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를 잇는 하나님의 축복을 위하여(신 6:1-9)
  • 조회 수: 80, 2013.01.27 20:08:00
  • 이는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 명하신 바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행할 것이니,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라.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의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1∼9>

    내 자손 만대에 대를 이어가서 하나님의 축복을 계속 간증할 수 있을까? 오늘 본문 말씀 4, 5절 보면,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택하신 백성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율법을 통해서 죄를 깨달으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 살면 이 모든 복이 너에게 임할 것이니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가도 복을 받을 것이다. 복받는 비결을 알려주는 것이 율법을 기록한 목적입니다. 신명기 7:12절 이하 말씀에 보면,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라.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로 번성케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케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케 하시리니 네가 복을 받음이 만민보다 우승하여 너희 중의 남녀와 너희 짐승의 암수에 생육하지 못함이 없을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하사 너희가 아는바 그 애굽의 악질이 네게 임하지 않게 하시고 너를 미워하는 모든 자에게 임하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말씀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말씀 가운데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명령이라는 말은 히브리말에 [미초하]라 하는 낱말로 표현되는데 그 뜻은 책임을 지우다, 결속시키다, 침묵을 하며 순종하다, 세워주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한 것을 우리가 지켜 살면 하나님과 우리가 결속되어질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결속된 그들을 하나님은 또 그들을 높여 세워준다는 뜻이 있습니다. 규례를 지키라는 말, 이 말은 진리, 의무, 옳게 결정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 문서화되고 법령화되어 있는 진리의 말씀을 지켜 살면 그것을 의무로 알고 그것이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따르게 되면 이 모든 복이 너희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또 법도를 지키라, 이 법도를 지킨다는 말은 재판하다 는 뜻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이웃에 대하여,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다하는 것이 법도입니다. 이와 같은 명령 규례 법도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데 그를 지키는 방법으로는 네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무엇이냐? 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가장 깊고 중요한 부분을 의미합니다. 렘 11:22절에서는 이 마음을 심장으로 번역했고, 예레미야애가 3:21절 말씀에는 이 마음을 중심이란 말로 번역했고, 잠 4:23절 말씀에는 이 마음은 생명의 근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되 내 속 중심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또 성품을 다해서 사랑하라고 했는데 성품은 생명을 의미하고, 영혼을 의미하고, 의지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되 생명을 다하여 사랑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 여기서 힘이란 열렬히 심히 대단히 극히 라는 뜻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대단한 열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 전 인격을 다하여 생명을 바치듯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과 생각이 오직 하나님께로만 집중되어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세상을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은 다 거짓말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간음하는 여자들과 같다는 말씀을 약 4:4에서 말합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 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이 있는 여인이 자기 남편 제껴놓고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돌아가면 본남편이 가만히 있을 리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에는 하나님을 남편으로 믿는 사람을 아내로 비유하여 가르치면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너희에게 임한다 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은 모든 창조주가 되시고, 소유주가 되시고, 우리의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모든 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그 복을 받아 누리는 우리 인생이 그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배신하는 일이므로 만복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 그 자체가 저주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 8:17절 말씀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워 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엡 6:24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비밀을 깨달았던 사도 바울은 그의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사랑해선 안될 것을 사랑하지 말고, 사랑해야 할 대상을 사랑하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가르쳐줍니다. 아들 디모데야,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 고통을 당하는 이유를 네가 아느냐? 그 이유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아들 디모데야, 너는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했습니다.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우리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신령한 복, 그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바로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하였습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온 세상에 임할 환란의 때에도 말씀 지켜 살면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준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씀 지킬 수 있습니까? 말씀이 마음에 새겨진 사람입니다. 너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두라고 했습니다. 욥 22:22에 청컨대 너는 그 입에서 교훈을 받고 그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알면 그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겨두고 그 말씀을 지켜 살아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복된 말씀을 깊이 간직하고 지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우습게 알고 하나님을 경멸히 여기는 사람은 그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고 지켜 살지 않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을 거룩한 두려움의 존재로 알고 그 앞에 경배하며 말씀을 지켜 살면 잠 14:27절에 이런 약속이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하였습니다. 신명기 5:29절에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나의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받기를 원하노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났다 할지라도 곧바로 뛰어다닙니까? 걸음마를 할 때 몇 번씩 넘어집니다. 자전거를 잘 탈 수 있기까지는 몇 번 넘어진 경험이 필요하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무궁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아직 어리고 철부지한 어린아이 같아서 늘 넘어지고 쓰러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를 찾아와서 붙잡아주시는 사랑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우리가 오늘날 이곳에 설 수 있습니다.
