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국에 대한 가르침(마18:1)
  • 조회 수: 125, 2013.05.24 07:32:34
  • 민족 대 명절인 한가위 혹은 중추절 또는 추석 절이 가까워 오고 민족 대 이동이 시작 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고향을 떠난 이들이 고향을 향하는 마음이 나타나는 모습들이다
    우리 성도들은 육적인 고향과 함께 영적인 고향 천국을 바라보며 나아가고 있다
    예수 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천국에 대한 가르침을 주신다
    그래서 천국에 대한 가르침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언제 가르치셨나

    그때에 라고 하는데 그때는 가버나움의 한 집에 계실 때(막9:33) 그곳에서 반 세겔의 성전 세를 내신 때다(마17:24-27)
    성전 세는 매년 아달월(태양력 2-3월) 15일 경에 한 번씩 내는 것이므로(출 30:11-16) 구체적으로 이 때는 예수께서 돌아가시기(니산월, 태양력 3-4월 14일경) 한 달 전일 것이며 제3차 갈릴리 사역을 마치시고 유대로 들어가려고(19:1) 하실 무렵 가버나움으로 오는 도중(막 9:33;눅 9:46)이었을 것이다

     왜 가르치셨나

    제자들이 길에서 '누가 크냐'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하자(막 9:33). 예수께서는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으나 제자들은 잠잠하고 아무 말도 못하였다고 하며(막 9:33-37). 누가는 예수께서는 그때 그들의 생각을 아셨다고 기술하고 있다(눅 9:40-48).
    이를 정리하면 예수께서 제자들이 논쟁하는 것을 아시고(누가), 그들에게 물으시니 그들이 잠잠해졌고(마가), 바로 그때에 제자들은 그렇다면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라고 질문했다고(마태) 볼 수 있다.
    제자들이 자리다툼과 세속적 권력에 대한 관심을 지니고 이러한 질문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가 위대한 신앙 고백을 하고(16:16), 또한 세 제자만 변화 산상에서의 영광스런 주의 변모를 목격했을 뿐 아니라(17:1), 베드로만 성전세 사건과 연루된 사실(17:24-27) 등으로 볼 수 있다.
    특별히 예수께서 세상 임금이 그의 아들에게서는 관세와 정세 등의 세금을 내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로만 비겨서 하늘 임금의 아들이신 예수 자신도 결코 성전 세를 낼 필요가 없으나 사람들로 하여금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해 세금을 내실뿐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머지 않아 메시야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그곳을 정복하실 것이며 따라서 자신들도 새 왕국에서 백성들을 통치하는 자가 될 것이라고 하는 기대에 부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가운데서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라는 질문을 하자 저들의 질문에 대하여 주님은 천국에 대한 가르침을 주신다 

    무엇이라 가르치셨나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아야 들어간다고 가르치신다

    유명한 '어린아이 교훈'으로 아이들을 위한(for) 교훈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through) 어른을 교육하기 위한 것이다. 
    아이들의 순진 무구한 특성이 바로 천국 시민의 자격이 되는 것임을 말씀하셨다.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어린아이와 같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써 선행되어야 할 행동으로 돌이켜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한낱 행동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만 가능한 마음의 변화, 즉 참회와 중생을 이루는 전인적인 변화를 가리킨다(요 3:3;행 2:38). 

    '어린아이'란 천진함이나 순결함이나 믿음의 이상형으로서보다는 겸손의 이상형으로서 또는 사회적 지위에 대한 무관심의 대표 격으로서 내세워지고 있다.
    예수께서는 겸손한 마음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지 어린아이와 같은 유치함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다(D. A. Carson).
    아이의 겸손이란 그가 본질상 연약하여 혼자 힘으로 살 수 없고 부모의 품안에서만 평안할 수 있듯이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복, 그분의 보호아래서만 살고자 하는 겸손함(골 4:11, 12;요일 5:14). 그리고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과대 평가하거나 자기를 비하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부끄럼 없이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다른 사람에 대한 의심이나 계산이 결코 존재하지 않는 순수성을 지니고 가르침에 대해 단순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신뢰와 믿음을 그 믿음의 본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린아이는 천국 시민의 모델이 되고 있다.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4)

    낮추는 것은 단순한 의미의 겸손이 아니라 멸시 천대 굴욕 등을 당하면서 까지 겸손한 것을 뜻한다. 이러한 어린이와 같은 자가 천국에서 큰 자라 하신다

    이러한 어린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어떠한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마 18:5)
    예수의 이름을 근거해서 영접하는 자와 영접 받는 자는 예수 안에서 하나로 연합됨을 가르치신다
    소자 중 하나도  실족 말라 (마 18:6)
    소자 중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마18:10)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지 않게 하라(마 18:14)

