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이 산 제사이다.(롬12:1)
  • 조회 수: 270, 2013.06.10 08:58:17
  • 금주는 추석이 낀 주간입니다. 기독교는 제사를 드리지 않고 예배를 드립니다.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에게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예배문을 드렸습니다. 왜 기독교는 예배를 드리는가?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축복을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제사 대신 예배로 바뀌는 포맷의 변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잘못 이해합니다. 한국 크리스천들의 예배 생활에 대해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매주마다 교회에 꼭 나가서 예배를 드린다’는 사람은 65%에 불과했습니다. 주일 예배만 한 번 나가는 사람이 78.9%, 주일은 물론,수요 예배도 나가는 사람이 24%, 철야 기도회도 나가는 사람이 14%, 새벽 기도회까지 나가는 사람이 13%였습니다. 그러니까 매일마다 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13%밖에 안된다는 것입니다.그런데 교회 매일 나가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믿는 사람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요사이 정치권이 요지경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차기 대통령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런데 서로 대통령병에 걸려 있다고 욕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대통령 될려고 하는 것은 사실이잖아요? 인정해야 합니다. "나 대통령 되고 싶어요"  훨씬 멋있습니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교회 다녀요! 그렇게 살아야죠, 바울은 많은 이야기를 로마서에 기록 한 후에 이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러므로 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영적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뭐 다같은 예배가 아닙니까? 다릅니까? 그러나 정말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각양각색입니다. 설교할 때 딴생각만 하는 ‘딴생각파,’ 설교만 하면 잠을 자는 ‘수면파,’ 옆 사람하고 자꾸 쪽지를 주면서 대화하는 ‘쪽지파,’ 설교는 전혀 듣지 않고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혼자 성경만 읽는 ‘실속파’ 등 갖가지 유형들이 다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의 생명과 전 생애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내 시간, 내 재산, 내 자식, 내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하는 예배,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 즉 올바른 예배, 진정한 예배,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예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라고 했습니다.그러면 어떤 것이 ‘산 제사’입니까? 성경 말씀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제사가 나오는데, 그 중에서 특별히 오늘날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산 제사’는 어떤 것인지 네 가지로 분류해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1. 순종의 제사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본문은 선지자 사무엘이 불순종한 사울 왕에게 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에게 아말렉과의 전쟁 때, 그들의 모든 소유, 짐승과 사람을 진멸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짐승을 감추고,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지 않음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 왕에게 와서 무엇보다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였을까요? 결국 자기 아들 이삭을 바치고자 하는 순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22:15절 이하를 보면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결국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복을 얻는 산제사입니다. 그런데 어떤분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예배드리는 시간을 아깝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주일 아침만 되면 남편과 아내, 둘 중에 누가 대표로 교회에 갈 것인가를 의논하는 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대표 한 사람만 교회에 출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꿈을 꾸었습니다. 죽어서 아내와 함께 천국에 가게 되었는데, 천국의 문지기가 이들 부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부부죠?”“네, 우리는 부부입니다.” “그러면 대표만 천국에 들어오시오.”남편은 그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내한테 그 이야기를 해 주면서, ‘그 동안 잘못 믿었구나.’하고 반성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대표만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교회에 나갔다고 합니다.  참된 예배의 정신은 무엇입니까? 다른말로 한다면 제물로 바쳐지는 것입니다.순종하는 것입니다. 요사이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십일조를 하면 갚아 주시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원망까지도 합니다.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쳐지는 것입니다.제물은 바쳐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입니다. 순종하십시오. 순종보다 더 큰 산제사는 없습니다.

    2. 감사의 제사가 있습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4∼15) 사실 가장 적극적인 산예배는 어떤 것입니까? 무조건 감사하는 것입니다. 사실 감사를 빼면 하나님께 할 말이 없습니다. 본질적으로 참된 예배는 감사를 통해서 시작됩니다. 시편 56편 12∼13절에서 다윗 왕은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지 않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라고 말했습니다.  전에 교회에 재호 어머니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시한부인생을 사신 분이십니다. 항상 심방을 갔습니다. 아니! 내가 심방을 받은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그분은 늘 감사하였습니다. "목사님! 눈이 떠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앵무새소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리고 어느날 눈을 떠보니 하나님 음성이 들리겠지요, 그것은 더 감사하구요, "그리고 하나님께 돌아갔습니다. 감사의 사람은 예배드리는 사람입니다. 다니엘은 감사의 사람이었습니다. 단 6장 10절 말씀을 보면 “다니엘이 이 조서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위험함속에서 감사한 다니엘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 어려움 속에서 빼내어 주신것입니다. 그저 예배에 참석하면 감사를 외치는 분들이야 말로 산제사를 드리는 분들이십니다. 이런 감사하는 분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책을 보니 감사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감사를 많이 하는 사람은 기쁨이 넘치고 마음이 편안합니다.
    둘째, 감사하는 사람은 감사할 일이 자꾸 더 생깁니다.
    셋째, 감사하는 사람은 성공적인 인생을 삽니다.
    넷째, 감사하는 사람은 존경과 칭찬을 받습니다.
    다섯째, 감사하는 사람은 받은 축복을 나누어주는 풍성한 삶을 삽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감사할 때 예배에 힘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 감사하는 사회, 감사할 줄 아는 나라와 민족은 부강하고 흥합니다. 가정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아내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왔을 때 남편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으면, 그 아내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어서 자꾸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줍니다. 그러나 남편이 감사하지 않을 때는 아내가 그만 맥이 빠집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해서 생활비, 월급을 가져왔을 때 아내가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고마워요.”라고 말하면, 남편은 또 가져오고, 또 가져오고, 더 주고 싶어합니다. 가정도, 남편과 아내가 서로 얼마큼 감사하느냐에 따라 행복해질 수도 있고, 불행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감사가 능력있는 산제사인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런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감사해도 됩니다. 

