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는 하나의 사건이 있습니다.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18명이 치어 죽었습니다. 요즘 일어났다면 이런 것은 기사거리입니다. 신문에 대서특필로 망대가 무너져서 18명이 치어 죽었다고 사건화 했을 겁니다. 그리고 이 사건 뒤에는 여러 가지로 사건 자체가 분석되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부실 공사다, 누가 또 돈을 떼어먹고 엉터리 공사를 해서 이런 사고가 났다고 사정없이 평을 했을 것이고, 또는 정책적으로 잘못했다, 허물어져 가는 줄 알았다면 사람을 근접하지 못하게 하든지 보수 공사를 제 때에 했어야지 이것은 정책 잘못이다 하며 가혹하게 평가했을 것입니다. 또는 허술하고 위험한 망대 밑에 왜 가서 놀았나? 부주의해서 죽었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들의 잘못이라고 평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보시지 않으셨습니다. 특수한 관점으로 보셨고, 영적인 눈으로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이 문제를 보셨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해설은 아마도 우리가 당하는 끔찍한 사건들에 대한 해석의 원리가 될 것입니다. 사건마다 우리는 예수께서 보신 눈으로 보고, 신문 기사도 이 안목으로 읽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지나가는 사건도 아니고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이것은 미래적인 사건입니다. 먼 강 건너 불이 아니고 바로 우리 자신들을 위한 사건들이란 말입니다. 6․25의 이야기도 지나간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오늘의 사건이라고 이렇게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사건을 말씀으로 보셨습니다. 전쟁은 말씀입니다. 재난도 위대한 말씀입니다. 귀로 듣도록 말해서 못 알아들으면 눈으로 보게 하고, 눈으로 본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제는 몸에 손을 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몸으로 부딪쳐서 하나의 엄청난 사건으로서 역사하고 계시며 이것을 또 몸으로 깨닫게 하십니다. 이것이 전쟁이요,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구체적인 사건을 통하여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그리고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서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아니다. 저들은 대표적으로 당한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목사님이 저에게 신나게 6. 25 전쟁의 경험을 이야기 했습니다. 최 일선에서 밤에 행군해 갈 때는 졸다가 낙오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긴 줄에다 손목을 서로 붙들어 매서 수백 명이 한 줄로 서서 몰래 적진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밤새껏 걷는데 자면서 걸어갔다고 합니다. 어떻게 얼마를 갔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따라가는데 갑자기 앞 사람이 지뢰를 밟아 쾅하고 터지면서 몇 사람이 죽습니다. 이 몇 사람이 죽은 덕택으로 자신은 살았다고 합니다. 앞에 행군하던 몇 사람이 지뢰를 밟은 결과로 뒤에 선 수백 명은 무사합니다. 자, 그러면 앞에 서서 가다가 지뢰를 밟아 죽은 자는 뒤에 살아남은 사람보다 죄가 더 많습니까? 아닙니다. 대표적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대표적인 하나님의 전주곡이며, 하나님의 시작이며, 마지막 통첩이란 말입니다. 이것을 신앙적인 측면에서 받아들이면 은혜요 은총입니다.
앞사람이 죽어서 뒷사람이 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인내가 있고, 용서가 있고, 자비한 은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오늘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한다고 말입니다. 죽은 몇 사람은, 모두가 당해야 할 일을 부분적으로 당한 것 뿐입니다. 내가 당해야 할 일을 저 사람이 당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건에 대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께서 "회개하라"하신 것은 마지막 통첩입니다. 작은 사고를 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도덕적으로 보고, 종교적으로 보고 생각해야 합니다. 무사하다고 계속 무사하면 아마도 버림받은 자가 될지도 모릅니다. 깜짝 놀랄 만한 사건이 계속 유발되고 있습니까?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계속 두드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계속 무엇인가 말씀하고 계신단 말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엄청난 사건은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축복이요, 은혜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6․25는 우리 부모들 세대에게 정말 비참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놀랍게도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인간적인 생각인지 모르지만, 만일에 6․25가 없었다면 한국을 세계에 이렇게 널리 알릴 수가 있었겠습니까? 세계 백과사전에 보면 한국에 대한 기록이 3페이지인데 비해 한국 전쟁에 대한 기록은 5페이지 입니다. 세계 사람의 눈으로 볼 때에는 한국은 없습니다. 한국 전쟁으로 말미암아 저들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또 만일 6․25가 없이 지금에 이르렀다면 지금의 한국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마 세계 어느 나라처럼 지금까지 내전에 휩싸여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분명히 6․25는 뼈아픈 것이었습니다만 그러나 이를 통하여 우리 민족에게 향하신, 아니 이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이걸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올해 우리나라는 두 번의 깜짝 놀랄만한 북한의 도발이 있었습니다.