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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마태복음 13:53-58/ 배척받으시는 예수 그리스도 [수요]
  • 조회 수: 504, 2013.11.19 19:41:38
  •   모든 사람은 고향이 있습니다. 누구나 고향에 대한 향수와 애착심이 있으며 그리워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고향을 찾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고향을 찾는 때는 어떤 때입니까? 명절이 되면 사람들은 고향을 찾습니다. 타지에 가서 고생한 끝에 큰 성공을 거둔 후 또는 성공의 꿈을 안고 서울에 왔는데 큰 실패를 하거나 몸에 병이 들었을 때 고향을 찾아보고 싶어 합니다. 고향은 영원히 그리운 곳이며 피곤한 인생의 안식처와 같습니다. 외국에 나가면 고향의 까마귀만 보아도 반갑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모두 고향을 그리워하였고 야곱의 경우는 그 유해를 고향땅 막벨라굴에 묻어 달라고 유언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어떤 시인은 내 고향 남쪽바다 라고 읊으며, 미국 흑인들도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오... 라고 노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그리워한 고향이 살만한 곳은 못 된다는 말과 같이 실제와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수가 많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위대한 분도 고향에서 배척을 당하셨던 일을 볼 때 우리는 아브라함이 육신의 본향이 아닌 더 나은 본향을 찾은 신앙적 자세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히 11:13에서 보면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잠시 머무는 나그네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더 나은 하늘에 있는 고향을 그리워했습니다. 이러한 그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 한 성을 마련해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이 찾은 더 나은 본향... 바로 오늘 우리들이 찾아가서 안식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그 곳은 어디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늘에 있는 본향이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이 참된 본향을 사모하시고 그 본향을 향해 나아가는 저와 성도 여러분이 됩시다.

       그런데 왜 예수님이 고향을 방문하셨을까요? 성경에 보면 고향으로 돌아가서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고향을 방문하신 목적은 가족을 찾아보는 것도, 동네 친구들에게 위로를 받기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고향 사람들을 사랑하는 방법이 일반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정말 고향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천국 복음을 가르쳐 주고자 하셨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자기를 배척하고 냉대하였던 고향 사람들이지만 진정으로 그들을 돕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한 번은 마12:46 이하에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님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찾아온 일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친과 형제들이 왔다고 전하자 예수님은 누가 나의 모친이며 내 동생이냐? 반문하시면서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혈육을 무시하신 것은 아닙니다. 혈육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혈육 자체가 예수님의 목표는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그분의 관심이 있었습니다.  

      인간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 마실 것이 필요합니다. 세상에서 잘 살아야 하고, 건강하게 살아야 하고, 성공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먹을 것과 입을 것 마실 것에 있지 않았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 사람의 영혼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육신이 아무리 잘 되어도 영혼이 잘 못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잘 입고,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이 우리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인생의 가치는 어디에 있겠습니까? 가난하고 억울하고 고통스럽고 힘들고 오해를 받는다 할지라도 인간답게 살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고, 영적으로 살 때, 인간의 진정한 보람과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고향에 가셔서 하신 일이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요6:36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였고  마4:4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이러한 주님의 마음을 모르고 그 분의 가르침에 대해 모멸에 가득 찬 주민들이 세 가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1.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54절) - 2.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55절) - 3.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56절) - 이 질문들은 모두가 불신에 가득 찬 질문입니다. 그들은 예수의 능력과 지혜와 권위를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고.... 이에 대해서 그들은 두 가지 불신적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1.배척하고....(57절) 2.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배척당하고 반대를 받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며, 특히 믿을 만한 사람, 가까운 사람에게 배척당하는 것은 더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특별히 자기를 이해하고 사랑해야 할 고향 사람들에게서, 또 가족들에게서 배척을 받았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왜 예수님이 고향에서 배척을 받으셨을까요? 그 이유는 54절에 있는데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예수님이 배척받은 이유는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그들이 받아드리기에는 너무나 지혜롭고 너무나 능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분의 가르침은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하늘의 지혜였고, 사람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지혜였습니다. 세상에서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하였던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의 해석을 들었습니다. 이때까지 그들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하였던 것들, 이때까지 죽어버린 모든 단어들을 예수님은 살아 있는 단어, 생명이 있는 단어로 만들었습니다. 이 놀라운 지혜와 영감의 말씀을 듣고 그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의 말씀의 지혜와 능력을 보고 감탄하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주님이 너무나 지혜롭고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질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지혜와 능력이 너무나 크시기 때문에 이 사람들의 마음이 질투로 변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보다 공부를 잘하고, 나보다 출세하고, 돈을 많이 벌면 우리는 축복하기보다는 그것을 인정하기 싫어하고, 심지어는 비판하고 정죄합니다. 이것이 엄밀하게 따지면 질투라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이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이유는 어설픈 지식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잘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고, 사실 그들은 예수님의 출신 내력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알기로는 예수님은 한낱 목수의 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목수’란 단어에 붙은 이 정관사의 역할은 명사의 내용을 특정하고 구체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므로 여기서의 의미는 아마도 나사렛의 유일하고도 대표적인 목수, 소문난 목수라는 식으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잘 알고 있는 목수이며, 또 그 신분과 지위가 별로 대단치 않고 그의 가족들인 모친 마리아를 위시한 형제와 자매들도 크게 색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며.... 이런 생각들이 그들에게 내려져야할 은혜가 내리지 못하게 된 이유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과 어렸을 때 같이 살았기 때문에 잘 안다고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설픈 지식입니다. 어떻게 보면 안다고는 하지만 예수님에 대해서 가장 무지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또 잘 안다고 하는 교만이 그들로 하여금 가장 무지하고 비참한 사람이 되게 한 것입니다.

       결국 질투와 잘 안다는 착각 때문에 그들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언제나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은 뛰어나고 똑똑해 보이지만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불행한 사람이요 불신앙적인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당시 속담을 인용하여 선지자가 다른 곳에서는 환영을 받지만 고향과 집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말씀을 들을 때 많은 사람들은 말씀의 신적인 기원보다 오히려 인간적인 배경, 즉 가문이나 학벌, 경력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디 출신인가, 나이는, 학위는... 그러나 이런 질문들은 은혜를 받는데 결코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결국 그래서 58절에 “저희가 믿지 않음을 인하여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하신 것처럼 주님은 떠나버리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신적인 축복을 인간적인 어슬픈 지식, 감정, 교만으로 인하여 차버리는.... 예수님의 고향사람들처럼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큰 은혜입니다.... 라는 겸손한 자세가 있을 때 하나님의 큰 복이 부어질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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