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된 복의 삶 누가복음(1:39-56)
  • 조회 수: 1298, 2012.12.22 12:27:46
  •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의 꿈과 이상이 있지만, 궁극적 목표는 복된 삶에 대한 열망으로 초점이 모아집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이유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류에게 구원과 복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영적 부패를 부추기며 분별력을 잃어버린 비도덕적인 문화 상품이 판을 치는가 하면, 다양한 점술 프로그램이 신문이나, 전화정보, 인터넷 등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행동을 부단히 추구하면서도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은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해 12:15-16). 성탄절을 맞아 엘리사벳을 찾아간 마리아의 이야기를 통해서 “참된 축복의 삶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수많은 여인들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할 수 있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엎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35)고 했습니다. 마리아가 잉태하여 낳은 아들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고 그들의 조상인 다윗의 왕위를 이 아들에게 주실 것이며 그는 영원한 왕이 될 것이며 그 나라는 무궁할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사람들은 하나님 중심의 은총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중심의 은총을 구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달랐습니다. 마리아의 삶의 중심은 언제나 하나님이었습니다. 마리아는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 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처음 수태고지를 들었을 때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감격과 기쁨이 그의 영혼 속에 가득 차고 넘쳤습니다. 나사렛 한 촌에서 가난하고 비천하게 사는 마리아에게 임한 은혜는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큰 영예였습니다. 마리아는 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주께서 나를 돌아보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겸손은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는 심령의 샘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마리아에게는 ‘계집 종’도 ‘비천함’도 사라지고 ‘성모 마리아’만 남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입은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것이 복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위해 일할 수 있는 동역자로 선택하심을 입은 것 참된 복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동역자’(고전3:9)가 되었다는 이 사실이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 6:1)

     

    2.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서로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하였고, 그 임신은 특별한 임신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임신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임신이었습니다. 본래 엘리사벳은 아이가 없었습니다. 엘리사벳은 제사장 사가랴의 아내였습니다. 그들은 매우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늙을 때까지 이들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자식이 없다는 것은 커다란 수치였습니다(창30:1). 그래서 엘리사벳은 “주께서 내 수치를 벗겨 주셨다”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25). 엘리사벳은 이토록 힘들고 어려운 기도와 기다림을 통하여 임신에 이른 것입니다. 이 아이가 바로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복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복 사이에는 많은 간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이 많을 때까지 아이를 낳지 못했던 엘리사벳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견디기 힘든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특별한 섭리가 있었기에 그렇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거룩한 여인에게 자식 낳는 복을 오랫동안 늦추셨지만 비범한 자식을 주심으로 그들의 슬픔을 몇 배로 갚아주셨습니다. 또 인간적으로 보아 출산이 불가능한 나이에 엘리사벳은 세례 요한을 낳아 하나님의 능력을 몇 배로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를 살펴봅시다. 마리아는 처녀였습니다. 겨우 약혼만 한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성령 잉태를 통보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사이에는 커다란 장벽이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사실 앞으로 태어날 아기에 대한 천사의 말은 마리아의 삶과 존재의 모든 방향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신앙의 고통을 가져오는 일이었습니다. 만약 이 천사의 말을 믿었다가 잘못된다면 이 처녀의 장래에는 어떤 비극이 오겠습니까? 얼마든지 충격 받을 만한 일이었습니다. 약혼은 무시될 수도 있습니다. 집밖으로 끌려내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나사렛이란 작은 동네 사람들이 이 일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할까 두려워 자살이라도 생각할 만큼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하고 순종하였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습니다. 믿음의 생활은 세상으로부터의 고립의 생활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헌신하는 생활입니다. 또한 우리는 자기를 포기함으로써 헌신하고, 헌신의 은총에 복종하며 살 때에만 헌신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헌신의 생활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열심히 봉사한다고 해도 하나님께 헌신하는 생활이 아니라 자기만족의 생활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더 큰 은혜, 더 큰 복을 위해 적은 것을 희생하기로 했습니다.

     

    남편 될 사람으로부터 버림당한다 해도, 사람들로부터 비웃음과 손가락질을 받는다 해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따르기로 했습니다. 마리아는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으나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마리아는 그 일이 힘들고 어려운 일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기꺼이 순종했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함으로 ‘주님의 어머니’가 되었고, 이 땅의 여인들 중에서 가장 큰 여인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따를 수 있는 것이 복입니다.

     

    3. 하나님께 복을 받는 것입니다. 천사로부터 수태고지를 들은 마리아는 즉시 세례요한을 잉태한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이때 세례요한은 복중에서 마리아의 복중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기뻐했는데 엘리사벳도 성령에 감동되어 마리아가 메시아를 잉태하고 있음을 크게 기뻐하며 그녀를 축복합니다(41-45). 특히 성령의 감동으로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고”(43),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45)고 했습니다.

     

    마리아도 자신의 임신에 대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인정하였습니다. 그가 당장 현실에서 당할 고통과 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총 중에서 그녀는 하나님의 은혜를 택한 것입니다.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48). 마리아는 믿음의 눈으로 장래를 바라보았습니다. 비록 결혼은 파국으로 끝나고, 사람들은 자기를 비웃고 욕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자기를 존귀케 하시리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세상에서는 비천한 자신이지만 이제 후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부러워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영원히 존귀케 해주심을 생각하면서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높아지려고 하면 하나님은 여지없이 꺾으시지만 하나님이 높여주실 때 막을 자가 없습니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모든 사람을 그 발 앞에 무릎 꿇게 하셨습니다. 마리아는 믿음의 눈으로 이것을 바라보고 찬양하였습니다.

    실로 마리아의 잉태는 엄청난 희생을 각오한 모험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존귀케 해주셨습니다. 파혼을 각오했지만 요셉은 마리아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돌에 맞고 침 뱉음 당하는 수모를 각오했지만 누구도 그녀를 욕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희생과 헌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마리아의 찬양은 계속됩니다. 하나님은 교만하고 권세 있는 자를 물리치시고 비천한 자를 높이시며, 주리는 자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십니다. 이 노래를 통해 우리는 도덕적,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 각성을 촉구하게 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복된 삶은 현실에서 하나님의 듯을 발견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마리아가 지극히 평범한 쳐녀이었음에도 가장 큰 여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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