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 2:1-12/ 동방 박사들의 방문
  • 조회 수: 639, 2013.11.12 20:11:33
  •  어느 나라든지 새로 대통령이 취임하면 국내외에서 많은 대표들이 방문해서 축하를 하고 예물을 바칩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취임식장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취임을 준비하는 쪽에서는 아주 세심하게 취임식에 참석할 자들을 선별합니다. 대개 외국의 원수들이 국빈의 자격으로 초청이 됩니다. 그리고 국민들 중에서도 대표성을 가진 자들이 초청됩니다. 예를 들면근로자 대표나 혹은 소년 가장들  혹인 올림픽 경기같은데서 금 메달을 딴 사람들이 초청될 것입니다. 
     옛날에는 왕의 취임만이 아니라 앞으로 왕이 될 왕자가 태어나면 거의 취임식에 가까운 축하 행렬을 맞이하게 됩니다. 대개 그 나라와 관계가 있는 나라의 왕이나 대신들이 방문하여 장래 왕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그런데 대개 초청되지 않는 나라나 혹은 초청되어도 오지 않는 나라 사람들은 관계가 좋지 않거나 적대 관계에 있는 나라들입니다.
     유대인들은 태어날 왕에 대하여 중요한 두 가지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이 왕을 정치적인 왕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들을 정치적으로 해방시킬 영웅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오해는 이 왕은 유대인들의 왕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마태는 앞으로 태어날 왕이 결코 유대인들의 왕이 아닐 것을 놀라운 한 가지 사실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 베들레헴에 태어났을 때 유대인들 중에는 어느 누구도 초청을 받지 못하고 반대로 아주 먼 곳에 있는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와서 경배하고 예물을 바친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결코 유대인의 왕이 아닌 것을 보여 줍니다.

    1. 동방 박사들의 출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아주 옛날부터 선지자들이 예언해 왔던 그 왕의 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도 평범하게 태어나셨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탄생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은 동방 박사들의 출현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누군가가 왕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로 알게 하였습니다. 
     1,2절,“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동방의 박사들의 출현은 너무나도 급작스럽고 돌발적인 것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들은 이 사람들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또 정확하게 어떻게 해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고 예루살렘까지 오게 되었는지 아무 것도 모릅니다. 우리들은 물론이고 그 당시 예루살렘 당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이 박사들에 대하여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오직 하나 그들이 어떤 별을 보고 새로운 왕의 탄생을 알았고 그들은 먼 동방에서부터 그 왕에게 경배하기 위해서 왔다는 것뿐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인간이나 나라의 운명이 미리 정해져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정해진 운명을 별을 관측하면 알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고대에는 가장 뛰어난 과학자가 점술가들이었고 그들은 귀족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주장하는 동방이 어딘지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점술가들이 여러 명 씩 그것도 아주 귀한 예물을 가지고 온 것을 보면 한때 아주 문명이 발달했던 곳이 아니면 안될 것입니다. 고대에 점성술이 발달한 곳은 역시 바벨론이나 페르시아였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로마에 속해 있었고 로마 황제가 아닌 다른 왕에게 경배한다는 사실을 두려워서인지 그들은 자신들이 온 곳을 그냥 동방이라고만 말했습니다. 한때 북한을 탈출한 한 가족은 어디를 목표로 하고 탈출했느냐고 물었을 때 그냥 ‘따뜻한 남쪽 나라’고만 대답을 했습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라고 밝히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바벨론이나 페르시아에서 온 점술가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다른 왕에서 경배했다는 혐의를 받고 싶지 않아서인지 동방이라고만 밝히고 있습니다. 교회의 전설에 의하면 그들은 세 사람이었고 이름이 카스파, 메키오르, 발다사르라고 하는데 신빙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거의 모든 사람들의 무지와 무관심에 묻혀서 완전히 묻혀질 뻔 하였는데 생각지도 않은 동방의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나타나서 그의 별을 보고 찾아 왔다고 하는 바람에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동방이 어딘지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별의 출현에 대해서도 의문이 많습니다. 과연 그때 어떤 천체에 이상한 이상이 있기는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이 과연 새로운 별이 나타난 것이냐 아니면 이들에게만 어떤 천체에 이상이 감지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새로운 별이 나타났다면 당시에 별을 관측하던 점술가들이 전 세계에 깔려 있었는데 어떻게 해서 이 사람들만 이 이상한 별을 보았고 어떻게 해서 이들만 찾아오게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때 어떤 한 특별한 별이 떠올랐을 것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어떤 분은 이들에게만 어떤 천체의 이상이 감지되어 별처럼 보였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저는 어떤 특별한 별이 나타났을 수도 있고 이들에게만 특별한 천체의 이상이 보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어떤 새로운 한 별을 보고 한 왕의 탄생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별을 보고 왕을 경배하기 위하여 먼길을 여행하여 예루살렘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잘못했으면 아무도 모르는 체 넘어갈 뻔했던 한 아기의 탄생이 별을 관측하던 동방의 박사들의 출현으로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들을 초청하신 것입니다. 