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국에 들어 가려면(마18:1-7)
  • 조회 수: 183, 2013.05.24 07:33:26
  • 우리 믿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관심은 "어떻게 하면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을까?"에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답변을 찾는다면 주님이 유대인의 관원이었던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에서 찾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느니라" 이 말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 의해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의 관심은 "천국에서는 누가 가장 큰 자 입니까?" "천국에서는 누가 가장 훌륭한 잡니까?" 여기에 관심이 많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의 생각에는 천국은 자기들이 이미 들어가도록 되어 있으니, 이제 자기들의 관심은 천국에서 누가 제일 크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보면 하루는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이런 제자들의 질문을 들으신 주님은 '한 어린아이'를 불러서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계속해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우리는 오늘을 어린이 주일로 지키면서, "천국에 들어 가려면"이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자들의 관심은 "누가 천국에서 큰 자입니까?" 였는데, 주님은 그 질문에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먼저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부수적인 문제를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은 "바로 이런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먼저 말씀하시고 나서, 그 다음에 "바로 이런 자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자들의 관점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관점이 올바른 것이었습니다.

    우리들도 종종 제자들과 같은 관점에 관심을 더 가지는 때가 많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제쳐두고, 부수적인 데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말입니다. 주님의 대답을 통해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먼저 살펴보도록 하십시다.

    1) "천국에는 어떤 자가 들어 갈 수 있느냐?"하는 문제입니다. 아까 말씀드린대로 사도 요한의 기록에 의한다면 천국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 의해서 새로 거듭난 자 만이 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마태가 기록한 주님의 말씀은 두 가지를 천국에 들어가는 전제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1) 돌이키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기 위한 선행 조건이 바로 "돌이키는 일" 즉 "회개하는 일"이란 말입니다. 돌이키지 않는다면 어른은 결코 어린아이와 같은 특성을 가질 수 없고, 천국에도 들어 갈 수 없다고 하는 말입니다. 여기 "돌이켜"란 말은 헬라어로 "스트라페테"인데, "스스로 돌이키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제2 과거형으로 순간적이고, 결정적인 방향 전환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한낱 행동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가능한 '마음의 근본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참회와 중생을 이루는 전인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주님이 요한복음 3장에서 말씀하신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이나, 지금 마태복음 18장에서 말씀하시는 "사람이 돌이켜야만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은 같은 의미의 말씀인 것입니다. 결국에는 사람이 부패하고, 전적으로 타락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전인적으로 완전히 변화하지 아니하면 천국에 결단코 들어 갈 수 없다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2)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결코 들어 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 가지 못하리라." 여기서 "어린아이"란 천진함이나 순결함이나 믿음의 이상형으로가 아니라, 겸손의 이상형으로서 내세워 지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란 사회적 지위에 대한 무관심의 대표격으로서 내세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겸손한 마음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지 어린아이와 같은 유치함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어린아이의 겸손함이란 그가 본질상 연약하여 혼자 힘으로 살 수 없고, 부모의 품안에서만 평안할 수 있듯이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복하며, 그 분의 보호아래서만 살고자 하는 겸손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지나치게 과대 평가하거나 자기를 비하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부끄러움 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어린아이와 같다는 말은 다른 사람에 대한 의심이나 계산이 결코 존재하지 않는 순수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말씀의 가르침에 대해 단순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천국 시민의 모델은 바로 '어린아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이와같이 천국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스스로를 돌이켜서", "어린아이와 같이 된 자"라야 만이 들어 갈 수 있음을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분주하고, 살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이 두 가지 조건만은 분명히 해야만이 천국에 들어 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천국에서는 누가 큰 자냐?"라는 문제입니다. 주님은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고 나서 이제 누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4절에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이 말씀은 이사야 53:3-6절의 고난 받는 종의 노래를 연상케 하는 말씀입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여기 "자기를 낮춘다"는 말의 헬라어 동사 "타페이노오"는 단순한 의미의 겸손이 아니라, 온갖 멸시, 천대, 굴욕등을 당하면서도 겸손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천국 시민의 자격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실천함으로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온갖 수모와 멸시와 굴욕을 당하는 것까지도 기뻐하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에서 모욕과 조롱을 받고 저주의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길을 그대로 따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낮은 울타리'라는 기독교 문화 잡지가 있는데, 그 잡지의 1997년 11월호에 나와 있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작품을 남긴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생애는 그야말로 말할 수 없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열살도 되기도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를 키워 준 형은 자기가 먹여 살려야만 하는 동생을 몹시 미워하였습니다.

