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 부활, 나의 부활(막16:1-11)
  • 조회 수: 157, 2013.02.08 20:46:08
  • 오늘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주일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넘치시길 기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 는 놀라운 소식을 마리아로부터 들었습니 다.

    "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의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고하매"(막16:10)

    그들은 처음에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예수님의 부활을 전혀 믿지 못했 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생전에 부활에 대하여 증거 하셨지만 그들은 전혀 예수님의 말씀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죽은 자가 스스로 다시 살아났다. 그것도 장사된지 3일 만에 일어났다는 것은 그들에 게 도무지 믿기지
    않던 사실이었던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제자들이 의심을 한 것도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들은
    아직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했고, 두 눈으로 확인하 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부활의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복음서는 분명히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을 우리에게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활신앙 은 부활의
    소식을 듣고 부활의 주님을 믿고,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로 이뤄진 것입니다. 예수 께서 죽은 자를 세 사람을
    살리신 일이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께서 죽 음의 권세를 정복할 수 있는 능력의
    주님이심을 헤아릴 수 있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물리치셨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죽지 않을 사람은 한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는 그 누구도 차별이 있 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죽음은 공평합니다. 부자나 가난한자나 권력이 있든 없든 누구나 죽게 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스스로 죽음이라는 것에서부터 일어나셨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꺽어버리 신 것입니다.
    인간이 왜 죽게 되었습니까? 인간이 범죄함으로 사망이 인간에게 이른 것입니 다. 인간 세상에 오신 주님은
    인간의 죽음을 체험하십니다.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로 올 리우신 것이 아니라(에녹,엘리야 처럼) 가장
    비참하고 처절한 십자가의 죽음을 몸소 맛보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죽음이 예수님을
    끝까지 가두어 두지 못했습니 다. 죽음의 자리를 털고 일어서셔서 부활의 몸을 입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정복하신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6)"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 "(요11:25-26)

    주님은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죽어버리고 말면 그것은 생명이 아닙니다. 생명은 살아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주님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믿는자에게 죽음이란 멸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영원한 생 명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부활로 이어지는 관문인 것입니다.

    잠깐 가사 상태에 있다가 살아난 사람들 6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공통점이 있습 니다. 사람이 죽을
    때에는 마치 고무풍선이 '펑' 하고 터지는 것처럼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자기 영혼이 그 육신과 분리되는
    것을 경험한답니다. 그리고 자기가 자기 몸을 내려가 보면 서 옆의 사람들이 우는 것도 보고, 이야기도 다
    듣고 하면서 이상하게도 자기는 저들에게 말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육신을 떠나는 순간이
    바로 죽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탄생이
    신비라면 죽음도 신비로운 것입니다. 믿는자는 죽으면 그 영혼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육신은
    부활의 날까지 잠자는 것입니다. 부활의 날이 되면 분명히 주님 께서 그리하셨던 것처럼 우리들도 몸과
    영혼이 하나가 되어 부활하신 주님과 같이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될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이러한 놀라운
    부활의 신비로움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께서 말로만 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친히 다시
    사심으로써 증거하신 것입 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예수부활, 나의 부활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다고 했습니다. 첫 열매가
    맺히고 나면 다른 열매들이 첫 열매와 똑같이 맺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이며 부활하신 것은 우리가 새로운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부활의 표본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음을 극복하셨기 때문에 주님과 하나된 우리들도
    죽음을 극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이신 주께서 내 안에 거하심으로 우리는 죽지만 영원히 죽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 의 부활에 참예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우리에게 있어서 사망이라는 것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 다. 우리는 항상
    주님 앞에 갈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언제 주께서 부르시더라도 기쁘게 응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죽음이 싫어서 발버둥치고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못내 아쉬워하며 안타까와 하는 것은
    부활신앙을 가진자의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떠나 주님과 함께 거하고 싶은 소망이 있지만 아직도 세상에서 주님의 일이 많 이 있기 때문에
    그 사명을 완수 하기 위해서 사노라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너무나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세계가 없고
    주께서 우리에게 주실 상급이 없으며 내세의 영원한 영광이 없다면 우리는 결 국 헛수고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기독교는 현세 지향적인 종교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계에 발 붙이고 사는 것도 영 원한 영광을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내세 지향적인 신앙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현실 감각 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요즘에는 지나친 인간 중심적인 사고가 신앙에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오늘은 바로
    영원한 미래에 대한 소망에 의해서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무엇을 해야하고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장차 내 가 주 앞에 섰을 때 주님께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 ? 하는 문제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 다 이루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구속이라는 미래를 내가
    보았습니다.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랬기에 십자가의 고통도 감수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세상
    사는 것만 전부라면 그것으로 딸랑 끝이 나고 말 인생이라면 신앙생활 할 필요가 무엇입니까? 과연
    그렇다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거짓이요, 일종의 사 기일 것입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
    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 라
    "(고전15:15)