자기 백성들은 완전히 무지와 죄의 어두운 잠에 빠져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먼 것의 손님들을 보내어서 영적으로 잠자던 그들을 흔들어 깨우셨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집의 아들이 올림픽 경기에서 금 메달을 땄는데도 그 식구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외부에서 텔레비젼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오고 신문사 기자들이 취재를 하겠다고 몰려 올 때 겨우 그 집에서는 자기 집에 무슨 일이 나기는 났구나 하는 것을 비로소 깨다는 것과 같습니다. 당사자인 유다 백성들은 완전히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데 오히려 수천 리 밖에 떨어진 동방의 점술가들이 몰려와서 새로운 왕의 탄생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면 이들은 어떻게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특별한 별의 출현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왕의 출생 보다 더 큰 별의 출현을 보고 온 세상을 뒤엎을 한 왕이 탄생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사실 별을 보고 개인이나 나라의 운명을 알아낸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미개한 미신에 속합니다. 옛날에는 그것을 최고의 과학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점술가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출생을 알 수 있도록 천체의 이상이 있게 하셨고 이들로 하여금 그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들은 도저히 이런 방법이 아니면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는 그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의 구주만이 아니십니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먼 동방에 있는 이 점술가들의 구주도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사람이나 나라의 운명을 별로 표시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나 이들은 도저히 이 방법이 아니면 자기들을 구주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알 수 있는 방법을 통하여 구주의 탄생을 알리셨습니다. 
     오늘 우리 스스로의 지각으로 그리스도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가 베들레헴에 태어났지만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동방에 있는 박사들에게 알게 하셨습니다. 그것도 그들의 알고 있는 점성술을 사용해서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 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단지 성령이 그 위에 비둘기같이 임하는 것을 보고서야 그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증거한 것이 있습니다. 인간의 지각으로 그리스도를 알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별로 이끌어 주시든지 눈으로 비둘기를 보게 하시든지 어떻게 해서든지 이끌어주시고 알게 해 주셔야 그를 알 수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그리스도와 가까이 있다고 해서 그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무지의 수건을 벗겨 주셔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게 된 것도 별들의 인도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교회에 와서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별이 자기를 인도한 것이 아니라 ‘빵’이 자기를 인도했다고 합니다. 성탄절에 교회에 빵을 얻으려고 갔는데 그때 우연히 위대한 왕의 탄생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인의 이끌림을 받은 사람도 있고 친구의 이끌림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과 같아서 별이 이끌든 개가 이끌든 누군가가 이끌어 주지 않으면 결코 그리스도에로 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내게 올 자가 아무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동방 박사의 출현을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알리신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으로는 그가 성경의 예언대로 유대땅 베들레헴에 태어나셨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한 둘도 아니고 또 그리스도는 그곳에 사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별을 움직이고 먼 동방의 박사들을 움직이셔서 구주의 탄생을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깨워서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누가복음 2장의 기록과 마태복음 2장의 기록을 함께 보면 그의 탄생에 초대된 사람들은 몇 명되지 않았습니다. 베들레헴 근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과 먼 동방에서 온 점술가들과 마구간에 있던 말이나 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 왕의 사역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는 바로 이 가나한 자들과 먼 이방 땅에 있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십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왕이 아니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구원은 가축같은 짐승들에게도 미치고 궁극적으로는 저 하늘의 별들도 새롭게 할 우주적인 구원이었습니다. 
