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식을 따라 사랑하라(벧전3:1-7)
  • 조회 수: 26, 2013.08.18 17:34:47
  •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소원을 놓고 기도를 했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정성이 하도 갸륵해서 약속을 주셨습니다. 네 소원이 뭐냐? 내가 꼭 세가지만 들어주마. 그 약속을 받고 이 사람은 곰곰히 생각한 후에 첫 번째 소원을 말했습니다.

     

      하나님 지금 마누라 데려가 주시고 새 장가들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그 소원을 들어 주셔서 부인을 데려 가셨습니다. 장례를 지내는데 문상객들이 많이 와서 하는 말이 "아니 그렇게 훌륭한 분이 벌써 가셨습니까? 남몰래 이런 일도 많이 했고 저런 일도 많이 했는데..." 그러면서 살아있을 때 착한 일 그리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하나같이 칭송하더랍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죽은 아내가 참 좋은 여자였구나 깨달은 남편은 그렇게 좋은 여자 괜히 불러가라 했다 후회가 되었습니다. 내가 이제 어디 가서 그런 여자 또 만날까 생각한 그는 하나님께 다시 부탁을 했습니다. "하나님, 죽었던 내 아내 도로 살려주세요." 그러자 그 부인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벌써 두 개의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소원은 딱 하나 남았는데 무슨 소원을 말할까? 내게 있어 가장 소중한 소원은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대답을 생각하지 못한 그는 마침내 하나님께 여쭤 보기로 했습니다. "하나님, 지금 제가 가져야 할 가장 귀한 소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대답했습니다. "지금 네 아내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가져라." 그는 그 말씀대로 순종해서 정말정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여러분의 부부관계는 다들 어떻습니까? 결혼한 여자 분들에게 당신이 만일 다시 태어나서 결혼을 한다면 지금 함께 사는 그 남자와 결혼하겠냐고 물으면 대답은 여러분이 알겁니다. 절대로 안한다. 그게 거의 다지요. 한마디로 지금 살고있는 남편들한테 다 실망했다 이 말이올시다. 도대체 남편들에 대한 아내들의 불만의 내용이 뭐냐? 그건 중요한 부부관계에 있어서의 주제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소설이 있습니다. 부유하고 성실한 남편과 함께 아무 부족함이 없이 한 여자가 남편이 볼일 보러 집을 떠난 사이에 그 지방에 찾아온 떠돌이 사진작가와 서로 눈이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만나면서부터 그들은 서로 다정한 대화를 주고받았고 서로 마음이 통하는 것을 느끼면서 여자는 갈등하기 시작합니다. "왜 이러한 감정이 남편에게서는 느껴지지 않았을까? 이 낯선 남자는 나에게 이렇게 쉽게 풍성하게 주는데 비해서 왜 남편은 그렇게도 주지 못하는가? 그런데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남편은 주지 못하고 나는 바라는 것, 그게 무엇인가?" 그 여자는 끊임없이 질문을 하면서 마침내 그 남자와 사랑을 하게됩니다. 그 남자는 이제 그 여자에게 가정을 버리고 자기를 따라 나서줄 것을 요구했고 이 여자는 그 요청을 받아들인 후에 많이 갈등하다가 결국은 따라가지 않고 가정을 지키기로 했다는 얘기올시다. 로버트 월러가 쓴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라고 하는 소설의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은 많은 평론가들과 순수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형편없는 작품이라고 하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초베스트 셀러가 됐습니다. 이런 일은 없었던 일이죠. 더구나 중요했던 것은 여인들이 먼저 그 소설에 대하여 열광을 했다는 것이고 자기가 읽고 남편들에게 읽으라고 권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뭘까? 그 속에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요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서 저자가 하는 얘기는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연애나 화끈하게 하라 그런 얘기가 아니올시다. 겉으로 멀쩡한 정상적인 부부입니다만은 그 부부 속에 꼭 있어야 할 것이 빠진 부부가 너무 많다 그런 얘깁니다.

