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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고린도후서 02:13-17/ 그리스도의 향기 [수요]
  • 조회 수: 607, 2018.05.23 16:06:10
  •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 우리 성도의 관계를 "향기"라는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냄새를 맡고 살며, 또한 우리 스스로가 냄새를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냄새를 맡음으로 기분이 좋은 때가 있는가 하면, 나쁜 냄새를 맡고는 하루 종일 기분이 나쁜 때도 있습니다. 또한 냄새는 사람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기도 합니다. 냄새를 통해 사람을 미치게 하기도 하고, 사람들로하여금 냄새를 맡게 하여 물건을 사게 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여러 가지의 냄새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중 먼저 생각할 것이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말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향기는 곧 생명을 주는 냄새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을에 들어설 때면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예수님 앞에 굴복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예수님께서 생명을 주시는 향기를 내며 다니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본래 귀신은 좋은 향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 풍속에 사람이 죽고 나면 그 시신 앞에 향불을 피우는 것은 위생적으로 볼 때는 어디까지나 시신에서 나오는 냄새를 제거하기 위함이지만, 미신적으로 볼 때는 귀신은 향내를 싫어하므로 잡귀들이 시신 가까이에 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의 향기는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으로 이른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으로 이르는 냄새라."고 표현합니다. 이 내용은 그 역사적인 배경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문장입니다. 옛날 로마 사람들이 많은 전쟁을 하던 시절, 멀리 원정을 나가 몇 달 혹은 몇 년씩 전쟁을 한 다음 많은 전리품과 포로들을 끌고 승전고를 울리면서 개선하는 장군과 군사들의 몸에는 온통 찌들고 피로 얼룩진 옷이 그대로 입혀져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이면 맨 앞에 기수와 함께 나팔수가 나팔을 불면서 가고, 그 뒤에는 북을 치는 사람이 따라 갔으며, 북을 치는 사람의 뒤에는 많은 향이 피워진 큰 가마와 같은 향로를 따르게 하여 온 성이 향내로 가득하게 했다는 것인데,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이 개선하는 군사들은 이겼다는 마음에서 시끄럽게 승전가를 부르며 의기 양양해하지만, 사실 그들이 입은 옷과, 땀내 나는 몸은 그야말로 피비린내 나는 악취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그 냄새를 제거하기 위하여 향을 피웠다는 것입니다. 한편 미신적인 의미에서는 전쟁에서는 많은 사람을 죽이기 마련인데, 그 중에는 착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어서 귀신 또한 갖가지일 것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 귀신들이 지금 모두 여기에 둘러붙고 있다는 것이며, 만약 이러한 귀신들이 성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이 성안의 행복이 없어진다 하여 잡기를 쫓아내겠다는 의도에서 향을 피웠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여 향내를 물씬 풍기면서 개선하는 장면을 생각해 볼 때 승리를 한 사람들에게는 이 냄새가 그야말로 향내로서 그렇게 좋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는곧 승리의 냄새요, 생명에 이르는 냄새인 것입니다. 그러나 저 만큼 뒤에서 끌려오고 있는 전쟁 포로들, 이제 몇 시간 후이면 처형을 당할 그들에게는 이 냄새가 사망의 냄새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제로 이 향기가 "이 사람에게는 사망을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을 좇아 생명에 이른 냄새라."고 설명을 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생각해 볼 때, 그리스도의 향기가 그리스도의 편에서 그리스도의 승리를 찬양하며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참으로 좋은 생명의 향기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그 뜻을 거역하며, 그리스도의 역사를 방해하고 도전하는 자들에게는 승리와 생명의 냄새 대신 죽음에 이르는 냄새가 되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향기란 곧 말씀의 향기요, 말씀의 권세이며 영적인 힘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향기요, 승리의 향기이며 빛의 향기입니다. 이 향기를 통하여 병자가 낫고, 굶주린 자의 배가 부르며, 눌린 자가 풀려나고, 죽은 자가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향기를 생명에 이른 냄새가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의하면 우리의 독자적인 향기라기 보다는 그리스도의 향기에 따르는 우리의 향기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가 갖는 자체내의 향기가 아닙니다. 본문은 이를 두고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라고 말합니다. 이 냄새는 그리스도로부터 전달받은 냄새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그리스도와 사귐으로 그리스도의 냄새가 알게 모르게, 내게 묻고 배이게 되어 내 인격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냄새가 조금씩 조금씩 풍기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지혜로운 자와 사귀면 명예를 얻게되고, 악한 자와 사귀면 욕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그리스도를 닮고자 애를 쓰다보면 어느 사이에 내게서도 이미 예수의 냄새가 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5 말씀을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보면, 애써 억지로 꾸미지 않더라도 벌써 예수의 향기가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향기를 사랑하고 즐기며 거기에 심취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냄새를 내게되어 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어쩌다 부득이해서 담배연기가 자욱한 장소에 앉았다 나오게 되면, 마치 내가 피우기라도 한 듯이 냄새가 짙게 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인 내가 지금 어떤 냄새를 풍기고 있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그리스도와 접근하고 있느냐 않느냐의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이든 그리스도의 향기와 접하게 되면 그리스도를 닮아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 보아도 썩은 냄새만 풍길 뿐 향기라고는 전혀 없다면, 그를 두고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의식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무의식적인 일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냄새란 굳이 맡고 싶어하다가 전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며 좋아하다 보면 자연 전염이 되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지극히 사랑하고 따름으로 그리스도의 향기가 우리에게 젖어져서 우리 또한 그리스도의 냄새를 풍길 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와 가까이 하면서 예수의 향기를 즐기고 사랑하십시다. 그러노라면 예수의 향기가 나의 생각, 나의 언어, 나의 행동, 나의 인격에 전달되어 이웃을 향해 퍼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은 저들이 향기의 원천인 그리스도에게로 나올 수가 있으며 또한 그렇게 되어지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야 하는 자들로서 나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생명의 냄새로 맡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역사를 이루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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