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을 부지런히 가르치라!(신명기6:1-9)
  • 조회 수: 196, 2012.12.22 16:34:51
  • 우리가 자녀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유산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재산상의 유산을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얼마나 물려줄 수 있을까? 형제가 몇 명인데 누구는 얼마 누구는 얼마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벌써 계산을 다 끝낸 분들도 있을 것이고 혹 어떤 분들은 우리는 물려줄게 별로 없는데 하면서 걱정을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좀 있어서 나누어 줄 것이나 아니면 좀 없어서 걱정하는 그런 것들보다 성경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 줄 것을 말씀하십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함과 그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것을 교훈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자들은 많고 매우 다양합니다. 교회의 목사나 주일학교 교사들이나 여러 부서에서 가르치는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가르치는 교사 중에 최고의 교사는 누구냐? 진정한 의미에서 교사 중 최고의 교사는 부모님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가정에서 자녀를 낳았을 뿐 아니라 함께 하는 시간도 가장 많고 그 누구도 좇아갈 수 없는 사랑을 가지고 눈물로 땀으로 가르치는 교사가 바로 부모입니다. 부모를 통하여 전해지고 가르쳐진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 진정한 유산이 됩니다. 비록 현재는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멀리 있다고 하여도,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할지라도 그들이 어릴 때에 부모로부터 배웠던 하나님의 말씀은 섬광과 같이 그들의 기억 속에 떠올라 결국은 그들을 올바른 믿음의 길로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걱정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그렇다고 게으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을 어려서부터 가르치고 교훈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주일학교에서는 성경의 지식을 가르치고, 가정에서는 부모를 통하여 성경의 삶을 가르칠 때 교회와 가정을 오고 가면서 우리 자녀들이 신앙을 제대로 배우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 찬송가 가사를 고백하고 쓴 사람은 바로 존 뉴톤이라는 목사님(John Newton, 1725-1807)입니다. 이 분이 목사님이 되기 전까지 20여년 동안 이 분 만큼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서 방황하고 죄 짓고 방탕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사람도 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지중해 연안에서 장사를 하던 한 상선의 선장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일찌기 어머니를 여의고는 11살 때부터 아버지의 배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불행했던 그의 어린 시절과 거친 선원 생활로 그의 삶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포학한 그의 성격과 부도덕한 그의 생활에 아버지도 손을 들고 그를 내쫓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온갖 죄를 저지르며 방탕한 생활을 계속하던 뉴톤은 끝내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이 가망 없던 사람이 어쩌다가 우연히 구해 읽은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라는 책을 읽고 그의 삶은 급격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일찍이 어머니의 품에서 배웠던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 유명한 존 뉴톤 목사님이 되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떠나 멀리 타락 방종할 때 밑바닥에 떨어져 방황하던 인생을 건져주신 하나님, 그렇게 절망적 인생이었던 자신이 어머니를 통하여 교훈해 주셨던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인해 새로운 삶의 소망을 찾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절망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다시 일어설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인생의 방황을, 신앙의 방황을 끝낼 수 있습니까? 시시때때로 밀려오는 인생의 어려움, 시험 속에서 굳건히 승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살리는 것도 다시 일어서게 하는 것도 그 심령에 불을 붙이는 역사도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은혜의 방편이 바로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어머니의 가르침이었습니다. 뉴톤의 나이 39세 때 목사가 되어 버킹검에서 16년을, 영국의 케임브리지에 있는 “올니(Olney)”라고 하는 작은 마을에서 27년간, 죽을 때까지 목회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일반 교육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아이들은 공부 벌레가 되어야 하고 또 현실이 그렇게 공부하는 기계를 만들고 있기도 합니다. 늦은 저녁 시간에 오다보면 옆에 지나가거나 같이 서있는 일반학원이나 영어학원 버스 속에서 책을 보는 아이들 하나 둘, 거의 다 피곤해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측은하고 안스러워 보입니다. 방과 후의 몇 곳의 학원과 과외 공부하느라고 또 예능교육한다고 보통 몇곳의 학원을 다니는 실정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의 과외비를 벌기 위하여 직장 생활을 하고 아이들 모르게 파출부가 되기도 하며 정도가 넘친 경우이지만 남의 것을 훔치다 붙들려 뉴스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가르쳐서 대학을 보내면 다 됩니까? 어떻습니까? 세상 교육이 어떠합니까? 오늘의 세상 교육은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 아니라 기능인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미 교육현장에서는 인간의 기본 윤리가 사라져버렸습니다. 고품질의 지식은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미 가슴은 싸늘하게 식어진 냉혈 동물화 되어가고 있다는데 깊은 우려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지난 번 청주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학부모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TV에 비춰진 모습은 오늘의 교육현장이 얼마나 일그러졌는가를 단면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학부모들의 고성이 반말로 오고가고 교장선생님도 무마하려고 내가 책임지고 사표를 내겠다고 하니 여선생님은 울면서 어쩔줄 몰라합니다.

