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탄과 동방박사(마태복음 2:1-12)
  • 조회 수: 946, 2012.12.22 12:39:14
  • 오늘날 네게 구세주가 나시리니 / 예수는 놀라운 주님 / 선생이나 좋은 모범이 아닌 / 하나님의 아들, 살아계신 말씀. 공상으로 꿈의 씨실을 잡고 있는 철학자도 / 미래를 주시하는 예언자도 / 과거를 탐구하는 학자도 아닌 분. 오늘날 네게 구세주가 나시리니 / 빛나라 별들이여! / 소리치라 천사의 음성이여! / 네게 이 귀중한 선물은 주어졌으니 / 노래하라, 땅이여! / 하늘의 모든 것들아, 기뻐하라! 그러한 구세주를 오래 기다려온 이 세상은 / 죄에 빠져 있고 의심과 공포로 찢어져 있네 /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진리와 지혜를 찾아 헤맸지 /영광, 영광의 빛이 드러나네. 오늘날 네게 구세주가 나시리니 / 이 땅의 유일한 희망, 생명, 진리, 길 / 능력의 하나님, 영광의 구세주 /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나셨네. (A Johnson Flint) 우리 함께 동방박사들의 성탄맞이를 생각합니다.

     

    Ⅰ.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 마태복음 2장 2절에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라고 하였습니다. 이 질문은 예수 성탄 때 저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던진 질문입니다. ‘동방으로부터 왔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떠오르는 곳으로부터’를 의미하는데 일반적으로 페르시아를 지칭한다고 함이 정설입니다. 여기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란 말 ‘마고이’(mavgoi)는 천문학자, 철학, 의학, 자연과학에 전문하는 자들, 아니면 일종의 예언자들 그리고 꿈을 해석하는 자들에게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당시에 저들은 선하고 경건한 사람들 그리고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들로 존경받는 자들이었습니다. 저들은 동방으로부터 ‘별을 보고’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별의 인도를 받고 왔다는 뜻입니다. 저들이 무슨 별을 어떻게 보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중대한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께서 별로 하여금 저들의 걸음을 유대인의 왕께로 인도하도록 섭리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아온 자들입니다. 저들의 입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아 저들이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은 당시 이방 세계가 유대에서 탄생할 메시야를 의미하여 부르는 별칭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라고 하는 별칭을 썼듯이 이방인들은 그 유대인의 메시야를 ‘유대인의 왕’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구약 시대에 수많은 하나님의 예언자들이 토한 메시야 예언의 영향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의 이 질문은 참으로 중대하고 중대한 의미의 물음입니다. 또 올바른 물음입니다. 그 이유는 과연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시기 때문입니다(계 17:14).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하기를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고 하였습니다. 그는 미가 선지자의 예언대로 베들레헴 작은 고을에서 이스라엘의 목자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로 오실 유대인의 메시야였기 때문입니다(마 2:5-6, 미 5:2). 그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유대인의 왕이었습니다(마 1:1, 9:27, 12:23, 15:22). 그는 빌라도 총독 앞에서 자신이 왕이라는 사실을 증언하였습니다(요 18:37). 그는 진리의 왕이시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자 하르낙(Adolf von Harnack)은, 예수는 단순한 인간일 뿐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예수는 하나의 위대한 종교적 인간일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는 왕이시지만 이 세상에 속한 왕이 아니라 진리의 왕이었습니다. 폭군이 아니라 겸손과 사랑과 평화의 왕이었습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멸망받을 백성을 구원하시는 구원의 왕이시었습니다. 사탄을 정복하실 승리의 왕이시었습니다. 그렇다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라고 질문을 던진 저 동방박사들의 물음은, 실로 새로운 세기의 도래를 알리는 말이 아닌가! 새로운 임금의 통치를 알리는 물음이 아닌가! 그래서 이 물음 앞에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소동을 피웠습니다. 저들이야말로 선언된 성경예언의 성취를 전혀 몰랐던 자들이 아닌가! 아니 새 임금의 도래 앞에 세상의 보좌가 흔들림이 아닌가! 아니 새 임금의 도래를 준비하지 못한 결과가 아니던가! 그러나 동방의 박사들은 분명히 유대인의 왕(메시야)을 찾아왔습니다.

