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이 행하시는 은혜의 특징(눅 1: 26-38)
  • 조회 수: 291, 2013.08.22 22:02:43
  • 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보여주려고 하는 성탄의 의미를 3가지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첫 번째, 성탄은 하나님의 파격적인 은혜였다 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마리아라고 하는 이름은 대단히 유명한 이름입니다. 그래서 천주교에서는 마리아에게 비는 기도문까지 만들어 마리아를 숭배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어떤 조사에서는 마리아 혹은 마리아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미국 여성이 372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사실 마리아의 의미는 비통 혹은 고난, 슬픔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이름의 의미만 보면 그렇게 매력을 느낄 만한 이름이 절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라는 이름이 이토록 하늘의 별처럼 빛나게 된 것은 마리아라고 하는 처녀가 예수님을 낳았다 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명해진 이름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등장하는 원래의 마리아는 유명한 사람은 고사하고 대단히 비천한 여인이었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어느날 마리아라고 하는 처녀에게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나타나셔서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다가가셨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김대중 대통령정도 되는 사람에게 은혜를 받은 자라고 하는 것이 어느 정도 격이 맞을 것같은데 시골에 묻혀 사는 어느 무명의 목수의 아내가 될 사람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 라고 하면서 달려갔다면 어딘가 격이 맞지 않는 모습이라고 보여집니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파격적인 은혜다 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전혀 하나님을 기대하거나 생각지도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느닷없이 어느날 천사를 통해서 은혜를 일방적으로 선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에게 이러한 모습으로 나타나셨고, 12지파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야곱에게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단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잘난 것도 없고, 명성도 없고, 가문이 좋은 것도 아니고, 선한 것도 아니고, 무슨 공로를 세운 것도 아니고, 하나님 마음에 드는 어떤 특별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한 모습에 상관없이 무조건 사랑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주께서 이 땅에 오신 성탄의 목적입니다.

           여러분! 나같은 사람이 그 크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을 할 수 있는가? 어찌하여 그 분이 우리에게 아버지가 되어 주시는가? 마리아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사랑이 오늘도 당신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이 사랑은 일방적인 사랑이었고 참으로 파격적인 사랑이었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같습니다.