     

     아내들은 간절히 바라지만 남편들은 채워주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게 뭐냐? 그것을 한마디로 "친밀감"이라고 합니다. 모든 여인들이 남편들에게 바라는 것 친밀감. 인티머시(Intimacy)입니다. 친밀감이란 무엇인고 하니 육체적, 정서적, 영적 차원의 깊은 연합을 가능케 하는 에너지의 교환을 의미합니다. 이 친밀감이 없이 살아갈 때 그냥 함께 살아가는 것뿐이죠 마음의 교통이 하나도 없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아무 문제가 없죠, 경제문제도 없죠, 자식문제도 없어요. 그런데 왠지 허전해요. 그 이유가 뭐냐? 양자간의 친밀감이 없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아내들이 불평을 합니다. 그럼 남자들이 당황을 하지요. 그래서 바로 되받아 칩니다. "아니, 내가 안해준 게 뭐야? 왜 그렇게 불평이 많아?"라고 말합니다만은 그 불평의 내용이 바로 "친밀감"이올시다.

     

      수많은 가정문제를 연구하면서 심지어는 본인들 자신도 모르는 갈등의 원인이 바로 "친밀감의 결여이다."라고 밝혀낸 것은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남자들에게는 여인들이 그렇게 바라는 친밀감이 없느냐 하는 문제가 대두되지요. 

     

      이 원인에 대한 이해를 여러분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자들에게 친밀감이 부족한 가장 큰 원인은 전통적인 남성상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남성상이란 무엇이냐 하면 남자란 마땅히 이래야 한다고 지금까지 배워왔던 가치관을 의미합니다. 그 가치관이 세가지로 구성이 되는데 첫째는 사냥꾼의 개념이올시다. 남자는 사냥꾼이라는 거지요. 밖에 나가서 사냥을 해서 집식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공급자"라 그런 말입니다. 먹을 것만 가지고 와서는 참 사냥꾼이 아니지요. 명예와 신분까지도 가져와야 합니다. 이것이 요즘은 월급 봉투와 명함으로 대체가 되었습니다. 자, 이런 것을 밖에서부터 가져오려면 다른 사냥꾼과 경쟁을 해야되고 결코 사냥감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그에게 있어서 실패란 용납되지 않는 겁니다. 이렇게 사냥꾼의 역할을 잘 감당할 때 남자에게는 만족과 성취감이 있습니다.

     

      두 번째 개념은 투사의 개념입니다. 남자란 모름지기 전쟁에 나가 싸워 이겨야 한다는 거지요. 그러려면 적을 알아야 되고 적을 물리쳐야 되는데 그것도 아주 완전하게 때려 뉘여야 합니다. 박력있게 그게 남자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강인함과 용기와 인내와 완력이 필요하다고 믿고있는 겁니다.

     

     세 번째 개념은 정력과의 개념입니다. 남자는 모름지기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어야 되고 여자를 정복해서 많이 거느릴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 이 세가지가 갖추어져야 정말로 최고의 남자다. 멋진 남자라고 하는 가치관 이것이 전통적인 남성상이올시다. 그렇게 되야 한다고 남자들이 믿고 있고 그렇게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아들들을 이러한 각도에서 교육을 시켜왔을 겁니다. "너 나가서 말이지 다른 애들하고 놀 때 지면 안돼! 힘이 있어야 해 힘이 딸리면 물어뜯기라도 해야돼!" 약해 보이면 안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다 보니 경쟁의식이 자꾸자꾸 강화됩니다. 뭔가 사내아이들이 울라고 하면 감정없나 울려고 하면 "울지마! 뚝 그쳐! 뚝 그쳐!" 하지요. 남자가 울면 안돼 이를 악 물어라 그렇게 교육을 받습니다. 감정 발산이 억제되는 거에요.

     

     극장 같은데서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볼 때 말이죠. 슬픈 영화는 훌쩍훌쩍 우는소리가 난단 말이죠. 그런데 울지 않고 킥킥대는 남자아이들이 꼭 있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놀라죠."저놈들은 감정도 없나 다 울고 있는데 어떻게 웃고 있나?"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만은 그 아이들을 불러서 심리테스트를 해보면 걔들이 슬프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어떻게 배웠는고 하니 "남자는 저만한 일로 울어서는 안돼."그렇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울지 않으려고 감정의 장벽을 치는 행위가 바로 웃음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남자다워 지려고 하는 나름대로의 몸부림이 그렇게 정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거죠. 남자아이들이 뭔가 좀 말하려고 하면 부모들이 말합니다. "사내 녀석이 입도 싸기는..." 그럽니다. 말도 못하게 하는 거에요 이거. 보세요. 울지도 못하지, 말도 못하지,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마음도 주지 말라고 교육을 합니다. 사나이가 큰 일을 하려면 여자 치마폭이나 쫓아다녀야 되겠냐? 라고 가르치는 거예요.

