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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갈라디아서 1:4-5/ 은혜를 깨닫는 삶 [수요]
  • 조회 수: 701, 2013.10.05 21:56:04
  • 우리가 복잡다단하고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거의 우리 삶에 있어서 사는 즐거움이랄까 기쁨 같은 좋은 감정들을 세상 일들에 빼앗기고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인것 같읍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좋고 유쾌한 감정들을 불러 일으키는 동기가 없어서이기 보다는 오히려 오히려 삶의 복잡함 속에서 그것을 잊어버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읍니다. 그는 늘 하나님을 찬송하고 어떤 일이 있을 때나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고 그분께 드릴 감사의 제목을 먼저 찾았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1장 5절 마지막에 보면,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 찌어다!! 아-멘”이라고 되어 있읍니다. 지금 우리가 글로써 그의 심정을 읽지만 그가 마지막에 「아-멘」이라고 외친 그때의 그의 확신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감격에 찬 확신이었는지, 얼마나 자신 만만한 확신인지...
    그의 사정이 지금 그럴 때입니까? 그의 적들이 그가 얘써 만들어 놓은 복음의 터를 무너뜨리고 있읍니다. 거기에다 그를 따르는 많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아서 그에게 등을 돌리고 그를 거짓말장이라니, 사기꾼이라니 하면서 그를 등 뒤에서 욕을 하고 있지 않읍니까? 아차하는 순간에 그의 사도적 권위가 완전히 적들에게 짓밟힐 상황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는 사도 바울, 그를 생각하면 우리는 스스로 부끄러워지지 않을 수 없읍니다. 지금 갈라디아 교회를 짓밟고 있는 율법주의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자신의 영광을 사들이고 있읍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죽다가 살아나도 오직 이 한마디, “하나님께 영과을...”입니다. 거짓 선지자들과 얼마나 다릅니까? 

    사실 우리가 말로는 하나님 영광, 하나님 영광 하지만 실제 우리의 문제에 부딫히면 하나님 영광이 어디 있읍니까? 내 욕심이 먼저 튀어나오고, 내 더러운 감정이 먼저 나타나지 않읍니까? 그러니까 하나님 영광이라는 말이야 어중이 떠중이 누구나가 흉내만 낼줄 알면 다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진짜 진짜, 정말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그런 분들은 참된 하나님의 신민이요, 하나님 나라의 영광된 백성인 것입니다. 우리 염광교회 교인들은 다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은 그냥되는게 아닌 것 같읍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 최소한 그분 한테는 누가 안되야 할텐데...” 그 분이 도데체 누구길래 그렇읍니까? 조건이 있지 않겠읍니까? 뭐 내가 존경할만 하다느니, 나에게 무진장 많은 사랑을 베푼 분이라든지, 나의 은인이라느니 등등의 대답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읍니다. 그냥 감사가 될 수 있읍니까? 받은게 있어야 감사하지요. 죄인이었던 우리가, 자기 밖에 생각할 줄 모르던 우리가 조건없는 감사, 조건없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겠읍니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조건이라는게 꼭 있기 마련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엄청난 은혜를 끼치셨읍니다.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렇기에 그 사랑의 댓가를 너무나도 크게, 너무나도 엄청나게 지불하셨읍니다. 그 값어치가 너무나도 크기에 우리는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는 그 가치를 추상적으로 생각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감이 않잡히기에 그렇읍니다. 제가 제 손으로 한달에 많아야 4-50만원 정도를 만지는게 고작인데, 뉴스에서 40조원, 50조원 하고 떠들어댄다고 해서 제대로나 감이 잡히겠읍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에 지불하신 댓가가 그런 것입니다. 아니 그 이상입니다. 40조, 50조원 정도는 그래도 숫자 감각이나 있지만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의 댓가는 수치로 환산조차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댓가를 다 몰라도 좋읍니다. 직접 부딫혀보면 그 댓가가 얼마만한 것인지를 알게 될테니까요.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것을 알았어요.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댓가가 어떠한지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물 같은 내가, 죄인 중에 괴수 같은 내가, 인생의 배설물 같은 내가 무엇이길래....”라고 사도 바울은 부르짖었읍니다. 그래서 그는 이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자신의 영광을 위한 삶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의 180도 방향을 바꾸어 살았읍니다. 이런 지경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살아가는 인생입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가지 못합니까? 이 은혜를 아직도 다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늘 이 은혜를 잊어버리지 마십시요. 늘 이 은혜를 묵상하십시요. “이 은혜가 내게 너무나도 크구나! 아, 주의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이러한 감탄사가 쏟아져 나오고 이러한 자신을 향한 간절한 물음이 자발적으로 나오기 전에는 아직도 우리는 주님 앞에서 만삭되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형편으로는 아직까지도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고 할 수 없음을 깨닫는 이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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