    그 후에 어른이 되어서도, 결혼한 지 13년만에 부인이 죽었고, 재혼을 한 그는 모두 20명 자녀들이 있었는데, 그 중 열 명은 어려서 죽었고, 한 명은 스무 살 즈음되어 죽었고, 한 명은 정신박약아였습니다. 나이가 많아지자 이 사람은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뇌출혈로 쓸어져 반신불수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계속 작곡을 하여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작곡한 칸타타나 오라토리오의 마지막 부분에 항상 S.D.G.(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라는 글자를 적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르간 연주만을 위한 작품들의 첫 부분에는 I.N.J(In Nomine Jesus: 예수 이름으로)라고 적어놓았다고 합니다.

    그가 바로 독실한 루터교 신자로서, 세계 역사상 교회 음악계의 작곡가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요한 세바스찬 바하'였습니다. 이처럼 극한 고난과 고통의 상황 속에서도 심오한 믿음과 찬양의 세계로 여행을 계속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바하 자신이 인생의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오히려 자기 안에 살아 계시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 분을 높이며, 찬양하려는 신실한, 겸손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온갖 고난과 역경과 어떤 수모 속에서도 하나님 만을 의지하며, 겸손하게 자신을 끝까지 낮추는 삶이 바로 천국에서 큰 자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루는 세베대의 아들들인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께 와서 절을 하면서 무엇을 구했습니다(마20:20이하). 예수님이 "무엇을 원하느냐?" 물으시니까 "이 나의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령해 주십시오!" 이 요청을 듣고,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이 때 저희가 대답합니다. "할 수 있나이다."

    주님이 말씀합니다.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들에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에 가서 큰 자가 되고 싶으십니까? 아니 이 땅에서 큰 자가 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낮아져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자기를 낮추지 않고는 절대로 큰 자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러시아에 덕과 의로써 나라를 다스리기로 이름난 황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바로 니콜라이 황제였는데, 그의 마음은 언제나 백성들에게 향해 있었고, 또한 그의 최대 관심사는 백성들의 생활에 있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황제가 평민으로 가장하여 거리로 시찰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처음 가보는 길이라 웬지 낯설게 느껴지던 차였는데, 때마침 갈림길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니콜라이 황제는 잠시 망설이다가 지나가던 군인에게 다가가서 길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군인이 어찌나 교만하게 굴던지, 괘씸하게 생각한 황제가 입을 열었습니다. "군인이신가 본데, 계급이 어떻게 되십 니까?" 그러자 그 군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신이 나서 "어디 자네가 한번 맞춰보지 그래?" 하며 거드름을 피우는 것이었습니다. 내심 아니꼬왔지마는 꾹 참고서 황제가 말했습니다. "상사이신가요?" "아니" "그럼 소위이신가 보군요?" "아니, 내가 그렇게 밖에 안보이나?" "중위이신가요?" "아니야." "그럼 혹시 대위이신가요?" "맞네. 내가 대위일세" 대위는 무슨 큰 벼슬이라도 한 듯이 미련하리 만치 나온 배를 앞으로 내밀며, 자랑스럽게 웃었습니다. 황제는 그 모습이 하도 우스워서 "아! 그러시군요?"하며 재빨리 뒤로 돌아서 길을 가려고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그런데 황제의 뒷모습을 보던 대위가 그 모습이 보통사람이 아닌 것 같아 보여서 그랬는지, 황제를 불러 세웠습니다. "저--- 혹시 자네도 군인인가?" "예" "계급이 뭔가?" "한번 맞춰 보세요?" "일등병?" "아닙니다." "그럼 상병?" "아닙니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대화는 대위 계급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황제가 대위도 아니라고 대답하자 갑자기 대위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그러면 소령이십니까?" "아닐세." 대위는 뜻밖에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되자 떨리는 목소리로 황제의 계급을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대위의 질문이 소장, 대장, 원수까지 이를 동안 황제는 "아니오"라는 대답만 거듭했습니다. 드디어 황제의 계급만이 남게 되었을 때, 대위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이 때 니콜라이 황제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습니다. "이보게, 대위, 계급이야 어떻든 우리는 다 마찬가질세. 대위든 황제든 다 같지 않은가? 자네나 나나 하나님 아래서는 다 똑같은 인간이 아닌가?">

