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삭가(家)의 가정교육 (창세기 27:5~24)
  • 조회 수: 173, 2013.01.11 22:21:18
  •   오늘은 우리 한국교회가 어린이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또 5월5일은 우리나라 전체가 어린이날로 지켜져서 공휴일까지 되는데..... 이는 참 좋은 제도인 것 같습니다. 서양이나 세상 어느 나라에서도 어린이날을 정해서 공휴일로까지 지정한 나라는 우리나라뿐입니다.
    서양에는 어머니날은 있지만 어린이날은 우리나라만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 어린이날이 있는 것은 1923년 소파 방정환 선생님께서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고 사랑하자고 해서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에 어린이들은 아주 천대를 받았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도 좋은 것은 어른들을 드리고 아이들은 어른들이 드시고 남는 것만 먹었습니다. 또 당시에는 통계에 어린이들이 3명 태어나면 1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저래 당시 어린이들은 사람취급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정말 다행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어린이를 천대하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아니 이제 지금 와서는 어린이들을 너무 대우해줘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옛날과 거꾸로 부모님들을 무시하고 어린이들만 대우하는 어린이들만 최고로 여기는 그런 풍조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한국은 어린이를 너무 과보호해서 한국의 어린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버릇없는 아이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세계 수백 개의 나라에서 여러 가지의 무섭고 기막힌 일들이 일어났지만 자고있는 어머니 아버지를  칼로 수십 번을 찔러 죽이고 불을 지른 자식을 둔 나라는 우리나라 자식들뿐입니다. 심지어는 대학교수까지 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인이 자고있는 자기 부모를 죽였으니 정말 이런 우리나라뿐입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다 그 원인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잔인성이 있어서 자녀들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서양의 문화를 받아 드렸습니다.  그런데 좋은 것은 안 받아드리고 이상하게 안 좋은 것을 더 많이 받아 드렸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 받아들인 서양의 교육철학이 아주 잘못된 것이 많습니다. 그 중에 자유 방임주의 적 교육철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아이들을 자유롭게 놓아서 길러야 한다>는 이론 즉<아이들의 기를 죽이면 안된다 >는 철학이 우리나라의 교육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아주 잘못된 교육 사상이라는 것이 세계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미국이 여러 유럽의 나라들이 우리보다 1세기 2세기 먼저 실행해서 그걸 잘못했다고 시인하고 수정하고있는 교육사상을 우리나라는 늦게 도입을 해서 그것이  마치 선진이나 된 것처럼 아이들을 자유롭게 아니 아주 버릇없게 키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자녀들은 처음에는 귀여운 아이들에서 조금 지나면 무서운 아이들로 변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전 한겨레신문에 보니까 지하철 안에서 10대 소년 소녀 아이들이 너무 노래를 부르고. 손을 잡고 키스를 하니까 나이 드신 한 어른이 좀 조용히 하라고 나무랐더니 <네놈이 뭐냐? 네 차냐?> 하면서 이 어른을 작신 두들겨 패고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옆의 어른들은 무서워서 말리는 사람도 없다고 합니다. 요즘 아이들이 이렇게 되어갑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저는 우리한국의 부모들이 자녀들을 정말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린 것은 만약에 우리 부모들이 과연 우리 자녀들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1년에 수 천명씩 우리아이들을 외국으로 입양시키겠습니까?  화란이란 조그만 나라에 우리아이들이 3000명이 넘게 팔리었습니다. 이것이 한국은 어린이를 사랑하는 나라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