     

      여러분이 좋아하는 제임스 본드의 영화 그 영화의 철학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미모의 여자가 달려들어도 너는 절대로 마음을 주지마라. 그것이 제임스 007영화의 핵심이에요. 왜냐하면 당하니까. 오히려 그쪽에서 아우성 치고 와도 받아는 주되 마음은 주지 마라. 이게 전통적 남성상의 개념이올시다.

     

      자 이렇게 하다 보니까 어떠한 성격이 되는고 하니 전문용어로 비표현성이 강화됩니다. 표현하기가 어려워지는 거에요, 자꾸만 자기 감정을 말이죠. 그래서 감정표현을 못하는 사람이 되고 감정이 자꾸 죽어가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전통적인 남성상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사람은 이렇게 됩니다. 친밀감이 없어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나는 진짜 사내라고 생각하는 사람하고 얘기해보세요. 소리나 꽥꽥지르지 대화가 잘 안 통할 거에요 아마. 친밀감을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의학적으로 조사를 해보면 남자들의 감성능력은 상당히 퇴하되어 있음이 수치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남자들이 말을 잘 못하잖아요.  오래간만에 명절 때 형제가 만나도 할 말이 없어요. 멀뚱멀뚱 보다가 고스톱이나 하지 이러고 마는 거에요. 여자분들 보세요. 처음보는 사람하고도 어째 그렇게 말을 잘해요 그래? 전화 한번 잡으면 끝도 없잖아요. 남자는 일분도 못 넘어요. 이게 왜 그러냐 말이죠. 남자의 마음에도 감정이 있습니다. 정말로 펑펑 울고 싶은 사람도 많은데 울지를 못하는 거에요. 여러분 고무풍선에 물 넣은거 있죠? 물폭탄. 물폭탄같은 마음을 가진 남자도 많습니다. 톡 건드리면 왁! 울어버릴 그러나 울게되어 있지를 않아요. 그렇게 배우지를 못했어요. 꾹 참고 사는 거예요 그냥. 황수관박사가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오래 사는 이유는 잘 울고 잘 웃어서 그렇다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겁니다. 남자들은 중압감은 있는데 표현할 능력이 없는 거에요. 표현하면 안된다고 배웠어요. 그래서 "앨빈 배리프"라고 하는 분은 남자들은 천성적으로 외로움을 느끼라고 교육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이러한 남성상에 대해서 옛날엔 여자들이 참았죠. 그러련하고 견뎌왔는데 마침내 폭발을 했습니다. 그게 바로 여성해방 운동이올시다. 그래서 새로운 남성상을 요구합니다. 이게바로 현대인의 남성상이죠. 그것은 바로 싸워 이기는 경쟁자가 아니라 협력자를 요구하고 거칠고 난폭한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개방적이 되어야 하며 다정다감한 남자를 요구하게 됩니다. 자, 이러한 요구에 대하여 전통적 남성상을 가진 사람들은 너무 어려운 거지요. 적응하기가 어려워요. 그렇다고 해서 남자의 의무가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 엄청난 삶의 중압감을 헤쳐나가야 하는 부담감이 그대로 있는데 이제 새롭게 성격을 바꾸랍니다. 그렇게 교육받고 크지를 못했는데 말이죠. 새로운 역할이 요구되는 거예요. 그래서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려고 노력해보다가도 전통적 남성상에 의해서 자기를 재평가합니다. "이거 내가 제대로 되고 있는건가?" 현대 남성들의 문제는 남성의 성역할에 대한 혼란입니다. 왜냐하면 전통적 남성상은 부서지고 있고 새로운 남성상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가정마다 보면 아버지의 개념이 혼란을 가져옵니다. 도대체 어떠한 남자가 되어야 하는가? 이건 남자들에게 중요한 이 시대의 문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현대적 남성이 되자. 그러나 현대적 남성상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세월이 가면 또 바뀌니까요.

     

       진정한 남성상은 성경속에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 모델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 7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말합니다. 참으로 좋은 남자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어떤 남편들이 되어야 하며 남자들의 약점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보완해야 할 것인가를 섬세한 필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4가지로 말하는데요.

