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FC 창업주 이야기
  • 조회 수: 193, 2013.10.05 12:45:29
  • 켄터키는 미국의 지명이다. 그런데 전 세계 사람들이 마치 자기 동네처럼 친근히 여긴다. 한국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집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KFC)’ 매장 때문이다. KFC 매장의 간판 그림에서 산타클로스처럼 사람 좋은 웃음을 머금고 있는 할아버지를 기억하시는지? 바로 50여년 전에 KFC를 창업한 커넬 할랜드 샌더스의 모습이다. 미국인들은 그런 샌더스에게 ‘패스트푸드의 아버지’라는 이름을 주고 오늘날까지 사랑과 존경을 보인다. 전 세계에 미국의 음식을 전파한 사업가라는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66세라는 늦은 나이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 기어이 성공시킨 불굴의 의지를 높이 사기 때문이다.

     

    샌더스는 6세때 아버지를 잃고 10세때 이웃의 농장일을 시작으로 수많은 직장을 전전했다. 철도 노동자로도 일하던 그는 한때 법률 공부에 매달려 변호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으나 법조계의 검은 거래에 밀려 자의반 타의반으로 퇴직한다. 보험, 타이어 영업맨과 페리보트 사업의 공동 경영자로 참여한 그는 29세때부터 주유소 대리점을 운영하며 한동안 안정적 삶을 구가한다. 주유소 사업이 어느 정도 성공하자 레스토랑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그가 49세가 되던 해 온갖 정성을 기울여 온 식당이 불에 타 버리는 불운이 닥친다.

     

    그는 그 불운 속에서도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의 맛을 완성해내고, 레스토랑 사업을 더욱 번창시키며 오히려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1950년대 전쟁에 승리한 미국이 전국의 도로를 정비하면서 그의 삶에 다시 검은 그림자가 덮쳤다. 그가 운영하는 대형 식당을 우회하는 새로운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매출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결국 파산에 직면하게 된 것.....

     

    하얀 머리의 60대 노인 샌더스는 켄터키주 남부 외곽 마을에서 새 도로 건설 현장을 내려다보며 굶주렸던 어린 날을 돌아봤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대로 내 남은 인생을 대충 보낼 수는 없다. 일어나자.” 그는 중고 자동차에 자신의 유일한 재산인 ‘후라이드 치킨’ 요리법을 들고 무작정 전국의 식당들을 찾아다녔다. 치킨 조리법과 양념을 제공한다는 그의 제안은 1008곳의 식당으로부터 퇴짜를 맞은 후 1009번째 식당에서 첫 계약이 성립됐다. 이것이 바로 KFC가 시작된 첫 출발점이다.

     

    이상하게도 미국의 유명 프랜차이즈 맥도널드, KFC 창업주는 늦깍이 CEO들이다. 오늘날 한국의 많은 50대들이 직장에서 퇴작하여 뒷전으로 밀려나는 현실을 보면서 이들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 과감히 도전해 볼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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