    또 보십시오. 만약에 우리가 어린이들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어린이들에게 아주 해로운 유해 환경이 바로 코앞에 있는데도 꼼짝하지 않습니까? 주택가에 술집이 들어와도 항의데모 하지 않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음란호텔이나 음란 이발소가 들어가도 아무도 참견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도리어 거꾸로 장애인 시설이 들어오면 데모를 하고 항의를 하고 난리입니다 그 이유는 집 값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부모는 사실상 자녀 교육에는 관심이 없고  집 값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어리석은 한국 부모들의 철학입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식을 진정으로 위한 교육이 아니라 부모들 자신들을 위한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즉 말해서 자녀들이 좋은 학교를 가야 부모들이 우쭐해지고 자녀들이 출세를 해야 부모들이 우쭐해지니까, 자기 위신을 생각해서 자녀들을 교육시키려는 것이지 진정으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자녀의 보람있는 삶을 위해서 애쓰는 부모는 그리 많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자녀들을 올바로 사랑한다면 자녀들에게 올바른 인격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의 인격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지식교육 시켜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들어가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정직하고 성실하고 세상에 유익한 존재가 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얼마 전에 미국 고등학교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선생님이 학생과 함께 길을 가는데 학생이 땅콩을 먹으면서 그 땅콩껍질을 길바닥에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이 사회과목 시험을 100점 맞았습니다. 그런데 통지표를 받아보았는데  0점이라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학생의 부모가 항의하러 갔는데 그 선생님이 대답하시기를 "땅콩 껍질하나 바르게 버릴 줄 모르는 학생이 어떻게 사회를 잘한다고 할 수 있느냐? 머리에만 있고 행동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0점이야" 라고 한말이 참된 교육입니다. 인격교육 안 시키면 출세해도 소용없고 부모까지 무시하고 거스립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을 통해서. 부모의 잘못된 행실이 자녀들에게 어떤 잘못된 인격을 형성하고. 어떤 비극을 가져다 주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삭이란 사람은 부인 리브가와 함께 아주 늙은 나이에 쌍둥이 아들들을 얻었습니다. 형은 에서였고 동생은 야곱이었습이다. 그런데 창세기 25;2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미 작정하신 가운데 형 에서가 동생 야곱을 섬기도록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형 에서가 동생 야곱을 섬기도록 한"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이 이루어져 가는 과정에서 인간의 잘못이 많이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졌습니다만, 그 뜻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못 믿고  몸부림하다가 방법상 많은 잘못을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졌다고 사람이 저지른 잘못을 정당화 할 수 있느냐?  성경은 정당화 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이삭과 리브가가 그랬습니다. 결국"야곱이 위가 되고 에서가 아래가 되는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졌지만 그러는 동안에 이 두 사람이 많은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도 이들은 그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이들에게 어떤 잘못이 있는지 보십시다. 창세기 25장에 보면 이들은 이 두 아들들을 편애하기 시작합니다. 이삭은 맏아들 에서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둘째아들 야곱을 사랑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편애한 사람의 마음에 질투의 불을 지르는 아주 나쁜 것이 됩니다. 그런데도 이삭이 에서를 편애하는 이유는 에서는 사냥을 잘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고기를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야곱은 아주 내성적이어서 집에만 틀어 박혀서 어머니만 졸졸 따라다닙니다. 그러니까 리브가는 자연 야곱을 사랑하게된 것입니다. 그래서 편애가 시작되었는데 이것이 발전해서 점점 사이가 벌어져 어느덧  집안이 보이지 않게 금이 가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아버지는 큰아들 에서 편만들고 어머니는 둘째아들만 옹호합니다. 그러다가 이들이 점점 자라게되니까 이제 적대 관계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한 중요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보기에는 별것 아니지만 신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는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어느날 흉년이 들린해에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왔는데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때 몹시 배가 고팠는데 마침 그때 아우 야곱이 죽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죽을 좀 달라.>고하니까 야곱이 교활한 야곱이" 이 흉년에 그냥 팥죽을 줄 수 없어요 형이 가진 장자 권을 바꿉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성미 급하고 또 영적인 안목이 없는 에서는<내가 배가 고파 죽겠는데 그놈의 장자 권이 무엇이냐? 