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상의 것으로 드리라 (레 23 : 9 - 14)
  • 조회 수: 220, 2013.01.24 11:07:54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
    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 갈 것이요 제
    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 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그 소제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이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를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
    로는 포도주 힌 사분 일을 쓸 것이며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
    져오는 그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이삭이든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평소 위궤양으로 고생하던 어느 집사님이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에 입
    원을 하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목사님께서 병문안을 오셔서 믿음으
    로 잘 이겨나가시라는 권면의 말씀과 함께 간절히 기도를 해주십니다.
    마음이 공허하고 우울해있던 차에 자신의 안타까운 처지를 깊이 이해해
    주시고 위로해주시는 목사님의 따듯한 사랑을 느끼는 순간, 뭉쿨하는 감
    동과 함께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아, 그동안 내가 너무나 바보
    같이 살아왔구나. 집사라고 하면서도 주님을 위해서 한 일이 도대체 무
    엇이 있단 말인가. 이제라도 다시 한번 건강을 회복시켜주시면 힘써 충
    성하며 살아야지.'라는 기특한 결심을 합니다.
    기도가 끝나고 목사님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인데 갑자
    기 그 병원의 병원장이 회진을 한다면서 담당 간호사를 대동하고 나타
    납니다. 그 병실로 들어오자마자 병세를 자세히 묻고 환자의 기록부를
    꼼꼼히 챙겨보던 병원장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옆에 있는 간호사를 다
    급하게 부르는 겁니다. "이 간호사! 지금 빨리 가서 장의사를 불러오시
    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장의사를 불러오라는 병원장의 말을 듣는 순간 집사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 시작합니다. "아니 장의사라니. 이게 무슨 해괴한 소리란 말인
    가? 오늘따라 병원장이 직접 들어오는 거부터가 수상쩍더니만. 내가 이
    제 곧 죽는다는 말인가! 늘 좋아질 거라는 말만 하더니 그게 다 나를
    안심시키려는 거짓말에 불과했구나.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병원장이 저렇게 성화를 부리는 것으로 봐서 이제 남아있는 시간도 얼
    마 없는 것 같으니 마지막이나 잘 정리해야지라는 생각에 목사님을 조
    용히 곁으로 부릅니다.
    "목사님!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종이에 받아 적어주십시오. 나 아
    무게 집사는 목사님 앞에서 2억 원을 교회건축헌금으로 드리기로 작정
    합니다. 그 동안 주님과 교회를 위해 아무 일도 못하고 가는 것이 부끄
    럽지만 부족하나마 제 정성을 기쁘게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2000년 7월
    2일 아무게 집사."
    서명을 하고난 후, 조금 있자니 한 사람이 헐레벌떡 나타나더니 "병원
    장님, 부르셨습니까?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하면서 들어오는데 보니
    자기 담당의사가 아닌가. "아니 장의사, 정신을 어디다 쓰고 다니는 거
    예요? 환자 기록부에 환자 상태를 자세히 써놓아야 다음 사람이 보고
    환자를 치료할 것 아니에요? 일을 이런 식으로 하면 어떻게 합니까? 이
    건 기본 상식 아닙니까? 안그래요?" "아! 예, 변명같습니다마는 그 환자
    의 상태가 좋아져서 오늘 오후에는 퇴원하기로 예정돼 있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적지를 않았습니다." 돌아가는 사정을 가만히 보니 병원장이 부
    른 것은 장의사는 장의사인데 시신을 다루는 장의사가 아니라 장씨 성
    을 가진 의사였던 것입니다. 사건의 전말을 이해하게 된 이 집사님의 얼
    굴이 비로소 환하게 펴지더니 목사님을 다시 부르는 겁니다. "죄송합니
    다만 목사님! 아직 제가 재산을 기부할 때가 아니었네요. 아까는 다급해
    서 그랬는데 제가 작정한 금액에서 동그라미를 2개만 빼주시겠어요?...."