     그의 구원은 동심원적으로 확산되어집니다. 먼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하늘 나라에서 쫓겨납니다. 그 대신이 이 동방의 박사들 같은 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그의 구원은 사람들의 구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가축이나 짐승들도 변화될 것입니다. 나중에서는 저 하늘의 별들도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 하늘이나 바다는 죄의 잠에 빠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주님의 구원이 완성될 때에는 하늘의 별이나 바다도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주님이 태어났을 때 한 별이 대표격으로 주님을 찬양한 것 같습니다. 그 별이 어떤 별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는 온 하늘이 새롭게 창조되어 살아서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2. 예루살렘의 반응.

     동방의 박사들은 별을 따라서 예루살렘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새로 태어난 왕이 예루살렘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왕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3절,“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동방의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들어 올 때까지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옳은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왕으로 태어난 자가 왕도인 예루살렘에 있어야 할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방문한 목적을 이야기했을 때 그들은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왕궁에는 새로 태어난 아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왕궁에서 태어나지 않은 새로운 왕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바로 앞으로 이 나라에 엄청난 난리와 혼란의 소용돌이 몰아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동방 박사들의 말을 듣고 헤롯과 온 예루살렘이 소동을 했습니다. 물론 헤롯과 예루살렘 사람들은 각각 다른 의미에서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헤롯은 유대인이 아닌 유대인 왕이었습니다. 그는 에돔 사람이었는데 에돔 사람들이 강제로 이스라엘에 편입이 되면서 이스라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로마에 의하여 유대 왕이 되었는데 유대인들이 그를 좋아 할 리가 없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환을 사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는데 또 로마 황제를 위한 다른 이방 신전도 건축해서 유대인들이 그를 싫어했습니다. 헤롯은 왕위에 대하여 거의 병적인 집착을 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자기 아내나 자식까지도 의심해서 죽였습니다. 그러니까 왕궁에서 태어나지 않은 새로운 왕의 탄생 소식은 바로 헤롯에게는 선전 포고와 같았고 예루살렘 사람들에게는 이 아기로 인하여 일어날 것 같은 엄청난 난리와 전쟁의 두려움으로 온 성이 끓어올랐습니다. 
     평소의 헤롯 성격 같았으면 이 박사들의 말을 듣고 질투심에 끓어올라서 당장 이 박사들을 잡아 죽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음모를 꾸밉니다. 왜냐하면 이 박사들의 인품으로는 절대로 거짓말할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먼저 성경을 아는 자들을 불러서 이 왕이 어디서 태어났겠느냐고 묻습니다. 
     4-6절,“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가로되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놀라운 것은 헤롯이 유다의 점술가들을 부르지 않고 바로 성경학자들을 불렀다는 것입니다. 점술가들의 말을 확인하려면 다른 점술가들의 말을 들어 보았어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유다에는 점술가가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헤롯이 이 왕의 이야기를 듣고 오래 전부터 성경에서 예언된 그 왕의 출현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두 가지로 확인될 수 있는데 하나는 성경학자들에게 그 왕의 탄생 장소는 확인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박사들에게 자기도 그 왕에게 경배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헤롯도 유대 땅에 앞으로 한 왕이 태어날 것이며 그의 탄생 장소에 대한 예언이 구약 성경 어디엔가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왜냐하면 구약 성경은 어디를 들치든지 바로 이 왕에 대한 예언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유다땅 베들레헴’이라고 대답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이제 베들레헴은 큰 일 났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헤롯의 이 엄청난 질투심이 베들레헴을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은 베들레헴에 바로 그 메시야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아무도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 새로운 왕의 탄생 소식은 바로 헤롯에게는 선전포고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베들레헴에 가기는커녕 오히려 베들레헴에 있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아기의 탄생은 예루살렘을 완전히 두려움과 공포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동방 박사들 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실이 말해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왕은 유대인들의 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새로 태어난 왕이 유대인들의 왕이라면 그들이 경배하러 갔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나 먼 곳에서 온 이방인들은 경배하러 갔는데 그들은 가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들은 헤롯의 노여움을 살 까봐 갈 수 없었다고 변명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왕의 탄생은 결코 평화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전쟁의 소문과 같았습니다. 
