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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26. 조급함이 부르는 실수(창16:1-3)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 조회 수: 447, 2017.06.05 19:22:28
  • 창세기 15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통하여 낳을 자녀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대를 이어줄 아들이 없자 사래는 그의 남편 아내에게 자신의 종인 하갈을 첩으로 들여 아이를 가지라고 권합니다. 사래가 하나님과 아브람과의 약속을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알았을 가능성이 더 크죠. 왜냐하면 그것은 이 부부에게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아브람이 말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사래가 알든, 모르든 아브람이 잘못한 것은 아주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분명하게 아브람에게 약속을 하셨는데 아브람이 이를 믿지 못하여 그만 하갈을 첩으로 받아드려 아이를 낳고 맙니다.


    아브람이 믿지 못한 건지, 아님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해석을 달리했는 건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해석을 달리했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빙자하여 자기가 마음대로 상상하는 거죠. 예를 들자면.... 옳거니... 하나님이 이런 방법을 통해서 나에게 아이를 주시는구나...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경우에 사래는 아브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여주는 메신저 같은 존재가 됩니다.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아브람을 불신앙에 빠뜨린 사래가 하나님의 메신저가 되다니 말입니다.

     

    우리가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듣기 싫어하는 표현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이렇게 자기에게 말씀하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어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이단 교주처럼 되기가 쉬워요. 좀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정말 말씀하셨다면 그런 말씀은 아주 조심스럽죠. 어떻게 지존하신 하나님이 자기에게 하신 말씀을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닌단 말입니까?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건 어찌 하나님이 저렇게 가볍게 처신하는 사람에게 말씀을 주신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되죠.


    자기가 모시는 윗사람이 자기에게 무슨 말을 하였는데 그 들은 말을 여기저기 하고 다녀 봐요. 그걸 보고는 ‘아, 저 사람 입이 가볍구나.’ 다시는 속에 있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하겠구나.... 이러겠죠. 암튼 자기 뜻이며, 자기 바램인데... 그걸 가지고 기도하다가 어떤 실마리가 생기면 그걸 가지고 하나님이 응답을 주신 것으로 자꾸 해석하게 되면 아브람처럼 될 수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단지 사래의 인간적인 생각이며 잔꾀에 불과한 것인데 아브람이 이걸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것으로 해석하여 얼른 하갈을 첩으로 받아드려 이스마엘을 낳은 꼴이 되 버리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얼마나 엄청납니까? 지금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추앙하는 20억 인구의 기독교인들과 또 아브라함을 자기 종교의 기원이라고 생각하는 16억 정도의 이슬람교도들이 서로 적대적이 되어 이 지구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결국 기독교세계와 이슬람세계가 충돌하여 지구의 종말이 올 거라는 주장도 하고 있죠. 그래서 12절에 이 이스마엘에 대해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잘 생각해 봐야 해요.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나님의 이 말씀에서 아브람이 순간적으로 잘못한 것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어쨌든 본문을 이렇게 해석을 해 보면서 저는 결론적으로 이 본문을 가지고 기도에 대해서 좀 교훈하고자 합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어떤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기도한다면 다음 사항을 꼭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1.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나온지 10년이 지나면서 나이는 들어가는데 하늘의 별처럼 많겠다고 하던 하나님의 약속은 희미해지는 것 같고 믿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리하여 어제의 신앙인이 오늘 불신앙인이 되고 어제의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던 자가 오늘의 불평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 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잊지 말고 때를 기다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2.하나님의 응답은 조금도 잔꾀나 세상적인 방법이 아니고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초조해진 아브람 부부는 그 시대 사회의 풍속대로 여종인 하갈을 통하여 자식을 얻지만 이것은 편법이고, 세속적인 방법이기에 절대로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성취가 인간의 갈등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겠습니까? 하나님의 시작과 끝은 지극히 거룩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3.조급하지도 말고, 낙심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아브람 같은 경우는 나이가 들어가고 대를 이을 자녀가 없으니 언제 이대로 죽을지 알 수 없어서 조급해집니다. 사울왕도 블레셋 군대는 쳐들어오고 병사들은 힘을 잃고 흩어져 싸울 의욕이 없자 자신이 제사를 드리면 안 되는데도 기어코 제사를 드리다가 버림을 당했습니다. 조금 어울리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롱펠로우가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하나님의 맷돌은 천천히 돌아가지만 확실하게 고운 가루를 만든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가 보기에 느린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분명하게 성취되고 이루어질 것임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무언가를 해 주시기를 바라며 기도한다면 응답이 더디더라도 조급하지 말고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움직이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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