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부, 그 아름다운 이름(엡5:22-33)
  • 조회 수: 53, 2013.05.25 16:53:07
  • 저는 이번에 G8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동안에 유럽 챔피언스 결승전이 열리고 있었고 각국의 정상들이 함께 모여 축구경기를 관람하고 있는 모습이 소개되었습니다. 저는 그 사진을 보면서 인간은 어쩔수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의 가장 높은지위에 있는 8사람이 함께 모여, 축구를 보면서 자신들이 지지하는 팀의 승패의 결과를 보면서 아쉬워하고, 또한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모든 인간존재의 한계’를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완전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연 세상에 완전함이란 있을수 있는가? 세상에 완전함은 젼혀 찾아볼수 없을 것입니다.

    어차피 세상의 모든 것은 불완전한것들이고, 한결같이 완전함을 추구하고자 할뿐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 때문에 낙심할필요가 없습니다. 도리어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실것이고, 우리로 참된 완전함으로 나아가게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곧 나의 부족함을 알고 완전하신 그리스도를 의지하면 "능치못할일이 없는"완전함으로 나아갈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18:13에 보면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여호와앞에서 완전하라”

    과연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앞에서 완전할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할수 없는 일을 명령하시지는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안에 완전함의 근거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안에 완전함의 근거가 있습니다.

    바로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우리안에 완전하신 예수그리스도로 채워갈수 있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안전함으로 나아갈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병 하나가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 병에는 물이 5/1이 담겨 있습니다.

    나머지 5/4는 불완전함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나머지 4를 채우면 병은 물로 가득하게 되고 완전함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인간존재는 각각 자신을 병으로 상상해 볼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5/1로, 어떤 사람은 유능해서 5/3으로 채울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 이 두사람에게 각각 그리스도가 부어졌습니다.

    그때 누가 더 유능한 사람, 더 완전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바로 5/1에 해당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는 다행이 유능하지 못한것에 대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그 부족한 부분을 그리스도로 채울때 우리는 진정한 완전함으로 나아갈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왜 완전함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까?

    바로 오늘이 부부주일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완전함 가운데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이 바로 부부관계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왜 부부관계에 완전함을 추구해야 합니까?

    그것은 바로 세상의 모든 기초가 부부관계에서 시작되고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부부관계가 왜 중요합니까?

    그것은 바로 부부관계가 하나님나라의 기초가 되고, 교회의 근본이 되며, 나아가서는 우리사회의 기본이 되기 때문입니다.

    곧 모든 조직과 구조의 기초는 부부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관계가 좋아지면 가정이 좋아지고, 가정이 좋아지면 사회가 좋아지고, 사회가 좋아지면 세상이 좋아지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원리에서 바울사도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부부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곧 다른 어떤것보다도 부부관계만큼은 틀림없이 완전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엡5장의 부부의 윤리를 아름답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사도가 본문에서 부부관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설명하기 위하여 교회의 신비를 끄집고 들어옵니다.


    곧 교회는 너무나 신비롭고 숭고한 관계로 형성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무엇입니까?

    머리는 그리스도, 몸은 성도들로 조합된 신기한 공동체가 바로 교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신비를 무엇으로 설명할수 있습니까?

    바울사도는 이러한 교회의 신비로운 존재를 설명하면서, 이 신비로운 조합이 바로 부부조합의 닮은꼴이 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부부는 한 남자와 여자로 구성된 관계이상의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 적어도 둘이 한몸을 이룬존재,

    - 그러면서도 몸을 위해서 존재하는 머리, 머리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몸의 구조

    이것이 바로 부부조합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창세때 이러한 조합으로 부부를 만들어 놓으셨는데, 세상에 죄가 들어온후로는 이러한 부부의 조합이 깨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세속적인 원리로는 부부를 짝정도로 생각하게 되고,

    - 부부는 100년해로를 해야할 관계정도로 이해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훨씬더 부부의 관계를 숭고하고 신비롭게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적어도 부부조합은 짝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한몸으로의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부부가 한몸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단지 결혼언약만을 가지고는 안될 것입니다.

    도리어 부단한 노력과 수고를 통해서 부부조합을 완성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부부조합의 롤모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완전한 부부조함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남편상)

    바울사도는 본문에서 완전한 남편상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라고 뭍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사랑해서 “자신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25절 말씀이 선포됩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26/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자기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것이나 이런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을 읽어보면 단순히 자신을 주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자신을 비우고 드려 교회를 영광스러운 존재로 만들고 계시는 주님의 모습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비우고 헐어서, 교회를 세상에서 가장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존재로 만들어 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얼마나 찬란한 존재인지 아십니까?

    교회는 ‘하나님께서 ①죄와 허물로 더러워진 영혼들을 골라내셔서 ②천상의 지존자이신 아들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그들의 죄를 씻으셨고, ③부활생명을 담으셔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을 덧입히신 존재가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주님이 자신을 희생해서 이렇게 교회를 세우시고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말합니다.

