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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스라 07:01-12절/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을 받는자 [에스라]
  • 조회 수: 329, 2018.04.15 13:01:38
  • 우리는 지금까지 학개서와 에스라서 1장에서부터 6장까지 말씀을 배웠습니다. 학개서와 에스라서 1장부터 6장까지는 같은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두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해 놓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주요 인물은 스룹바벨이라는 이스라엘 지도자였습니다. 스룹바벨은 다윗의 후손으로서 맨 처음으로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백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돌아온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라서가 7장으로 넘어오면서 갑자기 주요인물이 스룹바벨에서 다른 사람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에스라라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민족이 에스라를 필두로 2차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되는 배경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의 시작인 1절에서 5절까지는 에스라의 집안과 가문 출생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1절에서는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대해서 말하면서 그의 출생을 이야기하고 있고 5절에서는 보다 주체적으로 에스라의 가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비수아의 십삼대 손이요 비느하스의 십사대 손이요 엘르아살의 십오대 손이요 대제사장 아론의 십육대 손이라" 에스라가 대제사장 아론의 십육대손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에스라는 집안을 한 마디로 대 제사장의 집안이었습니다. 에스라는 대 제사장 아론의 가문의 사람으로서, 그의 부모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와 포로 생활 중에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배우고 있는 에스라서 역시도 오늘 본문의 주인공이 하나님의 역사하심 가운데 기록한 글이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사용하여 에스라서 라고 불리우는 것입니다.

     

    에스라의 직분은 11절에 나와 있습니다. 11절에 보면 에스라에 대해 학자와 제사장 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학자라는 것은 대학교나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전문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무슨 공적인 직분이 아니고, 바사 제국이 공인하는 그런 직업도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학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율법학사를 이르는 말입니다. 당시 솔로몬의 성전이 무너졌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바벨론 땅에 포로로 끌려왔기 때문에, 성전에서 제사를 지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사는 마을에서 회당을 짓고 그곳에서 제사 대신 간단한 예배의식을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늘날의 성경인 율법 책을 읽고 공부하였습니다.

     

    성전이 없던 포로생활 시절 회당은 성전을 대신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배의 장소가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신앙의 장소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사장의 집안에서 태어난 에스라는 이러한 회당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르치는 일을 감당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에스라가 오늘 본문에 보면 바사 왕에게 큰 총애과 신망을 얻고 있다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6절에 보니깐 에스라는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였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한 발 더나아가 에스라가 바사 왕에게 어느정도의 권한을 받았는지 11절부터 26절까지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우선 그에게 주어진 권한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제사장, 그리고 레위 사람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바사의 왕이 에스라를 불러 그를 예루살렘으로 보내는 이유는 정확히 나와 있지 않지만 14절에 나온 내용으로 보아선 '이스라엘 땅의 형편을 살피기 위해서'임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변방에 있는 이스라엘 땅이 어떠한지 행정적으로 조사하고 살펴보기 위해서 나라의 공무원들을 보내는데, 이 때 이스라엘 사람인 에스라를 불러서 함께 가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왕이 에스라를 이 들 중에 가장 높은 지위의 사람으로 세웠고, 또한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민족 중 아직 고향 땅에 가지 않는 사람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권한도 함께 주었습니다. 뜻이 있는 사람들, 에스라가 원하는 사람들은 사람의 종류나 숫자나 규모에 상관없이 누구나 데리고 갈 수가 있었습니다. (11-14절) 당시는 바사제국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왕의 명령이 없이는 자신이 사는 곳에서 함부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바사 왕이 에스라에게 이 권한을 위임한 것입니다. 또한 이와 더불어 바사왕은 하나님의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할 모든 예불을 지원해 주겠다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여행 경비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충분하고도 넘치는 재정도 지원해 준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15-23절) 21절과 2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 곧 아닥사스다 왕이 유브라데 강 건너편 모든 창고지기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가 무릇 너희에게 구하는 것을 신속히 시행하되" "은은 백 달란트까지, 밀은 백 고르까지, 포도주는 백 밧까지, 기름도 백 밧까지 하고 소금은 정량 없이 하라" 은 백달란트를 비롯하여 필요한 모든 것들이 넘치도록 에스라에게 주도록 왕이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은 백달란트면 오늘날 무게로 3400kg 정도 된다고 합니다. 요즘 은 시세가 1kg 당 3십8만원 정도 하니깐 총 백달란트는 오늘날 130억 정도 되는 돈입니다. 또 이와 더불어 왕은 에스라에게 이스라엘 지방에 행정권과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도 함께 주었습니다.