    봉헌하는 일
    사람이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는 말이 꼭 이 경우가 아닌
    가 생각합니다. 다급한 일이 생기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치면 주님을
    위해서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하겠다 약속은 잘 하는데 모든 문제가 해
    결되고 편안해지면 내가 언제 약속을 했느냐는 듯이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사실 제대로
    헌금 드리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들도 헌금 때
    문에 한 두 번씩은 고민해 보셨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 자신도 그렇
    습니다. 특별한 경우나 절기 때가 되면 내가 얼마의 헌금을 어떻게 해야
    할까를 나름대로 고민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물질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에 얼마의 헌금을 드려야할지를 놓고 때로 망설이거나 주
    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 앞에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
    치네 하면서 큰소리 치지만 알고 보면 자신의 전 인격을 담아 드리는
    일이 그렇게 흔치 않다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마땅히 바칠 것을 바쳐야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때때로
    주님을 위해서 봉헌하는 일을 게을리 할 때가 있습니다. 인간인지라 예
    물을 드림에 앞서서 고민하는 일은 불가피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마는
    그러나 고민은 고민으로 끝나야지 의심이나 불신앙으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맥추(麥秋)절을 지
    키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절기를 어떻게 지켜야할 것인가를 상세하게 일
    러주고 계십니다. 어떤 분은 이런 말을 하실지도 몰라요. 아니 시대가
    어느 시대인대 농경시대에나 가능한 절기를 지키라고 하는가? 물론 시
    대가 크게 바뀌었기 때문에 맥추절이라는 의미가 선뜻 우리 가슴에 와
    닿지는 않을 거예요. 이 본문은 이스라엘의 농경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도시 생활을 하는 도시민들에게는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
    도 있습니다.
    지금이 어떤 시대입니까? 산업사회를 넘어서서 정보사회로 급변하는
    상황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맥추절기의 참된 의미를 정확히 알기는 어
    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맥추절이 지니고 있는 현대적인 의미와 정신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고 그 정신을 우리의 삶 속에 구현하며 사는 일은 가
    능하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이 본문 또한 주님께서 주신 말씀이기
    에 우리 시대와 동떨어진 말씀이라고 무시해버릴 것이 아니라 이 명령
    에 담겨진 주님의 뜻과 목적을 바로 이해하여 그대로 지켜나가는 자세
    가 필요한 줄 압니다.

                           먼저 주님의 소유권을 인정하시오

    주님은 맥추절을 대대로 지킬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시면
    서 먼저 처음 익은 열매를 내게로 가져오라고 분부하십니다. 처음 익은
    열매는 매우 귀한 것이라 남에게 주기가 아까운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
    의 경우 먼저 익은 것은 잘 다듬어서 시장에 내다 팔거나 수익의 일부
    로 삼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첫 열매를 가
    져오라고 하시면서 그것은 내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
    다.
    본문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
    을 제사장에게로 가져 갈 것이요"
    곡물을 거둘 때에 처음 난 열매를 거두어서 제사장에게 가져다주라고
    분부하십니다. 이 곡물이 어디서 얻어지고 있습니까? '내가 너희에게 주
    는 땅에 들어가서' 라고 말씀합니다. 열매가 맺어지려면 좋은 땅이 있어
    야 합니다. 열매보다는 열매를 맺게 하는 기름진 땅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 땅만 있으면 열매는 쉽게 열리게 됩니다. 땅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
    이시요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땅만이
    아니라 땅에 속한 모든 소산물은 그 원주인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생산자는 누구인가
    땅에서 나는 모든 소산물과 물질과 돈이 내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 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은
    물질보다 하나님을 더 우선하느냐 아니면 물질 외에는 내게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물질만이 내게 전부라는 사람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물질보다는 하나님이 먼저입니다. 이 물질의 원주인
    이 하나님이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하시는 분들은 헌금생활,
    봉사하는 일, 전도하는 일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임
    을 알 수 있습니다.
    언제나 이것이 분명해야 합니다. 내가 노력하고 땀흘려서 얻었다고 해
    서 여러분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땀흘리고 수고해서 열매를 거둘
    때까지 은혜주시고 역사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
    다. 그러므로 궁극적인 열매의 생산자와 공급자되시는 분은 사람이 아니
    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이 말씀은 밝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봉헌을 합니다마는 이 헌금을 드리는 행위는 하나님이
    뭔가 부족해서 그것을 채워드리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헌금을 드
    림으로써 우리는 물질보다 더 위대한 분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
    는 거예요. 잘 들으세요. 하나님보다 더 위대한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
    는 분은 결코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바르게 드리지를 못합니다. 모든 소
    유권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인정하는 자만이 아무리 값지고 귀한 것이라
    도 아낌없이 드릴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여기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
    요.

