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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고린도전서 9:11-17/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 [수요]
  • 조회 수: 861, 2013.03.27 14:45:38
  • 오늘 저는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랑거리가 하나씩은 있죠. 자랑이라 함은 정치적인 자랑, 경제적인 자랑, 도덕적인 자랑, 종교적인 자랑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돈이 많아서 그것을 자랑거리로 삼는 사람, 혹은 남을 다스리는 위치에 앉았다는 권좌가 자랑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자랑은 도덕적 자랑입니다. 진실했다는 자랑, 순결하고 깨끗하게 살았고 양심에 가책이 없이 살았다는 자랑만큼 더 좋은 자랑은 없을 것입니다. 많은 것을 벌었어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권좌에 앉았어도 도덕적으로 부패했다면 부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부끄러움이란 사람을 아주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도덕적 자랑을 넘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모른다 해도 하나님만은 아시는 것, 즉 하나님과 나 사이에만 있는 긍지, 자긍심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종교적인 자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통은 참을 수 있지만 부끄러움은 참기 힘듭니다. 때로는 자랑스러운 고통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비록 가난하고 헐벗고 괴로워도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자기만이 소유하고 있는 행복한 자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실 자랑이 많은 사람입니다. 세상적으로 자랑할 만한 길을 걸어갔던 분이고, 그 보다 더 자랑거리는 그러한 것을 과감하게 버린 것도 대단히 자랑할만한 일일 것입니다. 또한 그는 순결하고 거룩하게 살았고, 하나님과의 사이에 가진 고귀한 자랑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본문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당연한 권리를 다 쓰지 않았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당시의 교회생활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당연히 수고하고 보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만 보수를 위하여 수고했다는 사람이 될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만일에 돈 벌기 위해 전도했다면 얼마나 우스운 얘기입니까? 혹은 대접받기 위해서 전도 여행을 다녔다면 얼마나 본래의 뜻에서 어긋나는 일입니까? 혹시라도 이러한 오해, 이러한 결과가 없게 하기 위해서 그는 깨끗하게 살고자 애썼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말들을 퍼트리면서 바울을 음해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청렴결백하고, 충성되고, 진실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복음의 역사에 아무 장애를 없이 하려고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긍지였고 자랑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본래 그가 가졌던 자랑을 버렸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긍지, 베냐민 지파라는 것, 혹은 바리새 교인이라는 것... 등 예전에 가졌던 과거적이고, 세속적이고, 선민적인 자랑을 다 배설물과 같이 버렸습니다. 15절에 보니까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큰 자부심이고,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내겠다는 의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랑할 것이 없다(16절)고 했습니다. 이 무슨 말이냐 하면 이런 것도 사람 앞에서 자랑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했기에 자랑을 버렸다는 깊고 오묘한 말입니다. 그가 자랑을 버린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이는 당연한 것으로, 종으로서 주인을 위하여, 사도로서 보낸 자를 위하여 희생하고 수고하는 것은 타당하고 합당하기에 자랑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하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종은 어떤 수고를 했더라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으로 그 어떤 보상도, 칭찬도 바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누가복음 17:9에 보면, "종이 명한 대로 하였다고 그 종에게 사례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종에게는 사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이 그리스도의 종이기에 수고했다는 것에 무슨 칭찬과 자랑이 있겠느냐 하는 뜻입니다.

     

    중국에 선교사로 갔던 미국 선교사 한 분이 어느 날 홍수에 휘말려 물에 떠내려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사람이 이 선교사를 구해주었습니다. 죽을 뻔했다가 살았기에 너무 고마워서 선교사는 은인의 이름을 알고자 했습니다. 일생 동안 잊지 않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때에 구조해 준 사람은 껄껄 웃으면서, "당신이 믿는 성경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름이 없지 않소? 지나치다가 물에 빠져있는 사람을 보면 건져주는 것이 사람다운 일이지 그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양 그러십니까? 인도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며 그냥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손님이 놓고 내린 돈 뭉치를 파출소에 갖다 주었다고 훌륭한 기사라고 떠들어대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기 돈이 아닌 것을 쓰지 않았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선행으로 기사화될 것이 아닙니다. 내 돈을 남을 주어야 선행이지 남의 돈을 내가 쓰지 않았다고 칭찬할 것이 무어 있겠습니까? 자식을 낳아 기를 때도 부모가 자식에게 너를 키우느라고 내가 수고하고 희생한다고 자꾸 강조하면 아이들은 속으로 "누가 낳으랬나?"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고맙게 생각해야겠지만, 부모가 제 자식 위해 수고하면서 위세부릴 것이 못 됩니다. 자랑거리도 아니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아내가 남편 위해 수고한다, 남편이 가정을 위해 수고한다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전도하는 것 당연하고, 사도가 되었으면 수고하는 것 지극히 당연한 얘기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피곤치가 않습니다. 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라 생각할 때 피곤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하고, 미쳐서 하면 피곤치가 않는 것입니다.

