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사의 기적(역대하 20:20-31)
  • 조회 수: 582, 2013.11.14 19:25:09
  •  사물은 주변의 긴장이 없어지면 원형으로 돌아가는 성질이 있습니다. 고무줄을 당기면 늘어나지만 힘을 빼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사람은 어떨까요? 사람의 원형은 무엇일까요? 사람의 본성에 대해서 성선설, 성악설.... 이런 주장들이 있는데 성선설은 사람의 천성 자체가 선하다는 거죠. 성악설은 그 반대고요. 저는 사람의 본성에 대해서 성선설을 믿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고 가르치는데 이는 성선설을 뒷받침하죠. 저는 지체장애인들을 보면서 이걸 강하게 느꼈습니다. 지체장애인들뿐만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긴장이 빠져나가 마치 필름이 끊긴 듯 정신이 나간 사람들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미쳤다고 하지만 사실 그들의 표정을 보세요. 너무 선하고 행복해 보이잖아요? 전혀 구김살이 없고 항상 웃고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잘 웃으면 마치 뭐가 모자란 사람처럼 보는데... 사실은 천진난만한 웃음, 감사, 만족.... 이런 것들이 사람의 원형, 본질과 관계가 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 잘 아시겠죠? 우리는 원래 행복하도록, 만족하도록, 범사에 감사하며 살도록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뭔가 외부의 힘이 이런 것들을 짓눌러서 억누르고 있죠. 뭐 지나친 경쟁심, 탐욕... 이런 것들이 우리를 진누르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감사라는 것은 뭔가 큰 것이 주어지고, 내 인생에 큰 변화가 일어나야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 제가 몹시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물밀 듯이 생겨난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뭐 로또에 당첨된 것도 아니고, 몇 년 된 적금을 찾은 것도 아닙니다. 단순히 아침에 음악을 듣다가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침에 햇살이 눈부시게 비쳐 창가를 바라보는데 마침 라디오에서 제가 옛날에 즐겨들었던 음악이 흘러나오는 거예요. 그 순간에 사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지금 내가 여기 있다는 것, 아내가 아이를 학교에 데리고 나가는 모습.... 심지어는 음악을 들으면서 창가에 보이는 이 초장동 풍경조차도 너무너무 아름다운 거죠. 그 음악 하나에 사람이 이렇게 행복할 수도 있구나.... 사실은 그 음악으로 인해 나를 얽맨 것들에서 잠간 동안이나마 벗어날 수 있기에 그런 행복감, 감사함... 이런 감정을 느낀 것 아니겠습니까? 저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다 그래요. 단지 제가 그걸 표현한 것 뿐이죠. 그러니 사람의 행복, 만족감, 감사... 이런 것이 얼마나 소소하고, 단순한 것에서부터 오는가.... 하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요즘 우리는 이런 좋은 감정들을 잊어버리고 삽니다. 뭐가 부족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 환경을 보세요. 뭐가 부족합니까? 반만년 한민족의 역사상 지금처럼 평화롭고, 지금처럼 풍요로운 시대가 있었던가요? 저 알렉산더 대왕, 저 진시황제, 로마제국의 카이사일지라도 우리가 누리는 삶의 축복을 한시라도 받은 적이 있을까요? 우리가 이런 축복의 시대에 살아갑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행복하지 못하고, 감사가 없을까요? 그것은 감사가 뭐를 더 소유하고, 누리는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오늘은 한국교회, 더 나아가서 전 세계의 교회가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이 추수감사절에는 하나님께서 지난 1년 동안 우리의 인생에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추수감사헌금을 드리며 하나님께 감사하죠. 그런데 우리가 이 추수감사주일을 정말 잘 지키는 것은 추수감사헌금을 얼마만큼 하냐.... 이게 문제가 아니라 정말 내가 감사할 것들이 많구나.... 이렇게 감사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감사의 회복은 앞으로 우리를 잘 살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인생의 괘도를 가장 바르게 잘 잡는 길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데보라 노빌이라는 한 방송기자는 0.3초 만에 내뱉는 말 “Thank you!”가 자신의 인생에 수많은 기적을 가져다 주었다고 해서 ‘0.3초의 기적 감사의 힘’이라는 책을 지었습니다. 또 멜로디 비티라는 사람은 40일 동안 하루 10분 감사를 표현하는 연습을 통하여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하며 “감사의 기적”이라는 책을 지었습니다. 이러한 책들이 주장하는 바는 다 한 가지입니다. 삶의 조건이 바뀌고, 무언가가 주어졌기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바꿈으로서 감사하게 되고, 그 감사로 인해 자신의 삶이 기적으로 가득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환경에 짓눌리고, 탐욕에 짓눌려 살아갈 것이 아니라 이런 것들을 감사를 통하여 이기고, 물리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유다 왕 여호사밧이 암몬과 모압의 연합군과 전쟁할 때 찬양대를 군대 앞에 세워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전쟁에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대하18장에 보면 여호사밧의 유다라는 나라는 아합과 연합하고서도 적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노래하는 자들을 군대 앞에 두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할 때 전쟁에서 이기게 되었죠.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이 감사와 찬송으로 영적인 승리를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감사하고 찬송하는 심령만이 승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적은 암몬과 모압과 세일 거민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어둠의 주관자들과 악한 영들.... 더 나아가서 온갖 탐욕, 시기심, 사악한 경쟁심.... 이런 것들이 다 우리의 적입니다. 이런 것들을 우리가 다 감사의 찬양을 통하여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아무리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시57:4에 “내 혼이 사자 중에 처하며 내가 불사르는 자 중에 누웠으니 곧 인생 중에라 저희 이는 창과 살이요 저희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악한 것들이 우리를 삼키려고 한 것 입니다. 이런 곳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겠습니까? 이런 곳에서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감사 찬양에는 승리의 기적이 있습니다. 

