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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요한복음 4:23-24/ 예배를 회복하는 교회 [주일낮]
  • 조회 수: 677, 2013.01.25 12:14:51
  • 2013년도 밝아왔습니다. 이렇게 새해의 첫 주일을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뵐 수 있어서 더 반갑고, 좋습니다. 금년에 여러분들의 가정이 평안하고, 자녀들이 다 잘 되어 좋은 소식이 오가며, 지금 모습보다 더 건강한 모습으로 먼저는 주님께 충성하고, 가정과 직장, 사업터가 쭉쭉 뻗어나가 담을 넘는 울창한 나뭇가지처럼 되어 축복을 감당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그런 풍성한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새해 첫 주일인 오늘은 예배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예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 가운데 제일 중요한 항목이며, 우선순위 가운데 1등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신앙의 풍조에 떠밀려 오늘날 예배가 경시되고 있습니다. 물론 예배는 중요하다고 하는데 워낙 세상일에 바쁘다 보니 마음과는 달리 예배를 잘 드리지 못한다고 송구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예배에 대한 마음이 한 번 흐트러지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우리의 신앙이 흐트러져 버리니까 이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배를 등한히 했다면 이를 회개하고 은혜의 방편이 되는 예배를 회복하여 2013년에는 더욱 더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복을 누리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수가성 여인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다섯 번이나 결혼했지만 지금 있는 자도 자기의 진짜 남편이 아닌, 성적으로 문란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이 여인이 한낮에 물을 길으러 왔다가 예수님을 만나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받습니다. 예수님이 그 여인의 숨은 죄를 들추어내시자 이 여인은 예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과의 막혔던 문제가 무엇이고, 이 여인이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참된 평화와 참된 영생수를 소유하기 위해서 해결해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가 하는 것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는 다름 아닌 예배였다고 판단된 것입니다. 이 여인이 자기의 문제를 지적받을 때에 예배를 들먹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을 통해서만이 자신의 문제가 해결돌 수 있다는 믿음을 어렴풋하게나마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이 여인이 생수 이야기를 하다가 이것과는 상관없이 죄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고, 죄 문제에 직면하니까 예배의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단 말이죠. 이제 이 여인의 마음속에 간절하고 절박한 문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였고, 이 예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천박한 여인의 마음에도 예배에 대한 이토록 해박한 지식이 있었다면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그러했다는 말입니다.

     

    시대는 변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중심부에는 이렇듯 반드시 예배가 있고 예배 받으실 하나님을 향한 참된 사랑과 경배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경배의 표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교회의 예배상태는 그 교회 신자들의 영적인 수준과 신앙생활의 표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 하나님과 어떤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배의 의무를 게을리 하는 것은 마치 행동으로 하나님이 살아 계시지 않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배에 참석하여야 할 시간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간에 그들에게는 쓸모없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속된 말로 돈이 되지 않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왜? 예배의 자리를 떠나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절대로 그 자리를 축복해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누룩처럼 번져 가는, 배교에 가까운 예배에 대한 경박하고 의무감 없는 태도들을 볼 때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등록한 교인들의 수에 비하면 비참할 정도로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예배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이러한 세태를 거의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1. 여유가 있게 되면 그때는 예배를 잘 드리겠노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평생 지금처럼 쫓기듯이 살다가 죽는 것이 인생입니다. 좀 여유가 있으면 예배를 잘 드리겠다 합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여유가 있었던 때가 또 언제 있었습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지금이 최고로 바쁘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여러 가지 해야 할 일들 가운데 우선순위를 정해서 하고, 덜 중요한 것은 더 중요한 것에 의해서 희생되었지요. 그러므로 오늘날 시간이 바빠서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꼭 해야 할 항목에서 예배가 멀어지고 있다는 뜻이지요. 그러므로 오늘 공적인 예배에 힘을 다하여 참석하고 그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공급받으면서 어려운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신앙생활에 힘쓰지 아니하면 하나님 앞에 심각한 불신앙이라고 하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 또 사람들은 은혜가 떨어지면 예배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에 있어서 의무를 저버리는 것은 곧 하나님을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면 그 다음에 그 은혜로 예배를 드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너희 마음을 감동시키면 그때 기도하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연민의 정이 솟아나면 그때 전도하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아주 단순하게 우리에게 명령합니다. “너희는 예배하라, 너희는 기도하라, 너희는 전도하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의 상태와는 관계없이 그것은 의무라는 것입니다.

     

    가장 성경적인 교회의 모델을 지녔다고 믿어지는 청교도 시대에 성도들이 깊이 가슴에 새긴 단어는 바로 “의무”였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백성들로서 마음에 원하든 원하지 안든, 하나님 앞에 받은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의무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의무를 따라 살도록 노력하였습니다. 만약에 마음이 따라오지 않기 때문에 신앙생활의 의무를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배교적이고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3. 사도시대로부터 공적인 예배는 언제나 하나님을 찾는 영혼들에게 유익을 주는 수단이 되어 왔습니다. 잠자는 영혼을 깨우며, 죽은 자와 다름없는 영혼들을 살아나게 하고, 죄로 말미암아 어두움 가운데 있는 영혼을 진리의 빛으로 밝혀 구원함에 이르게 하는 믿음을 갖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은혜의 수단이 바로 예배였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고 스스로 죄인임을 느끼게 되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의심하며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믿음을 바로 심어 나갈 수 있도록 결단하게 하며, 세상에서 부와 성공만 있으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소망으로 삼으며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는 위대한 힘이 바로 예배 가운데에서 부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불신앙의 풍조를 본받지 마십시오. 오늘날 신앙의 풍조가 공적인 예배의무에 대해서 아무리 너그러운 태도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신앙이 꺼져가는 사람들이 자신을 위로차원에서 하는 불신앙의 마음이지.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기뻐해도 하나님이 슬퍼하시면 그것은 하나님을 마음 아프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될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의 유익을 위하여 공적인 예배에 참여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공적인 예배에 참석하기를 게을리 할수록 심각한 영적인 손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영혼은 생기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고 나아가서는 진리를 향한 갈망과 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본분이 무엇인지도 잊게 될 것입니다. 느슨한 하나님과의 관계와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죄의 지배 아래에 들어가기를 자처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배에 참석하기를 게을리 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신령한 은혜의 세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예배를 패하는 마귀의 도전은 우리 시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 시대 때부터 있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극한 환란과 핍박, 그 가운데서 예배를 경시하는 그 당시의 풍조를 정 조준하여 “모이기를 패하는 그 어떤 사람들과 같이 되지 말고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더 그리하자...” 이렇게 책망을 했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사도 바울이 지적한 그 어떤 사람들이 되지 맙시다. 그들은 교회 안에 있으나 이미 마귀의 손에 떨어진 거나 마찬가지인 자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2013년도에는 예배회복에 대한 표어를 정했습니다. ‘열린 교회, 예배의 영감이 배가되는 교회’ 이 예배의 표어대로 2013년도에는 수가성 사마리아 여인처럼 잃어버린 예배를 회복하여 예배를 통하여 영혼의 샘터를 개발하고, 생명수를 풍성하게 마셔서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강건햊는 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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