    또한 주님 앞에 물질을 드리는 일은 내 일생을 주님 앞에 맡깁니다
    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구별하여 주님께 드
    리오니 기쁘게 받아주시고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 물
    질을 사용하여 주옵소서. 이런 마음의 자세로 드리는 것이 바로 봉헌이
    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 14절입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
    식이든지 생이삭이든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주님 앞에 첫 이삭을 가져오기 전까지는 함부로 그 물질을 다루지 말
    라 그 말입니다. 주님 앞에 맥추절을 온전히 지키고 난 후라야 너희가
    얻은 열매와 수확을 나름대로 처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받
    으시기 전까지는 인간이 임의로 사사로이 사용하지 말 것을 분명히 명
    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린다면 하나님께서 그 물질을 통하여 먼저
    영광을 받으신 다음 인간이 그 물질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
    이 그 소유권을 주장하더라도 먼저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난 다
    음의 일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봉헌생활을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이 세상에서 나는 모든 만물이 주님의 것입니다. 내가 한달 동안 열심히
    일해서 번 모든 소득이 내가 잘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은혜주
    셔서 얻은 소득입니다 라는 고백과 함께 모든 물질을 주님의 뜻대로 사
    용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최상의 것을 구별하여 드립시다

    주님은 첫 이삭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첫 열매입니다. 성경 곳곳
    에는 하나님께서 어느 것을 가장 가치있게 보시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
    다. 곡식으로 말하자면 처음 난 곡식, 열매로 말하자면 처음 나무에 열
    린 열매, 짐승으로 말하자면 처음 난 새끼, 사람으로 말하자면 가장 처
    음 태어난 자녀, 등 항상 처음의 것은 소중합니다. 자녀들이 많아도 첫
    자식에 대해 부모가 가지는 애정이라는 것은 얼마나 각별한지 말할 수
    가 없습니다. 자기 기력의 시작인 첫 자식을 선물로 받았다는 의식 때문
    에 처음 것을 소중히 생각하고 처음 것이 잘되기를 늘 기도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맏물
    처음 것은 소중합니다. 주님은 시시한 것을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최고 최상의 것을 바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먹
    다 남은 찌꺼기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쓰다 남은 것이나 푼돈을 주님
    앞에 드리는 일은 바른 봉헌의 자세가 아닙니다. 무엇이나 사사로이 사
    용하기 전에 가장 처음 것을 먼저 주님 앞에 구별하여 바칠 때에 주님
    께서 가장 최고의 가치있는 예물로 받아주시고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잊
    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처음 월급을 받으면 어떻게 합니까? 제일 먼저 긴하게 쓸 곳이나 필
    요한 곳에 그 돈의 일부를 떼어놓을 것입니다. 빚을 갚는다든지, 월부금
    을 낸다든지, 공과금을 낸다든지, 지출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에 우선순
    위를 두고 하나하나 분할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보다 더 우선
    적으로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월급봉투를 받아들고 먼저 하나님 앞에
    이 물질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기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
    그 물질을 주님의 소유로 알고 주님 앞에 바쳐드리기 위해 하나님께 바
    쳐야 할 헌금을 일부 떼어내고 그 후에 자신과 가족을 위해 사용해야할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우선 순위만큼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마
    음자세가 있어야 물질생활이 반듯해지는 것이지 필요하다고 해서 내 멋
    대로 사용하고 남으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리는 것도 그래요. 자신을 위해 다 쓰고 나서 남
    은 것을 드리나요? 소득이 생겼을 때에 가장 귀한 부분을 떼서 용돈으
    로 드리지 않습니까? 일단 필요한 일에 쓰는 데까지 써보고 사정을 봐
    서 있으면 하고 없으면 안하고 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주님께서 요
    구하시는 것은 맏물이지 끝물이 아닙니다. 처음 생긴 열매, 처음 수확한
    곡식을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지 처음 난 좋은 것은 다 먹어치워 버
    리고 별로 좋지도 않은 끝물이 다된 찌꺼기를 받으실리 만무합니다. 우
    리가 주님 앞에 무언가를 바쳐드릴 때에 있는 것 중에 최고 최상의 것
    을 구별하여 드리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주님 앞에 최상의 것을 구별하
    여 바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큰복을 내려주실
    줄로 믿습니다. 잠언서 3 장 9, 10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네 재산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차며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하신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언제나 주님 앞에 가장 최상의 것을 바쳐 드리므로 늘
    여러분의 삶의 창고가 차고 새 포도즙이 넘쳐나는 상상할 수 없는 영육
    간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희생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주님 앞에 드릴 때에 헌신이 담겨야 합니다. 희생의 정신이 거기에 스
    며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본문 12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 년되고 흠 없는 숫양을 번제로 여호
    와께 드리고"
    맥추절기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첫 열매를 드리면서 같이 드려야 하
    는 것이 번제입니다. 물론 본문에는 번제만이 아니라 화목제나 소제도
    함께 드려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제사는 번제입니다. 번제(burnt offering)란 문자 그대로 태워서 바치는
    제사를 말합니다. 완전한 희생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헌신의 무게
    여러분이 매주 주님께 바치는 예물 속에 여러분의 희생이 얼마만큼
    녹아있습니까? 있는 가운데서 일부를 떼어서 헌금하는 정도입니까? 아
    니면 주님 앞에 드리면서 이것이 나의 전부입니다. 여기는 나의 희생이
    담겨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정성
    이 여기 녹아있습니다. 주님 기뻐받아 주시기 원합니다 라는 고백을 담
    아 드리고 있습니까? 헌금을 드리는 여러분의 무게가 어느 정도입니까?
