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신 16:10-12)
  • 조회 수: 77, 2013.01.28 18:55:20
  • 사람에게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누구나 다 잘 아는 상식이면서도 그것을 쉽게 끊지 못하고 다시 피게 되는 것처럼 우리 각자 무엇인가 잘못된 것과 새로운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어려서부터 익숙해진 잘못된 의식이나 영적인 습관들이 나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고쳐지기 어렵다는 것을 경험할 때가 믾습니다. 우리 조상들 항상 사람의 체면을 더 중시하여왔었고 조상들이 믿어왔던 신은 온 세계를 통치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만유의 하나님이 아니라 각 가정과 동네와 민족을 다스리는 제각기 다른 신이었습니다. 그 신을 숭배하는 것조차도 자신의 이익을 위한 기복적인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오래 동안 그런 의식과 문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게 되었을 때 신앙의 대상은 하나님으로 바뀌었으나 신앙의 목적이나 자세는 하나도 변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보다 사람의 눈을 더 의식하는 외식하는 기독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우리가 매주일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과 일년에 몇 차례 지키는 교회 절기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마음 중심의 감사보다는 사람에게 보이는 체면이나 기복주의 자세 때문인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교회를 다닌지 수 십년, 수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보다는 사람의 눈을 더 의식하는 체면과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자신의 유익을 신앙의 목적으로 삼는 이기주의에 사로 잡혀 있다면 그것을 하루 빨리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바꾸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하는 개혁주의요 칼빈이 주장한 코람데오라는 신전의식의 신앙 자세입니다.

    오늘 성경 신명기를 자세히 읽어보면 앞서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로 받아 기록한 율법인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에 있는 것과 같은 내용이 신명기에도 반복해서 기록되어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절기에 대한 말씀으로 (출 23: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출 34:22)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애굽에서 나온 장성한 기성 세대에게 40 년 광야 생활에서 다 죽고 거기서 태어난 새로운 세대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 문화와 맞서야 할 새로운 세대가 과거 조상들이 지켜온 절기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서 얻을 첫 열매를 통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그 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그 땅은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이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그 땅의 원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그 땅의 소산인 첫 열매를 거둔 직후 하나님께 나아가 그 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문화와 종교 의식은 우상 숭배였기 떄문에 농사를 짓다가 비가 오지 아니할 때 비를 내려달라고 기원할 때나 추수하고 난 다음 감사의 제사를 드리게 될 때 하나님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우상 신 앞에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조상 대대로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지만 온 세상을 다스리시며 인간의 생사 화복을 주장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아니하거나 일년 농사가 끝난 후에 제사를 드리게 될 때 자연이 눈에 보이는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가나안 사람들과 달라야만 하였습니다. 기독교를 진화론적으로 해석하는 자유주의 자들은 기독교가 가나안 종교에서 진화된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그럴수 없는 것이 기독교는 철저하게 우상을 배격하고 있기 떄문에 우상 종교와 본질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눈에 보이는 신들을 섬기는 이방 사람들과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과의 도저히 신앙적으로 하나가 될 수 없는 본질적인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새로운 세대에게 철저한 신앙 재교육이 요구되었는데 그 교과서가 바로 신명기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농사를 짓지 아니하였어도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 매일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의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면 하늘에서 내리던 만나가 끊어지고 가나안 사람들과 똑같이 땅을 파고 거름을 주고 씨를 뿌리고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기다리고 곡식을 가꾸어 결실한 것으로 먹고 살아가야 하는 농경문화에서 과연 누구에게 비를 달라고 기도하고 누구에게 추수한 것을 감사할 것인가? 하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곳곳에 눈에 보이는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문화권에서 아무 신상도 만들어 놓지 않고 제사를 드리는 것은 마치 허공을 향해 복을 달라고 비는 사람처럼 오히려 공허하게 보일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새로운 변화를 경험하게 될 세대들에게 모세가 죽기 전에 가르친 것이 바로 오늘 성경 말씀인 것입니다.