    감사가 왜 기적을 일으킵니까? 감사는 흘러넘치게 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26절 “브라가 골짜기”에는 얼마나 물건이 많았는지 그 물건을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으므로 사흘 동안에 취했으며, 거기서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였더니 그곳을 오늘날 까지 브라가 골짜기라고 불렀습니다. 브라가 골짜기는 축복의 골짜기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감사가 넘치는 기적입니다. 감사하면 은혜가 더하여 넘칩니다. 고후4:15에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제 대학 동기 중에 한 친구가 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이 친구 이야기가 생각나서 하는 겁니다. 이 친구가 4학년 1학기 수업을 끝으로 이제는 그 교수님 수업을 듣지 못하니까 교수님에게 감사의 편지를 썼습니다. 뭐 강의가 유익했고, 교수님을 통해 인격의 감화를 많이 받았노라.... 이런 내용입니다. 이 편지를 읽고 교수님이 그를 연구실에 불렀습니다. 자네는 나를 잘 아는데 나는 자네를 잘 모른다.... 물론 다른 학생들도 거의 다 모르지만 그래도 대학 4년 동안 내 강의가 유익하고, 나를 통해 인격의 감화를 많이 받았다고 편지를 쓴 것은 자네뿐이니까 자네를 모르고 졸업시키면 좀 섭섭할 것 같아서... 이러면서 이 것 저 것을 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취업에 관한 것도 물으면서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한 것을 알고 롯데 회사에 추천해서 취직까지 시켜주었다고 합니다. 감사의 편지 하나에 좋은 직장까지 알선 받은 셈이지요. 감사해서 손해 볼 것이 없습니다. 감사하면 축복을 넘치게 받게 됩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산타마리아 로벨라 성당에 있는 마사초의 벽화 ‘성삼위일체’ 그림 밑 부분의 누워 있는 해골상 위에 이런 경구가 적혀있습니다. “여기 누워 있는 나도 예전엔 너희 모습이었다.” 섬뜩하지만 예외 없는 경고죠.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지를 안다면 우리의 삶은 틀림없이 달라집니다. 지금이 비록 내 인생 최악의 시간이라 할지라도 내가 몸부림치며 버티고 있는 이 순간이 내 삶의 기적 같은 순간들이고 더 나아가 내 삶의 최고의 순간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뭔가를 해내겠다는 각오보다 지금껏 버티고 견뎌온 것에 먼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자신이 삶의 가장 밑바닥에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라도 더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독일의 재무부 장관을 지낸 바덴이라는 사람이 있죠. 그 사람은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보고 매사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임하여 국가를 위해서도 크게 공헌한 사람입니다. 그가 어떻게 그런 삶을 살게 되었는지 아주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 고생을 많이 하고 있을 때 한 번은 어느 지방에 여행을 갔다가 돈이 없어서 싸구려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구두가 없어졌습니다. 밤새 도둑을 맞은 것이죠. 여행 중에 구두를 잃어버렸으니 다시 사야하고, 다시 사려고 보니 사러 나갈 신발도 없으니 짜증이 납니다. 그만 화가 나서 어느 놈이 내 신발을 훔쳐 갔느냐고 욕하면서,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나같이 가난한 사람의 신발을 다 훔쳐가게 하다니... " 하며 아무 관련도 없는 하나님까지 원망을 하였다고 합니다. 주인에게 이야기 했더니 창고에서 헌 신발을 꺼내 빌려주면서 주일이라서 신발점도 문을 열지 않았을 것이니 교회나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못해 교회에 갔습니다. 남들은 다 찬송하고 기도하는데 신발을 도둑맞은 것 때문에 계속 화가 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니 찬송을 하는데 얼마나 즐겁게 찬송을 하는지.... 처음에는 그렇게 찬송 부르는 것을 보면서도 짜증이 났는데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이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은 것을 보고 바덴은 무안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답니다. "저 사람은 신발을 잃어버린 정도가 아니라 두 다리를 전부 잃어버렸으니 신발이 있어도 신을 수 없겠구나. 그에 비하면 나는 신발만 잃어버렸으니, 신발이야 없으면 사서 또 신으면 될 것을 괜스레 남을 저주하고 하나님까지 원망하였구나" 이런 깨달음을 얻은 후 바덴은 인생관이 달라져서 자기에게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때부터는 남을 원망하지 않고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고, 그러면서 인생이 잘 풀리면서 독일의 재무장관까지 지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렇게 감사를 회복하여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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