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자가상에서의 효도(요 19:25-27)
  • 조회 수: 207, 2013.06.20 10:55:32
  • 제가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자마자 저희 가정이 큰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중학교를 더 이상 다닐 수 없는 곤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불과 1년 전,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고 합격자 발표를 하는 날,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둥켜안고 합격을 확인하는 순간의 환희는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때 이미 아버님께서는 죽음의 병과 싸우시고 계셨기에 거동을 하시지 못하셨는데 제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아버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희 집에서 20리 정도 되는 지점에서 아버님을 뵙게 되었는데, 이 거리는 도저히 아버님 혼자서 걸어오실 수 없는 거리였기에 저는 무척 놀랐습니다. "아버지, 어디 가세요?"하고 물으니까 말씀하시기를 "너의 합격자 발표가 궁금해서 그냥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되었느냐?"고 하셨습니다. 합격했다고 말씀드렸더니 죽음의 병과 싸우시느라 피골이 상접하신 얼굴로 환하게 웃으시면서 기뻐하셨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렇게도 무뚝뚝하셨고 어른들끼리도 사사로운 이야기 한번 하시지 않으셨던 아버님이 저의 중학교 합격에 그렇게 궁금해하시며 깊은 관심을 보여주셨다는 사실이 얼마나 저를 감격시켰는지 모릅니다. 더욱이 아버님은 심각한 죽음의 병을 앓고 계셨기에 거동도 불편하셨습니다. 저는 때때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합니다. 아버님은 그렇게도 저를 사랑하셨는데 저는 효도 한 번 제대로 못해드렸습니다. 아버님께서 그 이듬해, 그만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 5:16)고 하셨습니다. 우리 나
    라는 본래 부모 공경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나라였고 또한 이와 
    관련된 자랑스러운 미담을 찾아보기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동방예의
    지국이라고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이 전국민의 1/4 정도가 되었는데도 부모공경
    의 미풍양속은 심각하게 훼손되어가고, 고부간의 갈등은 좀 완화되어 간다지
    만 장서(丈 )지간과 부자지간의 갈등은 더욱 깊어만 간다고 합니다. 심지어 
    요사이는 치매 병을 앓는 부모님들을 길가로 내 버리는 일조차 허다하다고 
    합니다. 특히 맞벌이를 하는 부부가 늘어가면서 돌보는 손길이 필요한 노인
    들의 복지문제가 사회문제로까지 확대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효사상이 
    그 뿌리 채 흔들리고 있는 오늘, 우리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혼자되신 어머니
    께 효도하시는 모습을 보며 우리의 효사상을 다시 한번 점검하여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1. 예수께서는 어머니의 아픔을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예수께서 전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그 십자가 앞
    에서 흐느끼는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예수의 모친과 이모, 글로바의 아내 마
    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이렇게 네 여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이 인류를 구속하기 위한 대속의 죽음이었다고 하는 확신을 가졌다면 
    슬픔을 참아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들은 예수의 죽음 뒤에 
    그런 위대한 하나님의 섭리가 숨겨져 있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
    수는 정의와 진리와 생명 운동을 하다가 빌라도와 헤롯, 대제사장 등 당시 
    최고의 권력자들의 눈밖에 벗어나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것으로만 알았습니
    다.

    모친 마리아의 슬픔은 너무도 애절했을 것입니다. 일찍이 남편을 잃
    고 큰아들 예수만 의지하며 살았는데, 그만 역적으로 몰려 사형을 당하는 아
    들의 모습을 보며 마리아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을 느끼게 되었습
    니다. 물론 십자가형을 받으시는 예수의 고통은 그 여인들보다 더했을 것입
    니다. 손톱 사이에 작은 가시 하나만 박혀도 아파서 견딜 수 없는 법인데,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혔고, 옆구리에는 창이 찔렸고, 머리에는 가시 면류
    관이 씌워졌으니 그 고통을 어떻게 참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
    고 주님은 자기의 아픔을 참으면서 자기 어머니의 아픔을 생각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26절)! 예
    수께서 어머니의 가슴 아픈 것을 보셨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깊은 관심과 배
    려가 있었습니다.

    어느 전문대학교 토목학과에 재학중 군에 입대하였던 이재준군은 자
    기 아버지가 심장병이 악화되어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달려오게 되었습니다. 
    심장이식수술을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재준군과, 
    누나, 여동생은 모두 자기 심장을 아버지께 드리겠다고 나섰는데, 재준군의 
    혈액형이 아버지하고 맞아 자기의 심장을 아버지께 드려 아버지를 살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재준군이 그렇게 하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가 할아버지께 
    효도하는 것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효자 밑에 효자 난다"는 
    옛말처럼 이군의 가문에는 효의 전통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재준 군
    은 아버지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알았고, 위험을 무릎쓰고 아버지를 살
    려내게 되었습니다. 이런 가문은 아주 훌륭한 가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순간까지 가슴 아파 우시는 어머니
    의 아픔을 보시고 어머니께 위로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부모님의 
    아픔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님의 처지를 살펴야 합니다. 외로움을, 경
    제적인 궁색함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부모님께 가까이 가서 따뜻한 말과 부드러운 얼굴로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사랑과 존경의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 중요합니
    다. 손을 잡아드리고 따뜻하게 감싸주어야 합니다.

