구가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나 혼자 얼마나 외롭겠습니까?
    우리 가운데 젊은 분들이 많으십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젊은이가 많은 것을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젊은이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내 부모님께 어떤 자녀인가? 기쁨을 주는 자녀인가, 아니면 슬픔을 주는 자녀인가? 내가 부모님께 언제나 웃음을 주는 자녀인가, 아니면 나 때문에 부모님이 눈물을 흘리신 적은 없었는가? 

    만일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자녀라면 이보다 더 큰 행복은 없을 것입니다.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저 겸손한 마음으로 더욱 힘써 옳은 길을 걷고 주님의 일에 힘써 봉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한 분이라도 그렇지 못한 분이 혹시 계십니까? 분명히 들으세요. 이런 분은 믿는 내 부모에게 가장 큰 슬픔을 가져다주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곧 불효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는 부모님들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어떤 자녀입니까? 진리 안에 행하는 자녀입니까? 그렇다면 가장 큰 기쁨을 소유하고 계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이 혹시 좀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참된 신앙 생활을 하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없습니다.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그렇지 못한 자녀를 가지신 분이 계십니까? 이런 부모님에게 저는 중심으로 동정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상심되시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시지 마세요. 계속해서 기도하시고 힘쓰세요. 언젠가는 반드시 여러분의 수고가 헛되지 않고 열매 맺게 될 것을 믿습니다. 내 생전에 안 이루어지면 내가 천당에 간 다음에라도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그런 경우를 많이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마시고, 포기하지 마시고, 계속 기도하세요. 꼭 그 기도를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끝으로 우리는 다 하나님의 자녀인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입니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다고 성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믿음으로 살아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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