     예루살렘의 서기관들이 헤롯에게 베들레헴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이 빠트린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왕의 신분이었습니다.
     미가 5:2,“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가장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구약 성경은 앞으로 태어나실 이가 분명히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일 것이라는 것을 반복해서 말씀했습니다. 여기서도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그는 평범한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왜 우리들의 일에 태초부터 계시던 신이 와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가 태어날 곳이 베들레헴이라는 말만 하고 그의 근본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 문제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야 했는지 그 이유를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우리가 힘들어하는 것에 힘을 주시고 축복해 주시면 되는 것이지 왜 굳이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야 합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온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으면서도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사람들은 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야 했는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세상에 사람들의 힘으로 어려운 것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굳이 사람들의 일에 태고적부터 계시던 하나님이 오셔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결국 그것은 우리가 사는 본문과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냥 이 세상에서 밥 먹고 결혼하고 돈 벌고 사는 것이 정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정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처음부터 우리가 만들어진 목적입니다. 하나님과 관계없이 먹고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신적인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 일을 해내려면 우리는 처음 만드신 하나님 자신이 오셔야 하는 것 밖에는 아무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랑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죄에서 해방되어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살게 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입니다.
     올림픽 금메달이나 혹은 잃어버린 나라의 독립보다 더 엄청나게 어려운 것입니다. 예수를 바로 안다는 것은 바로 이 세상과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며 죄와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3. 헤롯의 음모와 하나님의 인도.

     헤롯은 동방 박사들을 이용해서 아기가 있는 곳을 찾아내어 아기를 죽일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부드러운 얼굴로 박사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7,8절,“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든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헤롯이 박사들에게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물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기의 나이를 알아내기 위해서입니다. 아마 박사들이 예루살렘까지 오는데는 5,6 개월 정도 걸렸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박사들이 찾아 온 때는 이미 아기가 5,6 개월 정도 자란 때였습니다. 헤롯은 아기를 찾으면 자기에게 알려달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도 그 아기에게 가서 경배를 하겠다고 합니다. 
     박사들은 예루살렘에서 나온 후 다시 그 별을 보고 기뻐하고 기뻐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엄청나게 기뻐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그들이 별을 보고 기뻐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예루살렘 분위기에서 너무나도 억눌렸고 심리적으로 심한 혼란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왕의 별을 보고 찾아 왔습니다. 분명히 이스라엘 나라에 그 왕이 난 것 같아서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에 찾아갔는데 예루살렘은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실제로 왕궁에는 왕으로 태어난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왕으로 찾아 온 자는 지금 이 왕이 아니고 앞으로 이 왕의 세력을 둘러엎고 새로 왕이 될 자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공연히 별을 잘못보고 오는 바람에 한 나라를 완전히 내전의 상태로 몰아 넣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별을 보는 순간 그들은 자신들의 처음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분명히 왕이 태어났고 그 왕의 별은 자기들을 구체적으로 인도하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별은 그들의 길을 인도했고 아기가 있는 곳 위를 비추어 주었습니다. 이 별은 보통 별이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살아난 유일한 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이방인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왕을 알아 볼 수 있도록 초자연적으로 사용하신 한 별인 것같습니다. 
     11절,“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함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우리가 이 박사들이라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물론 이때는 아기 예수가 태어난지 5,6개월이 지났기 때문에 마구간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 어디선가 방을 구해서 아기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혀 왕의 가족 같지가 않습니다. 마리아는 가난하고 평범한 여자였습니다. 
     남편이 어디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왕은 분명히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이 아기가 그 왕이라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기께 경배하고 예물을 바쳤습니다. 