     천국은 죄악 된 요소를 버려야 들어감을 가르치신다(8-9)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 18:8)

    죄악된 요소는 과감히 버려야함을 가르치신다

    손과 발은 유혹의 도구, 수단 및 그 죄악의 실천적 기능에 불과한 것일 뿐 죄의 원인과 동기와 그 근원은 악한 생각이 나오는 곳, 즉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따라서 찍어 버리라고 하는 이 경고의 말씀은 악한 생각, 죄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는 마음의 썩은 생각을 잘라내야 한다는 말씀이며, 이는 죄에 대해서 철저하고 무자비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성결한 삶을 살게 하시려는 의도에서 나온 말씀이다. 

     범죄한 자에 대해 권고하여 돌이키도록 해야 함을 가르치신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얻은 것이요(마18:15)
    실족한 자를 잃지 않기 위한 제 1단계의 작업으로서 죄 지은 형제를 보호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며 동시에 가능한 한 죄를 고백하고 용서하는 일을 쉽게 하기 위한 것이다.
    '권고하다'는 죄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도록 '무엇이 죄악인가'에 대해 설명해 주는 것, 또는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함으로써 그 형제의 잘못을 정당하게 꾸짖고 개도 하는 것(요 8:46;딤전 5:20)을 말한다.
    권고의 목적은 형제를 판단, 질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형제를 다시 참 형제로 얻기 위함이다(고전 9:19-22;벧전 3:1). 이것이 바로 죄를 지은 형제와의 첫 화해 작업에 해당한다(레 19:17). 
    사실 개인적으로 만나서 책망을 듣는 경우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는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이보다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겸손한 마음으로 형제의 잘못을 권고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내와 지혜와 조심성과 사기 부정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용기가 필요하며 그 무엇보다 형제를 진실로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러한 진지한 노력을 통해서 형제적 친교를 회복하고 그 주의 제자요 신앙 공동체의 일원으로 새롭게 할 수만 있다면 그러한 노력은 정녕 필요하다(눅 17:3, 4;살후 3:14, 15;약 5:19, 20).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마 18:16)
    2 단계로 증인을 세워 범죄를 깨닫도록 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다

    듣지 않거든(*, 파라쿠세)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18:17) 
    범죄한 형제가 회개치 않아 개인적인 해결이 실패한 경우 제 3단계이자 마지막 조치로서 교회가 공식 개입하며 범죄한 그 형제를 권면하기 위해 연합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방인과 세리'는 유대 사회의 통상적인 개념으로 유대의 회당이나 기타의 모임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 즉 '단체 밖의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접촉을 피하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로부터의 소외'라는 압력을 '죄지은 그 형제'에게 가함으로써 또 다시 회개와 반성의 기회를 부여하려고 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권고하려면 기도해야 할 것을 가르치신다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마 18:19)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20)
    땅에서 겸손한 두 영혼의 일치된 기도는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교회의 간구로 받아들이시고 교회가 지닌 특권(18절:16;19)에 합당하게 응답해 주시는 것이다(F. R. Fay). 
    두 사람의 합심 속에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으로서의 성령께서 함께 계셔서 그들의 원하는 바를 하나님의 뜻에 일치되게 하신다.
    '두 사람 사이에 토라(율법)의 말씀이 이야기되는 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에 함께 있다'는 유대 랍비의 속담집(Aboth 3:3)에서처럼 그리스도인 2, 3인이 예수의 말씀을 서로 나누거나 그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는 곳은 그 장소가 어디든지 막론하고 예수께서 영으로 임재하시겠다고 하는 의미이다
    이는 예수의 영원한 현존성과 편재성 및 무변성을 나타내주고 있다. 

     천국은 용서하는 자가 용서받게 됨을 가르치신다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마 18:23)

    베드로의 적극적인 제안은 당시의 문화적 배경 하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책무를 수치화 하는 습성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벤시라 같은 이는 범죄한 이웃에게 두 번의 기회를 줄 것을 말하고 있고(외경 집회서 19:13-17), 또 랍비들은 이웃의 범죄는 3회까지만 용서하고 그 이상은 금하라고 가르쳤다(암 1:3;2:1;Jome 86b). 따라서 베드로는 유대인들의 율법적 용서 개념을 능가하는 자신의 관대함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완전수 내지는 거룩한 수에 해당하는 '7'번의 용서를 제안했던 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마 18:22)
    강한 상징성을 내포한 말로서 숫자상의 어떤 기준이나 실제적인 용서의 범위를 초월한(Wycliffe) 끝없는 용서, 무제한적인 사랑을 가르친 말이다. 즉 형제들 간의 용서는 결코 횟수나 일정한 정도에 의해 제한 받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인데, 이는 용서의 갈등을 겪고 있는 형제들은 그들이 용서한 것보다 더 크고 많은 용서를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자비와 용서도 더 한층 끝이 없는 것이어야 한다(A. W. Argyle). 