    평소 여자 담임 교사가 학생들에게 점심을 빨리 먹도록 강요했다며 항의합니다. 식사 시간을 지키지 못한 학생에겐 벌을 주고 반성문도 쓰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헛구역질하고 해서 먼저는 담임 여교사의 집을 찾아가 항의하고 이어 다음 날에 다시 학교를 찾아와 선생님에게 사표를 내라고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학부모들의 과격한 성토에 한참을 울먹이던 여교사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결국 울면서 문제가 더 이상 확대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하면서 무릎을 꿇고 사과합니다. 담임 교사의 잘잘못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학부모들이 찾아가 사표를 종용하고 교사의 무릎을 꿇게 하는게 과연 잘하는 일인지. 서로가 있을 수 없는 일들을 서슴없이 쏟아냅니다. 그렇게까지 항의하고 비인격적으로 행동하던 학부모들이 다음 날에는 다시 사과문을 써 올리고 한다 하니 참으로 기가 막히고 오늘의 부모님들이 자식을 사랑한다는 것이 너무 지나치다는 것을 보면서 오늘의 학교 교육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어떻게 하면 다음 세대의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우리 선생님들을 존경받는 자리로 올려드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 사회와 교유계, 학부모와 학생들과 선생님 자신들이 다시 한번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느 분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한글을 읽을 수 있다면 선생님 덕분 아님니까? 악보를 보고 찬양을 할 수 있다면 음악 선생님 덕분이고, 가계부를 정리할 수 있다면 수학 선생님 덕분이고, 영어를 한 마디라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영어 선생님 덕분입니다. 선생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기술이나 전문 지식을 갖고 직장 생활을 원만하게 하고 있다면 선생님들 덕분입니다. 제가 목사가 된 것도 신학교나 교회의 목사님들, 교수님들 덕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요 선생님들의 큰 수고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이런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많은 선생님들 중에 자녀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고 위대한 선생님은 바로 부모님입니다. 이 땅에는 부모님보다 더 훌륭한 선생님은 없습니다. 유대인은 부모가 최고의 선생이라는 것을 3,500년의 역사를 통해서 증명한 민족입니다.

     

    노벨상 수상자 중 30%가 유대인이라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니다. 유대인 인구는 1천 5백만 정도, 서울시 인구보다 약간 많습니다. 땅은 현재 강원도만한 땅으로 우리 남한에 비하면 1/4정도도 안되는 그런 국토입니다. 지금의 이스라엘 땅에 거주하는 유대인은 4-5백만 정도 밖에 안 됩니다. 나머지 유대인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인도 등 전 세계에 퍼져 살고 있습니다. 2,000년 동안이나 자기 나라도 없이 살아온 유대민족이 어떻게 그 많은 노벨상을 탈 수 있었습니까?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이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부모님의 자녀 신앙교육입니다. 유대인 부모의 자녀교육을 살펴보면,

     