    3. 상한 심령 회개의 제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하나님 앞에 나갈 때,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아내 때문에 교회 나와 주었다고 생각되면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자격도 없는 내가 어떻게 이곳에서 예배를 드릴 수가 있을까?이 더러운 죄인의 입술로 주님이라고 할 수 있을까? 라는 마음을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아파하셨습니다. 어떤분은 교회에 들어오기만 해도 가슴이 찡하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한 것이죠, 그것 자체가 예배입니다. 예배는 이미 집에서부터 시작입니다. 교회 가자고 신경질 내면서 올 수 있습니다. 싸우고 옵니다. 설거지하다가 허겁지겁옵니다. 도저히 산제사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교회에 나올 수 있다니 어떻게 내가 하며 어린아이같은 마음을 가지고 와야 합니다. 기독교와 타종교의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다른 종교들은 인간이 수양과 도를 닦아서 자신의 공로로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어떻습니까? 인간이 자신의 부족함과 죄를 깨달아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합니다. 하나님 앞에 긍휼과 자비를 구합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 인간은 절대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겸손의 종교입니다. 이사야 57장 15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 (하나님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통회해야 합니까? 물론 죄인임을 자복해야 하죠, 그러나 회개는 행동입니다. 무릎을 꿇은 후에 삶이 바뀌어집니다.누가복음 19장 8∼9절을 보면 삭개오는 주님을 만납니다. 산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축복을 받고 인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의 통회하는 마음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 한 것입니다. "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너무 멋있습니다. 삭개오는 하나님의 뜻이라면 재산의 절반까지라도 하나님께 바치겠고,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결단력, 이런 겸손한 마음 때문에, 예수께서 삭개오를 칭찬하시고 축복을 베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회개하십시오. 이웃을 위해 보여 주십시오, 산제사로 드러나게 하십시오. 안믿는 형제들과 고스톱 치면서 100원으로 벌벌 떨지 마십시오, 좀 다르게 사십시오. 회개하는 자는 변화된 모습을 가지고 살 수 있어야 합니다.

    4. 찬송과 찬미의 제사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 13:15) 제사에는 물론 제물을 바치는 제사도 있지만, 입술로 드리는 찬미, 찬송의 제사도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짐승을 잡아 피를 뿌려 속죄의 제사를 드렸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셨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시편 69편 30∼31절에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찬양대가 있는 것입니다. 앵콜 찬양을 합니다. 함께 영광을 돌립시다. 앞으로는 우리가 찬미를 드리는 마음을 가지고 축복하도록 합시다. 그렇습니다. 소를 잡아 바치며 원망·불평하는 제사보다는, 입술로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한다고 했습니다. 비록 드릴 것이 없다 할지라도, 맨손으로 하나님께 나온다 할지라도, 입술로 하나님 앞에 찬미의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찬미하는 것입니다. 찬송을 환경을 벗어나서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은혜 받을 때 길거리에 다니면서 흥얼거렸습니다. 은혜 받으면 찬양이 나오는 것입니다. 방법은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사도행전 16장에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냄새 나고 캄캄한 감옥이었습니다. 온 몸은 얻어터진 채로 쇠사슬에 묶여 있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찬송과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찬양을 하고 나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도행전 16장 25∼26절에 보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라고 했습니다. 옥터에 막 지진이 나서, 감옥 문이 열리고 손에 매여 있던 모든 것이 다 풀렸다고 했습니다.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언제 하나님의 도움과 기적이 나타났습니까? 찬송할 때였습니다. 찬송할 때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주십니다. 금주에 꼭 집에서 찬송가 한 장을 혼자 물러 보십시오, 너무 어수선하게 있지 말고 찬양 하나를 불러 보십시오, 그리고 자기 영혼을 산제사로 드리는 마음으로 찬양해보십시오. 기적이 나타납니다. 우리의 환경이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추석입니다. 과연 어떻게 보낼 것인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여러분 귀신의 노예가 되지 마십시오, 여러분 모두가 죽어가지고 오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산제가 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무조건 순종하십시다. 그래요 감사하십시다. 그리고 화개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만나십시다.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던지 찬양을 합시다. 그리고 은혜의 하나님을 경험하여 진정한 산제사로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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