    여러분, 구약 시대에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 인구조사할 때에 보면 어린아이는 백성의 숫자에 넣지 않았었습니다. 이십세 이상된 남자들만 인구 숫자에 넣었지요. 또 사회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신분을 얻기 위해서는 나이 삼십세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이 영적 세계에도 있습니다. 그 사람의 믿음이 어린아이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는 오래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어른스럽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송아지는 태어나자마자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건만 우리 인생은 왜 이렇게 태어난 지 일년이 되어도 뛰지 못하지요? 그러나 인간은 더디 자란 것 같지만 거기에 교육이 있고, 훈련이 있는 한 만물의 영장으로 우뚝 섭니다. 교육이 있고 훈련이 있을 때.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훈련이 있을 때 나중된 자가 먼저 될 수 있고, 먼저 된 사람이라도 교육을 싫어하고 훈련을 싫어하는 사람은 삼십년 믿어도 엊그제께 나온 초신자만도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여러 번 실수하고 넘어진 어떤 사람이 있어도 한 번 택한 백성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잡아 줍니다.
    베드로의 경우를 보십시오. 베드로처럼 실수 많이 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끝내는 베드로가 위대한 사도 중 하나가 됩니다. 수제자가 됩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실수를 한번 범하면 그 다음에 열 가지를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부족을 깨닫고 금방 회개하고 돌이킨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죄를 안 범해서가 아니라, 죄를 범해서 실수를 해도 깨우치고 돌아서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사랑하시고 붙잡아 주시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베드로의 생애를 한번 연구해 보면, 베드로가 참 실수가 많은 사람이었어요. 마 14장에 보면,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자, 예수님이십니까? 하고 확인한 이후에 나도 좀 예수님같이 물위를 걷게 해달라고 요청하잖아요? 그래, 물 위로 걸어! 물 위로 걷게 됩니다. 그러나 얼마 못 걷다가 바람을 바라보고, 파도를 바라보고 무서워할 때 빠져가잖아요? 주님만 바라보고 걸었으면 걸을 수 있었을 텐데 주님 아닌 다른 것을 바라보니 마음이 흔들렸어요. 실수한 거예요. 그래도 주님은 그 베드로에게 손을 내밀어 건져 주지 않습니까? 요 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줍니다. 베드로는 나는 절대로 씻지 마십시오. 어떻게 제자가 선생님의 발을 씻어 드려야지 선생님이 제자의 발을 씻을 수 있단 말입니까? 이것은 말도 안됩니다. 안돼요. 안돼. 내가 네 발을 씻지 아니하면 너와 나는 아무 상관이 없다. 자기 생각과 주장이 너무 강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실수를 자주 해요. 마 26장에 보면, 다른 사람은 다 주를 버릴지언정 나는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장담을 합니다. 몇 시간도 못 가서 나 예수님 몰라요 하고 여종 앞에서 비겁하게 거짓말하고 도망갔던 베드로, 이렇게 허물 많고 죄많은 베드로인데 주님이 끝까지 붙잡아 주셨어요. 나중에 깨달아요. 뭘 깨달아요? 나 같은 죄인도 주님이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니 이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주님 날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나도 이제 주님을 위해서 죽겠습니다 하고 거꾸로 못 박혀 순교할 때까지 복음을 전했던 충성스런 일꾼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사랑이에요. 그래서 자식들이 어려서 철이 없어 부모의 은혜를 알지 못할 때는 속을 썩일 수 있지만은 언젠가 자라서 깨달으면 불효했던 자식이 깨닫고 회개하면 더 큰 효도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깨닫고 변하여 새로워지면 과거에 적지 않게 피해를 입혔던 사울도 진리 깨닫고 회개하니 가장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은 불가능이 없을 줄 믿습니다.