    믿지 않아도 잘 사는 사람들도 많지 않습니까? 적당히 살다가 죽으면 그만인데 선을 행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고전15:32)

    저는 예수님의 부활을 생각하면 즐겁습니다. 마음속에 기쁨이 넘칩니다. 부활하신 주님처럼 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환상적입니까? 공간을 초월하시는 주님의 모습, 영광의 광채 로 빛나는 모습,
    영원히 죽지 않고 천국에서 살 수 있는 새로운 존재를 생각하면 기쁘기 한 량이 없는 것입니다.

    연못 속에 애벌레들이 많이 사는데 물 위의 연꽃 줄기를 타고 위로 올라간 친구들이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궁금해하던 애벌레들은 약속을 합니다.

    " 다음번에 올라가는 애벌레는 다시 연못 속으로 돌아와 바깥세상 이야기를 해야한다" 고 말입니다.

    얼마 후 한 애벌레가 연꽃 줄기로 올라가서 번데기를 벗고서 잠자리로 변했습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니 그
    세상은 완전히 딴 세상이었습니다. 너무나 황홀하고 기뻐서 이리저리 날아 다니다. 나중에 친구들과의
    약속이 생각이 났습니다. 잠자리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무 리 연못 속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다신 그 애벌레들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 니다. 그는 연못 위를 날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저 연못
    속의 애벌레들은 잘 모를 것 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3.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는 길이 열렸고 ,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사시지 못하셨다면 우리는 아직도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고전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

    예수께서 죄의 짐을 지시고 죽으셨고 죄와 죽음을 이기시고 죽음에서 일어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로서 모든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게 된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도 죄에 대해서 죽고 주님과
    함께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의 구속사업이 완성이 된 것입니다.

    용서받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령께서 오셔서 우릴 새롭게 하시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주님의 생명이 나의 생명이 된 것입니 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부활로 증거 하십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스스로 일어나심으로 예수님은 바로 우 리의 하나님
    되심을 증거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증거 하십 니다. 우리가 주안에서
    영원히 살수 있는 영생을 얻었다는 것을 증거 하신 것입니다.

    어떤 회교도가 기독교인에게 자랑하기를 "예루살렘의 예수의 무덤에 가보면 예수의 시신 이 없지만 우리는
    메카에 마호멧의 시신이 안치된 묘지를 갖고 있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인은 겸손하게

    " 예 , 바로 그 점이 서로 다릅니다. 마호멧은 죽은 시신으로 썩었지만 예수님은 죽었다가 부활
    승천하셨으므로 빈 무덤 뿐 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바로 생명 의 종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빈 무덤입니다. 빈 무덤은 바로 우리들의 자랑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시고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는 다시 사신 구세주이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과 구원이 있습니다. 영광 의 부활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온전한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부활의
    신앙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진수인 것입니다. 부활의 신앙이 있는 자는 결코 낙심하거나 좌절치 않고
    죽음이 온다 할지라도 그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세에 대한 확실한 소망과 믿음을 가짐으로
    오늘의 삶이 새로워지고 값진 것이 되는 것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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