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기의 의미(2)-이웃사랑(신16:9-12)
  • 조회 수: 73, 2013.01.28 18:50:48
  • 지난주에 맥추절이라는 절기를 지키면서 절기의 의미를 생각했었습니다. 주일은 작은 절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절기를 정해두고 왜 지키라고 하시는 지, 또 주일을 정해두고 거룩히 지키라고 하시는지 그 의미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 습니다.
      절기와 주일은 절기 자체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을 위해서 우리가 있 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절기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주일을 우리에게 특별히 주셨는데, 이날을 통해서 나에게 무엇을 주시려 고 주셨는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고 또 세상을 향해서 힘차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달려 가도 달려가도, 취해도 취해도, 계속 목마르고 굶주린 상태에 있음을 발견할 수 있 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러서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고, 배고픔을 해결해 주시려고 부르 신 것입니다. 인생의 목마름과 배고픔은 하나님을 만나면 분명히 해결되어 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서 갔던 곳이 곧 애 굽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목마름과 배고픔은 애굽에서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 들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 습니다. 이스라엘이 진노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조건 없이 관심과 사랑으로 그들을 불러서 구원의 은총을 입혀 주셨습니다.


      여호수아서를 공부하면서 건너라, 취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 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너게 하셨고, 취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을 향해서 달려가는 우리들을 오늘도 불러주셨습니 다. 세상에서 건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 의 값진 은총을 내려주시고 취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사람을 보지 마십시오. 어떤 것도 보지 마십시오. 정말 교회에 와서 하나 님을 꼭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볼 때 여러분의 인생에 배고픔과 목 마름이 분명히 해결되어질 것입니다.
      지난주에 절기를 지키는 목적은 곧 하나님 앞에 예배하기 위해서라고 말씀드렸습니 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예배의 전체는 십계명 속에 다 있습니다. 예배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에 감격해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할 때, 세상을 바라보던 우리의 관점 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바뀌어 집니다. 부정적인 우리들의 삶이 긍정적인 삶으로 바뀌어집니다. 불평불만의 삶이 감사의 삶으로 바뀌어 진다는 것입니다.
      감사와 기쁨과 평안으로 내 삶이 바뀔 때 이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공급하면 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신 목적이 거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 드셨습니다. 만드신 목적은 하나님자체를 우리를 통해서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이 표현되어 지기 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떠났고, 떠나자 하나님이 전혀 나타 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속하심으로 그 거룩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기를 원 하고 계십니다.
    먼저 교회를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 그 구원의 은혜를 꼭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한신대학교에 신학대학 원장으로 계시는 '정태길 목사님'의 글을 읽어보았습 니다.
      이분은 한국에서 신학을 하고 더 공부하기 위해서 맨몸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 니다. 가서 살기도 힘든데, 공부하려면 보통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10년이 넘도록 먹고 자고, 공부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모 든 공부를 다 마쳤습니다. 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미국을 떠날 때는 빈손으로 갔습니다. 그동안 10년이 넘도록 하나님께서 그에게 먹을 것을 주셨고, 입을 것을 주셨고,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모든 것들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자기가 원했던 학문을 하고 학위를 받아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돌아와서는 하나님의 은 혜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감사보다는 마음속에 불평 불만으로 가득찼 고, 용기보다는 위축된 상태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고민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고향은 호남쪽입니다. 그래서 한번은 소록도를 방문했습니다. 소 록도에 있는 교회에 예배에 참석을 해게 되었습니다. 별 의미없는 예배를 드리면서 시간을 때웠습니다. 예배 후에 통성 기도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다른 사람 들은 열정적으로 기도를 하는데 자신은 전혀 기도가 안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기 도를 듣고 있는데, 기도의 내용이 '하나님,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요,   그 큰 은혜를 제가 무슨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내 이 몸으로 하나님의 그 큰 은 혜를 다 갚을 수 있겠나이까?' 은혜의 감격에 넘쳐서 땅을 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자기 자신은 감사한 것도 없고, 기쁨도 없고, 전혀 하나님의 은혜가 생각나지 않고 오히려 자신에게 고생을 시킨 부모님에 대한 미움만 생각났지만 이분은 어떤 분이 기에, 무엇을 얻었기에 이렇게 감격에 차서 감사의 은혜의 기도를 할까.. 라는 궁 금증으로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뒤를 돌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한쪽눈은 볼 수가 없고, 코도 다 망가져 있었고, 입도 제대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 가져 있는 성도였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땅을 치는 손을 보았더니, 손이 다 녹아 없어지고 손목만 두 개가 남아 있답니다. 이 모습과 불평불만으로 가득차 은혜를 깨닫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뒤의 사람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정신없이 울고 말았다고 합니다. 고침받은 문둥병환자인 그분의 집에 기거 를 하면서 물어보았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큰 은혜였는지... 그랬더니 '내가 병들 었을 때 처자식이 다 나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동료들도 나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심지어 부모님도 내가 가까이 오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우리 주 님은 날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내가 찾을 때마다 나를 만나주셨고, 내가 힘이 없을 때 나의 힘이 되어 주시고, 내 앞이 캄캄할 때 내 길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처음 만났던 그 주님이 한번도 변함없이 오늘까지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사랑해 주시니 내가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은혜는 깨달음입니다. 하나님은 절기와 정한 날들을 통해서 우리를 부르시 고 우리에게 이 은혜를 깨닫도록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죄의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죄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입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그래서 사망의 자녀, 진노의 자녀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는 진노의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런 조건없이 관심과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데서 그치지 아니 하시고, 생명을 주셨고 영원토록 누릴 수 있는 풍성한 은혜를 계속계속 공급해 주 시는 것입니다.