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정말 생각하면 북한이 괘씸합니다. 폭격기가 떴는데 그냥 완전히 해안 포대를 박살내버렸더라면.... 하는 분함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통하여 우리 사회에 안보불감증을 일깨워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전교조나 민주노동당, 저 친북세력의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인기 있는 법학 강사가 노골적으로 대통령을 욕하고, 저주하면서 북한을 편들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는 어린 학생들에게 천안함 사건이 남한의 조작극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교사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교사들이 얼마나 교단에 서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전쟁을 모르는 젊은이들은 전쟁을 일으키는 저 북한의 실체를 심각하게 보지 않습니다. 남한이 잘못하고 있다는 식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에도 그렇게 하는지....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이 주먹으로 얼굴을 한 방 때렸는데.... 내가 참아야 싸움이 안 되지.... 내가 참아야지.... 이러고 참습니까? 정말 그렇습니까? 민주노동당 강기갑.... 그는 국회에서 피터지게 싸웁니다. 별 것 아닌 것도 난리입니다. 그러면서도 북한에 대해서는 너무 너무 관대합니다. 우리가 잘못했다는 식입니다. 우리가 북한을 자극하지 않도록 포를 쏘지 않았어야 했다고 정부를 비난합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세력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세력들에게 천안함, 연평도 포격 사건은 북한에 대한 새로운 깨우침을 주는 뼈 아픈 교훈이 되겠죠. 뿐만 아니라 우리민족, 더 나아가 한국교회에 이번 사건은 하나님의 준엄한 메시지라고 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이 안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다 날라갈 수 있고, 폭탄 한 방에 다 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앙생활보다도 편안함, 안일함을 쫓는 지금의 모습에서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지난 여름철에 어떤 흑인 목사가 우리나라에 와서 이 민족이 회개치 않으면 이 땅에 전쟁이 터질 것이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의 소리를 예사로 들었죠.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전쟁이 일어나느냐.... 이러면서 그 사람 사이비다, 엉터리 목사다.... 그러면서 비난하는 글들이 인터넷에 올라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폭격을 가했습니다. 저는 연평도 폭격소식을 들으면서 “ 어 그 흑인 목사의 예언이 맞는 것 아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직도 회개하라고 기회를 주시는구나.... 하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사실은 천안함 46명, 연평도 폭격으로 4명... 이렇게 아깝게 죽은 그들이 우리 보다 더 죄가 있거나, 책임감이 많아서 죽은 것은 아닙니다. 아까운 죽음입니다. 그 죽음은 우리의 것이고, 우리가 감당해야 할 것인데 그들이 대표적으로 감당한 것이라고 저는 해석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아까운 죽음을 그냥 기억에서 지워버리면 안됩니다.
그런고로 회개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돌아가서 진실을 찾아야하고 사실을 믿어야 하고 겸손하게 주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지금은 말할 시간도 아니요, 비판할 시간도 아니요, 다만 들어야 할 시간입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어야 하는 시간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어찌하여 땅만 버리느냐" 더 이상 땅을 버릴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옴을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나를 위한 사건이요, 우리 모두를 위한 사건이요, 아니 미래를 위한 말씀이요, 은총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고난과 전쟁과 사건, 그 속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주의 음성을 듣고,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를 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 은혜와 사랑 그 앞에 바른 응답을 해야 하겠습니다. 라인홀드 니버는 말합니다. "불가능적인 가능성이 곧 사랑이다." "사랑은 정의를 통하여 실현되는 것이다." 즉, 의로운 하나님의 역사, 그 사건 안에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이 계시되고 있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바른 자세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듣고도 모르고, 보고도 모르고, 깨닫고도 바로 서지 않기에 오늘도 엄청난 사건을 통해서 계속 말씀하고 계시는 그 놀라운 은혜를 감사하옵나이다. 바라오니 우리에게 믿음의 귀를 주시옵고 신앙적인 안목을 주시사 우리에게 향한 이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 속에 있는 주의 음성을 바로 듣게 하여 주옵소서. 지금도 애타게 부르시는 주의 음성을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그리고 마음의 귀를 기울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바로 응답하는 중에 우리 앞에 당한 어려웠던 일들이, 아니 오늘 당하고 있는 어려운 일들이 분명히 은혜 아래 우리에게 향한 축복임을 간증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