바꾸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자 권을 죽과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소소해 보이는 사건은 상징적으로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것이 불씨가 되어 두 형제는 칼부림하며 싸우면서 평생동안 갈라서서 살게되는 운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자식들의 행동이나 싸움이 우연이 생긴 것입니까? 아닙니다.  다 부모들의 행동 속에서, 부모들의 모습 속에서 생겨난 것들이었습니다. 이건 다음의 일을 보아도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는 생각이 분명합니다. 팥죽으로 장자 권을 판 사건이후 이삭이 나이가 많아서 눈이 잘 보이지 않고 몸이 아파서<이제 죽지   않나?>하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이미 늙은 이삭은 몹시 고기가 먹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에서에게 부탁을 합니다. <네가 가서 사냥해서 고기를 잡아와라 그러면 내가 먹고 너에게 축복을 해주마> 그런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왜냐면 에서는 이미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장자의 명분을 경홀이 여겨 팔아버렸고 거기다가 이방의 아내까지 얻어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이삭은 하나님의 뜻보다 고기를 먹고 싶은 욕망이 간절했습니다. 또 에서도 <고기 잡아오면 축복해준다.>는 말을 들은 에서는 좋아라하고 사냥을 하러 나갔습니다.  그  소리를 엿들은, 야곱을 편애하는 리브가는 사기 극을 꾸밉니다.  자! 이 어머니 하는 짓을 보십시오. 둘째아들 야곱에게 말합니다. <아버지가 너의 형 에서를 축복하려고 한다. 그러니 우리가 이렇게 속이자. 너는 빨리 가서 저 양 한 마리를 잡아오너라.>  이제 그래가지고 먼저 야곱을 에서처럼 분장을 시킵니다. 에서 방에 가서 옷을 가져다가 야곱에게 에서 옷을 입힙니다. 그리고 손을 잡을 테니까, 손에다가 양털을 바릅니다. 그것은 에서가 손에 털이 많이 났기 때문입니다. 인사불성인 아버지를 속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야곱에게 고기를 요리해서 들고 가게 합니다.  <아버지 에서가 왔습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어머니가 시켰습니다. 그러니까 이삭이 인사불성이지만 조금 이상해서 <목소리가 이상하구나> 하니까, <손을 잡아보십시오. 제가 맏아들 에서입니다.> 합니다. 손을 만져보니 털 많은 에서 손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삭은 이 야곱을 에서인줄 알고 다 축복을 해버리고 장자 권을 다 허락해버립니다. 이렇게 돼서 결국 야곱은 에서가 받으려고 했던 복을 대신 받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절제할 줄 모르고 장자 권을 판 것은 실은 자기 아버지 이삭이 고기를 먹고 싶어서 자식편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부전자전이었습니다. 못된 행동이 부전자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욕망을 절제할 줄 모르니까 자식도 절제할 줄 모른 것입니다. 못된 것에도 아버지가 본이 되었던 것입니다.
    야곱과 리브가도 같습니다. 리브가는 야곱에게 거짓을 보여주고 시켰습니다. 후일에 보면 거짓말만 하고 다닙니다. 자기 삼촌 집으로 쫓겨가서도 또 거기서도 거짓말을 해서 삼촌을 속입니다. 그러다가 또 삼촌에게 맞아죽을 뻔하였습니다. 야곱은 심지어 하나님에게도 거짓약속을 합니다. 그래서 야곱의 일생을 보면, 그야말로 야곱은 이 거짓말과 간교한 것 때문에 엄청난 인생의 시련을 겪게 합니다. 결국 거짓말 때문에 마지막에는 다망해서 그 스스로가 말년에 바로왕 앞에 고백한 대로 "험악한 세월"을 살게된 것입니다. 정말 야곱은 고생을 많이 했고,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고 심지어 자식들에게까지 배반을 당했습니다. 다 거짓말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자기운명을 불행하게 만든 그 불씨를 바로 그 어머니 리브가에게서 배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가끔씩은 부모가 훌륭한데도 못된 자식이 나올 수가 있습니다. 또 부모가 아주 못했는데도 훌륭한 자식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드문 것입니다. 십중팔구는 못된 부모에게서 못된 자식이 나옵니다. 훌륭한 부모에게서 훌륭한 자식이 나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가 자녀들에게 뭐 위인전기를 사다주고 컴퓨터를 사다주고 뭐 좋은 것이라고 사다주지만 그게 훌륭한 자식을 만드는데 100분의 1밖에 채 도움이 안됩니다. 자녀에게 훌륭한 선물은 인격적인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훌륭한 부모를 만난 자녀는 제일 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자녀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에릭프롬디의 말대로 무조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사랑해야 겠습니까? 말씀을 맺어가면서 2가지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우리들 행실을 조심하는 것 그것이 중요한 자녀사랑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행실을 따라함으로 소리나 지르고, 싸움이나 하고 그러면 모두 따라서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자식들도 그렇게 합니다. 거짓말하면 거짓말을 가르칩니다. 운전할 때도 조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자식에게 좋은 아빠가 되고싶습니다.