      크신 하나님 앞에 나와서 구원의 은혜와 감격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절망하던 마음 을 이제는 새로운 용기를 가지고 새롭게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면서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갈 때 이웃에 대한 사랑이 끝납니다. 하나 님은 온 인류를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는 구원의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구원의 은혜를 깨닫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성경 전체를 요약하면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사 랑입니다. 십계명 전체를 요약하면 사랑입니다.   십계명을 두 부분으로 나누면 하나 는 하나님 사랑이요, 하나는 이웃사랑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어질 때 이웃을 사랑하게 되어집니다.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게 되어져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아닙니다.   우리로서는 이웃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내 배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구원의 은혜를 깨닫게 되어 질 때 우리는 이웃을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이 많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무엇 때문에 어렵습니까? 경제적으로 는 많이 어렵지만, 그렇다고 아침식사 한끼를 할 수 없어서 배를 굶고 나온 사람은 이 자리에 없을 것입니다. 전에는 이보다 더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 게 어렵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다 배불리 먹으면서도 사람들 의 입술에는 '어렵다' 라는 말이 끊이지 않고 말합니다. 무엇이 어렵습니까? 물질이 없어서가 아니라 은혜를 깨닫지 못한 까닭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을 떠난 까닭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그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 은혜를 다 망각하고, 오히려 자신들의 배만을 위해서 살아왔었습 니다. 이러한 그들을 하나님이 절기를 통해서 부르시고 그것은 다 내가 베푼 은혜 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는 네 이웃을 돌보아라고 말합니다.


     

      오늘 이 세상이 살아가기 힘든 이유는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 속에 예 수생명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옆의 분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교회안에서도 참 힘드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과연밖에 나 가서 진정한 관심을 이웃에게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하늘을 이 땅에 심는 방법은 사랑 외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사랑의 도구가 되어서 이땅에서 사랑 을 심기를 하나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주님은 부르셔 서 사랑을 가득 채워 주시고, 나가서 받은 사랑을 갖고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잠언에 보면 "땅에 작고도 지혜로운 것 넷이 있는데 작은 것 미물이 네 가지 있는 데, 가장 지혜로운 넷 미물에 가서 배우라. 하나는 개미요, 하나는 사관, 하나는 메뚜기이고 하나는 도마뱀입니다.
      저는 오늘 작지만 지혜로운 미물 중에 하나인 도마뱀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 자 신들을 한번 뒤돌아 보시기를 원합니다.
      '도종환'씨가 쓴 글 가운데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글 속에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일본 도쿄 올림픽때 스타디움 확장을 위해서 지은지 삼년 이후에 그 집을 헐게 되 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지붕을 허는데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지 붕을 헐자마자 못에 박힌 도마뱀을 발견했습니다.   꼬리가 못에 박힌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인부들이 그 작업을 중단하고 놀라운 사건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게 되 었습니다. 사흘동안 지켜보았습니다. 꼬리에 못이 박힌 도마뱀은 삼년 동안이나 그 렇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겠는가? 가만히 지켜보니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하루에서 여러번 먹이를 물고 와서 못에 꼬리가 박힌 도마뱀에게 먹여 주더라는 것입니다. 직접 입에 가서 먹여 주지 않는 한 먹을 수가 없었습니 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떤 관계일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동료일까, 아니면 부모 와 자식일까, 부부관계일것이다, 사랑하는 관계일 것이다. 정말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었다면 과연 삼년 동안 고통당하는 동료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줄 수 있었겠는 가? 먹을 것만 가져다 주었겠습니까?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조금만 참아라, 위로를 해 주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이 삼년이 굉장히 긴 것 같아도 진정한 사랑 의 관계 속에 이 일이 이루어 졌다면 삼년은 그렇게 길지 않았을 것입니다. 못에 박혀서 그 고통이 엄청나게 클지 몰라도 사랑으로 그 고통도 덜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엄청난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그 고통을 참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사흘 후에 부활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도종화씨는 이 내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불안과 공포 속에서 그래도 숨어 살 때를 찾아 여기저기 돌아 다니다가 그만 꼬리가 못에 박히는 끔찍한 고통을 당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도마뱀은 얼마나 몸부림 쳤을까, 몸부림 칠 때마다 살을 찔러오는 고통은 또 얼마나 컸을까. 그 고통으로 몸부림 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보는 또 다른 도마뱀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하루, 이틀, 닷새.. 꼬리가 못에 박힌 도마뱀은 오직 살기 위해 몸부림 쳤을 테고, 옆에서 그 아픔을 다만 지켜볼 수밖에 없는 도마뱀은 어쩌지 못한 채 애만 태우고 있었으리라. 