    하나님의 용서는 어떤가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마 18:23)
    '종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다스리고 지배할 것을 위임받은 우리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회계하려 한다고 하는 말이 본문에서는 종말론적 심판의 자리를 상징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실로 말세에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일생동안 자신들에게 맡기어졌던 일들에 대해서 결산하여야 한다(고후 5:10). 
    '임금'은 자신의 통치권 하에 있는 자들에게 절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를 가리키는데, 본문에서는 특히 35절과 연관되어 '천부' 곧 만유의 주관자요 심판주이신 하나님을 가리킨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 오페이레테스)
    달란트는 예수 당시의 유대와 로마 사회에서 통용되던 화폐 단위 중 가장 큰 것으로서(무게 단위로는 약 34kg의 순금에 해당함) 1달란트는 노동자 한 사람의 일일 품삯인 1데나리온의 약 6000배에 상당하는 것이었다. 이 일만 달란트에 대한 최근의 평가는 천 이 백만 달러에 해당된다고 하지만 여러 가지 물가 상승 요소를 감안한다면 오늘날의 통화로는 10억 달러 이상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D. A. Carson). 더욱이 유대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증언에 따르며 유대 전역에서 각출된 1년 세금이 고작 800달란트에 불과했다고 하니 이 일만 달란트의 가치가 얼마만했는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액수는 결국 하나님께 대하여 인간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정도로 큰 죄악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빚'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죄를 상징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본문의 '오페이레테스'라는 헬라어는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도 언급된 바, 그곳에서는 '죄'(*, 오페이레마)로 번역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시는 일에는 그리스도의 공로가 전적으로 개입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하나님께 화목 제물로 드려 사람의 죄악을 말소시키는 일을 담당하셨다. 따라서 인간의 의인은 예수의 피 흘림이 없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충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 1:7).라 한다
    하나님께서 종말에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이미 고백한 죄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시지만 스스로 참회치 않고 묻지 둔 죄악에 대해서는 철두철미 찾아 물으신다는 종말론적 심판의 장면을 예시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다 팔아 갚게 하라는 주인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일만 달란트의 빚은 가족 모두를 노예로 판단해도 결코 다 갚을 수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노예의 값은 많아야 약 1달란트였고 대부분의 경우는 10분의 1달란트나 그 이하가 일반적인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노예와 그의 가족을 파는 것은 빚이 갚아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의 절망적이 상황과 그 탄원을 강조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임금이 채무 불이행 자에게 무자비할 정도로 요구 조건을 내세운 것은 그 채무자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이 얼마만한 빚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무지 갚을 수 없음을 인정하고 끝내 임금에게 호소하여 자비를 간구하게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정녕 그 임금에게는 그 빚을 탕감해 줄 마음의 여력이 충만해 있었던 것이다(Chrysostom).
    이처럼 막대한 빚을 지불할 수 없는 전적 무능함은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의 영적 파산을 그대로 묘사해 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엎드리어 절하며(*, 프로세퀴네이)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상대방에 대한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는 동시에 자신의 신분을 최대로 격하시키는 고대 세계의 예법이다. 실로 이것이 빚의 청산에 전적으로 무능한 종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참으소서'는 그 빚을 임금 자신의 분노나 격정을 일으키기 전에 그 일을 오랫동안 잊으시라고 하는 뜻을 나타낸다(Trench). 이 채무자는 임금에게 그의 막대한 빚을 갚을 시간을 간구하였지만 이는 어떤 가능성 있는 약속이 아니라, 다만 임금의 노여움과 그 형벌을 일순간이나마 모면해 보려는 임기 응변에 지나지 않는다.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탕감하다', '용납하다'의 뜻인 '아피에미'(*)는 주인의 자비나 지불 기한의 연장에 대한 채무자의 간청의 정도를 훨씬 넘는 것임을 나타내 주는 말이다. '...을 퇴거시켜 멀리 보낸다'고 하는 것으로 이는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시고'(시 103:12) 그것을 멀리 쫓아 보내 버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완벽한 사죄의 은총을 예시해 주고 있다.
    실로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탕감해 주는' 임금의 행위는 석방과 사죄의 두 법적 행위를 동시에 의미하고 있다.
    이처럼 자신이 지은 엄청난 죄악을 인정하고 용서를 간청하는 죄인에 대해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죄에 대한 양심의 가책에서 해방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죄에 대한 아무런 보상 없이도 그를 의롭다고 선언하신다.

