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득이 시리즈에 담긴 뜻
  • 조회 수: 30, 2013.06.20 10:48:46
  • 얼마 전부터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이야기 중에 `만득이 씨리즈'라는 것이 있습니다. 만득이라는 아이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귀신과, 그 귀신으로부터 도망치려는 만득이에 얽힌 이야기 씨리즈입니다. 귀신이라고 해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공포의 대상이 아닙니다. 호칭만 귀신일 뿐 실은 사랑과 인간미 넘치는 존재입니다. 한가지 이상한 것은 아이들은 `만득이 씨리즈'를 이야기하면서 깔깔거리며 재미있어 하는데, 어른들에게는 그 이야기가 전혀 우습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 아이들이 그런 내용의 이야기를 즐기는지 이해하기조차 힘듭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식사 시간에 아이들이 서로 `만득이 씨리즈' 이야기를 하며 저희들끼리 우스워할 때, 무엇이 그토록 우스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유를 물으면, 오히려 아이들이 이상하다는 듯 `왜 아빠는 우습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만득이 씨리즈'에 대한 정신분석학자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즉 이야기 속의 귀신은 아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간섭하며 잔소리하는 부모를, 그리고 만득이는 그러한 부모의 잔소리로부터 해방되기 원하는 아이들의 심리를 나타낸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아이들이 `만득이 씨리즈'를 서로 이야기하고 폭소를 터트리면서, 끊임없는 부모의 잔소리로 인한 스트레스를 자신들도 모르게 해소한다는 것입니다. 그 글을 읽은 뒤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만득이 씨리즈'를 들으니 저도 아이들과 함께 웃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해설을 덧붙여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들입니다.

    하루는 만득이가 길을 걸어가는 데 엄마가 `만득아 만득아' 하고 따라 오며 어딜 가는지 묻습니다. 귀찮아진 만득이가 얼른 지하철 역으로 내려가 지하철을 탔습니다. 설마 여기까지야 못 좇아오겠지 하고 있는데, 갑자기 천정에 붙은 스피커가 울려 퍼졌습니다.―`만득아, 만득아' 바로 엄마의 목소리였습니다.

    이번에는 만득이가 자동차를 운전하고 갑니다. 갑자기 자동차 앞 유리창에 엄마가 나타나 `만득아'하고 불렀습니다. 짜증이난 만득이는 유리창 앞 와이퍼를 켰습니다. 그랬더니 유리창으로부터 이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만득-득득-아득'. 만득이를 부르는 엄마소리와 자동차 와이퍼 소리가 겹친 음향이었습니다.

    만득이가 화장실 변기에 앉았을 때입니다. 갑자기 변기 아래쪽에서 엄마가 `만득아!' 하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기분이 언짢아진 만득이가 변기의 물을 틀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아래에서 이런 소리가 났습니다. ― `만푸-득푸-아푸'

    아이들이 지하철을 타건, 자동차를 타고 가건, 심지어 화장실에 가건 끊임없이 따라다니며 간섭하고 잔소리하는 부모들의 모습이, 그 간섭 속에서 살아야하는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비치는 것입니다. 요즈음은 또 `삐삐'라는 게 있어, 심지어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한테 까지 삐삐를 채워주고 원격조종하는 부모까지 있는 한, 만득이 씨리즈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될 것입니다.

    비단 요즈음 아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 모든 아이들은 부모하면 먼저 잔소리를 연상할 만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아이들은 부모의 끝없는 간섭과 잔소리 속에서 자라납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책임이요 의무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그 숱한 간섭과 잔소리 중에 정말 자식에게 필요한 말, 자식이 격랑의 세상을 살아 갈 때 도움이 될 생명의 말, 지혜의 말, 진리의 말들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2년 전 삼풍 백화점이 붕괴되어 수많은 사람이 졸지에 생명을 잃었던 그 참혹한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구출되었던 사람 중에 유지환양이 있었습니다. 당시 18세의 어린 소녀였던 유양은 무려 13일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구조되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연약한 소녀가 무려 열 사흘 동안이나 죽음의 구렁텅이에 갇혀 있으면서도, `이제 죽었구나' 하고 절망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절대로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평소 엄마가 들려주던 말들을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소녀의 어머니는 고학력자가 아니었습니다. 넉넉한 가정의 주부도 아니었습니다. 5년 동안 병석에 누워 있는 남편의 병간호와 생계를 도맡은 가련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여상을 졸업하고 대학생인 오빠의 뒷바라지와 생계를 돕기 위해 취직한 딸에게, 늘 희망의 말들을 들려주었습니다. 유양은 그 절망의 밑바닥에서 평소 어머니가 들려주던 희망의 말들을 곱씹으면서, 절망과 죽음을 끝내 이긴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자 한 어머니는 이렇게 한탄했습니다.  "무너진 건물더미에서 13일간이나 갇혀있으면서 엄마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힘을 얻었다는 18세 소녀의 말을 들으며, 저는 저와 제 아이들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아이들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한 말은 공부 열심히 하여 좋은 대학가라는 잔소리뿐이었습니다. 저는 그 동안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인생의 지혜를 들려줄 지혜를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또 다른 어머니는 이렇게 자문했습니다. "나는 이제껏 내 아이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었을까? 아이들이 훗날 역경에 처했을 때, 과연 내가 가르쳐 준 어떤 말에 의지하여 힘을 얻고 일어설 수 있을까?" 죽은 줄 알았던 딸이 13일만에 살아 나왔을 때 어머니의 기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딸을 대견스러워하는 어머니에게 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가 가르쳐 줬잖아요.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희망을 잃지 말라고..."  자기가 그 지옥으로부터 살아 올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덕분이란 의미입니다. 그 말을 듣는 어머니의 감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이때 서로 부딪치는 어머니와 딸의 시선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감동적인 모습입니까?

    그러나 이와 같은 감동은 아무에게나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식에게 생명과 지혜의 말과 가르침을 줄 수 있는 부모, 그리고 그 말을 가슴 속에 새기는 자식 사이에서만 일어 날 수 있는 일입니다. 이 땅의 모든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다 이러하다면, 쉬임없는 부모의 잔소리를 귀찮아하는 `만득이 씨리즈'와 같은 이야기들은 발붙일 틈이 없을 것입니다.

     

댓글 0 ...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admin 39 2013.07.21
admin 40 2013.07.21
admin 43 2013.07.21
admin 55 2013.07.09
admin 30 2013.06.20
admin 180 2013.06.20
admin 50 2013.05.12
admin 75 2013.05.12
admin 35 2013.05.12
admin 138 2013.05.12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