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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요한계시록 3:1-6/ 사데 교회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 [계시록]
  • 조회 수: 734, 2013.03.27 14:57:40
  • 오늘도 주님 앞에 나오신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능력과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요한계시록 3장 1절부터 6절 말씀을 가지고 ‘사데 교회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 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서론 /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 한 사명을 맡기십니다. 그런데 그 사명이 그 사람에게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어이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이루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부족한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깨어 있는 인생을 산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바로 깨어 있는 삶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을 통해서도 사도 요한은 영적으로 죽어가면서도 그 위기를 깨닫지 못하고 있던 사데 교회를 향하여 "여러분, 깨어나셔야 합니다." 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본문 2절을 보면, "너는 일깨어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고 했지요? 또한 3절을 보면,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사데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은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본론 / 1. 사데 교회를 향해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 (1절 상반절)

     

    우리는 먼저 사데 교회를 향해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의 1절 상반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1절)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 사데 교회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은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일곱 별은 지도자를 말하는데, 그 지도자를 붙들고 계시는 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교회는 교회의 지도자에 의해서만 움직여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지도자를 친히 붙들고 교회를 운행하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는 먼저 주님의 손에 붙잡히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잠들어 있었던 사데 교회를 깨우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당시의 사데라는 도시는 두아디라에서 남동쪽으로 65Km 지점에 존재하는 지금의 터키에 있는 도시로서 지금의 현재명은 살리히리(SALIHLI)입니다. 이 도시는 기원전 700년부터 546년까지 사데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한 고대 리디아 왕국의 수도였습니다. 이 도시에는 78개의 돌기둥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의 기둥을 건장한 장년 두 사람이 껴안아도 부족할 만큼 거대한 돌기둥입니다. 그 당시 사데는 이 신전을 중심으로 연회와 오락, 그리고 축제가 끊임없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사데 도시는 고대 리디아왕국의 수도로서 깍아지른 산악지역으로 둘러쌓여 있어서 적의 침약으로부터 안전하였고, 마이더스 신화가 있을 정도로 금이 흔한 도시였습니다. 마시더스 왕이 손만 되면 금이되었다고 할 정도의 신화가 생긴 곳이니 얼마나 금이 흔했는지를 짐작케 합니다. 속설에 의하면 신화에 나오는 마이다스 왕이 목욕했다는 팍톨로스 강에는 사금이 엄청나게 나왔다고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대지역의 백성들이 얼마나 부유했는지는 짐작할 수 있겠지요?

     

    이러한 사치문화는 이곳에 존재하고 있었던 사데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도 영향을 미쳐서 교회를 세속화시켰다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세상에 의해서 세속화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데 교회는 영적인 깊은 잠 속에 빠져들어 가고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데 교회를 향하여 깨어 있으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다른 일곱 교회들에게는 나름대로 칭찬이 다 있었는데 사데 교회는 칭찬은 없고 책망만 있다는 것입니다. 칭찬 없는 교회는 사데 교회 뿐만이 아니라 나중에 배울 라오디게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책망이 없는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인데 비해 칭찬이 없는 교회는 사데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이 두 부류는 극과 극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사데 교회는 시작을 칭찬이 아니라 책망부터 시작이 됩니다.

     

    2. 사데 교회를 향한 책망 (1절 하반절)

     

    그렇다면 사데 교회를 향한 주님의 책망은 무엇입니까? 본문 1절 하반부를 보겠습니다. (1절)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가운데 네 개의 교회는 안팎으로 핍박과 고난과 시험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사데 교회에는 우상 숭배에 대한 강요를 당하지도 않았습니다. 니골당과 같은 이단의 위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유대인들의 박해도 없었고, 죽음으로부터의 위협도 없었습니다.

