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 ( 룻기 1:11-8)
  • 조회 수: 243, 2013.07.14 17:43:30
  •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보스턴(Boston)해변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일이 계속 되풀이되었는데, 한 노인이 싱싱한 새우가 가득 담긴 통을 들고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갈매기들은 금방 자기들의 친구인 이 노인을 알아보고 그 노인의 발아래 모여들었습니다. 일부 갈매기들은 용감하게도 그의 어깨 위에 올라앉기도 하였습니다. 노인은 가져온 새우를 갈매기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 그러는 동안 노인의 얼굴에서는 환한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갈매기들은 고급요리를 그야말로 마음껏 먹었습니다. 사람들은 놀라운 눈으로 매일 이 광경을 바라보곤 하였습니다. 그 중에 어떤 이들은 괜히 분을 내며 “비싼 새우를 새들에게 낭비하다니 너무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노인의 사정을 듣고 난 후에는 반응이 달라졌습니다. 그 노인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군의 유명한 해군장군이었는데, 독일군이 어뢰를 발사하여 그의 배를 격침시켰습니다. 그래서 그와 부하 일부만이 구명정에 간신히 올라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구명정 위에서 뜨거운 태양과 폭풍과 식량의 어려움을 당하며 몇 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부하들은 한 명씩 죽어가기 시작하여 장군을 비롯한 몇 명만 겨우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이 장군도 정신이 희미해지면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굶주림으로 죽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그렇게 누워있는 순간 바로 옆에 작고 흰 물체가 안경을 통해 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갈매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갈매기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는 떨리는 힘없는 손을 천천히 뻗쳐 갈매기를 잡았습니다. 그 갈매기는 그들에게 몇 시간 수명을 더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였고, 그 몇 시간은 그들이 섬을 발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섬에서 안전하게 생명을 부지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사람들은 보스턴의 갈매기들에게 값비싼 식사를 대접하는 것에 대해서 더 이상 그 노인을 비난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노인의 행동은 겸손하게 감사를 표현한 단순한 행동이었음을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새우 한 마리마다 하나님과 갈매기에 대한 “감사”의 표시가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지금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에 대하여 얼마나 보은(報恩)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번 맥추감사절은 보은의 마음이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맥추감사절은 추수감사절과 함께 감사의 절기입니다. 요즘에는 보리나 밀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별로 없지만, 예전에는 벼를 추수하고 나면 그 논에 보리를 파종했습니다. 그리고 겨울이 되어 땅이 얼면 이른 봄에 보리밟기행사를 했습니다. 겨울 동안 들뜬 겉흙을 눌러주고, 보리의 뿌리가 잘 내리도록 이른 봄에 보리 싹의 그루터기를 밟아 주는 것을 ‘보리밝기’라고 합니다. 좀 지나면 춘궁기(春窮期)가 오는데, 이것을 보릿고개라고 했습니다. 고개 중에 가장 넘기 힘든 고개가 바로 ‘보릿고개’일 겁니다. 가을에 추수한 곡식은 다 떨어지고, 아직 보리를 거두어들일 때는 되지 않아서 정말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풀뿌리나 나무껍질로 겨우 연명하거나 걸식과 빚을 얻어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고 지나야했습니다. 아주 오래된 옛날얘기 같지만 사실은 우리가 몸으로 겪어온 세월입니다. 그 만큼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살만한 나라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쌀 재고량이 넘쳐서 쌀값이 폭락하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율은 불과 27%에 불과합니다. 쌀만 남을 뿐이지 다른 농수산물은 자급율이 5%에 불과합니다(대부분 수입).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하고, 돈이 많아지다 보니 부족한 곡물을 수입해서 풍족한 것 같은 착각을 하는 것뿐입니다. 해방이후 50년대까지만 해도 보릿고개를 넘겨야했습니다. 식량자급율이 30%도 안 되어도 식량걱정을 하지 않는 것은 모두 하나님이 우리나라에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가 보리나 밀을 심고 거둬들이지 않아 ‘맥추의 의미’가 사라졌다 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진심으로 감사드려야 합니다. 오늘말씀은 바로 맥추절에 읽었던 성경인 룻기의 말씀입니다. 오늘말씀에 등장하는 엘리멜렉의 가정을 통해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주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Α. 엘리멜렉은 이름처럼 살지 못했습니다(1-2).


    1. 엘리멜렉은 유다베들레헴에 살았습니다. 베들레헴은 유다지파의 땅입니다.

    그는 아내 나오미, 두 아들 말론, 기룐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 흉년이 들어 살기 어려워졌습니다.

    보릿고개가 넘기 힘든 것은 “목구멍이 포도청”이기 때문입니다. 3일 굶어 담 넘지 않을 자→無!


     

    2. 엘리멜렉은 가족과 함께 살아야한다는 절박한 심정을 안고 이웃나라인 모압으로 이민가기로 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신앙적으로 보면 그는 이름값을 하지 못했습니다.

    엘레멜렉은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3. 만약 그가 진정 이름처럼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신앙인이었다면 결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인 베들레헴을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흉년으로 힘들다면 왕이신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엘리멜렉은 어려움을 피하려고만 했습니다. 신앙인은 이름값을 해야 합니다.


     

    Β. 하나님을 떠난 것이 실패의 원인입니다(3-5).


    1. 엘리멜렉이 흉년을 피해 베들레헴을 떠난 것은 하나님을 떠났다는 뜻입니다. 베들레헴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입니다.

    설령 인생살이에 흉년이 들었다 해도 약속의 땅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흉년이 들었다면 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원인이 있습니다.


    2.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산다면 흉년에도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려야합니다.

    그러나 엘리멜렉은 하나님을 떠났고, 모압에서 살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떠난 것이 문제요 실패의 원인입니다(3,5).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 119:67)


     

    3.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어려울 때마다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야합니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약 5:13)


     

    Γ. 믿음으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6-18).


    1. 남편을 따라나섰던 나오미는 ‘기쁨’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름의 뜻이 기쁨이었지만, 그녀는 쓰디쓴 맛을 보아야 했습니다.

    남편은 머잖아 죽었고(병사), 두 아들마저 모압으로 이주한 지 10년 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청천벽력이었습니다. 나오미와 함께 모압 며느리 둘만 남았습니다.


     

    2. 나오미는 결심했습니다. 더 이상 모압에서 살 이유도 없었고, 약속의 땅이며 고향 땅인 베들레헴이 그리웠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모압출신인 며느리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기로 작정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큰며느리 오르바는 결국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3.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를 따르기로 결심합니다. 그녀는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라”(16)고 신앙고백 합니다. 나오미와 룻은 하나님께 돌아갔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결심이 그들의 인생을 바꾸어놓았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설 때 인생이 바뀌는 것입니다.

     

     

     

    Ⅲ.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엘리멜렉은 이름값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나름대로 믿음의 어머니였던 것 같습니다.

    두 며느리에게 집으로 돌아갈 것을 요청했지만, 그들은 시어머니를 따르겠다고 합니다.

    물론 오르바는 결국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르기로 결심합니다.

    비록 모압에서 실패하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지만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신앙의 본보기가 된 것 같습니다.

    나오미는 룻을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돌아왔다는 뜻입니다.

    나오미는 실패자의 모습으로 돌아왔기에 마음이 위축되고 고통이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보아스를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보아스는 유력자입니다(2:1).

     하나님께 돌아온 나오미와 룻에게 보아스를 통하여 살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보아스는 룻을 이렇게 축복합니다.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주시기를 원하노라”(2:12).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삼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에게 하나님은 크신 복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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