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읽은 이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직접 개척한 교회가 아닙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수년 동안 복음을 전할 때 골로새에서 온 에바브로라고 하는 훌륭한 청년이 복음을 듣고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울로부터 훈련을 받은 다음 자기 고향 골로새로 돌아가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가 아름답게 부흥 성장해 가고 있었습니다.
이 골로새 교회 지도자 에바브로가 감옥으로 사도 바울을 문안 왔습니다. 그리고는 골로새 교회의 형편을 상세하게 보고해 주었습니다. 그 보고를 들으면서 바울이 얼마나 마음이 기쁘고 감사했던지, 그 입에서는 끊임없이 감사가 나왔고, 하나님 앞에 기도가 나왔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다음 바울은 한 가지를 결심했습니다. 9절입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골로새 교회를 위해서 간절하게 기도하되 한 두 번 기도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해서 기도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기도 내용이 9절부터 12절까지 나와 있습니다. 기도 내용의 핵심은 10절에 있습니다. 즉,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자꾸 자라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계속 풍성해져야 됩니다. 바울은 이것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두 번째로, 10절 처음에 나오는 대로 하나님께 합당히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즉 순종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순종 안 하면서 하나님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세 번째로,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가지를 놓고 바울이 지금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골로새 교인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것을 위해 하나님을 더 많이 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점점 자라나는 성도들이 되게 하시고,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순종의 삶을 매일 살게 해 주시고, 하나님 앞에 아름답고 탐스러운 열매를 남기는 삶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사실 따지고 보면 골로새 교인들을 위하여 사도 바울이 얼마나 기도할 게 많습니까? 예를 들어 골로새 교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예수 믿고 돌아오는 사람들도 대부분 가난하고 세상에서 천대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을 위해서 '주여, 이들의 가난을 물리쳐 주시고 세상에서 좀 사람 대우 받을 수 있도록 이들의 신분을 바꾸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그 당시 성도들은 여러 가지 여건에서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사회로부터 왕따 당하고, 어디서나 얼굴을 제대로 들고 다니기가 곤란할 정도였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예수님을 따라갔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그들을 위해서 바울이 정말로 감옥에서 열심히 기도한다면 이런 기도가 먼저 절실히 나와야 되지 않겠습니까? '주여, 이들에게도 참 자유를 주옵소서. 신앙의 자유를 주시고, 사람대우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고, 어려운 시험이나 핍박이 없도록 해주시옵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런 기도를 다 뒤로 돌렸습니다.
그러면 그 보다 더 중요한 기도가 무엇입니까? '주여, 가난해도 좋습니다. 천대 받아도 좋습니다. 핍박 당해도 좋습니다. 골로새 교인들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목적을 가지고 인생을 산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해주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비전입니다. 자기 비전이 아닌 하나님 비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가진 사람은 자기 중심적으로 신앙생활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심각한 영적 질병 중의 하나는, 너무나 자기 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을 비롯하여 많은 서양교인들이 한국을 몇 번 방문하고 나서 한국교회를 진단할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한국 교회 교인들을 보니 딱 3가지만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고, 둘째는 자기이고, 셋째는 돈입니다." 제가 볼 때 바로 본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정곡을 치는 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보면 너무 자기 중심적인 기도에 매달려있습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소원하는 기도를 그치지 않겠다고 하는 열정과 의지가 부족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주여, 하나님을 더 알기를 원합니다.’, ‘주여,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주여,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런 기도를 하면서 매달리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는 거룩한 목적이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얼마만큼 하나님을 알기를 사모합니까? 내가 하나님을 처음 믿을 때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얼마나 성장했습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빈약하면 빈약할수록 모든 신앙생활은 자기 중심에서 머무르고 맙니다.
둘째,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순종하는 삶을 삽니까? 주께 합당하게 행하는 순종이 따라야 합니다.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하겠습니까? 자녀를 키우고 계신 분들은 알 것입니다. 부모도 불순종하는 자식을 좋게 보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
셋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열매 맺는 삶을 살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합니까?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열매 맺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선한 일에 열매 맺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사람은 한 생을 살다보면 열매를 남깁니다. 필리핀에는 아버지 없이 어머니 하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코피노’ 가족들이 있어요. 한국 남자들이 필리핀에 몇 년 살면서 필리핀 여자들과 정을 맺으며 자녀들을 낳고 살다가 사업이 망했다던지, 직장을 한국으로 옮기게 되면서 필리핀 아내와 아이들을 그대로 버려두고 한국으로 도망간 뒤에 얼마와 아이들만 덩그란이 남아 가난하게 살아갑니다. 이런 코피노 가족들은 추한 한국 남자들이 필리핀에 남기고 온 더러운 열매입니다. 그들을 볼 때마다 추하게 살아온 한국 남자들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이런 열매를 맺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전도의 열매를 맺고, 기도의 열매를 맺고, 봉사, 희생, 섬김의 열매를 맺어야 하고.... 더 나아가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가끔씩 아버지인 저를 기쁘게 하기 위해 어린 자녀들이 노력하고 애를 쓰는 것을 경험할 때면 마음에 감동이 일어납니다. 한 번은 딸 애가 초등학교 다닐 때 저에게 와서 여러 개의 종이 중 하나를 뽑으라고 그래요. 그래서 뽑아보니까 30분 안마.... 라고 쓰여 있어요. 그걸 뽑으니까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제 어깨를 주무릅니다. 뭐 그렇게 시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세상의 그 어떤 안마 보다도 기분 좋은 안마가 아니었겠습니까? 철없는 자녀들도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이렇게 애를 쓸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오늘도 예수 안에서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보실 때마다 큰 꿈을 가지고 바라보시며 기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그분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만약 그와 같은 거룩한 목적이 우리 가슴 속에 없고, 그 거룩한 목적이 우리의 쉬지않는 기도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만큼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