     

    사데 교회에는 어떤 박해나 시련이나 어려움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기에 이것보다 더 좋은 여건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사데 교회는 분명히 부흥하는 교회이어야 하고 칭찬이 넘치는 교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교회는 부흥하기는커녕 오히려 쇠잔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밖에서 보기에는 정말로 부러워할 정도로 아름다운 교회였지만, 안에서는 실상 썩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데 교회를 향하여 주님께서 책망하시기를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에도 교회에는 이름만 신자 분들이 많습니다. 소위 말해서 구원을 체험하지 못하고, 살아 있는 신앙을 갖지 못한 '명목상의 교인(무늬만 교인)'이 많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말이 나올까요? 그것은 겉으로는 괜찮은 것 같아 보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영적으로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데 교회는 그런 상태라는 것입니다.

     

    무늬만 교인인 사람들이 성경에 나옵니다. 누굴까요? 바리새인들입니다. 이들은 사데 교회가 책망 받은 것처럼 예수님께 수많이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자기들이 아주 괜찮은 영적인 사람들이라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영적으로 죽어 있었기에 그들의 내면은 썩은 냄새로 가득 차 있었고, 교회에서의 모습과 세상에서의 모습이 너무 달랐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 앞에서와 하나님 앞에서의 모습이 전혀 달랐다는 것입니다. 이런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보실래요? (마23:27-28)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들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 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그들은 일종의 종교적인 외식자들이었고, 종교적인 위선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겉으로 나타나는 활동에서 내 신앙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어떤 분들은 겉으로 나타내는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바리새인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사데 교인들의 대부분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들의 깊은 내면을 끌어안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삶과 인격이 변해서 진정한 신앙의 의미를 찾을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겉으로 보이는 활동에서만 신앙의 의미를 찾고자 했습니다. 사데 교회의 비극은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도 사데 교회처럼 겉으로 보이는 활동에서만 신앙의 의미를 찾는다면 사데 교회의 비극은 오늘 이 시대 여러분과 저의 비극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았듯이 사데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에는 칭찬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데 교회에는 아직도 희망은 있었습니다. 칭찬할 것은 없었지만 그들 가운데 희망의 싹은 있었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이 교회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무엇이었을까요?


    3. 사데 교회의 희망은 무엇인가?

     

    본문 2절을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2절)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우리가 여기에서 희망을 주는 단어 하나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남은 바"라는 단어입니다.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굳건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이 있었고, 남아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본문 4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4절)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그들에게 남은 사람들은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보기에 합당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속화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은 벌써 주님에게서 떠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몇 사람이 있었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교회의 희망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죽어져 가는 세상을 살릴 세상의 소망이었습니다. 아주 우연한 일치일는지는 모르지만 사데(Sardis)라는 도시 이름이 그리스어로 그 뜻이 '남은 자'라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다른 교인들과 다르게 그들은 세속화를 거부하고 거룩한 삶을 열망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소망을 구하지 않고 주님 안에서 소망을 구했습니다. 이 거룩한 소수를 가르쳐 4절에서는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어쩌면 그들은 주변의 다른 사람들로부터 세상을 약삭빠르고 지혜롭게 살지 못하는 바보라고 왕따 당하고 있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렇게 당하는 왕따의 의미는 좋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왕따, 왕을 따르는 사람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세상 속에서 당당히 왕따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뜨거운 영성과 거룩한 도덕성이 있습니다. 세상이 갖지 못한 뜨거운 영성과 거룩한 도덕성이야말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힘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어떤 교회가 화려한 건물을 가지고 있고, 재정도 넘쳐나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교인들을 충족시키준다고 해도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누리는 뜨거운 영성과, 세상 사람들과 차별화 될 수 있는 거룩한 도덕성이 상실되었다면, 그 교회는 교회로서의 존재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는 교회는 이 뜨거운 영성과 거룩한 도덕성으로 충만하여 날마다 자신을 살피는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데 교회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4. 사데 교회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해답은 3절에 나와 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3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여기에 보면 중요한 동사가 세 개가 나옵니다. "생각하라, 지키라, 회개하라." 우리가 영성을 회복하는데 핵심적인 단어입니다.

