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적의 의미로서 오병이어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믿지 않습니다.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심지어는 예수님께서 군중들의 호주머니를 열게 해서 그것을 통해서 먹게 하신 것이다고 비아냥됩니다. 우리는 이런 견해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겠습니까?
과학과 신앙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과학은 검증, 논증 그리고 확인과정을 거친 후 사실로 받아들이고 믿게 됩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는 믿고 난 후 미지의 세계를 알게 되고 확인하게 됩니다. 성경은 기적을 설명하기 위해 기록된 책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 안에는 수를 셀 수 없는 기적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기적은 창세기 1장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있으라 하시매 있었고”라고 설명합니다. “빛이 있으라 하늘과 땅 나뉘어라 낮과 밤이 되라” 말씀만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수를 셀 수 없는 성경 속의 기적들을 믿지 않으면 신앙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보아야 믿고 만져야 믿는다는 것은 과학적 발상입니다.
그러나 보지 않아도 믿고 만질 수 없어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히 11:1). 성경 안에 수록된 기적들은 하나님이 행하신 극히 일부분의 사역에 불과합니다. 사람의 능력에 비해 다를 바 없고 우월성이 없는 그런 신이라면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믿고 고백합니다. 다 아시고 모든 일이 능하시다는 뜻입니다.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볼 수 있어야 믿겠다는 사람, 보면서도 믿지 않는 사람, 보지 못해도 믿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가 신앙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20:29).
무에서 유의 세계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수많은 기적들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의 범주만으로 하나님과 행하신 능력들을 논하는 것은 불경죄에 해당됩니다. 성경을 지식의 눈으로 읽지 마시고 믿음의 눈으로 읽으십시오.
제한된 인간경험의 잣대로 하나님의 능력을 측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믿음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십시오. 믿어야 구원받고 응답받는다는 단순한 진리를 수용하십시오. 믿지 않으면 성경은 도덕 교과서나 신화로 치부될 것입니다. 그러나 믿으면 내 영을 살리고 삶을 풍요로 이끄는 능력이 됩니다. 의심과 회의로 채색된 안경을 벗고 믿음의 안경으로 천지를 보고 성경을 보고 영원을 보시기 바랍니다.
2. 표적의 의미
이 기적은 요한복음 6장에서는 표적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표적이라고 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기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오병이어의 기적은 그냥 기적... 하고 지나갈 것이 아니라 이 기적이 예수님이 바로 생명의 떡이심을 나타내주려는데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오병이어의 기적은 자신의 살과 피의 고난을 상징하기도 한다.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고 난 뒤에 자신을 임금 삼으려는 사람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설명하시면서 자신의 살과 피를 마셔야만 영생할 수 있다고 가리치셨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나누어지기 위해서 찟겨지는 것처럼 자신의 몸도 십자가에서 찟겨질 것임을 암시하신 것이다. 그리고 찟겨진 오병이어들이 제자들의 손길을 통하여 나뉘어 졌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복음이 주의 종들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전파할 때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주-욱 설명하는 것이 바로 요한복음 6장의 내용이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군중들은 말씀이 어렵도다.... 라고 하면서 오병이어의 그 열정의 현장을 잊어버리고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가 여기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신앙을 세상적인 것으로만 보면 처음의 열정, 재미... 다 식어버린다. 그래서 교회는 반드시 교회다워야 한다. 처음에는 밥을 먹이지만 그 다음에는 말씀을 먹이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재미로 교회를 접하게 되지만 그 재미가 시들해질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재미로 교회에 나온 이들을 반드시 말씀으로 가르쳐서 신앙에서 추구하는 바가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의미가 이 오병이어의 기적에 들어있다. 이런 전체적인 의미들을 우리가 살펴보았다. 그러면 이제는 말씀의 의미를 살피면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디베랴..."디베랴"는 갈릴리의 다른 이름으로 "게네사렛(눅5:1)"이라고도 불렸으며, 구약에서는 "긴네렛(민34:11)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이름은 헤롯 안티파스가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를 기념하기 위하여 호숫가 근처에 도시를 세운 뒤 붙여진 이름입니다. "건너편"은 이 기적이 일어난 장소를 말하며, 4개의 복음서 중 마태(마14:13), 누가(눅1:1~3)와 함께 이 곳이 베드로, 안드레, 빌립의 고향인 "벳세다"임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빌립을 시험하심 .... 예수님은 왜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라고 질문 하셨을까요? 6절에서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험 즉 "페이라존"은 나쁜 의미로 사용된 적도 있지만, 여기서는 단순한 Test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훈련하다"의 뜻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Test하실 때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을 명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불가능의 환경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아멘"으로 화답하며 순종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빌립의 대답........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예수님은 빌립이 믿음으로 대답하기를 기대하시며 질문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님의 질문에 빌립은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라고 자신의 이성과 경헙으로 판단하여 대답하고 있습니다. 