    물질의 무게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에 담겨진 마음의 동기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드리는 여러분의 정성이 어느 정도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헌금을 드릴 때 물질의 무게나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희생, 헌신, 사랑의 무게가 더 크게 봉헌에 실려 있
    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님께 물질을 드리면서 때때로 잘못
    하는 것이 하나있습니다. 헌금을 통해서 하나님과 거래하려고 하는 것입
    니다. 내가 이만큼 헌금했으니 주님도 내게 그만큼 도와주시고 복 주시
    기를 원합니다라는 식의 잘못된 헌금생활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헌금생활을 안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돈놓
    고 돈먹기 식으로 주식 투자하듯이 주님의 마음을 사려고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주님을 속이려하지 마세요.

    어느 시골에 마음씨 좋은 농부가 있었다고 합니다. 자기 밭에 무우를
    심어 재배를 했는데 그 해에 너무 농사가 잘 되어 풍성한 수확을 거두
    었답니다. 너무 기쁘고 감사해서 처음 난 무 중 가장 크고 좋은 것을 골
    라 가지고 그 고을의 원님을 찾아갑니다. "원님의 선정 덕분에 이번 농
    사가 얼마나 잘 되었는지 모릅니다. 너무 감사해서 그러니 아무쪼록 기
    쁜 마음으로 이 무우를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원님이 자기를 칭찬하는
    말을 듣게 되자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신하에게 명령을 하기를 "여봐라,
    창고에 뭐 좋은 것이 없느냐?" "예, 살찐 소가 한 마리 있습니다" "그래
    당장 소를 저 사람에게 선물로 주어 보내도록 하여라"
    기껏 무우 하나를 갖다바치고 소를 한 마리 받아 돌아오게 되었으니
    얼마나 신이 나겠습니까? 온 동네방네를 다니며 자랑을 냅다 늘어놨더
    니 이웃에 살고 있는 부자 농부 하나가 은근히 배가 아파오기 시작합니
    다. 그가 속으로 생각하기를 '저치가 무우를 갖다 드리고 소를 한 마리
    받았다고 했겠다 그렇다면 소를 한 마리 갖다바치면 적어도 집이나 논
    밭 정도는 내려주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이 들어 정성스레 기른 소 한
    마리를 가지고 원님을 찾아갑니다. "저도 원님 덕분에 소를 잘 길러서
    부자가 되었으니 이 소를 원님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자 원님이 또
    신하에게 묻습니다 "여봐라, 창고에 뭐 좋은 것이 없느냐?" "아 예, 아
    까 어느 농부가 가져온 아주 탐스런 무우가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면
    그 무우를 저 사람에게 주어라" 그래서 무우를 들고 투덜거리며 돌아왔
    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과 헌금을 가지고 거래하려고 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복 주실
    자에게 반드시 복을 내리실 뿐이지 헌금을 많이 한다고 해서 마냥 복을
    주시거나 어떤 보상을 해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물론 헌금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마는 하나님 앞에 온 마
    음을 다해 바쳐드리는 우리의 자세가 먼저여야 한다는 밀입니다.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 먼저 드리고 겸손히 주님 앞에 감사하면서 주님을 위
    하여 살아가게 될 때 여러분의 물질 생활에도 복을 주시며 여러분의 영
    적인 생활에도 복을 주셔서 늘 주안에서 풍성한 삶의 꼴이 넘쳐나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오늘 맥추 감사절을 맞이하여 저희들이 주님 앞에 어떤
    자세로 물질을 드려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교훈을 받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동안 저희는 주님 앞에
    드린다고 하면서도 쓰다 남은 찌꺼기를 드릴 때가
    많았습니다. 형편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안 하는 안일한
    생활을 해 왔음을 주님 앞에 고백하오니 용서하여 주시고
    이제 이후로는 많던 적든 우리 마음 중심을 담고 희생과
    사랑과 정성을 담아 주님 앞에 온전한 예물을 드리게
    하옵소서.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복 받을 그릇만 준비하면
    우리 하나님께서 넘치는 복을 넉넉하게 내려 주실 것을
    믿사오니 늘 주안에서 물질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하거나
    핍절함이 없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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