     

    둘째, 또한 사도 바울이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한 이유는 은혜를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많은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그 은혜에 비하면 내가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갚을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 자식이 내게 효도하느냐 안 하느냐.... 이건 부모가 신경 써야 할 일이 아닙니다. 자식으로서 내가 부모에게 얼마나 효도했는가... 이게 문제입니다. 내가 받은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이것을 생각해보면 내가 이제 조금 한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은혜를 아는 자는 그 은혜 앞에서 자기를 볼 때에 자기는 너무 작아서 마지막에는 자기는 없고 큰 은혜만이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혹 있다면 은혜의 열매가 있을 뿐이기에 자랑할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 크신 은혜에 비추어 볼 때에 아무 것도 없기에 자랑은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 또 자랑할 것이 없음은 부득불 할 일이다(16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해서 자원하여 기쁨으로 일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믿음이 식어지고 사랑이 식어서 나태해져서 할 수 없이 억지로 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피곤하고 징계도 받고 또 하나님의 강한 손에 이끌리어 강제로 만신창이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됩니다. 하기는 했지만 억지로 했으므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사실은 기뻐서 했던 것보다는 억지로 한 일이 더 많았습니다. 우리가 가정을 위해 수고할 때도 때로는 사랑하고 즐겁게 일을 하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팔자를 논하며 신세를 한탄하며 억지로 살아 온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공할 수도 있고 잘 살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랑할 것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기를 "내가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고전 9:17). 즉 하고 싶어서 한 일이 아니었는데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상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무서워서 복음을 전할 때도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큰 역사가 이루어지긴 했어도 나는 자랑할 것이 없다는 깊은 신앙고백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할 때 바로 여기에 행복이 있습니다. 구동안 살아온 길을 뒤돌아 볼 때 억지로 십자가를 졌든, 좋은 마음으로 졌든 간에 주님을 위해서 살았다는 것은 잘 한 것입니다. 후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삶.... 이것이 긍지이며, 이것이 행복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미쁘시고 우리에게 향하신 큰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 안에 감사하면서 자기 자랑을 다 잃어버린 사람, 할 말이 없는 사람, 업적은 있으나 자랑이 없고, 칭찬 받으나 부끄러운 것뿐인 사람이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고 깨끗한 진실을 보십니다. 자랑이 있습니까? 그 자랑마저도 마땅히 할 것을 한 것 뿐으로, 또 그 동안 받은 은혜에 비해 지극히 작고, 미약한 것으로, 더 나아가서 이런 것도 하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주님 앞에 서겠나.... 하는 심정으로 내려놓게 되기를 바랍니다. 자랑할 것이 많으나 자랑할 것이 없고, 자랑하지 않는 자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이며, 신앙 안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 줄 믿습니다.

     

    기도 : 은혜로우신 아버지여 저희를 권고하시고 붙드시사 아무 자랑할 것도 없고 아무 내어 놓을 것도 없고 그저 부끄럽기만 한 저희들을 이 자리에 또 불러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여 이 시간에 믿음을 더하사 분명히 우리에게 향한 주의 뜻을 알게 하시고 이제 부끄러움을 씻고 주 앞에서 주와 나만이 아는 귀한 자랑이 있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D뭆TXT婉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이 자랑마저도 깨끗이 버리고 자랑할 것이 없고 오직 감사와 헌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의 사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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