    애굽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은지 40년 동안에는 각자의 집에서 식구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켜 왔었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다음에는 개개인이 아니라 구원받은 신앙 공동체로 가나안 사람들과 구별되이 성막이 있는 중앙 성소에 함께 모여 거국적인 제사를 드림으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순수성 보존과 구별 받은 신앙 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을 감사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먼저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감사하는 유월절을 지키고 오십 일이 지난 다응에 농시힌 첫 번째 결실을 얻게 되었을 때 그 소득이 비록 많지 못하였지만 그것은 매우 뜻 깊은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게 한 것이 바로 칠칠절이며 맥추절의 유래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첫 소득을 주신 것을 감사하는 맥추절 제사에 가진 땅이 없고 농사 지을 힘이 없어 아무 소득이 없는 소외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을 소외시키지 말고 어려운 때일수록 그들과 더불어 함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 그들의 조상들이 애굽에 있을 때에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같이 힘이 없었던 자들이었기 떄문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볼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첫 열매를 주신 것을 감사하여 드리는 칠칠절의 제사가 소득이 적기 때문에 별로 많은 것을 드리지 못하는 초라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형식적인 제사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어떤 마음의 자세가 필요한지를 깨우쳐 주신 것이 바로 오늘 성경 말씀입니다.

    (신 16:10)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신 16:11)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신 16:12)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

    1) 신전 의식의 감사 제사입니다.
    (신 16:10)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라는 말씀처럼 사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지만 분명히 살아 계셔서 곡식을 자라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2) 최선을 다하는 감사 제사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라는 말씀처럼 많고 적은 것을 떠나서 하나님께 많이 받은 부자대로 받은 것이 적은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대로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되 공평한 점은 힘을 다해 드리라는 것입니다.
    3) 자원하여 드리는 감사 제사입니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4) 합심하여 드리는 감사 제사입니다.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5)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감사 제사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맥추 감사절의 성경적인 유래가 이와 같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 우리도 오늘 드리는 맥추 감사절 예배가 형식은 구약과 다를 수 있지만 그 근본 정신과 의의는

    1) 신전의식의 감사 2) 최선의 감사 3) 자원하는 감사 4) 온식구와 교우들이 합심하는 감사 5)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감사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사가 자칫 잘못하면 이기적인 감사가 될 수 있습니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기근과 어려움에 처해있는데도 나만 무사한 것을 감사하는 이기적인 감사일 수 있습니다. 가뭄으로 흉년이 들어 기근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 남한에는 사상 최대의 풍년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이 30여명이나 되는데 나는 무사하게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도 수많은 기업들이 부도내고 도산하는데 내 직장과 기업을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러한 기도를 좀 더 깊이 생각해 봅시다. 얼마나 이기적인 감사입니까? 비록 다른 사람보다 조건이 안좋아도 감사할 수 있어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1) 감사의 근본이 구원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게 감사할 이유는 너무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중에 가장 귀중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성 프란시스코를 괴롭히던 한 친구가 있었다.그 친구는 철저한 무신론자로서 기독 교인들을 핍박했다.하루는 두 사람이 격렬한 신앙논쟁을 벌이고 있었다.그때 두 사 람 앞에 한 걸인이 다가왔다.그 걸인은 맹인으로 앞을 볼 수 없었다.프란시스코가 맹인에게 말했다.“내가 만약 당신의 눈을 뜨게 해준다면 내 명령에 순종하겠소?” 맹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어디 순종뿐이겠습니까.평생 선생님의 충실한 노예가 되어 섬기겠습니다” 프란시스코는 무신론자인 친구를 바라보며 날카롭게 말했다.“여보게 친구.이 맹 인은 자신의 눈을 뜨게 해주면 평생 노예가 되겠노라고 말하지 않은가.그런데 왜 자네는 밝은 눈과 명석한 두뇌를 주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인가” 친구는 그제서야 프란시스코에게 굴복했다고 합니다.