     아주 옛날에는 큰 왕이 태어나면 먼 곳에서부터 사신이 와서 왕께 예물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선물은 의미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는데 이것은 그들의 소원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황금은 이 나라가 아주 번성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유향을 아주 귀한 것입니다. 이 왕이 아주 존귀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몰약은 썩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 왕의 통치가 영원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도 아기가 돌이 되면 앞에 연필과 돈을 두어서 연필을 집으면 학자가 될 것이라고 하고 돈을 집으면 부자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먹을 것을 집으면 아주 잘 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런 것은 좀 유치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믿음의 눈으로 아무 신하도 없는 이 왕이 앞으로 죄악의 세상을 이기고 높은 자리에서 영원히 다스릴 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는 이 박사들의 믿음이 여러 단계를 걸치면서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처음에 호기심으로 찾아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이들의 믿음은 엄청난 절망과 좌절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나와서 다시 별을 보면서 이들의 믿음은 회복이 되었고 아기를 보고 난 후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고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2절,“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함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아기를 만나고 난 후 이들의 위험은 더 심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꿈에 지시하셨습니다.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고 다른 길로 돌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헤롯은 이들을 분명히 죽이고 아기도 죽이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기를 만나고 난 후 그들은 더 이상 옛날처럼 호기심이나 순간적인 판단에 따라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별 생각도 없이 예루살렘으로 들어 간 것이 바로 베들레헴 아기들을 다 죽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길을 정확하게 인도하셨습니다. 

     오늘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결코 모든 사람이 환영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의 탄생은 새로운 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할 수 있는 대로 이 전쟁에 끼어 들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의 무책임한 서기관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자기들이 베들레헴에 있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다는 듯이 유대 땅 베들레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헤롯의 의도를 안다면 잘 모르겠다고 해야지요. 그들은 그 말로 베들레헴 사람들을 다 죽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초자연적인 인도하심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그리스도를 알 자가 없습니다.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도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알게 된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왕 되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바로 안다는 것은 새로운 영적인 전쟁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호기심으로 신앙을 가진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이며 얼마나 많은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죽게 만드는 것입니까? 
     헤롯으로 하여금 아기에 대하여 그토록 질투하게 만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온 세상을 속이고 거짓으로 지배하려는 마귀입니다. 헤롯은 단지 마귀의 하수인일 뿐입니다.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핍박하는 자는 사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의를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안 후부터는 세상의 말을 믿으면 안됩니다. 자기의 생각을 믿어서도 안됩니다. 이때부터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것은 이미 자기 결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결론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한번 잘 해 봐라는 소리 밖에 더하겠습니까? 아무리 별의 인도를 받아 왔다 하더라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온 길과는 다른 길로 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동방 박사들에게 있어서 아기를 만난 것은 새로운 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결코 유대인들의 왕은 아니셨습니다. 그는 먼 동방 점술가들의 구주이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극동 지방에 있는 우리들의 구주도 되십니다. 우리는 그를 몰랐지만 그리스도는 동방의 박사들의 선물 안에서 우리들의 경배를 받으셨습니다. 
     신앙이 어떤 이념이나 사상을 빋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완전한 정치적인 결단입니다. 마치 어느 가정이 따뜻한 남쪽 나라에 살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배를 타고 북한을 탈출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헤롯의 통치에서 벗어나 베들레헴으로 탈출을 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것들과 누리고 있는 것들을 다 포기하고 목숨을 건 탈출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너무 핑크 빛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헤롯의 마음에 들게 하면서도 훌륭한 그리스도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서기관들처럼 성경이나 잘 알고 헤롯의 비위를 맞추어주면서 예루살렘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왕의 탄생한 줄 알았다면 헤롯에게 베들레헴을 알려주어서는 안됩니다. 모른다고 해야지요. 서기관이 그런 것도 모르냐고 하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지요. 그리고 베들레헴 사람들에게 앞으로 있을 환란과 전쟁을 알려 주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박사들처럼 헤롯을 따돌리고 다른 곳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세상의 기득권을 포기하기 싫어서 왕의 탄생을 들었지만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었습니다. 성경은 알았지만 아무 것도 자신들에게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움직이는 자들의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가 구원해 주기를 기다리면서 다른 사람이나 원망하는 자들은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작은 것을 보고서 확인을 해 보기 위하여 먼 곳을 찾아가고 낙심과 절망 속에서도 끝까지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별의 인도를 받을 수가 있고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별을 보고 찾아 온 믿음은 좋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움직였기 때문에 왕을 뵐 수 있었고 믿음의 눈으로 그 소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성경을 알았습니다. 별에 비하면 태양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것도 손해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나라의 원수로 남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작은 믿음을 자신에게 적용을 하십시다. 오래 믿은 것이나 자랑하고 다른 사람이나 비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희미한 별빛이라도 찾아서 나서는 움직이는 신앙을 가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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