당시 노동자의 임금이 한 데나리온임을 생각하면 엄청난 금액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요한복음 6장을 읽어보면 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도 예수님은 여러 병자들을 고치시며 엄청난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니 이런 엄청난 인파가 몰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빌립은 많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도 예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때때로 우리를 Test하실 때가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예수님이 이렇게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 안드레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런데, 안드레가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옵니다.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 나누어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안드레는 할 수 없는 줄 알면서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께 내 드리면서 일단은 이 질문을 벗어나고자 합니다. 우리가 가끔 이렇게 합니다. 틀린 답인 줄 알면서도 질문을 피해가기 위해 억지대답을 합니다. 사람들은 아드레가 믿음이 있다고 해석하지만 빌립이나 안드레나 거기서 거기입니다. 말하자면 억지대답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억지대답 같은 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게 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자 이제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요소들을 하나씩 살피고자 합니다.
1. 무리를 보고 불쌍히 여기심..... 여러분... 기적은 주여 주여.... 외치는 것에서부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데서 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흔히 기적과 같은 사건 뒤에는 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우리 항도교회가 기적의 현장이 될려고 하면 사람에 대한 무관심을 몰아내어야 합니다. 무심한 사람들을 통하여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역사에 있어서 기적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보시면 다 그 영혼 속에 뜨거운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적을 일구어내는 지도자가 되려면 우리 예수님처럼 가슴이 뜨거워야 합니다. 지들이야 따라오든지 말든지... 아니고 귀찮아라, 제발 좀 가다오.... 주님이 이런 마음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을 불쌍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귀찮게 여기는 사람은 그렇고 그런 인생을 삽니다. 그저 무덤덤하고, 밋밋하고... 그러나 인생 끝납니다. 그러나 뜨거운 사랑을 마음에 담은 사람은 기적을 몰고 다닙니다.
2. 어린 소년의 도시락 헌신이 있습니다. 어린 소년이 점심으로 준비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리마리는 개인적으로는 소중한 것이었으며, 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그 소년은 수많은 무리 중에 끼어 있었으며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심사에 대하여 알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그저 자기의 배고픔을 위해서 준비된 도시락을 먹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 소년은 아름다운 마음을 지녔다. 자기 주변에 있는 대중들의 배고픔을 인식했으며, 혹시 이 도시락이 훌륭한 말씀을 가르치는 주님께 요기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제자들에게 자기의 도시락을 내 놓은 것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가지고 있는 것을 분배함으로써 불어났다는 사실이다. 무리가 갖고 온 음식으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했지만, 음식들을 서로 나눠먹다 보니 증가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우리가 가진 것들을 이웃과 나눌 때 오늘에도 일어날 수 있다. ”교회의 역사는 이웃과 주변을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과 비록 작은 것이지만 기꺼이 주님께 드리는 헌신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3. 축복기도와 함께 나누어줄 때 기적이 일어난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예수님께서 축사하시고 제자들을 명하여 나누어주라 명하셨을 때 이미 기적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교회의 축복을 빈 구제는 오병이어의 역사가 나타난다. 정부나 사회단체는 기금이나 국민의 세금을 이용하여 많은 예산을 확보하고 구제활동을 벌이지만 작은 교회들이 벌이는 구제의 손길을 따라가지 못한다. 이것은 믿음으로 행하는 교회의 활동에 하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축복해주시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교회가 이웃과 사회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공동체가 되도록 기꺼이 물질적인 드림이 있어야 하고, 교회는 성도들이 드린 물질을 나누어주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주님도 받는 것 보다 주는 것이 복되다고 하셨다. 교회가 나누어줄 때 성장하고 역사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이 기적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과 경험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을 명하실 때가 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틀림 없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라고 하십니다. 이 때에 우리는 이성이나 경험으로 생각하고 결정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이성과 경험의 고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환경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환경은 상황논리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게 합니다.
성도는 성령의 음성을 들으면 제자들과 같이 즉시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순종하기만 하면 다음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믿음으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루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