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산케 하시는 하나님(사66:7-9)
  • 조회 수: 232, 2013.04.11 06:50:29
  • 저는 이 주일 아침에 우리 성도들과 함께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태신자를 초청하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미 우리는 지난 3월 12일 주일에 작정하여 이방인을 제물로 우리 하나님께 봉헌한바 있습니다. 

    이 태신자 전도 초청 예배는 우리 대선교회에 뿌리 내여야 할 전도 운동입니다. 그러면 태신자 초청운동이란 무엇인가? "태신자"란 말은 "작정된 전도 대상자"라는 말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마28:19~20)고 분부하셨는데 이 말씀 속에는 그런 의미도 있습니다. 이는 마치 어머니가 10개월 동안 아기를 뱃속에 간직했다가 출산하는 기쁨을 맛보는 것과 같습니다. 한 사람의 성도가 구원을 목적으로 불신자 몇 사람을 작정하여 일정 기간동안 그 영혼을 품고 기도하면서 초청하여 결신 시키고 영적 출산케 하는 전도 운동입니다. 이것을 목회적 측면에서 태신자 운동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태신자 전도운동의 기본 원리는 무엇인가?

     첫째, 관계성을 중요시하면서 전도하는 전도 운동입니다. 
     대부분 전도하려고 할 때에 우리 앞을 가로막는 것은 방법과 기술, 재주, 유창한 언어 등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태신자 초청 예배는 관계성을 중요시하는 전도 운동입니다.  오늘날처럼 조직화, 전문화, 개인화 되어 가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전도자가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태신자가 될 사람과의 적절한 관계를 갔는 것입니다. 이 관계성은 태신자가 결신 할 때까지 토양을 준비하는 작업입니다. 주님도 씨 뿌리는 비유를 하시면서 아무리 좋은 씨로되 길바닥에 떨어진다든지, 가시넝쿨에 떨어지면 결실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오직 옥토에 떨어진 씨앗이라야 30배, 60배, 100배로 결실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옥토화 하는 비결이 관계성입니다.  