    둘째. 자녀들에게 투자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교육열은 참 좋습니다. 유태인들 다음으로 교육열이 높다고 합니다. 있습니다. 못먹고 못살아도 자식을 가르칠려고 합니다. 이것이 좋은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계속 그래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자원이 없으므로 자식을 자원으로 삼아야 합니다. 기술이나 자원이 없으면 후진국이 됨으로 교육에 투자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저번 영국에 갔을 때 크게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영국이 교육에 별로 인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목사님 딸이 웨스터민스터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학자금이 1년에 우리돈으로 3천만원 소요가 된답니다. 또 엄청나게 공부도 한다고 합니다. 학생 7~10명당 교사1명으로 학생들의 못한 부분에 대하여는 교사가 개인지도로 밤을 새워가며 가르칩니다. 고등학교 때 벌써 세익스피어를 다 읽고 토론하는데 우리나라 영문학 박사보다 더 깊게 이해하도록 문학박사, 시인들이 토론하고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특기를 발견하고 전문가로 훈련시킵니다. 예절로는 걷는 것부터 식사에티켓, 차 타는 것, 심지어 대화할 때 눈을 어디에 둘 것인가 까지 가르쳐서 최고 영국지성으로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동물과 인간의 능력차이가 무엇으로 크게 갈라지는 줄 아십니까? 학습입니다.
    사람은 학습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습니다. 그러므로 학습시키는데 투자해야 합니다.     공부시키는데 드는 돈은 아까워해서는 안됩니다. 저는 돈에 대한 세가지 자세를 갖고있는데 그것은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 남을 도와주는 것, 자녀 교육에 투자하는 것은 아까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이것 하나는 알자. 즉 아이들의 적성을 알고 그것에 투자해야 합니다. 4년제 대학 안가고, 기계를 잘 알고 좋아하는 아이는 그 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고, 요리를 잘하는 아이는 요리공부를 시키고, 유학까지 보내면서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저희 둘째 오뚜기는 게이머가 되겠다고 합니다. 무슨 게임인가를 하면서 무기를 사고 팔고해서 돈도 벌었답니다.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교육시킬 생각입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대부분 자식의 행복을 위해 교육시키는 것이 아니고 자기 원풀이를 할려고 교육을 시킵니다.  그러면 그 자식이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 자식이 부모를 존경하지도 않습니다. 하니님이 주신 적성을 키워 아이들이 평생 재미있게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신앙이 전통을 남기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믿음을 전통으로 남기도록 하나님을 가르치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식의 신앙생활에는 무관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참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앞에 신명기  6장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①가르치고,  ② 이야기해  주라 ③ 손과 이마에 매라고 말씀하십니다.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가정이 신앙의 교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만 맏겨서는안된다. 신앙은 지식전달이 아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오히려 예배하러 오는 것이지 배우러 오는 것이 아니다.
    신앙의 교실은 가정이고, 부모가 교사다. 가정은 잠자는 곳이 아니고, 밥먹기위해 모인는 곳이 아니고 신앙교육과 인격교육이 이루어지는 교실이 되어야 한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이삭의 가정 교육의 실태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몇년전 부모를 죽인 유학생이나 젊은 교수로부터 그 잘못된 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내 자식 어떻게 키워야 할까? 행복할까?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부디 오늘부터라도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바르게 자식교육해서 우리 자녀들이 우리들 보다 더 낳은  복과 값을 누리는 인생을 살도록 씨를 뿌리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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