말도 할 수 없는 이 미물들은 오직 눈짓과 표정과 몸짓으로 서로를 쳐다보고 마음을 나누었으리라.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리라. 그러나 참으로 훌륭한 것은 바로 곁에 있던 도마뱀이다. 사랑하는 도마뱀이 받는 고통을 바라보면서 그 도마뱀이 살 아보려고 몸부림 치다 절망할 때 어디론가 가서 먹을 것을 물어와서 입으로 건네 주면서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 절망하지 말라고, 살아야 한다고 말은 할 수 없었 지만 어떤 눈짓, 어떤 표정이었을까. 어쩌면 고통과 절망 속에서 처음엔 먹을 것을 거부하며 팽개쳐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시 또 어디론가 가서 먹을 것을 구해다 입에 넣어주는 그 도마뱀을 보면서 너를 버릴 순 없다는 그 표정, 나만 살 기 위해 네곁을 떠날 수 없다는 그 몸짓, 그것을 믿으면서 운명과 생의 욕구를 받 아들이면서 얼마나 가슴 져렸을까, 그렇게도 하루에 몇 번씩 위험을 무릎쓰고 먹을 것을 구해다 주면서 함께 살아온지 삼년, 그 도마뱀은 다시 못을 밖은 사람들에 의 해서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어두운 지붕 밑에서 두 도마뱀은 함께 사랑하 고 함께 고통을 나누고 고통 속에서 서로 안고 잠이 들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 삼 년은 얼마나 길었을까. 작은 미물이니까,
    이 이야기 속에 우리는 부끄러움을 금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오늘 제가 2부예배 때 이 말씀을 드리고 나가면서 어떤 분에게 한 사람의 안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 사람이 잘 있느냐고. 그분의 대답이 이러했습니다. '마치 못에 박힌 도마뱀 같이 고통속에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한 이야기로 끝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오늘 여기에서 두 부류를 생각해 보십시다. 먼저 여러분들 중에 못에 박 힌 도마뱀처럼 고통 중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면서 하나님이 여러분 옆에 계십니다. 주님은 절망한 제자들을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식하고 어둠가운데 있지만 조 금있으면 자유의 몸이 될 것입니다. 분명히 구속의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암담한 사흘이란 긴 십자가의 그늘 속에서도 주님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참으셨습 니다. 그 결과 부활의 영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살아 역사하 시고 여러분의 주님이 되어 주십니다. 어떤 힘든일이 있더라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또 하나의 부류는 옆에 이런 사람을 보고 있는 우리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 게 행동하고 있습니까? 하찮은 이 미물의 작은 도마뱀보다도 너무나 사랑을 베풀지 못하는 우리들이 아닙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 뿐만 아니라 객과 고아와 과부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여호와 하나님께서 즐거워 할지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교회에는 여러 가지 많은 프로그램들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 복지 프로그램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사업 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들입니다. 이것이 여러분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아무런 연관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우리가 과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말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어둠에 빠진 많은 사람들을 향해서 사랑을 나누어 주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구속함을 입은 이스 라엘 백성들이 해야 할 의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서로 관심을 갖 고 서로 사랑하며 돌보는 것이 그들의 의무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바램 이었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속해 주신 목적이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죄가운데 구원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된 특권을 주는 하나님의 의도가 어디 있 습니까? 은혜에 감격해 하면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불평, 불만을 가득 품고 살 아가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물질을 바라보고 내 배를 바라보면 불평 불만 꺼리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언제나 하늘은 열려져 있습니다. 객과 고아와 과부와 소외된 자들을 불쌍한 자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입 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기를 지킬 때 예물을 요구했습니다. 오늘날 그렇 게 이야기를 합니다. 부름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왔음을 알고, 철저한 고백 속에 첫 열매인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린다면 이 세상에 배고파 죽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라고 합니다. 충분히 배고픈 자들에게 배를 채워줄 수 있 는 길들이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하늘을 땅에 심는 교회'라는 표어를 두고 있습니다. 하늘을 땅에 심는 것은 하늘 곡간에 물질을 쌓는 것입니다. 하늘 곡간에 물질을 쌓는다는 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대로 사랑의 선을 베푼다는 것입니다. 교회 헌금은 교회에 모아두기 위 해서가 아닙니다.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배고픈 자들을 위해서 사용해야만이 하나 님의 뜻을 이루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절기를 지키게 하실 뿐만 아니 라 이렇게 매일 불러서 절기를 지키게 하셨습니다. 나올 때 마다 하나님을 만나시 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언제나 치유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지기를 원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세상에 나가서 사랑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고통속에 있는 자들이 있다면 여러분 사랑의 말을 전하십시오. 위로의 말 을 전하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교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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