    문제는 오늘 우리가 이 세상이 좀더 달라졌으면 좋겠는데, 좀 밝아졌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해야 될까?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조직을 새롭게 하고 제도와 법을 고쳐야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건국이래 우리나라 법을 수없이 고쳤습니다. 바꿨습니다. 그런데도 범죄율은 높아만 가고, 이혼율도 높아만 갑니다. 고쳐야 할 것은 법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고쳐야 합니다.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순종해야 합니다.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모든 사람 내 몸처럼 사랑하는 법, 이 법 가르치고 이 법 실천하면 싸움은 없습니다. 저주는 없습니다. 사랑의 법을 배우고, 사랑의 법을 실천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그 곳에 임하는 줄로 믿습니다. 대를 잇는 복받는 일은 무엇이냐? 먼저는 내 자신들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 말씀 지키는 것이요, 그 다음에는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이 말씀을 또 가르쳐서 그들도 하나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도록 하면 대를 잇는 축복이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본문 6절에서 9절 말씀에,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자녀를 하나 둘만 낳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녀들에 대한 교육에 관심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래서 옛날 같지 않고 요즘에 고학력자가 많습니다. 박사학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회는 더 혼란하고 믿을만한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렵습니다. 사람다운 사람이 많지 못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은 기독교 교육, 하나님의 사랑의 법도를 가르치고 배우고 그리고 지켜 행하는 것밖에 없는데 성경교육, 예수님에 대한 교육을 제껴놓고 다른 것만 우선순위에 두기 때문에 이 세상이 자꾸 어두워져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기 위해 아니 대를 잇는 축복을 하나님이 주시기 위해서 명령내리신 것이 있습니다. 이 명령이 바로 오늘날 히브리민족의 교육대헌장의 전문으로 채택된 말씀인데 그것은 바로 창 18:18,19절 이하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아브라함아 내가 너를 부를 때에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니라고 말씀했지? 그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네가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너와 네 가족, 네 자식들에게 여호와의 법도를 가르쳐 지켜 행하도록 하라. 그리하면 네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만민이 너로 인해서 복을 받게 될 것이고, 대대에 믿는 축복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랬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녀교육에 있어서 제 일순위에 학과목은 성경이에요. 자녀에게 있어서 부모는 자녀의 영성을 키워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은 하나님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어떻게 가르쳐요? 부지런히 가르치라 그랬습니다. 부지런히 가르치래요. 여러분, 네 자녀에게. 네 자녀가 누구냐면 하나님의 언약을 계속 이어 가야할 당사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네 자녀는 광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많이 경험하지 못한 제2세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또 아직은 어리기 때문에 사악한 세상문화에 동화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 그게 네 자녀들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문화는 타락문화로 음란한 문화로 계속 빠져가요. 그래서 중학생이 아이를 낳았대요. 선생님이 제자하고 무슨 원조교제를 했다나? 이렇게 험악한 세상에 우리 자녀들이 살아요. 어떻게 그들이 죄악의 유혹을 물리치며 어둠의 세력을 몰아내고, 경건하며 거룩하며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요? 세상 교육만으로는 안돼요.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야 되요. 그래서 가르친다는 말은 히브리말에 [샤난]이란 낱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날카롭게 하다, 찌르다 는 뜻이에요. 하나님 사랑에 대한 일에서 칼로 찌르듯이 그 마음에 신선한 충격을 주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 말씀을 새겨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가르쳐요? 잠깐 앉아있는 동안에도 하나님 말씀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길을 걸어갈 때도 하나님 말씀 해주라는 것입니다. 잠자리에 누웠을 때에도 하나님 말씀 해주라는 것입니다. 잠에서 깨어 일어날 때도 말씀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항상 기회가 있을 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아직 자녀들이 어리거나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가정교사가 되어야 되요. 가정에서 이 말씀을 잘 가르쳐야 되요. 안타까운 것은 부모된 사람들이 집에서 TV보는 시간은 있으면서 성경은 안 보니까, 자식들이 뭘 본받겠어요? 좋은 부모가 좋은 자녀 만들고 나쁜 부모가 나쁜 자식 만드는 거예요.
