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페이지
  • 구약 시편 095:01-11/ 완악한 마음을 버리고.... [시편]
  • 조회 수: 823, 2019.09.27 15:29:30

  • 이 95편은 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신년을 기념하는 시라고 합니다. 한 해를 시작할 때 예배, 제사... 그런 것에서 불렀던 노래라고 할 수 있고 또 각 가정에서, 유대인들은 각 가정에서 그런 모임들을 많이 가졌거든요. 만찬, 종교의식을 했어요. 그 때 주로 많이 불렀던 찬송이고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용은 81편하고 비슷하다고 합니다. 95편이나 81편이나 특별히 두 곳에 다 광야에서 있었던 어떤 사건을 거론합니다. 그게 므리바 사건이거든요. 그것을 지적하면서 완악한 마음을 말씀합니다. 거기서 있었던 사건이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완악한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하는 거지요. 신년에 이 제사를 드리면서 이런 기도를 드린 이유가 정말 중요한 것은 완악한 마음을 없애는 것, 도대체 완악한 마음이 뭐냐, 하나님을 시험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있냐, 없냐, 하나님이 나를 도와 주느냐, 아니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느냐, 아니냐에 대한 그걸 한 번 시험하는 것 이제 그걸 완악한 마음이라고 하고요. 이게 가장 큰 잘못이라고 성경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므리바 사건은 출애굽기 17장 1절에서 7절 사이에 나옵니다. 출애굽 후에 이스라엘 민족들이 광야로 들어가게 되잖아요. 미디안 광야라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광야에 들어가서 가장 큰 어려움이 뭐였을 거라는 것은 감이 잡히지요? 식수문제하고 먹을거리입니다. 이게 애굽에서의 상황하고는 전혀 다른 거예요. 애굽은 그 당시에 최고 문명국가구요. 제국이었지요. 여러 가지 문명이 발달한 지역이구요. 거기서 학대를 받았다고 하긴 하지만 살 만 했습니다. 나쁘게 표현하면 조금 더 나쁜 상황으로 본다면 우리에게 나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라고 할까요, 그보다는 뭐 여건이 좋지 않았을까요? 왜냐하면 거기서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에 한 삼사백년동안 거기서 살아서 비록 소수민족이라고 하지만 상당히 터를 잡고, 안정적인 삶을 산 거예요.


    거기를 박차고 광야로 나와서 약 한 달 반만에 르비딤이라는 곳에 당도했는데... 물이 없었어요. 그것을 두고 백성들이 모세와 다퉜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서 모세는 지팡이를 가지고 와서 호렙산 어느 바위를 치라고 했습니다. 쳤습니다. 그러자 물이 솟아났다고 얘기를 합니다. 그곳 이름을 맛사, 혹은 므리바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맛사, 므리바 이건 똑같은 지명을 다른 말로 붙인 겁니다. 이런 이름이 붙여진 이유를 출애굽기 기자가 설명을 해요.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를 시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므리바, 맛사라고 하는 이름은 별로 좋지 않은 거지요? 시험이 무슨 시험이예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느냐 않느냐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이게 오늘 시편 저자가 지적한 “완악한 마음”인 거예요.


    어쨌든 이 므리바, 혹은 맛사에서는 이 모세까지 포함해서 이스라엘 전체가 시험에 든 거예요. 완악한 마음을 품게 된 거지요. 어떻게 보면 사소한 에피소드인데, 여기에 걸려서 결국은 가나안 땅에 40동안 들어가지 못하고 배회했고 결국 20살 이상되는 마음이 굳어진, 선입관에 물들어 있는 그런 사람들은 못 들어갔다, 그런 일이 거기서 벌어졌습니다. 예, 시편 95편과 이와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시편 81편이 모두 다 이 므리바 사건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시험에 들었다고 하는 것은 크게 이상한 건 아닙니다. 당장 먹기 힘든데 염려하는 게 당연하지, 염려할 수 밖에 없지, 염려하는 것 자체를 또 뭐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실제적으로 뭐, 그러한 어려움 가운데 있으면 걱정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걱정하는 거 하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 하고는 차이가 있는 거죠. 내가 이렇게 힘들어졌는데 하나님이 안 계신 것 아냐, 나와 함께 하지 않는 것 아냐, 하는 데 까지 나가게 되면 이건 불신앙이고 마음이 완악해지는 거거든요, 이건 무엇으로도 고칠 수 없는 영혼의 질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건 작은 차이인 것 같습니다마는 큰 차이예요.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거야, 않는거야, 하는데 까지 가지 않는 사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한다고 하는 것을 놓치지 않는 사람은 생존의 위기 앞에서 잠시 걱정하지만, 결국 거기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흔들리는 사람들은 점점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되는 거예요. 결국 이건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큰 차이가 되는 거지요.

    이 시편 95편은 신년을 기념하는 의식에서 한 해를 시작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이 빠졌던 가장 큰 시험, 하나님이 우리 생존을 보장해 주냐, 않하냐, 이러한 근심에 빠졌던 이런 것을 확인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요구하면서.... 그 요구의 근거를 두 가지로 말씀합니다.


    시편 95편에서 시편기자는 하나님이 누군가에 대해서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누군가를 정확하게 알면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는거죠. 두 가지예요. 첫째,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한 분입니다. 그 4절과 5절에 아주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어요, 4절, 땅이 깊은 곳, 그리고 산들이 높은 곳, 깊은 곳과 높은 곳, 그리고 5절에 바다와 육지,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하는 겁니다. 이게 아주 특별한 신앙이예요. 어떤 땅의 깊은 곳, 또 높은 곳, 이런 것들은 다른 통속적으로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것이 구약에도 나옵니다. 그러니까 땅이 깊은 곳, 지하세계라고 할 수 있겠지요, 거기는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힘, 악한 힘의 지배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도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하나님이 지배하신다는 믿음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시는 분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양이라고 말하고 있지요? 7절입니다. 이스라엘이 양이면, 하나님은 목자지요. 목자와 양의 관계는 시편에 많이 나오는 거구요.... 이 핵심의 문제는 생명의 문제예요. 창조도 생명이었는데, 목자와 양의 관계도 생명의 차원입니다. 목자는 이 양의 생명을 보장하고 자기에게 위험이 오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양을 지키는 거예요. 그게 목자입니다. 반면에 양은 목자에게 순종하는 거지요. 절대적인 순종이죠, 목자가 저쪽으로 가라고 하면, 저쪽으로 가면 위험할텐데, 풀이 없을텐데, 그런 것들을 양들은 생각하지 않죠, 절대적인 신뢰관계가 거기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시편 95편을 “완악한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삶의 과정에서 므리바 사건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그러한 일이 없고 창조자 하나님, 우리 목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순종으로 살아가기 바랍니다.

번호  분류  제목  조회
notice 공지사항 123544
2088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660
2087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2698
2086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349
2085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3267
2084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526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