    첫째로, 유대인은 자녀들을 탁월한 지성을 가진 아이들로 키웁니다. 어릴 때부터 창의력과 비판력을 길러줍니다. 유대 어린이들이 토라를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책상을 가운데 놓고 마주 앉아서 성경을 읽으며 토론을 합니다. 랍비들도 큰 홀에 둘씩 마주 앉아 마치 싸움하듯 성경에 대해 자기의 해석을 주장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그 의견에 반박하고 또 자기주장을 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이해할 때까지 서로 도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공부가 끝나면 서로 털고 일어나 같이 웃고 친구로 지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정확하게 이해시키기 위해 그런 적극적 공부 방식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그런 식의 교육이 가정에서 그대로 행해진다는 것입니다. 저녁 식사 후 가정예배 시간에 아버지가 아내와 자녀들을 앉혀 놓고 성경공부를 합니다.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해줍니다. 우리 같은 주입식 교육으로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하란으로 갔어”라고 하지 않고, 자녀들에게 “아브라함이 어디서 태어났지?” “우르!”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뭐라고 멀씀 하셨지?” “복의 근원이 되리라고요.” 그러면 “복의 근원이 뭐지?” 이런 식으로 도전하여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깨닫도록 훈련시킵니다. 이것은 자녀들이 성장해서 집을 나갈 때까지 계속되는 아버지의 사역입니다. 그래서 유대 아이들이 머리가 좋고 천재가 많은 것입니다.

     

    둘째로, 유대인의 가족에는 영적인 경건성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장성하여 집을 떠날 때까지 부모의 기도를 들으며 자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아이를 하나님의 지혜와 판단력으로 가득 채워주옵소서. 이 아이가 하는 일마다 번창시켜 주옵소서. 리더십을 주셔서 많은 사람들을 돕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옵소서.” 모든 것을 말씀에 비추어 교육하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영적인 경건성이 없을 수 없습니다.

     

    셋째로, 도덕적인 기초가 있습니다.

    정직과 성실함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보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진실하게 살도록 자녀들을 훈련시킵니다. 십계명과 토라를 암송하며 자라는 그 아이들의 가슴에는 도덕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 이 하루도 진실하게 하소서 이 하루도 정직하게 하소서...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넷째로, 가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아버지는 아내를 칭찬하고 축복합니다. 자녀를 칭찬하고 축복합니다. 잠언 31: 28절에 보면 현숙하고 복된 아내는 남편의 칭찬을 듣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아내나 자식 자랑을 하면 뭐하고 하지요? 팔불출이라 하며 이상하게 봅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내나 자식을 칭찬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칭찬하는, 칭찬받는 그런 성경적 문화로 바뀌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사랑을 표현하게 합니다. 아버지가 예배를 인도하며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축복하고 사랑을 표현하며 기도합니다.

     

    다섯째로, 세대차이가 가장 적습니다.

    자녀와의 불화는 세대 차에서 오는 것이 많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나이든 어른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단한 불행입니다. 유대 사회에 세대차이가 적은 이유는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만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문화도 아니고 할머니의 문화도 아니고 아들, 딸의 문화도 아닌, 하나님의 문화 안에서 매일 만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보편적 문화와 가치와 제도와 신앙 안에서 모두 만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변하는 영원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3,500년 전에 만들어진 십계명에 오늘날보다 더 심오하고 현실적인 가치들이 들어있습니다.

     

    여섯째로, 이혼율이 제일 낮은 민족입니다.

    가정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지적, 영적, 도덕적인 모든 성품들이 가정에서 형성됩니다. 그 가정의 원만한 모습 속에는 반드시 아버지가 있습니다. 나는 돈이나 벌어다 줄 테니 자식교육은 엄마가 책임지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가정의 중심에 자리 잡고 가정을 영적으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이혼율은 50%를 육박하고 있습니다. 근래의 통계는 10쌍중 5쌍 이상이 이혼을 하고 있습니다. 부부가 살다가 사별외에는 갈라서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 이혼이 다반사입니다. 이혼율이 세계 3위에서 2위로 뛰어올랐다고 합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가정이 그만큼 파괴되었다는 것입니다.