    여러분, 찰리 채플린이란 배우를 압니까? 세계적인 희극배우, 그만 나오면 다들 배꼽을 움켜쥐는 거요. 얼마나 웃기는지.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희극배우가 된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 있습니다. 그는 가난했어요. 학교에 갈 수 없었어요. 런던의 빈민가를 떠돌면서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갱단 속에 파묻히기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나쁜 것 배웠어요. 식품 포장지에 붙어있는 음식 찌꺼기 같은 것 먹고 자랐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림책을 빌려 보다가 그 속에서 그리스도의 수난, 출애굽, 그리고 성경이야기를 만화책에서 보게 되요. 그러면서 그는 만화책에 나오는 성경이야기, 그리고 성경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 그런 주인공이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그리고 만화책을 계속 봤어요. 그 천태만상으로 나타난 여러 인물들의 흉내를 냈어요. 어머니가 가만히 보니, 흉내를 잘 내고 어떤 표정이 익살스럽고 하여 저 아이는 희극배우를 시켜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또 어머니도 약간의 끼가 있어 가지고 자기 집에서 아이를 가르쳤어요. 흉내내는 것, 웃기는 것, 말 흉내내는 것을 배웠어요. 그 어머니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가정은 학교고 어머니는 교사다. 그래서 열심히 만화책을 보게 했어요. 만화책을 보면서 만화책에 나타난 여러 인물들, 천태만상의 모습들을 표현하게 만들었어요. 그게 나중에 찰리 채플린이라고 하는 유명한 사람을 웃기는 희극배우로 만들었어요. 물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라고 가르쳤어요.
    반대로 세계의 살인마, 유태인을 증오해서 600만 명을 학살했던 히틀러의 얘기를 아십니까? 그가 왜 그렇게 못된 짓을 했을까? 심리학자들의 얘기입니다. 유태인에 대한 나쁜 감정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에 대한 나쁜 감정을 언제 어떻게 그가 갖게 되었는가? 그의 나이 일곱살때 일이에요. 자기 아버지가 어떤 직장 일로 멀리 출타를 했어요. 그런데 이웃에서 사는 유대인의 남자가 항상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멋쟁이 유대인이 한 명 살고 있었는데 히틀러의 아버지가 집을 비우는 날이면 그는 의례히 자기 집에 찾아와 어머니와 함께 히히덕 거리면서 장난을 치다가 히틀러 아버지의 침실로 들어가 한 두시간 있다가 나오는데 그 후에 보면 그의 단정했던 머리가 막 흐트러져 있는 것을 히틀러는 보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히틀러의 어린 가슴속에 유태인에 대한 증오심이 싹트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그 증오심이 폭발해서 유태인 600만 명을 학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부정, 이웃에 사는 아저씨의 부정한 행실이 한 어린아이 가슴속에 각인이 되었어요. 결국 나쁜 어머니가 나쁜 아들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자식들 잘못한다고 야단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 일의 원인이 부모에게 달려있어요. 학교 선생님이 얘들 인성교육에 책임을 못 져요. 오늘의 교회와 오늘의 기독교 가정만이 우리의 자녀를 끌어안고 울 수밖에 없는 거예요.