     둘째, 태신자 전도운동은 일시적, 일회성 행사가 아닙니다.
     태신자 전도운동은 목회 그 자체로서 연중 지속적이고 계속적입니다. 태신자 전도운동은 목회자가 매일 새벽기도를 하듯이, 매주 설교를 준비하여 설교하듯이 지속적인 운동이요, 목회입니다. 한번 초청에 실패하였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번 6월 25일에 또 초청하십시오! 지난번에 저도 작정하고 초청을 하였는데 꼭 오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막상 그 날이 되어서는 "집안에 환갑잔치가 있어서 못 가겠다."고 말합니다. 참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합니까? 미안해하면서 다음엔 꼭 가겠다고 해서 그럼 다음에는 꼭 오시라고 하였습니다. 지속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셋째, 태신자를 초청하기 위한 운동은 태신자도 중요하지만 태신자를 출산할 작정자          의 건강을 위함입니다.
     태아는 어머니의 탯줄을 통해서만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으며 성장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태아에게 더 귀중한 존재입니다. 어머니가 허약하면 출산하기 전에 산모의 생명이 위험하게 될 것입니다. 태아보다 먼저 더 많은 영양을 공급받아야 할 사람이 어머니입니다. 대체로 우리가 실수하기 쉬운 것은 태신자에게만 관심을 치중하다가 산모인 자신의 신앙의 건강을 소홀히 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신자를 초청하고 전도하려는 사람은 자신이 성령 충만하고 쉬지 않고 기도와 말씀을 공급받음과 삶의 아름다운 성숙으로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아야 합니다. 어머니의 심정! 즉 우리 주님의 심정을 소유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을 무장해야 합니다. 앞으로 36일 남은 기간 동안에 작정자들인 여러분의 영성 함양을 위해 모든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건강한 산모가 건강한 아이를 해산 할 수 있다는 것은 영적인 원리에서도 소홀히 여길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태신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삶을 바로 한다면 여러분의 신앙이 건강해 질 것이며, 설사 태신자가 초청에 응하진 않았을지라도 하나님은 순종하는 여러분의 중심을 보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대선의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생명과 생명이 만나서 하나의 귀한 새 생명을 탄생하게 하는 생육과 번성의 축복(창1:27,28)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여인들에게 있어서 아기를 잉태한 이후의 과정과 그 해산의 수고는 큽니다. 해산의 날을 기다리는 잉태한 여인은 긴장감과 기대감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내게 되는 것입니다. 해산하게 될지! 아니면 난산하게 될지, 아니면 유산하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의지해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임산케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은 해산케도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9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임산케 하였은즉 해산케 아니하겠느냐 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해산케 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태신자를 작정해서 마음에 품게 하신 이도 하나님이시며, 태신자를 예수 믿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해산케 하실 분도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임산한 여인의 바람이 있다면 무사히 순산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무조건 제왕 절개 수술을 많이 선호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할 수 있는 대로 자연 분만을 유도한다고 합니다. 생명을 받는다는 것은 기적이요, 잊을 수 없는 감동이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입니다. 그런 귀한 축복을 쉽게 받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통 속에 분만한 자식이 더 사랑스럽고 산모와 태아의 출산과정의 그 스킨십이 온전한 인격자로 성장과정에서 중요한 영양을 준다는 학계의 발표가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대상자를 믿음으로 작정하는 일은 잉태와 같습니다. 우리의 믿음 속에 이미 신자로서 누군가 잉태한 것입니다. 태신자를 갖고 태신자를 출산하는 일,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사명인 것입니다. 이것은 어쩌면 여인이 임신하고 해산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인지 모릅니다. 해산 할 때에 산모가 피를 흘리는 것처럼 그런 수고가 반드시 따라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새생명의 기쁨을 얻을 수 없습니다. 희생과 수고 뒤에 기쁨의 열매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잠깐 입으로 먹고 뒤로 배설되어 없어지는 곡식을 추수해도 그 기쁨이 말할 수 없거늘, 지옥 갈 영혼을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새생명을 출산하는 기쁨이 얼마나 놀라운 것이겠습니까? 시126:5,6에 "눈물을 흘리면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시인은 말씀했습니다. 기쁨의 단을 거두기 위해 따라 오는 것이 눈물이며, 희생입니다. 나의 구원을 위해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돌아가신 주님을 위해서, 우리도 눈물을 드리고 희생을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고하는 선지자들의 선포이면서 회복의 약속입니다. 북 이스라엘은 B. C 722년에 앗수르에 멸망하였고, 남유다는 B. C 586년에 바벨론에 멸망당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정처가 없는 서글픈 종살이70년을 하였습니다.  나라들이 멸망 직전, 즉 웃시야가 죽던 해(사6:1, B. C 739년)부터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므낫세 왕 시대) 므낫세 왕에게 처형당할 때까지(B. C 680년), 약 60여년 동안 사역한 선지자가 이사야입니다. 이사야는 나라가 바벨론에 멸망 받을 것을 예언하였고 그 나라가 고레스라고 하는 왕을 통해서 다시 회복되리라는 예언을(사45:1) 하였고, 에레미야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 70년만에 다시 귀환하게 되리라는 예언을 하였습니다.(렘29:10) 결국 예언대로 200년 뒤에 유다는 바벨론에서 돌아 왔고 나라는 회복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은 거의 불가능한일이었습니다. 그런데 70년만에 나라를 되찾은 것입니다. 이방 왕을 통해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도록 하셨고, 여호와께 예배하는 일이 다시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버렸다고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17)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오고 너를 헐며 너를 황폐케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사49:14-17)라고 하시면서 그들을 반드시 예루살렘 도성으로 다시 데리고 오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200년 뒤에 고레스라는 사람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3차에 걸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 와 예루살렘 성전을 봉헌하고 성곽을 재건하고 제사제도와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기적이었습니다. 아무도 믿을 수 없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되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다 그대로 됩니다. 비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다시 위로 올라가지 못함같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그대로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70년만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하는 푸른 꿈을 임산케하셨습니다. 그 일에 고레스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찾으시는데 반드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고레스를 사용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영생 주시기로 작정 된 태신자를 사람인 여러분을 통해서 찾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70년이 되니 해산케 하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해산하는 자..."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스룹바벨이 데리고 왔습니다. 에스라, 학개, 느헤미야가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누가 해산한 것입니까? 여호와 하나님! 그 해산케 하는 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루셨습니다. 
     대하36:22, 23절에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사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너희 중에 그 백성 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사실 어떻게 그 흩어진 유대 백성들을 힘없는 그들이 모을 수 있습니까? 도저히 불가능 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마음에 감동을 하시니 순식간에 전국 127도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람을 이 자리로 모시고 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그들을 복 받게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태신자의 영혼을 사랑하여 품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영혼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실 것입니다. 

