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인의 가정(골 3:18-19)
  • 조회 수: 337, 2013.07.27 20:58:03
  • <로마제국 멸망사>를 썼던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가 망한 원인의 하나로 가정의 파괴를 들었습니다. 로마가 제국이 되고 부강한 나라가 되니 남자들은 가정을 팽개치고 전쟁과 사냥과 주연(酒宴)을 열어 흥청망청거리고 부인들은 사치와 쾌락에 묻혀 가정을 돌보지 않았기에 가정이 파괴되면서 제국도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가정은 가장 작은 구성원을 가지고 있는 가장 작은 공동체입니다. 가정은 군대도 아니고 거대한 조직도 아니기에 가정이 무너짐이 국가의 흥망성쇠에 무슨 영향을 끼치겠나 생각되지만 가정은 국가의 기반이기에 가정이 파괴되고 무너지면 국가는 붕괴될 수 밖에 없습니다. 1970년도에 출판된 엘빈 토플러의 <미래의 충격>은 가족의 파괴, 가정의 해체를 예견하고 있습니다. 시험관 아이들이 나오고 실험 결혼, 계약 결혼, 독신주의, 동성연애, 일부다처제 등이 법적으로 공인되는 사회가 될 것이라 예언합니다. 그렇게되면 가정은 파괴될 수 밖에 없습니다. 가정은 인간의 행복을 담는 그릇입니다. 사단은 사회를 무너뜨리기 전에 가정을 먼저 공격합니다. 교회를 무너뜨리기 전에 가정을 황폐화시킵니다. 행복을 담는 가정이라는 그릇이 파괴되면 인간은 최고의 문화적 혜택과 문명을 누리면서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1. 가정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관입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시고 안식일 제도를 제정하셨습니다. 엿새 동안에 우주를 만드시고 제 7일에 쉬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도 안식일 제도를 주셨습니다. 사람의 재료는 무쇠덩어리나 바윗돌이 아니라 흙덩입니다. 흙덩이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흙덩이는 바스러지면 그만입니다. 하나님은 당신 자신이 직접 창조하셨기에 사람의 체질을 잘 아십니다. 흙덩이에 불과한 인간은 엿새 동안 힘들게 일하며 수고하며 땀흘리지만 안식일에 쉬며 충전하라고 안식일을 제정해 주신 것입니다. 안식일 제도가 없었다면 인간은 일하는 기계가 되어 행복도 즐거움도 모르고 일벌레가 되어 살다 갔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일만으로는 인간이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없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 가정 기관도 세우셨습니다. 가정을 세우신 취지도 안식일 제도와 마찬가지입니다. 어른이나 아이들이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다가 가정에 들어와서는 푹 쉬고 새 힘을 공급받고 또 밖으로 나가서는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정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쉬어야 되는 곳이고 편안한 곳이 되어야 하며 전쟁터에 나갔다가 부상당한 부상병들이 치료받으며 다시 전쟁터로 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야전병원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안식일제도와 가정제도를 동시에 주신 하나님의 취지입니다. 


    오늘날 가정을 세우신 목적이 왜곡되고 있습니다. 가정은 자녀 생산공장이 되었습니다. 생활수단이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서로를 파괴하고 상처내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가정을 세우신 본래의 취지가 퇴색되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려면 안식일을 잘 지켜야 합니다. 안식일을 통하여 교회 생활을 반듯하게 잘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가정을 믿음의 반석 위에 세워야 안식이 있습니다. 가정이라는 그릇 속에 행복이 가득하게 채워 있어야 신앙생활도 충만합니다. 가정에서 불만이 가득하면 교회와서도 불평하고 투덜거리고 매사에 부정적으로 보게됩니다. 그러니 쉼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교회생활을 하려면 가정을 작은 교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항상 기도하고 말씀보고 작은 기도실이 되어 신앙생활할 때 우리의 믿음이 건강한 믿음이 되고 균형잡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2. 가정은 부부 중심이어야 합니다.


    에덴동산의 가정은 완벽한 가정입니다. 에덴 가정의 구성원은 남편인 아담과 아내인 하와였습니다. 아직 자녀들이 없었습니다. 시모와 시누이도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래요.
    하와가 장수할 수 있었고 남편의 사랑을 받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시모와 시누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에덴의 가정은 좋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의 가정이 완성된 가정이 된 것은 섬겨야 할 시모나 시누이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남편과 아내가 있다는 사실, 두 사람으로만 가정이 완성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가정에 두 사람이라고 해서 불완전한 가정이 아니고 자녀들이 없다고 결손가정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주시는 것이지 부부관계를 완성시키는 조건은 아닙니다. 부부가 사랑의 가정, 조화로운 가정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으셨습니다.