     

     첫째는, 지적인 측면에서 말합니다. 우리 7절을 봉독하겠습니다.

     

     7절: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함이라.

     

     지식을 따라서 살라고 말합니다. 지적인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남자들에게는 가정과 아내에 대하여 더 많이 알아야 할 책임을 주고 있습니다.

     부부생활 세미나 같은데 나가면 금방 알 수가 있어요. 배우자들이 같이 이렇게 와 있는데 종이를 주고 상대방에게 대하여 아는 대로 쓰라고 하면 정반대의 결과가 나옵니다. 배우자의 생년월일과 주민등록번호 쓰기 지금 배우자의 건강상태에 대하여 그리고 요즘 배우자가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쓰세요 하면은 여자들은 금방 씁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하나도 못 쓰는 거에요. 뭘 알아야 쓰지. 심지어 자기 아내의 생년월일도 모르는 남자도 많습니다. 잊어버렸겠지요. 또, 그까지껏 알아 가지고 뭐해?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지식을 따라야 한다고. 아내에 대해 알아야 하고, 더 연구하라고 하나님은 명령하십니다.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부모와 형제들로 나아가면  남자들은 쓸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100% 빵점이에요. 사랑한다면 알아야 한다는 것을 성경은 말합니다. 그럼 아내에 대하여 알려고 한다면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여러분? 관심 어린 대화가 필요한 것이지요. 자 퇴근해서 들어왔습니다 이제. 배 고프다! 밥 주라! 애들 어디 갔나? 자자! 이렇게 끝나면 안된다는 거에요. 가장 잔인한 것은 뭐냐하면 무관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남성 여러분. 아내에 대하여 좀 더 많은 지식을 가지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깊이 마음에 새길 일입니다.

     

     두 번째는, 신체적으로 말합니다. 7절 중반절에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함께 거하라고 말씀합니다. 쉽게 말하면 함께 있는 시간을 좀 더 가져라 그런 말이지요. 아내를 위한 시간을 내주라는 말이올시다. 삶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다. 바쁘지만은 가장 소중한 아내를 위한 시간 배려를 하도록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육체적 경제적으로 공급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남편이 공급자이기 때문이죠. 이것이 동거의 의미이올시다.

     

     세 번째는, 정서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7절 중반절에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마음으로 귀히 여기라고 명령합니다. 왜요? 연약한 그릇이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연약하고 정서적으로 예민해서 연약합니다. 그래서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라고 말하는 겁니다. 신체적인 힘은 남자아이 10살 짜리를 이기지 못합니다. 좀 쫄깃쫄깃하기는 하죠 여자들이 강하진 못해도. 연약하다고 말 했습니다. 그런데 연약하지만 귀하다고 말했습니다. 여기 비유적인 용어가 하나가 빠졌습니다. 그러므로 여인을 보물처럼 다루라 그런 말입니다. 남자들이 여자들을 보물처럼 여겼던 때가 있었죠. 연애했을 때. 그때는 다 신사 였습니다. 그리고 아주 깎듯한 예우를 갖추었는데 왜 결혼하고 나면 무례해질까? 그게 중요한 관심사 아닙니까? 제가 중요한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연애할때는 그 여자를 사냥감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요.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뺏기면 안됩니다. 그건 경쟁이요, 게임이요.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마음을 뺏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겼어요 이제. 내 수중에 들어왔다. 이제부터는 필요 없어요. 가만두어도 돼요. 그래서 무례해지는 거예요.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귀히 여겨야 한다고.

     

