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을 전파하라(디모데후서 4:1-8)
  • 조회 수: 48, 2013.10.29 18:03:01
  • 디모데후서의 말씀을 동해서 이 시대의 하나님의 사람으로써 하여야 할 사명에 대하여 생각하였습니다. 1장에서는 ‘복음을 지켜라’ 2장에서는 ‘복음을 전하여 고난을 받으라’ 그리고 3장에서 ‘복음 안에 거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제 디모데후서 4장에서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도 바울의 엄숙한 명령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우리들이 잘 아는 대로 디모데후서 4장을 사도 바울에 의해 쓰여진 말씀입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아니해서 이 세상을 떠날 것을 육감으로 느끼면서 그의 감옥에서 이 말을 한 것입니다.

    고대 전설에 의하면 그는 로마 교회 Ostian way에서 목이 잘리었다고 합니다. 30년 동안을 잠시도 쉬는 시간이 없이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으로써 여행하며 일하며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진실로 그는 본문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선한 싸움을 싸웠고 그의 달려갈 길을 마쳤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의 면류관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신앙의 용장 사도 바울이 교회에 원대한 유산을 남기면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에게 엄숙히 명령합니다.

    이 말씀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인 디모데 개인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봉사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거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일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넒은 의미에서 말하면 사실 우리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 그리스도의 증거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자, 그러면,

    1. 사도적인 명령이 무엇입니까?
    본문 2절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를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할 메시지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너무 너무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3절에 말하는 ‘바른 교훈’ 4절에 ‘진리’ 7절의 ‘믿음’과 동등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복음은 구약 성경이 이루어진 것이고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이며 유익한 것이고 디모데가 이미 어려서부터 아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들이 가르치니 모든 것이 디모데가 사도 바울에게서 받고 배운 것입니다. 우리가 전파하여야 할 이 복음은 우리 자신이 꾸며낸 말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전파하라고 주어진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말씀했고 지금은 교회에 밝혀진 비밀로 위탁된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의 메시지는 말씀이요, 우리의 의무는 그것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를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의무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만이 아니라 그 말씀은 믿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그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할 일은 모든 거짓에서부터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받고 복음 안에 머물러 있어야 되고 이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죄인들을 구원하는 복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전령으로서 시장에서나, 학교에서나, 사무실에서나 어디에서나 우리가 아는 바 복음을 용감하게 두려움 없이 우리의 소리를 높여 전해야겠습니다. 여러분 그러실 수 있습니까? 복음을 전파하라.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명령이요 또한 사명입니다. 
    예수님도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얻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여기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는 법을 네 가지로 무리에게 자세히 말해줍니다.

    ① 긴급하게 전파해야 합니다. 
     본문 2절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우리의 복음 전파는 긴급한 것입니다. 우물 우물하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J. B. Phillips의 번역에 보면 ‘결코 너의 긴급성을 잃지 말라’(never lose your sense of urgency) 맥없이 생각없이 계획없이 이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목사였던 Richard Baxter의 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하던 다른 사람이 당신의 진실성을 보게 하십시오. 당신은 농담이나 재미있는 이야기로 혹은 번질한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깨뜨릴 수가 없습니다.
    여간해서는 사람들이 자기가 사랑하는 쾌락을 버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자신이 깨어 일어나 주님의 일을 하며 우리 형제에게 말합시다. 불 밖으로 저희를 밀어냅시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복음 전파는 긴급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의 전령으로 생과 사의 내용이 그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죄인들이 죄인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은 그 독생자를 보내셔서 죽게 하였는데 회개하고 그를 믿으면 살 수 있는 이 사실을 전파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새 영어 보면( NEB)에 보면 “편리하던 혹 불편하던 복음을 (모든 기회에)전파하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편리하든 혹은 불편하든지 간에 모든 기회에 우리의 의무인 복음 전파를 다 하십시다. 긴급히 복음을 전파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우리 국군에서는 ‘전군 신자화 운동’을 벌리고 얼마나 열심히 전도하는지 모릅니다. 벌써 군의 30%가 신자가 되었고 50%를 목표로 맹렬한 활동과 전략을 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로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복음을 긴급하게 전해야 겠습니다. 의견이 좀 다르다고 논쟁할  시간이 없습니다. 복음 전파에 우리의 힘을 모아야 합니다.
    ② 적응성 있게 전파해야 합니다.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 가지 다른 환경과 조건에 적응합니다. 복음은 어디나, 누구에게나 유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를 초월하여 적응합니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필요합니다. 자유 세계에서만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공산세계에도 정말 복음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사람에게도 필요합니다. 죄인에게도 선인에게도 무식한 사람에게도 유식한 사람에게도 가난한 사람에게도 부한 사람에게도 어린이에게도 어른이게도 필요합니다. 실패한 사람에게도 필요하고 성공한 사람에게도 필요합니다. 병든 사람에게도 건강한 사람에게도 필요합니다. 좌절감에 휩싸여 있는 사람에게 복음은 새 힘을 줍니다. 절망한 사람에게 희망을 줍니다. 복음은 공포에 떠는 사람에게 담대함과 용기를 줍니다. 복음은 공포에 떠는 사람에게 담대함과 용기를 줍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치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복음을 적응성 있게 적절하게 전파해야 합니다. 어떤 책을 읽는데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몇 해 전에 이탈리아 어느 시의 시장이 경제인들이 모이는 집회에 가서 시를 대표해서 인사의 말씀을 하게 되었는데 이 모임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모임에 분주한 스케줄에 의해 다니며 환영사, 격려사, 폐회사 등을 하게 되었는데 비서가 다 준비해준 것을 골라서 읽는데 봉투를 잘못 넣어서 경제인들에게 인사의 말씀을 한다는 것이 한참 읽다보니까 축구 시합이 끝난 후에 하기로 준비된 폐회사를 읽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복음은, 절망한 사람에게 희망의 복음이요, 슬퍼하는 사람에게 위로의 복음이요, 다툼이 있는 곳에 화해의 복음, 어려움이 있는 곳에 사랑의 복음입니다.
    우리의 복음 전파는 긴급해야 할뿐더러 적응성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언제나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③ 인내함으로 전파해야 합니다. 
     끝까지 참으면서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오래 참음으로 하라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아무리 복음 전파가 긴급하다고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복음을 받을만한 갈망이 있어야 하므로 우리는 기다리는 마음으로 오래 참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강제성을 띠고 강압적으로 할 수도 없거니와 해서도 안됩니다.
    그의 마음의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예수님도 우리의 마음 문밖에 서서 두드리십니다. 강제로 열지 아니하십니다. 문을 열고 주님을 모셔들이는 것은 사람이 할 일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주신 말씀 가운데,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하셨습니다. 문을 사람이 열어야 합니다. 문을 열 때까지 주님도 기다리십니다.