    오늘 가정이 고통을 겪는 것은 자식들에게 중심이 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나치게 자식들 중심으로 삶이 이루어지기에 자식을 낳으면 부부관계가 흔들립니다. 그러나 자식은 다 키워놓으면 떠납니다. 자식이 떠나고 나면 그제야 서로에 대해 아쉬워하지만 이미 마음은 보이지 않은 금이 가서 좀처럼 회복되지 않습니다. 부부중심이어야 합니다. 유교문화는 부부를 동반자 관계보다는 주종의 관계로 만들었습니다. 남편을 지아비라하며 부모처럼 떠 받들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남편은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를 받아가며 성공했는 데 아내들은 자기를 잃어버렸습니다. 남편의 성공과 출세를 위해 여성들은 너무 자기를 희생시켰습니다. 

    반대로 아내들은 지나치게 남편을 돈벌어오는 수단으로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신문만화에 이런 내용이 있었어요.
    직장에 나간 남편의 도시락에 콩으로 1800이라고 정갈스럽게 수 놓여져 있었습니다. 옆에서 지켜본 동료가 그걸 부러워했습니다. 도시락에 콩으로 숫자까지 적어주니 얼마나 다정스런 부인이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숫자가 무엇을 뜻하냐고 물었더니, 앞으로 갚아야 할 은행융자 돈이라는 것입니다. 집을 구할 때 융자를 얻었는 데 앞으로도 1800만원이 남았다는 것을 밥먹으면서도 잊지말라는 부인의 경고성 작품입니다. 그래도 이 부인은 알뜰살들 부인이라고 칭찬해 줄 수도 있어요. 어떤 악처는 남편이 일찍 죽으라고 침을 갈아서 국에 담아 먹였어요. 빨리 죽으라고. 남자분들 정신 바짝 차리고 사세요. 이 정도가 되면 이미 서로의 필요에 의해 살아가는 `정서적으로는 이혼상태'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가정을 원하시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은 가정을 원하십니다. 

    3.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가정은 어떤 가정일까요?


    (ㄱ) 서로를 가장 사랑스런 처소에 간직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담의 사랑의 고백은 언제 들어도 좋습니다.
    "그대는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 
    아담은 참으로 아내를 사랑했습니다. 원시적 사람이고,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없었지만 사랑의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 한국 남성들은 무뚝뚝합니다. 정말 그런지는 몰라도, 경상도 남자분들이 더 뚝뚝하답니다. 집에서 하루 세번 말하는 데 "신문 가져와라!" "밥 묵자" "자자!", 경상도 분들 맞습니까?
    우리 제주도 사람들도 뚝뚝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교회에서는 나름대로 상냥한 데 집에서는 아기자기한 맛이 없어요.
    이번에도 집에 가서 어머니가 아프다는 데, 상냥한 말 한마디 못했어요. 


    누가 그래요.
    "여자는 사랑한다는 고백에 질리지 않는 존재다"
    부부들은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그 사랑을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내됨을, 남편됨을 인정해주며 살아야 합니다. 
    제가 어느 곳에 가서 주례를 섰는 데 아주 주례사를 잘하더라고 해요. 
    이유는 한가지. 그날 이런 말 했어요.
    "남편은 남의 편만 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내가 좀 틀려도 집에서는 아내 편 들어주고 아내 마음을 맞추며 살아가세요. 집에서는 남의 편, 남편이 아니라 아내편, 안편이 되세요" 그러니 좋대요.
    고부간의 갈등이나 시댁과 처가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 면전에서는 어머니나 시댁편을 들어주지만 둘만 있을 때는 "나는 당신 편이야" 하면서 아내 편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내가 힘을 내요. 남편이라고 하는 사람이 허구헌 날 남의 편이나 들어요. 그러니 웬수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ㅍ 본문 19절은 "아내를 사랑하며 아내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탈무드는 아내를 울리면 하나님은 아내의 눈물을 다 세신다고 하셨습니다. 아내는 사랑의 대상이지 괴롭힘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주를 만드시고, 흙으로 짐승을 만드시고 그중에서도 가장 고운 흙으로 남자를 만드셨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뼈에서 만들었으니 얼마나 귀한 재료입니까? 그래서 성서학자 메튜 헨리는, "남자는 정결한 흙이다. 그러나 여자는 배로 정결한 흙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사람들을 소중하게 그리고 사랑하셨는지 상상이 갈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내"라는 말 뜻풀이를 재미있게 했어요.
    아내는,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집안에, 마음 안에, 마음에서도 가장 중심에 있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들보다, 내 사업보다, 내 야망보다 아내가 가장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그래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서로가 부부로 만났다는 것은 특별한 인연입니다. 서로에 대해 가장 사랑스런 존재가 되어야 하고 행복의 비타민을 공급하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가장 은밀한 곳, 가장 사랑스러운 곳은 남편이 차지해야 하고 아내가 차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랑스러운 곳을 남에게 내주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ㄴ) 동반자의 가정입니다. 