     또 하나 귀히 여겨야 할 이유를 본문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이기 때문이다고 말했습니다. 여자가 하등이 아니라는 겁니다. 소유물이 아니라는 겁니다. 영적으로 동등한 존재이므로 거칠게 다루지 말고 귀히 여기라. 다스림의 대상이 아니라 평등히 여길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남자들은 여자들은 거칠게 다루는 것을 좋아해. 그딴 소리를 하는데 아니요. 그건 잘못된 편견이올시다. 귀히 여기고 부드럽게 다루라고 명령을 합니다. 여러분 행복이란 작은데서 부터 오는 겁니다. 당신을 내가 귀히 여긴다고 하는 사인들 그런한 표정들 그러한 행위들이 쌓여서 친밀감과 신뢰감이 보태지고 여기서 진정한 헌신과 행복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올시다. 그러므로 당신을 귀히 여긴다는 사인을 자꾸 보낼 것입니다. 이 사인의 크기는 큰 것과 작은 것이 똑같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동차를 한 대 사주는 것도 꽃 한송이를 다정하게 전해주는 것도 사랑한다고 한마디하는 것도 여자에게는 똑같은 비중으로 들려온다는 것을 남자들이 배워야 합니다. 앞으로 내가 잘해줄게. 크게 한번 해줄게 하고 미룬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에요. 시간 시간 때를 따라서 당신을 귀히 여긴다고 하는 사인을 보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영적으로는 그럼 7절 끝에서 말합니다.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려 함이라. 기도할 것을 말합니다. 축복하고 기도할 것을 함께 기도 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최고의 오해는 무엇인고 하니 진정한 사랑은 한번 시작되면 영원한 것이다. 이건 거짓말입니다. 사랑은 얼마든지 식을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불처럼 사랑하다가도 얼음처럼 싸늘해지고 증오의 칼을 가는 겁니다. 사랑이란 결코 저절로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계속적으로 가꿔가야 하고 확장시켜 나가야 할 중요한 작품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자 여러분. 오늘 본문은 4가지 측면에서 말합니다만은 종합하면 무엇인고 하니. 당신 마음속에 있는 사랑을 표현하라는 겁니다. 이것이 남자의 가장 큰 약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남자들은 항상 표현하기를 힘쓸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분들은 그 표현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반드시 이해해줘야 합니다. 아내가 "사랑합니다 여보,"하는 것과 남편이 "사랑해," 라고 하는 것은  결코 같은 에너지가 소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남자의 그런 말 한마디는 무척이나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그러한 말 한마디 한마디를 소중하게 감사하게 받고 또한 반드시 칭찬하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줘야 합니다. 모처럼 마음먹고 말이지 사랑한다고 말을 했는데 오늘 무슨 바람 불었나? 이러면 아이고... 끝나는 거예요 이젠. 왜요? 어렵게 어렵게 한 그 말에 대하여 상처받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부인들중에 그런게 있어요. 우리 남편은 맨날 텔레비젼만 봐요. 나는 안보고. 왜 텔레비젼을 보겠어요 여러분? 사람이 옆에 있는데요? 텔레비젼 보는 이유가 있답니다. 너와 나 사이에 친밀감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뻗뻗한 기계가 뭐가 좋겠어요? 안 그렇습니까? 남자도 얘기하고 싶어요. 그런데 안되는거지. 그러니까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 여인의 능력으로 배려해 주어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그러한 말을 표현할 수 있도록. 그리고 내 마음에 흡족하게 표현하지 못해도 그 작은 표현을 기뻐하고 감사하고 적극적으로 칭찬해서 자꾸자꾸 표현할 수 있도록 아내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야만 하는 겁니다.

     

     많은 남자들이 전통적 남성상의 희생자라 합니다. 그래서 현대적 남성상을 추구하고 나갑니다만은 이것도 바뀔 것입니다. 우리는 결국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행해야 되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진짜 남자가 되고 멋진 남편이 되고 행복한 가정이  이루어지게 되는 겁니다.

     

     남자 성도 여러분 오늘 7절 말씀처럼 살아가는 가장 좋은 남편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은혜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 가정들에게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은혜 내려 주셔서 가장의 중압감을 그리고 무거운 책임감을 세상에서 느끼는 많은 갈등과 어려움을 홀로 지고 답답해하며 가슴치는 남자들 되지 말고 그 모든 무거운 짐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기도하는 남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진정한 남자의 모델은 거칠은 야수가 아니요, 우리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은 강했지만 부드러웠고, 단호하셨지만 온유하셨고, 예리하셨지만 사랑이 넘쳤고, 끝까지 이겼으나 관용했고, 미워하지 아니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남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게 하옵소서. 그리고 아내에 대하여 잘 알도록 지식을 더하여 주시고, 동거하는 기쁨을 주은혜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 가정들의 가장들에게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은혜 내려시고, 귀히 여길 줄 알게 하여 주시고,함께 기도하는 남편들이 다 되게 하셔서 최고의 남편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이 주시려고 하는 복을 다 누리는 복된 가정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부부사이에 있는 상처들 주께서 치료하사 깨끗하게 하시고, 은혜의 새 살 사랑의 새 살이 돋아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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