     

    그러나 이 경고를 다시 둘로 요약할 수 있다면 깊이 생각하고 깨어 있는 모습으로 자신을 지키던가, 아니면 자신이 깨지 못한 것을 발견했다면 이제라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사데라는 도시는 과거에 그들이 깨어 있지 못함으로 두 번씩이나 정복을 당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리디아 왕국의 마지막 통치자가 B.C 560-546년까지 통치했던 크로에수스입니다. 이 왕이 통치하던 시절에 신흥제국이었던 페르시아(바사)의 고레스 왕에게 침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리디아 왕국의 국민들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데라는 도시 자체가 난공불락의 아주 천연의 요새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간만 벌면 승산은 자기들에게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성에도 약점이 있었습니다. 이 성의 남쪽의 맨 끝에는 아주 가파른 절벽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절벽 쪽으로는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방치해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리디아의 한 군사가 절벽 쪽으로 철모를 떨어뜨렸는데, 이때 페르시아의 한 장수가 그 모습을 보고 바로 그곳을 공략하여 이 사데 성을 함락시키게 됩니다.

     

    이처럼 한 순간의 방심이 리디아의 멸망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200년이 지난 후에도 과거의 뼈아픈 역사를 잊어버려 안티오쿠스(Antiochus)의 침략을 받고 또 정복을 당하였습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이것을 상기시키며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동일한 사건이 성도들에게도 일어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영적으로 방심했을 때, 영적으로 잠들어 있을 때 사탄이 우는 사자와 같이 덮쳐서 저와 여러분을 포로로 삼을 수가 있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자기만족의 영적인 잠 속에 빠져 들어가 있는 상태를 잘 표현해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늘의 교회를 마케팅의 방식으로 진단하며 연구하는 학자 중에 조지 바나(George Barna)라는 분이 있는데, 그가 쓴 책 가운데 "주전자 속의 개구리"(The Frog in the Kettle)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주전자 속에 미지근한 물을 넣고 개구리를 집어넣은 다음에 서서히 열을 가하면 개구리는 자기가 죽는 것도 모르고 기분 좋게 천천히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한 이유는 이것이 바로 오늘의 교회가 이런 처지에 놓여있다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방심하고, 우리가 영적인 무장을 풀어버리고 안일의 잠을 자고 있었을 때 죽어 가는 줄 모르고 기분 좋게 죽어가고 있는 개구리, 그것이 여러분의 모습일 수가 있고, 그것이 나의 모습일 수가 있고, 그것이 우리들의 모습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항상 깨어 있기에 좋은 것은 바로 새벽예배입니다. 매일 교회에 나와 말씀 듣고 기도하기 때문에 깨어 있게 됩니다.

     

    지금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깨어서 자신과 가족들, 그리고 민족을 깨우며 기도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아직도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 시대는 아직도 희망을 말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만이라도 깨어 있어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사랑하는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그 모습을 우리 주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성경에서도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둔다" 고 했습니다. 내 자녀를 끌어안고, 내 가족을 끌어안고, 내가 섬기는 이 교회를 끌어안고 눈물의 씨를 뿌리십시오. 깨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의 가정은 깨어날 것이고, 우리의 교회도 깨어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의 시대도 깨어날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 자신과 공동체를 다시 흔들어 깨워야 할 때입니다. 귀 있는 자는 오늘 성령이 교회와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결론 / 오늘 주님께서는 사데 교회를 통해서 비록 칭찬할 것이 없지만은 소수의 사람들이 옷을 더럽히지 않았기에 그들은 흰 옷을 입고 주님과 동행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름은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않고 하나님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도 예수님게서 시인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었습니다.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5~6절)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그러기에 우리도 비록 세상이 타락하고 교회마저도 순수성을 잃어가고 있는 이때에 우리들만이라도 세속화를 거부하고 거룩한 삶을 열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오늘 사데 교회에게 말씀하신 것같이 징계를 받는 가운데서도 은혜를 입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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