    이것이 지상에 있는 모든 남편들이 아내들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 루이빗동 한정판 헨드백 하나 사주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 어제 텔레비전 보니가 노라노 양장점을 세우신 분이 노라노여사이든만요.

    국내 최초의 패션디자이너, 국내 최초의 해외유학 디자이너, 국내 최초로 패션쇼를 연 디자이너…. 패션디자이너 노라노씨(84)가 의상실 문을 연 지 60년을 기념해 23일부터 6월2일까지 ‘장밋빛 인생’이라는 이름의 전시회를 열고 있다고 합니다. 윤복히씨가 입은 미니스커트로 부터 시작해서 그분은 한국 패션계의 거장이었다고 합니다.

    노라노의상실에 가서 아내 옷한벌 해주었다고 남편 사명을 다한 것입니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남편들은 자기를 희생해서 아내를 빛나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영광스럽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교회사랑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남편의 사랑은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느마을에 부부 금실이 좋기로 유명한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서로를 위해 주며 아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암에 걸려 병원치료를 다니면서부터 할머니를 구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약 가져와라."

    "여기요."

    "물은?"

    "여기요."

    "아니 , 뜨거운 물로 어떻게 약을 먹어?'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물컵을 엎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할머니가 다시 물을 떠 왔더니,

    "아니 그렇다고 찬물을 가져오면 어떡해?'

    하면서 물을 또 엎었다.

    하루는 손님이 왔는데,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먹을거 빨리 안 챙겨온다고 소리를 질러댓습니다.

    이에 할머니가 '당신이 하도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저도 지금 정신이 벙벙해서 그만 ..."

    이에 할아버지는 "이기 , 어디서 말대답이고?'라고 했고,

    할머니는 "손님들 계신데 너무 하시네요”.

    할머니는 결국 눈물을 훔치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보다 못한 손님 중의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어르신네, 왜 그렇게 사모님을 못살게 구세요"

    그러자 한참동안 아무 말도 안 하던 할아버지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저 할망구가 마음이 여려서 나죽고 나면 어떻게 살지 걱정이 돼서‥‥‥ " 할아버지의 눈엔 어느새 눈물이 가득 고였다.

    사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죽기전에 어린 할머니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었습니다.


     

    남편의 아내의 사랑을 ‘그저 잘해주는 것’이라는 수준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 왜 성도들의 삶에 고난을 주십니까?

    더 큰 영광을 바라보게 하시려는 섭리가 담겨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옛날 페르시아에 사이러스(Cyrus) 왕이 전쟁 중에 적국 왕자와 그 부인과 아이들을 생포해 왔습니다. 사이러스는 그들을 죽이기 전에 물었습니다.

    ‘만일에 내가 왕자인 당신을 살려주면 어떻게 하겠느냐?’

    ‘내가 가진 재산의 절반을 주겠습니다’

    ‘당신의 아이들을 놓아주면 어떻게 하겠느냐?’

    ‘재산 전부를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당신의 아내를 놓아주면 어떻게 하겠느냐?’

    ‘내 생명을 드리겠습니다’

    왕은 깜짝 놀라서 말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사랑의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왕은 이 말 한 마디에 감동이 되어 그들을 다 풀어주었습니다.

    그 날 밤늦게 집에 돌아온 왕자는 살아서 돌아온 것이 너무나 기뻐서 축하파티를 열었습니다.

    그리고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록 사이러스 왕이 적국의 왕이지만 참 훌륭한 분이더군요. 내가 보니 정말 잘 생긴 미남이더군. 의젓하고 늠름하고, 장수답고, 사나이답더군’

    이렇게 말하면서 자기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그 아내의 대답이 더욱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보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분이 어떻게 생겼는 지 기억하지 못 합니다 단지 나를 위해서 대신 죽겠다고 늠름하게 말하는 한 남자의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동안에 다른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내를 위한 순교자의 모습이 바로 진정한 남편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아내상)

    본문에서는 또하나의 완전함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내의 완전함입니다.

    우리는 좋은 아내 상을 늘 미모, 능력, 지혜로운, 매너좋음같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성경에서 말하는 아내의 완전성은 “순종”에 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본문에 보면 “22/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23/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의 뜻은 모든 그리스도인 아내들은 자신의 완전함을 순종에서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 순종의 모델은 교회입니다.

    곧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들은, 목사님! 무슨 먼지 가득한 구식윤리를 주장하십니까?라고 뭍고자 하실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세월이 흘러 퇴색되는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도리어 모든 시대를 이끌어가는 찬란한 빛이 성경입니다.


    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까?

    그것은 교회의 본질때문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고, 성도들은 몸이되는 것입니다.

    머리에게 순종하지 않는 몸을 보셨습니까?