    2. 예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죽으시면서도 효도하셨습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의 도덕적 타락으로 유교도덕의 복귀를 말하는 이들
    이 있습니다. 유교도덕의 핵심은 "부모가 부모답지 않아도 자식은 자식다워
    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사회, 즉, 오늘의 효는 "부모는 부모다워야 
    하고, 자식도 자식다워야 한다"는 상호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우리 나
    라 이조 500년의 역사는 유교사상을 사회의 기본이념으로 삼았습니다. 그러
    나 참다운 이상형의 사회를 건설하기는커녕, 유교주의 관료체제는 백성을 억
    압하는 수단이요 나라의 번영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어왔습니다. 권력자들
    은 백성을 착취하면서도 나라가 평안하기를 바라고, 부모들은 주색잡기로 놀
    아나면서도 자식들이 잘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자식은 부모의 행동을 그
    대로 답습하게 되며, 가정이나 사회나 악순환의 고리는 삶의 실천을 통해서
    만 끊어지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모범이 되는 생활을 해야만 그 모습을 보고 자식들이 바르게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보면,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그의 믿음을 본받으려고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수천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묘 밑에서 그들이 지켰던 율법을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유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조상에게서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직 여호와만이 만복의 근원이신 것을 확실히 믿지
    만, 선조들의 위대한 신앙과 삶의 정신은 배우고 본받아 후세에 길이길이 물
    려주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실상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잘 모셔야 합니다. 돌아가신 다음에 잘
    해 드리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말할 수 
    없는 육체적 고통 가운데서도 어머니의 장래를 염려하셨습니다. 물론 자기가 
    세상을 떠나면 동생들이 모시겠지만 더욱 잘 모실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믿을만한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시게 되었습니다. 어
    머니의 평생을 내대신 모셔 드리라고 부탁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기 어머니의 미래를 생각하셨습니다. 지극한 효도의 모범을 보
    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요사이 많은 젊은이들이 세상의 풍조에 따라 부모님을 모시지 
    않으려고 한다고 하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그러면 안됩니다. 주님은 자기 몸이 찢겨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괴로
    움 속에서도 어머니의 장래를 염려하셨습니다. 어머니께 죄송하여 괴로워하
    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부모님과 함께 사
    는 것을 외면합니까?

    저에게 가끔 이런 전화가 옵니다. "목사님, 제 어머니와 아내 사이가 
    불편해서 집에 들어가기가 싫습니다. 중간에 끼어서 도무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편을 들 수도 없고, 사랑하는 아내의 편을 들 수도 없
    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그런 분들에게 "당신이 당신 가정의 고부간의 
    갈등을 해결하는데 적극 나서야 합니다"라고 답변합니다. 어떤 이는 "목사님, 
    시어머니 모시기가 정말 어려워요. 성미가 워낙 까다로운데다가 지나치게 간
    섭을 많이 하기 때문에 견딜 수가 없어요. 시어머니 얼굴만 보아도 가슴이 
    두근거려요" 라고 합니다. 그분에게는 "당신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남
    편을 낳아준 부모를 사랑해야 합니다"고 권면합니다.

    이 말이 평범한 충고 같지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면 그들의 문
    제가 점차 해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부모공경이 성
    경의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이자 주님도 몸소 실천의 본을 보이셨다는 사실
    을 명심해야 합니다. 부모님을 극진히 잘 모시고, 그 효의 도리를 자녀들에
    게도 잘 본받게 해 우리의 가정이 사랑과 화목의 터전이 되도록 해야 합니
    다. 우리의 가정이 흔들리지 않아야 우리의 사회도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3.예수께서는 효도를 행동으로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들이 어머니도 못 모시고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되었으
    니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식의 마음으로만 어머니를 위로한 것이 아니라 구
    체적인 대책을 세워 실천하셨습니다. 신앙이 머리와 마음의 생각으로만 끝나
    버리는 관념적인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것은 결코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부모공경에 있어서도 마음으로는 계획을 세우지만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
    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부모님을 자주 찾아뵈어야겠다. 용돈을 더 드려야
    지" 마음은 먹지만 막상 실천하려면 이런 저런 이유가 생겨 자꾸 뒤로 미루
    는 경우가 많습니다. 행하지 않는 믿음이 죽은 믿음인 것처럼 실천하지 못하
    는 효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고 요한을 당신의 
    아들로 생각하시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요한에게는 "보라. 네 어머니라"
    고 하시면서 내대신 우리 어머니의 평생을 잘 모셔드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아들로서 모든 책임을 다 완수하시는 모습입니다. 십자가형
    이라는 인간의 한계상황 속에서도 자기의 육신의 어머니의 평생을 요한에게 
    잘 모셔달라고 요청하심으로 효의 극치를 보여주셨습니다. 자기 어머니의 평
    생의 문제를 해결하심으로 비로소 주님은 모든 사명을 다 이룬 것으로 생각
    하셨습니다(28절).

    주님은 효도를 말로만 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의 짧은 생애동안 철저
    하게 어머니를 모셨고, 죽으시면서 보여주신 모습은 효의 절정이었습니다. 
    요한은 예수의 부탁을 받고 예수의 모친까지 평생을 잘 모셨습니다. 주님의 
    명령은 얼마나 준엄한지 모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이 시간 명령하십니
    다: "너의 부모님께 효도하라!" 이 말씀은 이미 구약의 십계명을 통해서 명
    령하셨고 우리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몸소 귀한 본을 보여주심으로 우리에게 
    다시 당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현세의 특징 중의 하나는 세상이 악하여 부모에게 
    불효하는 풍조입니다. 이 풍조는 우리의 인격을 파멸시키고, 우리의 가정을 
    파괴하며, 세상의 종말을 앞당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
    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는 말씀대로 부모
    님을 잘 공경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댓글 0 ...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63 admin 247 2013.06.20
62 admin 624 2013.06.20
61 admin 209 2013.06.20
admin 207 2013.06.20
59 admin 225 2013.06.07
58 admin 405 2013.05.10
57 admin 223 2013.05.09
56 admin 236 2013.03.22
55 admin 298 2013.03.22
54 admin 181 2013.03.22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