     

     

    에스라의 뜻에 따라서 관리들을 세울 수 있었고 심지어 말을 듣지 않는 자에게는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해 주었습니다.(24-25절)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 볼 때 에스라는 왕의 대리자로서, 지금 예루살렘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바사 제국이 정복한 바벨론 나라에 포로로 잡혀있던 이스라엘 민족은 너무 나도 작은 소수 민족이었습니다. 민족적인 혈통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정치적으로도 별로 주목해서 볼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개인적으로 행정능력이 뛰어난 행정가도 아니었고, 정치적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인물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작은 민족, 이스라엘의 학자이자 제사장에 불과했던 그가 어떻게 이처럼 당시 세계 최강의 나라 바사 제국의 왕에게 철저한 총애와 신망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왕이 친히 나서서 모든 일을 챙겨주고 그의 모든 권한을 위임해 정도로의 존귀한 존재가 될 수 있었던 이유,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 까요? 어떻게 왕이 그에게 이러한 큰 권리와 특혜를 위임했는지 구체적으로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에스라는 다른 길로 간 적이 없이 오직 하나님의 종으로서 성실히 그의 사역을 감당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10절에 나와 있듯이 오직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려고 하는 거룩한 소망을 가졌다라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이런 그의 소망은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을 사모했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우리는 이러한 그의 성실과 거룩한 소망이 바사 왕의 눈에 먼저 띈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에 먼저 띄었다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6절에서 보면 이 에스라가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은 자'라고 말하면서 '그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았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에스라가 이처럼 바사 왕에게 큰 신망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에스라가 이렇게 존귀한 존재로, 인정받고 쓰임받을 수 있었던, 그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에스라 뿐만 아니라 저와 여러분 역시 에스라가 받았던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무수한 위기와 어려움들이 우리들의 삶가운데 만연해 있는 이 때, 우리 가정, 우리 직장과 사업, 우리 교회, 우리 나라와 민족이 에스라가 받았던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에스라가 하나님 앞에 큰 은혜를 입을 수 있었던 이유,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귀하고 존귀한 존재로 쓰임받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 앞에 그는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에스라가 처한 환경은 장미 빛의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에스라의 민족인 이스라엘 민족은 이미 한번 멸망을 당하고 머나먼 이방 나라에 끌려온 상황이었습니다. 에스라는 오랜 시간동안 이방 땅에 살면서, 소수민족으로서 많은 어려움과 설움도 당했을 것입니다. 그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고향 땅 예루살렘을 기억할 필요도 없었고, 그의 조상의 하나님도 사실 믿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바벨론과 바사라는 거대한 제국에서 살면서, 얼마나 많은 선진 문화와 학문들을 눈으로 보고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겠습니까?