    용서받은 인간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 종이 나가서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붙들어 목을 잡고  빚을 갚으라
    시간적으로 그리 오래지 않은 때를 암시하고 있다. 이때는 임금으로부터의 탕감 은혜를 받은 그 감격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의 시간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예수 당시의 1데나리온은 보병이나 일반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화폐 단위로서, 6000분의 1 달란트에 해당한다. 따라서 1백 데나리온은 1만 달란트에 60만 분의 1에 불과한, 참으로 계산할 가치조차 없는 미미한 소액이었다.
    '동관'이란 문자 적으로는 동료 종이라는 뜻으로 채권자와 채무자가 서로 동료 관계에 있음을 시사해 준다. 
    '목을 잡고'는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이는 실제로 얼마 안 되는 대수롭지 않은 금액을 빚진 동관을 대하는 탕감 받은 종의 난폭하고도 매정한 성격과 거만한 태도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이 태도는 26절의 엎드려 절하면서 자비를 구하던 자세와는 완전히 다름 모습이다. 실로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인간의 일반 적인 속성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는 채무자와 계산도 해보지 않은 채 그를 만나자 마자 무조건적으로 빚을 갚을 것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엎드리어 간구하여(*, 파레카레이)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허리가 굽어지도록 간청하며 조금 전 그 종이 임금에게 했던 말보다(26절) 좀더 현실적인 간청을 한다. 왜냐하면 그 종은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무지 해결될 수 없는 부채였지만 이 동관의 부채는 100여 일의 노동으로 갚을 수 있는 소액의 부채였기 때문이다. 여하튼 동관의 이 호소는 그 종으로 하여금 조금 전의 자신의 처지를 기억시키는데 충분했을 것이다. 

    허락하지 아니하고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채무자가 계속적으로 간청함에도 불구하고 이 채권자가 용서하기를 싫어하여 계속해서 거절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임금은 그를 놓아 보내었으나(석방) 그는 자기 손으로 직접 채무자를 옥에 가두어 버렸다(투옥). 헐값의 노예라고 할지라도 그 당시에는 오 백 데나리온에 팔렸으므로 그의 빚보다 더 많은 액수로 사람을 파는 일이 불법이듯이 일 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구속하는 일도 역시 잘못된 일이었다.

    용서하지 못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결과는 어떠한가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마 18:32)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마 18:33)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마 18:34)

    첫 번째 부름의 회계에의 호출이었다면 이번 두 번째의 부름은 정죄와 심판에의 호출이었다. 실로 이 지상에 모든 불의한 자, 형제 사랑을 외면하는 자는 언젠가는 이 두 번째 부름을 받게 될 것이다(사 63:4). 이 부름 이후에는 영원한 투옥과 영원한 형벌만이 있을 뿐이다. 
    '악한'이 붙은 말은 왕의 유죄 선고를 의미한다(7:23;25:41;눅 19:22). 즉 이 한마디에 의해 전에 그에게 부여되었던 모든 특사의 은전은 상실하게 되었다. 
    임금의 무한한 자비심 에 용서 탕감 받았으면 '받아들인 자비'에 감사하며 그가 '자비를 행했어야 할 것이었다
    받은 바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의 형제들에게 그대로 반영, 적용시키지 않는다면 하늘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진노하실 것인가?
    정녕 형제 사랑과 용서와 화해를 잊은 영혼에 대해서 하나님은 격렬한 노여움으로 그를 책망하실 것이다. 
    '빚을 모두 갚는 일이 발생하기까지'라고 하는 말은 영구적인 불가능성을 말하는 가장 강한 표현이 된다. 따라서 주인이 '그 빚을 다 갚도록 그곳에 있으리라'고 한 말은 그곳에서 영원히 살아 나오지 못하리라고 하는 종신형인 무기 징역을 선언한 것이다.
    '악한 종'(32절) 이라고 하는 유죄선고에 이어 이제 그에게 마땅한 형량이 선고된 것이다. 이러한 종신형은 영원토록 불타고 있는 지옥의 형벌을 상징한다(Meyer).
    '옥졸'의 뜻인 '바나니스테스'(*)는 '고통을 주는 자들'을 의미한다. 결국 사악한 종의 고통스럽고 처절한 투옥 기간을 연상시켜 준다. 이는 마치 종말에 주님의 재림과 함께 천사들이 이 세상에 와서 가라지 들을 골라 불에 처넣는다고 하는 비유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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