    미국 이민자들의 자녀 가운데 25-34세의 미혼 여성이 타민족과 결혼하는 비율을 보면 한국이 미국내 여러 민족중 1위라고 합니다. 한국계가 71%, 일본은 68%, 필리핀 65%, 중국 56%, 베트남 33%라고 합니다.  왜 그러면 이렇게 많은 한국의 딸들, 이 미혼 여성들은 대부분 똑똑하고 수준 높은 미모와 학벌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같은 한국 남자들과 결혼하려하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집안에서 아버지가 어머니를 대하는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에, 한국 남자와 결혼했다가는 어머니와 같은 지겨운 결혼생활을 하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스승의 주일에 우리 모두가 우리 사회나 가정을 놓고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유태인 부모들의 자녀교육을 보면서 부모보다 더 위대한 스승은 없습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교사는 없습니다. 부모는 자녀 교육에 있어서 너무 중요한 존재입니다. 자녀에 대한 책임과 중요성은 부모에게 있음을 보여줍니다.  신명기6:1절을 보면 “이는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 명하신 바”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자녀 교육의 일차적 책임은 학교나 교회나 정부나 교육부에 있지 않고 부모에게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긴 책임이 무엇인지를 철저히 인식하고 출발합니다. 결국 내 자녀교육의 책임자는 ‘나’라는 인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교육부가 어떻다, 학교가 어떻다, 선생님이 어떻다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다릅니다. 자녀교육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고 하십니다. 우리들은 이 아침에 자녀교육에 대한 새로운 마음과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책임은 부모가 모범이 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라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의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신6:2-3). 제일 먼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살아야 될 사람은 “너” 자신입니다. 그 다음이 “네 아들”과 “네 손자”입니다. 순서가 있습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비록 손해를 보면서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고 있습니까? 자녀들은 20여년 동안 가정에서 부모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은 저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순종하려 애쓰는구나.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하는 강한 인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위해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구원받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느 누구도 영원한 생명을 받지 못할 사람이 없고 천국에 가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성공적으로 행복하고 축복되게 사는 것은 아무나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자기 자신을 철저히 훈련해가는 그 사람, 그 가정, 그 자녀들이 이 땅에서 번창하고 행복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그 열쇠는 바로 어머니 아버지에게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삶의 모습 속에서 자녀들이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어느 가정에서 목사님 내외를 초대했습니다. 그 어머니는 모처럼 모시는 목사님 내외를 위해 깨끗하게 집안 청소를 하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좋은 그릇과 잔을 꺼내어 식탁을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목사님이 식사기도를 막 시작하려는데 9살 난 딸아이가 그만 물 잔을 넘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식탁이 엉망이 되었지요. 그런데 옆에 있던 7살 남동생이 누나를 도와주려고 벌떡 일어서다가 자기 물마저 쏟았습니다. 어머니가 어쩔 줄 몰라서 아이들에게 화를 내려고 하자 상황이 심각한 것을 눈치 챈 아버지가 일부러 자기 잔을 쏟아버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도 자기 잔을 쏟았어요. 그걸 본 목사님 내외도 잔을 쏟아버렸습니다. 6개의 잔이 모두 쏟아졌으니 엉망이 되었지만 한 바탕 웃고 나니 얼마나 재미있는지…. 아버지의 지혜를 보고 아이들이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라난, 영적인 수준에서 성숙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 때 만약 아버지가 딸의 뺨이라도 때렸다면 그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참 여유 있고 아름다운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오늘 스승의 주일을 맞이하여 먼저는 교회에서 가르치는 목회자들이나 주일학교 교사들이나 기관에서 가르치는 사역자들을 존경하고 위로하고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b별히 자녀 교육의 교사중 교사는 부모입니다. 잘 가르치는 부모로서 우리의 본분을 다하는 아름다운 축복이 이루어 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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