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속의 고향 (창세기50:22-26)
  • 조회 수: 84, 2013.01.16 20:41:12
  •  야곱은 노년에 먼 타국 땅 애굽에서 보내다가 숨을 거두게 되었는데 그는 할아버지 아브라함 과 아버지 이삭이 묻힌 땅 가나안 땅 헤브론에 있는 막벨라 굴에 매장하여 줄 것을 유언을 하였고 애굽의 총리로 있었던 요셉은 그 아버지의 유언대로 병거와 기병을 거느리고 굉장한 장례식을 치렀고 가나안땅 헤브론 막벨라 굴에 아버지의 시신을 매장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요셉이 임종을 하면서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탁하기를 '앞으로 하나님 께서 너희를 인도하여 이 땅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에 이르게 하실 텐데 그때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서 그 약속하신 땅에 묻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후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간지 430년 후에 애굽에서 나올 때 모세는 요셉의 해골을 메고 나왔고(출애굽기13:19), 가나안 땅을 온전히 정복한 후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세겜 땅에 매장 을 하게 되었습니다(여호수아24:32)

     왜 그들이 그토록 죽은 후에 시신이나, 해골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특히 하나님의 사람들이 죽으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육신을 꼭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고 했겠습니까? 왜 그토록 그 곳에 묻히기를 소망했을까요?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약속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창세기12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원래 고향인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어 가나안땅 세겜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이 땅을 네 자손들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그 후에 그의 아들 이삭代에도 그 땅은 여전히 아브라함家의 소유가 되지 못했고, 다만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매장지가 없어서 당시 헷족속에게 은400세겔을 주고 구입한 헤브론에 막벨라라는 굴이 있는 밭떼기 하나가 아브라함家의 소유 였을 뿐입니다.

     그 다음 야곱의 代에 와서도 역시 가나안은 아브라함家의 땅이 아니었고, 요셉의 代에 와서는 그 땅에 흉년이 들어 사람이 살지 못할 지경이 되어 아브라함의 후손은 완전히 애굽나라에 이주하여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그들이 어디서 죽든지 후손들에게 부탁하기를 그 가나안땅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하게 되는 이유는, 아브라함에서부터 믿음의 계보가 이어지면서 그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그 하나님의 약속을 그 자손들에게 상기시키며 잊지 않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그곳에 묻히는 이유는 그 땅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 마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그 약속을 잊지 말고 그 약속을 믿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교훈이 있었고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그 조상들을 그 곳에 묻으면서 하나님께서 이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을 믿음으로 미래의 소망을 현실로 받아드린 것입니다.

     특히 요셉代에 와서는 애굽에서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현실에 안주할 가능성이 많았으므로 요셉은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자기 해골을 메고 가 그 땅에 묻어 줄 것을 부탁하므로 그들로 약속을 잊지 않게 했습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습니까?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여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약속을 말씀 입니다. '이 세상은 내 집 아니요. 저 하늘 저 천국에 있는 줄 믿습니까?' 주님의 약속인 미래의 천국이 현실에 내 속에 이루어져 있습니까? 그 때는 그때고 현실은 돈이 중요해, 재물이 중요해 내 체면이 중요해 하면서, 현실에 안주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다가 애굽에서 노예생활로 엄청 고통을 받았음을 우리는 잊지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약속을 현실로 받아드리지 못하면 돈의 노예, 욕망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2) 그 곳이 그들에게 약속의 고향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하며 삽니다. 그래서 고향을 찾아갑니다. 어제부터 귀성 행렬이 시작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명절이 되면 고향을 찾기 때문에 도로에 체증은 말도 못하게 심한 가운데 있습니다. 사람들이 고향을 찾는 것은 귀소본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타향에서 죽는 사람들은 시신이라도 고향 땅에 묻히기를 소원합니다. 아마 통일이 되어지면 북한이 고향인 사람들은 돌아가신 선조 들의 무덤을 이장할 것입니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똑같은 것 같습니다. 미국은 외국에 파병된 군인들에게 분명한 약속이 있습니다. 너희들이 어느 곳에서 전사하든지 너희들의 시신들은 조국 땅에 묻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6.25때 전사한 유골들을 찾아서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북한으로부터 유해를 송환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 그토록 그 땅을 죽어서라도 묻히기를 원했던 것은 자기들이 태어난 고향은 아니지만 그곳은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신 고향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영원한 고향이 어디입니까? 그곳은 이 땅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 입니다. 이 고향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의고향입니다. 육신의 고향을 그토록 사모하여 죽어서라도 가고자 열망하는 곳이 고향인데, 그리스도인이 영원한 약속의 고향 땅 천국을 사모하며 살지 않는다면 믿음이 없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주님의 약속을 불신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약속의 고향을 갈망했던 이 얘기는 먼 장래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영원한 약속의 고향 천국을 그리워하며 믿음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것에 대한 모형이었습니다.
     성도여러분 고향이 그리워지는 이 명절을 보내면서,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는 온갖 세상욕심 과 죄악으로 인해 영혼이 병들어 주님의 약속인 영원한 본향 천국에 대한 소망이 희미하여져 있지 않는지 진단해 보고, 야곱과 요셉이 그토록 하나님의 약속의 고향을 그리워했던 얘기를 통해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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