    소수민족의 제사장으로 있는 것보다, 거대 제국 바사 제국이 섬기는 이방 신을 섬기고, 그곳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훨씬 이익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제사장의 직분을 물려받지 않고, 그냥 세상에 나가 사업을 하거나 장사를 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자신의 소수민족의 신분을 숨기고 아예 이방민족에 동화되어 살면 차별도 당하지 않고, 손쉽게 잘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이 모든 세상의 유혹을 뿌리치고, 끝까지 하나님의 종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조상의 하나님, 아버지의 하나님, 그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섬기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귀하게 보신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 앞에 그는 거룩한 소망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에스라가 포로생활 중에 태어난 포로민들의 2세 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직분과 사명을 잊지 않았다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자신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종의 가문에서 태어난, 하나님의 사역자임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머나먼 이방 땅에 있었지만,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며, 또한 이방 땅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에스라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 상관없이 성실하고도 부지런히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신실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10절의 말씀을 보시면 이러한 에스라의 마음과 모습이 잘 나와 있습니다.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부모의 고향이자, 이스라엘 민족의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그의 이유와 목적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그것을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대 제사장의 후손이자, 하나님의 종이었던 에스라의 거룩한 소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러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중 하나는 그가 하나님 앞에 성실했고, 이러한 거룩한 소망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말씀에 대한 열심과 헌신의 마음을 품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 징계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아마 에스라는 과거 이러한 일들을 기억하며, 이제 과거의 잘못을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라는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하나님의 종으로서, 더욱 큰 책임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씀으로 잘 가르치기를 소망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작은일에도 성실히 잘 감당했던 에스라, 그는 하나님 일에 성실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거룩한 열망을 가졌고, 그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잘 가르쳐야 거룩한 소망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에스라에 대해서 한마디로 요약해서 표현하자면 에스라는 하나님 앞에 마음이 착하고 깨끗한 사람이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용어중 하나는 꿈과 비전이라는 말입니다. 꿈과 비전이라는 말이 참으로 좋은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위한 꿈과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배우고 있는 에스라도 그랬고, 앞으로 배울 느헤미야와 에스더 역시 하나님을 위한 꿈과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꿈과 비전을 가지기 전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착하게 하고, 깨끗하게 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머나먼 이방 땅에서, 소수민족으로 살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제사장의 일을 성실히 잘 감당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말이 제사장이지, 포로생활 중에는 과거 그들의 조상들 처럼 성전에 들어가 제사를 드리는 특권을 잊어버린지 오래였습니다. 제사장은 과거와 같이 큰 명예와 특권을 가진 직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자신이 누려야 하는 명예과 특권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지금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작은 일에 충실하였습니다.

     

     

    그일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말만 앞서고, 생각만 크게 꾸는 공상가가 아니라, 그저 자신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작은 일을 성실히 잘 감당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에스라의 일평생 꿈은 눈에 보이는 큰 것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우고 연구해서, 백성들을 잘 가르쳐야 한다라는 소박한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소박한 꿈과 소망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세상에서 가장 귀한 꿈이고 거룩한 소망이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소중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하고 불순종했기 때문에 징계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보신 것은 에스라의 삶가운데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묵묵히 책임감 있게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꿈을 가지되, 착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거룩한 소망을 품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올바른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올바른 방법, 올바른 방향의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사명에 대한 삶의 태도였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경외 였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올바른 삶, 올바른 소망과 꿈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저마다 큰 일을 하기를 원하면, 큰 꿈을 꾸라고 말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마다 설교단과 강단에서 성공을 외칩니다. 큰 일을 하라고 말하고 큰 꿈을 품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 앞에 무엇이 큰 일이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무엇이 소중한 일인지 올바르게 알려주는 교회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작 꿈과 비전에 대해서 말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올바른 꿈과 비전은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알려주는 강단은 많이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기준과 시선은 우리 인간의 것과 다릅니다. 큰 일을 하고, 큰 성공을 이루는 것, 큰 꿈과 비전을 가지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이 생각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하나님은 다섯 달란트 맡은 자나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맡은 자나, 모두 적은 일에 충성했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우리 인간이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루고, 큰 것을 이루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모두 적은 것에 불과하실 것입니다. 에스라는 이러한 사실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에스라는 오늘날 교회와 목회자들이 외치는 큰 목회, 큰 사명, 큰 업적이라는 유혹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빠져있는 성공 병에도 빠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소망은 그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잘 감당하는 것이었고, 그의 꿈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우고, 잘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꾸준히 하나님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던 에스라를 하나님께서는 귀하게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의 원문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해서 왕에게 존귀한 존재'가 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 에스라 처럼 비록 인간의 눈으로 작고 보잘것 없는 것 처럼 보일지라도, 나에게 하나님이 지금 맡겨주신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고, 성실히 그일을 감당하실 수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작은 소망일 지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올바른 방향과 올바른 방법을 통하여 착하고 거룩한 소망을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함으로 올바른 태도와 모습으로, 착한 마음, 깨끗한 마음을 가짐으로 하나님 앞에 에스라처럼 아름답고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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