    우리의 책임은 말씀을 충성되게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성령께서 책임지십니다. 마치 농부가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거름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오래 참으면서 일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고 꽃이 피고 열매 맺게 하십니다. 우리가 열매 맺게 할 수 없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데 있어서 주님의 종이요 하나님의 사람들인 우리는 모두 사람에게 온순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화를 내거나, 저주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사명이 중하니만큼 퉁명스러운 일이나 참지 못하는 일은 용납되지 아니합니다.

    ④ 지성적으로 전파해야 합니다. 
     본문에 ‘끝가지 참으면서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우리는 말씀을 전할 뿐 아니라 가르쳐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실은 가르치면서 전해야 합니다. 한국에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할 때 많은 학교를 세워서 가르치면서 복음을 전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많은 경비를 들여가며 학교를 경영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가르침을 통해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디모데 전서 3장 2절에 보면 교회의 감독의 직분을 말할 때 ‘가르치기를 잘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복음 전하라고 부르셨습니다. 디모데에게 여러 가지 인간적인 약점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약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사명을 맡기실 때는 그것을 완수할 힘도 함께 주실 것을 믿습니다.

    2. 바울의 명령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①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입니다. 
     “그의 나타나심과 그의 나라를 두고” 명령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8절에도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장래 나타나실 주님이시지만 현실 생활에 생생하게 느꼈습니다.
    저나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써 이 세상에 살면서 주의 일을 할 때 이와 같은 실존의 빛 가운데서 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우리를 심판하실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② 오늘의 상황입니다. 
     본문 3절 영어 번역에는 이유를 말하는 전치사 for가 있습니다. “내가 이와 같은 명령을 하는 이유가 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로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복음을 전파하기에 나쁜 시대가 오고 있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나쁩니까? 사람들이 바른(건전한) 교훈을 들으려 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진리는 들으려 하지 않고 허탄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말입니다.

    여기 ‘가려운 귀(itching ear)라는 말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뜻입니다. 뭐 좀 이상한 새로운 가르침을 들으려 합니다. 그래서 가려운 귀를 시원하게 긁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요사이 사이비 종교가 성행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그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곳에서는 “아, 그거 다 아는 성경 펴 볼 것 없고 내가 기도하는 중에 받은 계시는 이러하다”고 하면서 엉뚱한 말을 하면 신기하게 듣고 있는 사람도 많이 있는 모양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상황이 바로 사도 바울이 말한 그때와 같은 감이 듭니다. 극좌 또는 극우로 치우치기 쉽습니다.

    이와 같은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합니다. 조금도 낙심하지 말고 흔들리지 말고 굳건히 서서 너의 직무를 완수하라. 사실 복음을 듣지 아니하려는 것은 복음 전파가 어려운 때예요. 자칫하면 우리를 실망시키기 쉬운 때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을 전파하기 어려운 재일수록 우리는 더욱 힘써야 합니다. 귀가 어두워진 사람들에게 일수록 우리는 분명하게 더욱 크게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연로한 사도 바울이 본문 6절에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복음이 되고’ 하였는데 이는 “벌써 나의 생은 제단 위에 다 부어졌다”는 뜻입니다. “나의 떠날 시간이 되었다” 여기서 바울은 항해의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부두에 닿았던 배가 볼 일을 다 보고는 닻을 거둬들이고 돛을 올리고 저 먼 다른 나라를 향해 항해하는 것을 연상하면서 한 말입니다. 그는 자기의 일생을 잠깐 회고하면서 자신을 하나의 군인으로, 경주자로, 청지기로 보았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부름에 충성을 다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디모데야! 나는 살았다. 선한 싸움도 다 싸우고 달려갈 길도 마쳤고 믿음도 지켰다. 내게는 이제 하늘의 보상밖에 남은 것이 없다. 이제 너 디모데야 일어나서 네 직무를 다 하라”고 하십니다. 아마 디모데는 사랑하는 믿음의 아버지 사도 바울로부터 이 말씀을 받고 마음 속 깊이 간직한 줄 압니다. 그리고 그대로 살았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 시대야말로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씀한 그와 같은 시대입니다. 복음을 전파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낙심할 것이 아니라 시급히, 적응성있게 인내함으로, 지성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며, 모든 일에 단정하고 고난을 견디고 전도자의 일을 하고 우리의 직무를 완수해야 하겠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 :2) 어떻게 이 명령에 순종할 수 있습니까? 사도행전 1장 8절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많은 젊은이들이 이 말씀에 순종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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