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라(고전15:9-10)
  • 조회 수: 774, 2013.07.10 07:35:00
  •   옛말에 "한은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타인으로부터 받은 상처와 고통은 잊지 못하면서도 타인으로부터 받은 은혜는 쉽게 잊어버린다는 말입니다. 은혜를 입을 당시에는 평생토록 잊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다가도 세월이 지나면 쉽게 잊어버리고 맙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사람의 도리가 아닌 줄 압니다. 사람으로부터 받은 은혜도 마땅히 기억해야겠지만 우리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기억하며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지난날에 수많은 위기와 역경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하나님을 불신앙하면서 사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대 자연을 통해서 주시는 많은 혜택도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구별하여 주신 은혜는 바로 십자가 구속의 은혜입니다.
      십자가 구속의 은혜란 영원히 버림받아 죽을 사람을 살게 해 주신 생명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죄와 불신앙으로 인하여 죽어야 마땅할 우리를 살려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랑이요 보혈의 은총인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죄인들이어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음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십자가 구속의 은혜를 거저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엡2:8에서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아무런 대가나 요구사항이 없이 우리에게 거져 주셨습니다.  얼마전에 장기기증협회에서 보내온 책자를 읽어 보았습니다. 어떤 한사람이 신장에 이상으로 도저히 살아갈 수 없었던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아무런 조건이나 대가 없이 자신의 신장을 기증한 한사람의 착한 일을 기록한 글을 보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인정이 메마르고 각박한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신장을 기증했다는 것은 곧 생명을 기증한 것입니다. 자신의 신체 일부를 희생해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한사람을 살린 것입니다. 생명을 받은 사람은 평생토록 그 은혜를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하여 병들고 영혼이 죽어 영원히 멸망받을  우리를 살리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위에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못박는데 내어 주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물과 피를 쏟으시면서 고통중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면서 절규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구원은 결코 값싼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거져 주셨다는 말씀은 싸구려이기 때문이 아니라 도저히 값으로 계산 할 수 없어서 거져 주셨다는 것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크게 우려되는 일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적어지고  은혜에 대한 고마움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모르는 자녀, 선생님의 은혜를 모르는 제자,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교인들이 많아 졌습니다. 은혜를 모를 뿐만 아니라 당연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옛말에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 더 잘 잊어버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 은혜 받은 것이 너무 많아서 만성이 되어 그렇게 된 모양입니다.  오늘날 내가 주께로부터 받은 은혜가 무엇입니까? 무엇을 감사해야 합니까? 받은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우리의 책임과 역할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내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려면 지난날의 내가 누구였던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본문 9절에서"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말씀하였습니다.  바울은 지난날의 자신의 삶을 돌아 보면서 "내가 누구였던가"를 생각하였습니다.  교회를 핍박한 내가 아니었던가!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이는데 동조한 내가 아니었던가!  나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으며 슬픔을 당하였는가!를 생각할 때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추하고 부족했던 사람이었는가를 깨달았습니다.  그런 내가 오늘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라고 칭함을 받고 살아가는 이 귀한 은혜야말로 어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겠는가를 생각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지난날의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었는가를 알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과거를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겸손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주님!  나는 만삭이 되지 못한 모자란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제일인 줄 알고 교만하고 거만하여 자신만을 드러내고 산 사람이었습니다."하면서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자신을 지극히 작은 자로 보는 순간부터 "나의 나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입니까?  과거의 나는 누구였습니까?  죄 많은 사람아니었습니까?  기름부음 받아 장로와 집사가 되었음에도 얼마나 주의 일에 헌신하였습니까?  주님의 제단에 어려움을 보고 얼마나 위하여 기도하였습니까?  
      우리는 다시 한번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오늘의 내가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음을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은혜를 모르는 것은 사탄이 좋아하는 일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보답하는 삶이야 말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한 일입니다.
      본래 바울의 이름은 사울이라고 불렀습니다. 사울의 이름의 뜻은 크다는 말입니다. 몸이 크고 장대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고 그의 가문이나, 혈통이나, 학벌이나 종교적 열심으로 보나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훌륭한 이력을 지닌, 이름처럼 큰 자였습니다. 빌3장에 기록된 그의 이력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는 혈통적으로 히브리인중에 히브리인이요, 왕족인 베냐민지파요, 종교적으로는 철저한 율법주의자로서 바리세파 사람이요,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고 신분적으로는 나면서부터 로마의 1등 시민의 자격을 누리며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학문적으로는 당시에 유명한 석학이었던 가말리엘의 제자로서 율법 수업을 철저히 받았고 그 율법에 있어서 너무 충실했던 나머지 기독교회를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 인줄 알고 예수믿는 사람들을 잡아 옥에 가두는 일도 서슴치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울에게 커다란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다 준 것은 바로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된 순간부터였습니다. 다메섹에 있는 주의 성도들을 잡아 옥에 가두기 위해 대제사장의 체포 공문을 가지고 다메섹 성문앞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로부터 섬광처럼 번쩍이는 광채가 사울의 눈에 비취는 순간 사울이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때에 "사울아 사울아"하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는 그가 이제까지 걸어왔던 삶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깨닫고 방향을 돌이켜 주님을 소망하고 주님만을 따르는 위대한 전도자로 변화되었습니다. 그의 이와같은 변화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가 예수를 알고부터 자신이 내세우며 자랑했던 지난날들의 모든 자랑거리들을 배설물처럼 미련없이 내어버리고 오직 복음의 길을 걸어갈 것을 각오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크다는 뜻의 사울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작다는 의미의 이름인 바울이라고 개명하고 낮은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내가 커질 때, 내가 위대해질 때 받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내 자신이 낮아지고 겸손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만할 때가 아니라 겸손할 때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말씀하기를 "하나님이 교만한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이 자신을 지극히 작은자로 여겼듯이 우리도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감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불평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너무 크게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데 목사인 나를, 장로인 나를, 권사,안수집사인 나를 이렇게 대우할 수 있는가를 따지면서 자신을 크게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크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작게 보이도록 해야 합니다. 나같이 무능한 사람에게도 은혜를 주어 귀한 직분을 주시고 귀한 사명을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에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겸손히 고백하며 받은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2. 내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려면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감사할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감사를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그만 어려움이 와도 불평하기 잘하고 원망하기를 잘 합니다.    