    그런 몸은 중풍병에 걸린 몸일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몸은 머리의 지시에 온전히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은 그냥 가정이 아닙니다.

    작은 교회들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작은 교회가 되려면 하나님이 세우신 남편의 권위앞에서 아내는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내의 완전성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바로 남편에 대한 순종여부에 있고, 순종의 수준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부의 완전함

    부부의 완전함은 한몸을 이루는데 있습니다.

    한몸을 이루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남편이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할뿐아니라, 자신을 비워 아내를 채우는 헌신으로 그낭하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자신이 남편의 지체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남편의 의지와 뜻을 수용하고 함께해 주는 것이 참된 순종이 되어지고,

    이러한 부부의 관계가 한몸으로써의 부부의 완전성을 보여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투르니에는 스위스의 내과 의사이자 정신의학자이며 유명한 저술가입니다. 그의 아내는 금실 좋은 남편과 아내로 소문났는데 한번은 그리스에 휴가를 갔다가 아내가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죽기 직전에 아내는 평화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남편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숨을 거두기 전, 그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오늘 천국에 도착하면 먼저 가 계신 시부모님을 만나 정말 즐거운 것 같아요".

    그 말에 그의 남편 투루니에 박사가 굉장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내가 죽음을 마치 기차를 타고 제네바에 다시 돌아가는 것처럼, 사랑하는 가족을 재회하는 것처럼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내를 보낸 후 그의 믿음은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에 대한 믿음이 강해질수록 그의 근심과 걱정으로부터 해방되는 놀라운 자유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아내와 육체적으로만 결혼한 부부였던 것이 아니라 아내의 소망과 믿음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항상 부인의 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니는 남자가 있었다.

    그런 남편이 너무 고마워 아내는 남편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부인 : 당신은 왜 항상 내 사진을 지갑 속에 넣고 다녀요?

    남편 : 아무리 골치 아픈 것이 있어도 당신 사진을 보면 씻은 듯이 잊게 되거든….

    부인 : 당신에게 내가 그렇게 당신에게 소중하고 강력한 존재였어요?

    남편 : 그럼, 당신 사진을 볼 때마다 내 자신에게 이렇게 얘기하거든.

    “이것보다 더 큰 문제가 어디 있을까?”


     

     

    부부란 평생을 함께 살면서 5단계 변화를 겪는다고 합니다.

    - 처음에는 ‘좋아서 산다’는 것입니다.

    - 그 다음에는 ‘어쩔 수 없어서 산다’는 것입니다.

    - 그 다음에는 ‘서로가 필요해서 산다’는 것입니다.

    - 그 다음에는 ‘서로가 불쌍해서 산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서로를 묻어 주려고 산다’는 것입니다.


     

     

    남녀간의 사랑은 5단계로 익어간다고 합니다.

    - 처음에는 황홀의 단계로 결혼생활을 시작합니다.

    - 조금 살다 보면 단점이 드러나 실망의 단계를 겪게 되고,

    - 아이를 낳고 살면서는 포기의 단계로 접어든다고 합니다.

    - 그리고 미운 정 고운 정 다 드는 단계로 들어갑니다.

    - 늙으면 등을 긁어줄 사람이 없어서 사는 단계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혼을 합의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연애하고 결혼해 오랫동안 함께 살면서 서로 사랑했고 보람도 행복도 느꼈습니다.

    하지만 뚜렷한 성격차이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에게는 자녀가 11명 있었습니다.

    이혼은 합의했지만 서로 자녀를 더 많이 데리고 살고 싶어했습니다.

    양보가 없었습니다.

    공평하게 하자며 자녀를 절반씩 나누려니, 한 명이 남습니다.

    이 한 명을 놓고 옥신각신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부부는 랍비를 찾아갔습니다.

    고민을 거듭하던 랍비가 판결을 내렸습니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 아이를 하나 더 낳아라. 그런 다음 각각 6명의 아이를 나눠가져라.”

    부부는 랍비의 말을 따랐고 부인은 임신해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쌍둥이를 낳은 것입니다.

    자녀수가 다시 홀수가 된 것입니다.

    부부는 새 생명을 둘이나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함께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았습니다.


     

    부부의 삶은, 결혼전까지 각자 써온 단행본이라면 결혼은 수정판이 아니라 합본으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부부들이 결혼후에는 개정판으로 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싸움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저 결혼생활은 합본으로 나아가서는 것이다라고 생각해야 옳습니다.

     

     

    부부는 3단계로 진행된다는 우스개소리가 있습니다.

    제1기 :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 [사생사사]

    제2기 : 경제문제에 민감해지는 [돈생돈사]

    제3기 : 살아온 정으로 사는 [정생정사]...


    5월 21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둘(2)이 하나(1)되어 행복한 가정을 만들자는 뜻에서 21일을 부부의 날로 정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에서 부부의 조합이 완전함을 추구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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