    서로 함께 가는 가정입니다.
    동등한 위치에서 동등하게 서로를 대접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자를 만드실 때 남자의 갈비뼈를 떼어서 만드셨습니다. 머리 쪽에서 떼지도 않으시고 발쪽에서 떼지도 않으셨습니다. 
    갈비뼈는 중간입니다. 여자가 남편의 꼭대기에 올라가서도 안되고 아내를 발바닥처럼 알아서도 안됩니다. 같은 위치에서 같은 존재로 동반자가 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부부끼리 이길려고 하지 마세요.
    심리학자 로만 라이트는 "결혼생활은 두 사람이 경주해서 둘 다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경주"라고 했습니다. 
    같이 보람을 찾고 같이 명성을 나누어야 합니다.


    남자분들이 여성들을 무슨 하녀 다루듯이, 가정부 다루듯이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부부는 상호간 의존적입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는 창조하실 때에 정서와 기능상의 차이점을 주셨습니다. 남자들은 골격이 강하고 여성들은 부드럽습니다. 남자들은 이지적이고 여자들은 감정적입니다. 어려운 일 당하면 남자들은 골치가 아프다 하고 여자들은 가슴이 아프다 합니다. 하나님은 서로가 돕는 배필이 되라고 합니다. 남편들은 강하게 행동해서 사냥군이 되어야 하고 사냥한 것을 가져다 가족을 먹여야 합니다. 그리고 아내와 가정을 보호합니다. 

    여성들은 돕는 배필이 되어야 합니다. 남편들은 충동적이기에 죄에 대해서도 충동적입니다. 남편들이 죄성에 빠지지 않도록 여성들은 현숙한 여인이 되어 남편을 죄에서 보호해야 합니다. 아울러 부드러움으로 남편의 마음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여성, `우먼'이라는 어근은 "부드러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상냥함과 부드러움이 있어야 합니다. 남성들은 어머니의 품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최초의 세계를 접했기에 모성에 대한 의존심이 있습니다. 아내들은 남편이 머리를 기댈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이해해 주고 우리 남편이 최고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어머니의 품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 18절은 남편에게 순종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ㄷ) 학교요 교실이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가정을 단순히 잠자는 곳, 밥먹는 곳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정을 배움의 도장이요 기도처요 예배당으로 생각했습니다. 가정에서 성경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가정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가정에서 어른들을 공경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러기에 유대인들은 2천 년 동안 조국을 잃고 성전을 빼앗겼지만 가정이라는 학교가 있고 성전이 있었기에 제 나라의 정신을 지켜낼 수 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가정은 이런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가정의 현주소는 어떻습니까? 배움의 가정, 기도처의 가정이 되고 있습니까?


    < 결 론 >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거듭나야 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종교생활을 잘 한다고 해도 거듭나지 않으면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무익하다고 하셨습니다. 거듭나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좋은 가정을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는 열심있는 교인이면서 정작 가정에서는 좋은 남편, 좋은 아내, 좋은 부모들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편에게 순종하지 못하고 아내를 괴롭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가정이 교회가 되지 못하고 숙박업소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정이 거듭나야 합니다. 안식하는 곳으로, 서로 사랑을 나누는 곳으로, 하나님을 배우고 가르치는 학교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강하고 거룩한 남자들이 됩니다. 성령충만하고 현숙한 여인들이 됩니다. 거듭난 가정, 축복을 누리며 나누는 가정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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