    여러분은 세계적인 음악가 멘델스존을 잘 아시지요? 그는 아버지가 은행에서 근무를 했고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세계적인 음악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도움이 컸던 것입니다. 그는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즐길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줬어요. 그래서 베르거라고 하는 피아노 대가에게 레슨을 시키고 체르터라고 하는 작곡가에게 아들을 맡겨요. 그리고 늘 어린아이 마음속에 희망을 심어줬어요. 너는 세계적인 음악가가 될거다.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어요. 너의 피아노 솜씨는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어 울리는 능력이 있을 것이고, 너는 음악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너를 축복할 거다. 늘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사람이 여행을 많이 해봐야 마음도 넓어지고 식견도 많아진다 하고 아이를 데리고 여러 나라를 여행도 했어요. 결국은 멘델스존은 독일의 낭만주의 음악의 대가로서 큰 영향을 끼쳐요. 자식은 부모님의 소유물이 아니에요. 자식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맡겨주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여러분은 관리자일 뿐이에요. 관리를 잘해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을 하고, 붙들고 기도하고, 안되면 예수님 말처럼 울어야 돼요. 예루살렘 딸들아, 날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를 위해서 울라 그랬어요.
    디모데라고 하는 젊은 목사가 당시의 가장 컸던 에베소 교회의 목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사도 바울이 그 이유를 밝히지요. 네 외조모 할머니와 네 어머니에게 있던 믿음을 네가 전수했구나. 전수 받았구나. 너희 외할머니에게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너희 어머니에게도 있었고 어머니에게 있었던 믿음이 너에게도 흘러왔구나. 대를 잇는 영적이 축복이 오늘날 젊은 디모데가 큰 교회를 다스려가는 지도자가 되게 했다고 했어요. 예수님의 제자는 태어난 게 아니고 만들어지는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성경 많이 알았던 디모데에게 바울은 다시 촉구합니다. 어려서 배웠다고 자만하지 말고 성경 다시 배워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사람다운 사람입니다. 사람다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바로 해야 인간관계도 바로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이 가장 제 이의 원인이 되는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칠 뿐 아니라 그것도 부족하다. 시각적으로 깨닫도록 손목에다 하나님 사랑하라는 말씀을 써서 매게 하고 하나님 사랑하는 말씀을 가죽에 써서 이마에 붙이고 다녀라. 그것도 모자란다. 하나님 사랑하라는 말씀을 써 가지고 문설주와 문기둥에 붙여놓고 들락날락 할 때마다 그 말씀을 외우게 하라는 것입니다. 손목에 매라는 말은 손은 활동의 대명사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하라는 말이고, 미간이란 말은 뭘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생각하면서 일하라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유대인들은 교육을 시키기 때문에 세계에서 범죄율이 가장 낮은, 이혼율이 가장 낮은 민족,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이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이 따로 있나요? 어렸을 때부터 성경 가르치고 어렸을 때부터 말씀 가르치는 것, 오늘날 유대인인 줄로 믿습니다. 세상 쾌락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다가 망한 사람은 있어도 하나님 사랑하고 계명대로 살다가 고난 당한 사람 치고 끝내 복받지 않은 사람이 없고 부모가 바르게 살아야 자식들도 그 뒤를 이어서 대를 이어 축복을 받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이번 주 토요일부터 어린이 성경학교가 개설됩니다. 여러분들이 가정에서 성경을 충분히 가르치지 못한 부분을 교회학교 선생들이 맡아서 가르칠 거예요. 곧 이어질 중고등부 수련회도 마찬가지예요. 세상 공부 때문에 내 영혼을 바로 세우는 교육을 회피한다면 어찌 그 자식의 장래가 밝을 수 있겠어요? 부모가 문제예요. 우리들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복을 받아 내 자식들은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하여 더 큰복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해서 평생 후회없는 보람된 인생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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