    더욱이 시온은 구로 하기 전에 생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자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시온이라는 말은 하나님 나라 운동을 말합니다. "구로 하다"는 말은 여인이 해산하기 위한 진통을 말합니다. 그 진통, 해산의 고통이 얼마나 괴롭고 힘든 것인지 생명을 잃는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말씀하기를 시온은 구로 하기 전에 생산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통 없이 생산한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것은 순산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고 새생명을 얻게 하는 것은 눈물과 고통 없이 이루기 어려운 일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위해서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이미 고통을 다 당하셨습니다. 우리의 허물을 위해서 찔리심을 그분이 당하셨습니다. 우리 죄악 때문에 주님이 상함을 이미 받으셨습니다.(사53:3-5)
    주님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셨기에! 그리고 그분이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태신자를 낳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도 태신자를 초청해서 대선교회 새가족을 만들 수 있는 복된 자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해산하리라"고 하십니다. "임산케 하였으니 해산케 아니하겠느냐"고 하십니다. 내가 하면 난산입니다.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해산하시면 나는 순산하고,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방황하는 인생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인생의 방황은 하나님을 만남으로 끝나고 신앙의 방황은 교회에 정착함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불쌍한 영혼들을 초청해서 인생의 쉼터인 대선교회에서 쉼을 얻게 해 주어야 합니다. 이 가치 있고 영광스러운 일에 하나님의 동역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더욱이 시온은 구로 하는 즉시 순산하겠다고 하십니다. 이 하나님 나라는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66:8에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뇨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순식간에 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구로 하는 즉시에 그 자민을 순산하였도다" 그래서 순산하되 즉시로 이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거듭날 때 그렇습니다. 거듭나는 순간은 신속하며 순간적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자마자 전도대상자인 분이 교회에 와서 등록할 수 있습니다.  신속한 순산은 이렇게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새 식구를 받아 드릴 준비를 아울러 충실히 하려고 합니다. 

    이제 다음으로 살펴 볼 것은 7절 하반 절에 해산을 하였는데 무엇을 낳았습니까?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자를 낳았으니..."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남자는 강하고 담대한 주의 일군들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구원받은 자의 성(性)을 남자로 한 것은 하나님께서 성(性)차별하시는 것이 아니라 약하고 흔들리기 잘하는 연약한 성도가 아닌! 신앙이 강하고 굳센 믿음의 일군들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이제 새로이 대선의 가족이 되는 이들이 나보다 더 충성하는! 나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는! 오직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할 수 있는 그런 일군들이 들어오기를 기대하고 그것을 내가 잘된 것처럼 기뻐 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전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대선 교회에 일군이 넘칠 뿐만 아니라 더욱 굳센 주님의 일군들이 채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이제 끝으로 태신자를 주께 인도하고 전도하는 일은 우리의 힘만 가지고는 불가능합니다.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이 큰일이 은혜로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은혜 위에 은혜가 필요합니다. 

    모쪼록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임산케 하였은즉 해산케 아니하겠느냐 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해산케 하는 자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하시니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태의 문을 닫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명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태의 문을 닫으시겠습니까? 해산케 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태의 문을 닫으시겠습니까?  혹시 "나는 아무도 데리고 올 사람이 없다고! 하나님께서 태의 문을 닫으셨다."고 하시는 분이 계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미 잉태케 하셨습니다. 내 마음에 이미 사람을 주셨습니다. 생각나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분은 태의 문을 닫으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졌더니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가문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순종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영혼 구원입니다. 이 일에 주님이 강권하시고 감동하시는 대로 받아 드리고 순종하십시오,  그래서 우리 대선교회는 주를 기쁘시게 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태신자 초청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한 영혼을 위하여 희생하고 눈물로 기도하고 은혜 위에 은혜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모쪼록 건강한 남자를 낳아 하나님 나라 건설의 일꾼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

댓글 0 ...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2 admin 14 2013.04.11
admin 232 2013.04.11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