           불교에서 가르치는 소위 피안에 이르는 8개의 길이라든지, 힌두교의 인과응보 교리라든지, 또 유태교에서 가르치는 율법이라든지, 이슬람교가 이야기하는 계율이라든지, 이런 것들 안에는 이런 은혜가 없습니다. 이 모든 종교들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스스로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신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좋은 세상을 가기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하고 도를 갈고 닦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에게 스스로 구원을 쟁취하라고 설파를 합니다. 하나님이 죄인 된 우리 인생을 먼저 찾아 오셔서 하나님이 손수 구원해 주시고 인간의 어떤 노력도 요구하지 아니하시는 이런 은혜는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Merry Christmas!라고 말을 합니다. 왜 Merry입니까? 왜 성탄이 기쁘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비천한 나를 찾아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인생을 살다가 나의 죄 값으로 참혹한 지옥 불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신세에서 나를 건지시려고 오셨기 때문에 우리는 Merry Christmas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탄 시즌이 되면 세상이 더욱 기뻐하는 것같습니다. 화려한 조명 치장은 술집, 백화점, 호텔에서 더 많이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죄 짓는 곳에서 캐롤송이 울려 퍼지지만은 그 성탄의 주인공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존재하지 않는 그곳에 과연 참된 기쁨이 존재할 수 있을까? 진정한 성탄의 기쁨은 우리 기독 성도들에게 있는 것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독일의 유명한 설교자 '헬무트 틸릭케' 라는 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탄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자기 백성을 찾으러 오신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성탄의 메시지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나를 발견하시고 나를 찾아오신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절망에 다다른 듯이 보이는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의 기회는 정말 시작된다는데 있다." 좀더 쉽게 얘기한다면, 내가 하나님을 찾아간다는 것이 아니고 영적인 소경인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절망에 빠져 고통을 당하며 허덕이고 온 천지가 캄캄해 보이는 그 순간에 하나님이 나를 찾으시고 나를 통해서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는 진리를 가르쳐주는 데에 성탄이 가져다주는 메시지가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성탄의 의미는 하나님과 함께 라면 무엇이든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아이를 잉태하여 낳았습니다. 성경에서는 동정녀로써, 다시 말해서 숫처녀로써 아이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과학적으로 믿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위 자유주의로 분리되는 신학자들은 이사야서에서 고백하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라고 하는 부분을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라고 바꿔 부르자고 합니다.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관점에서 본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마리아의 몸에 생명을 넣어 주실 수 있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입니다. 우리 인간의 작은 머리로 하나님의 능력을 해쳐 가면서 칼질을 하려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이 내용을 37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이 땅을 살아가는 인생들에게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로 인해서 흘리는 눈물이 있고, 좌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없는 것에서 있게 하실 수 있고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에 마리아 잉태 사건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 길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늘 우리를 붙들어 주신다는 영적인 교훈을 주시는 사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려운 삶에 혹 직면하고 계시는지, 경제적인 문제, 여러 가지 문제로 고통을 당하시고 계십니까? 지난날 마리아에게 임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 계셔서 자기 백성들이 처해 있는 환경을 아시고 그들의 기도를 듣고 계시고 구원을 베푸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1절 말씀을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예수는 구원자라고 하는 뜻입니다. 예수는 내 삶의 전 영역에서 구원자가 되어 주십니다.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하게 보이는 부분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일로 다가 온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간 쓰레기와 같은 사람들이 생명의 주가 되시는 예수를 만나서 인생이 바뀌고 정말 변화되어 가는 수많은 사연들이 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성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받기 위해 순종을 요구합니다. 여러분 38절을 읽으면서 오늘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기록한 것이기에 우리에게 대단히 유익하지만, 이 말씀을 생활에서 지키고 따를 때에 종종 아픔과 고통이 따라옵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마리아에게 하나님께서는 파격적인 사랑으로 다가오셨습니다. 평안할찌어다.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세상의 수많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성자 예수님의 육신의 모친이 되는 것은 엄청난 특권입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그 말씀을 따른다는 것은 순종의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마리아는 약혼을 했지만 처녀였습니다. 처녀가 아이를 가지게 되면 율법에 의해서 부정하니까 돌로 쳐죽이라고 했습니다. 마리아가 고민하면서 순종을 합니다. 우리가 마리아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을 해 봅시다. 어느 날 우리에게 주님이 찾아 오셔서 도저히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요구하십니다. 그러한 엄청난 사건 앞에서 사람들은 실족을 하게 됩니다. 마리아에게 순종은 죽음으로 갈 수도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뭔가를 요구하실 때에는 항상 대책을 마련해 두신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마련해 놓으신 대책은 그녀의 약혼자 요셉을 두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보통 일반적인 남자라면 화를 내며 큰 분을 표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의 신앙 인격으로 그것을 참고 요셉은 마리아를 긍휼히 봄으로써 그 약혼을 가만히 끊고자 하는 절제하는 성품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사랑하셔서 마리아에게 들려 주셨던 말씀을 그에게도 들려주십니다. 그래서 요셉은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를 요셉은 자신의 몸으로 보호를 해줍니다. 주님은 폭군이 아니십니다. 주님이 다가오시는 것은 좋은 것을 위해 오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 분을 믿고 따르는 데에는 때로는 고통이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에는 항상 비책을 강구하고 계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에 버려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을 때에 결단해야 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주일 성수, 십일조......

           인간의 눈으로 보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힘들게 보여도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함으로 따르면 하나님의 파격적인 은혜와 사랑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내 삶을 가득 채워주시는 분이 저와 여러분의 구세주시라는 것을 믿습니다. 성탄 시즌을 맞이해서 정말 내게 다가오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로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다가오는 대망의 한 해를 마리아에게 다가오신 하나님, 파격적인 사랑의 하나님과 함께라면 무엇이든지 가능한, 바로 그분을 우리의 하나님, 구원자로 보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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