     독일의 재무장관을 지낸 마르티 바덴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번은 어느 지방에 갔다가 돈이 없어서 싸구려 여관에서 하룻밤을 묶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깨어 보니 구두가 없어진 것입니다.  마르티는 화가 났습니다.  어느 놈이 내 신발을 훔쳐 갔느냐고 주인에게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마침 그날이 주일이었습니다.  여관 주인이 창고에서 헌 신발을 꺼내 주면서 교회에 같이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못해 그는 주인과 함께 교회를 찾아 갔습니다.  그때 마르티는 옆자리에 두 다리가 없이 의자에 앉아 예배드리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슬퍼하는 기색없이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마르티는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은 신발을 잃어버린 정도가 아니라 두 다리를 전부 잃어 버렸으니 신발이 있어도 신을 수가 없구나.  그에 비하면 난 신발만 잃어 버렸으니 신발이야 또 사서 신으면 될 것을 공연히 남을 원망하고 불평했구나"하고서 그 후부터 마르티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항상 감사할 것을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 후 마르티는 재무장관이 되어 국가에 크게 봉사하여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정치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기억하면서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시편 50편에 하나님은 감사로 예배하는 자를 사랑하시고 환난에서 건지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면서 늘 감사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3. 내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면서 남은 세월을 주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주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서 다른 여러 사도들보다 배나 열심히 복음을 전하면서 수고하였습니다. 그래서 본문 10절에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하였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평안하고 수고없이 사는 것을 은혜라고 하는데 사도바울은 도리어 수고한 것이 은혜였다고 말합니다. 성도들중에는 생활이 윤택하고 걱정없이 사는 것을 축복이라 하고 예수 때문에 가난하여지고 예수 때문에 시련을 당하는 것이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 때문에 수고하는 것을 감사하였고 아무런 대가도 받지 고 주리고 매맞고 욕을 먹으며 수많은 위험을 당하는 갖은 고생을 다 했음에도 이를 하나님의 은혜라고 감사하였습니다. 얼마나 겸손한 모습인지 모릅니다. 그는 자신의 수고와 자신이 이룬 공적을 자신의 공로로 돌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그는 고백하였습니다. 
     오늘날 주의 일을 위하여 부름받은 우리가 많이 배우고 깨달아야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수고도 인정하나 그 수고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주의 일을 해 놓고도 감사가 되지 못하는 것은 나의 공로를 들어내기를 기대하고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기대하는 데서 시험이 되고 섭섭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과거의 자신의 추한 모습을 생각하면서 오늘날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믿게 되었으니 주님으로 인하여 받는 고생과 수고를 도리어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주의 일을 자신에게 맡겨주신 것을 감사하였습니다. 
     오늘날 주님의 교회에 목사, 장로, 권사, 집사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교사와 구역장, 성가대원이 되어 주님의 일을 맡아 충성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떤 시험을 쳐서 실력대로 합격되고 자격이 되어 일을 하게 되었다면 그렇게 큰 은혜가 될 것이 없지만 주님께서 나를 충성되이 여겨 귀한 직분을 주고 주의 전을 위해 일꾼으로 삼아 주셨다면 이는 존귀한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바울의 경우만이 아니라, 오늘날 나의 나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주를 위하여 받는 수고와 고생도 달게 받으십시다. 참으며 견디 십시다. 조금이라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의 빚을 갚겠다는 마음으로 맡은 일에 수고하고 충성하십시다. 누구를 도와 주기 위해서 일하지 말고 주님을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일하십시오
     우리에게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수고하게 하는 것도 실상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일하고 싶다고 해서 다 일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셔야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 처럼 수고의 은혜를 감사하십시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많고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비록 우리가 세상적으로는 어렵고 힘들일을 많이 겪었지만 그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는 영생의 복을 얻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말미암아 죄사함의 은총을 거져 받았습니다. 건강의 은혜도 받았습니다. 사업과 물질의 은혜도 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내 노력과 땀으로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빚을 졌습니다.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우리가 빚만 지고는 살수가 없습니다. 만분의 일이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빚을 갚아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죄인중에 괴수와 같은 자기를, 죽었어도 벌써 죽었어야할 자기를 살려주신 것 뿐 만 아니라 사도의 귀한 직분까지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모든 영광을 주께 돌리며 일생을 이방인의 전도를 위해 바쳤습니다. 오늘에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뿐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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