    자기를 낮추는 자라야 사람들에게도 존경을 받고, 하나님께도 인정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장로교의 창시자였던 요한 칼빈은 말하기를 "하나님 앞에서는 나도 한 마리의 양에 불과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기독교 강요>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겨서 우리 개신교의 교리를 조직화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위대한 종교 개혁자였지마는, 그는 겸손하게 "나도 하나님 앞에서는 한 마리의 양일 뿐입니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였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될 때에, 다른 사람의 종처럼 다른 사람 앞에서 낮아져서 섬길 때에 하나님이 우리 자신을 높여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어스틴 충현장로 교회 주일 낮 설교/이인승 목사 2000년 5월 7일 No.7 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여기 '어린아이'란 3절 말씀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모든 신자"를 가리키므로, 본 절에서도 아이처럼 자신을 낮추고, 예수 자신의 삶의 모습 그대로를 닮아서 고난의 삶을 살아가는 예수의 제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위대하거나, 현명하거나 힘이 있어서 영접받는 것이 아니라, 다만 예수 이름으로 온 까닭에, 예수의 진리와 계시를 전하므로, 더욱이 예수에게 속한 자들이기 때문에 영접을 받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 '어린아이'란 말은 특별히 겸손한 몇 사람의 제자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워지는 예수의 모든 제자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국 본문 말씀은 다른 사람을 범죄케 하여 그 영혼을 파멸로 이끌므로 영원한 멸망의 자리에 떨어지는 것 보다, 차라리 육신의 구원을 포기하고, 영혼의 구원을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예수 믿는 소자 한 사람이라도 실족하게 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마10:42절에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말하는 "소자"란 비록 강력한 능력은 없다 할지라도, 예수께 대하여 변치 않는 온전한 믿음을 소유한 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많은 소자와 같은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소자 한 사람이라도 실족케 하는 일이 있다면, 그 사람은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이 말은 바다에 빠져 죽으라는 말이라기 보다도, 그만큼 소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며, 그들을 존경하고, 보살펴주고, 감싸주고, 영적으로 먹이라고 하는 진리인 줄로 믿습니다. 마태복음 25:31절 이하에 보면 주님이 앞으로 심판주로 오셔서 '양'은 그 오른 편에, '염소'는 그 왼 편에 두신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면 어떤 자를 오른 편에 두신다고 그랬습니까? 형제 중 한 사람이이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기도 하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도 하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혀 주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 보고,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는 자를 주님의 오른 편에 세워서 그를 '양'으로 인정하시고 그들을 창세로부터 예비된 아름다운 천국으로 인도하신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또 어떤 자를 왼편에 두신다고 그랬습니까? 형제 중 한 사람이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고, 목마를 때에 못 본채 하며, 마시게 하지 아니하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혀 주지 아니하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한 자들을 주님의 왼편에 세워서 '염소'로 간주하시고, 그들을 마귀와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 속에 던져 버리시겠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소자 한 사람에게 대접하는 것이 곧 주님에게 대접하는 것이요, 소자 한 사람에게 대접하지 아니하고, 그를 멸시하며, 구박하며, 무시하는 것이 곧 주님을 대접하지 아니하고, 구박하고 멸시하는 것과 같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약한 자, 가난한 자, 헐벗은 자, 갇힌 자들을 돌보며, 돌아보는 것이 곧 주님을 돌아보는 것이요, 그들을 창세로부터 예비된 천국으로 인도하시겠다고 하는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약한 자, 헐벗은 자, 가난한 자, 갇힌 자들을 돌보지 아니하고, 본채 만채하며, 그들을 멸시하였던 자들은 영영히 불타는 지옥 불 속에 반드시 던지시겠다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자란 누구인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돌이켜 회개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된 자라야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음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큰 자는 누구냐?는 질문에 대해서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며, 겸손한 자가 바로 천국에서 큰 자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으로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한 자를 영접하면 곧 주님을 영접하는 것임을 주님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주님이 직접 하신 말씀을 읽고 마치고자 합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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