    2) 적은 것에 대하여도 크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감사는 적은 것에도 크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적은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없으면 큰 것에도 감사하지 못합니다. 우리처럼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한 평셍을 심한 육체의 장애로 산 핼 렌 켈러가 그의 저서 라고 하는 책에서 점자로 써서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내가 단 한번만 저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 볼 수 있었으면
    내가 단 한번만 떨어지는 저 낙엽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 볼 수 있었으면
    내가 단 한번만 저 깊은 산 속에서 졸졸 흘러내리는 시냇물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내가 단 한번만 저 아름다운 가르침과 자상한 친절을 베풀어주시는 우리 선생님 셀리반 선생의 아름다운 그 미소를 바라볼 수만 있었으면
    내가 한번만 저 오케스트라의 연주하는 장엄한 그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내가 단 한번만 나에게 그 귀한 감동을 주시는 필립스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만있었으면....
    내가 한 번만 그 말씀으로 내 삶을 바꾸어 놓았던 그 감동스런 성경말씀의 내용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읽을 수 있었으면
    내가 한번만 지는 해의 그 아름다운 석양의 노을을 직접 내 눈으로 바라 볼 수만 있었으면 .. 더 이상 소원이 없겠다.
    그럴 수만 있으면 지금 당장 죽어도 한이 없겠다."

    얼마나 소박한 소원입니까?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그녀의 간절한 소원은 소박하지만 이룰 수 없는 소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볼 수도 들을 수도 있는 우리는 본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들을 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3) 형통할 때는 물론 고난 당할지라도 감사이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맥추 감사는 결코 풍성한 중에 드리는 것이 아니라 풍족하지 못한 중에서 어려운 중에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과 감사를 드리는 제사인 것입니다. 어떤 역경이 닥쳐오더라도 감사의 생활을 하여 보십시오. 주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그리하면 감사 속에 은혜가 충만하실 것입니다.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버려진 자로서 급급해 살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계획한 일들이 틀어져 안 된것도 감사합니다.
    저의 교만이 꺾이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들 딸이 걱정거리가 되게하시고 아내와 남편이 힘들어질때도 있게 하시고 부모와 형제가 짐으로 느껴질때가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어려움의 골짜기를 지날때마다 인간된 보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먹고사는 것이 힘겨웁게 느껴지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눈물로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원한 삶을 사모하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난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주여, 저의 작은 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주심을 찬송합니다.

    결 론

    인간과 짐승의 차이 중에 하나는 인간은 받은 은혜에 대해서 기억하고 감사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신자와 불신자는 하나님께 감사하는가 안하는가의 차이라면 누가 큰 믿음의 사람인가 하는 것은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과거 우리 민족이 유교나 불교를 믿다가 후에 기독교를 믿었기 때문에 기독교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순수하고 성경적인 신앙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익숙해진 비기독교적인 문화와 희석되거나 변질된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올바른 기독교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지는 아니한지를 돌이켜 보고 그것을 바로 고치려고 성령의 도우심 속에서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는 습관적이나 형식이나 누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체면 때문이 아니라 잘살고 못 살고를 떠나서 정말 이미 받은 은혜와 구원의 축복만도 감사해서 진심으로 감사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세월이 갈수록 과학이 발달하고 경제가 성장을 하여도 점차 상실되어가는 것 중에 하나가 사람들이 감사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딤후 3: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딤후 3: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신앙에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받을 때만 감사하는 단계입니다. 이때는 '주시옵소서'라는 기도가 주종을 이루는 어린 신앙입니다.
    둘째는 감사하는 단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감사하고 받은바 은혜와 축복이 감사해서 '주님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와 찬송을 드리는 장성한 단계입니다.
    셋째는 드리는 단계입니다. 감사를 구체적으로 시간과 정성과 생명을 드리는 성숙한 단계입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 기쁨과 찬송이 넘치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는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사람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사나 죽으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우리의 신앙의 목적이요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살수 있을까요?

    요한 세바스챤 바하는 작곡이 끝나면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오선지에 "SDG"(Soli Deo Gloria의 두문자) 즉,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이라고 적어 넣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감사는 어떤 것일까요? 세월이 갈수록 사람들이 이기주의에 빠져서 감사를 상실하고 모이기만 하면 원망하고 불평을 일삼고 있는 세상에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된 우리에게 (시 100:4)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라고 감사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1)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주님의 은혜가 감사하여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성도가 되기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시 136:24)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거둔 첫열매처럼 비록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들지만 상반기 동안에도 우리를 굷기지 아니하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 넘치도록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시 136:25)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3) 지금 내가 원치 아니하는 고난을 당하지만 이것도 지나고 보면 내게 화가 되지 아니하고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을 소망의 축복이 될 것을 믿고 하나님 여호와 앞께 변함없이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더 크게 더 많이 감사할 수 있는 일이 생기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고후 9: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9:9) 기록한 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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