     

    Ⅱ. 우리는 그(왕)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마태복음 2장 2절에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하였습니다. 이 본문에 나타난 ‘경배(proakunevw)’는 마태복음에 무려 13회나 사용되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2회, 누가복음에는 3회, 요한복음에는 9회, 요한계시록에는 24회나 사용되었습니다. 이 말의 어의는 ‘입맞추다’라는 뜻 ‘퀴네오(kunevw)’와 ‘…에게로 가까이 가다’라는 뜻 ‘프로스 (pro")’의 합성어로 ‘입맞춤으로 존경을 표하다’, ‘엎드려 절하여 존경심을 표하다’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4장 9절의 ‘경배하다’, 요한복음 4장 20절에 ‘예배하다’ 그리고 다른 성경들에서 ‘절하다’(마 8:2, 막 5:6, 행 7:43)라는 내용과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에게 ‘경배하러 왔다’고 한 이 말은 단순한 인간적인 존경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용어는 종교적 용법으로 유대인들이 큰 명절에 성전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정통적 예배를 가리키고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요 12:20, 행 8:27). 그러므로 단순한 인간적인 존경심을 초월하여 성육신하여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예배의 성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들의 방문 목적은 분명합니다. 메시야이신 유대인의 왕을 환영하고 기뻐하며 그에게 최상 최고의 숭모행위인 예배를 드리려고 왔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사람의 사람된 제일의 목적, 본분을 다하러 왔다는 뜻입니다. 박사들은 다시 저들에게 나타난 별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기 있는 곳에 머물러 서 버린 별을 보고 크게 기뻐하였습니다(마 2:9-10).

     

    그리고 저들을 인도한 별은 그곳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이유는 그 별보다 더 밝고 빛나는 영광의 예수님이 저들 앞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저들의 예배(경배)에는 세 가지 예물이 따랐습니다. 마태복음 2장 11절에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동방박사 세 사람이 왔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러나 황금과 유향과 몰약에 근거하고 박사 세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중대한 것은 저들이 왕이신 주께 드린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예물로 함께 드리는 경배행위였다는 사실입니다. 고대세계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자나 왕 앞에 나아갈 때 존경과 사랑과 신뢰의 표로, 여기에 나타난 세 가지 예물과 같은 것들을 가지고 가는 풍습이 있었습니다(삼상 9:7-8, 왕상 10:2). 또한 구약의 성경에는 이방의 왕들이 오실 메시야에게 예물을 드리며 복종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되었습니다(시 45:8, 72:10, 사 60:5-6, 61:6, 66:20, 습 3:10, 학 2:7-8). 우리는 이 박사들이 왕께 경배하면서 드린 이 세 가지 예물이 단순한 예물에서 끝남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영적,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금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통치의 왕권을 상징합니다. 왕으로서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신뢰와 그 통치에 대한 완전한 순종과 복종과 감사를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유향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장직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제물을 가지고 연결하여 주는 폰티펙스(pontifex), 곧 가교입니다. 교량입니다. 예수가 하시는 결정적인 사역 중에 하나가 그가 우리의 영원한 제사장이 됨에 있었습니다. 이는 예수의 무죄하신 신성을 상징합니다. 몰약은 대속주로서의 예수의 수난을 상징합니다. 몰약은 죽은 시체 위에 바르는 방부제용입니다. 희생의 속죄주, 대속주를 나타내는 상징이 됩니다. 그렇다면 왕을 위한 황금, 제사장을 위한 유향, 대속주를 위한 몰약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참된 왕이신 예수, 마침내 인간의 대속을 위한 구주이신 예수께 경배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역사 속에 시간이 계속될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은 계속이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사람으로 출생하였다는 사건은 새 역사의 전환점이 됩니다. B.C.에서 A.D.로 옮겨지는 구약의 종착, 신약의 시작이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 역사의 요람이 되고, 약속 성취의 절정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기록하는 역사의 새 장(章)이 되었습니다. 저 동방박사들의 성탄맞이는 우리에게 두 가지 큰 교훈을 남겼습니다. 바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의 왕이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유대인의 왕이요, 이방인의 왕이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왕은 ‘자기 땅’에, ‘자기 백성’을 찾아, ‘구원’하러 오신, 그 이름 ‘예수’라는 사실입니다(마 1:21). 그래서 바울은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찾아온 자기 백성은 언약의 백성 곧 선택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였습니다(눅 19:9). 그는 말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고 하였습니다. 그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는 유대인의 충만한 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롬 11:12).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롬 11:25). 합쳐진 온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롬 11:26). 그 수는 영적으로 14만 4천인이라고 하였습니다(계 7:4, 14:1). 그 14만 4천인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계 7:9)라고 하였습니다. 이 무리들은 예수를 왕으로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의 통치에 절대 순종하고 복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왕적 성탄을 축하하고 또 왕께 경배와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만 절대 경배를 드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를 영원한 왕으로 고백하는 황금의 예물과, 그를 영원한 신성의 제사장으로 고백하는 유향과, 유일무이하신 대속주로 고백하는 몰약을 드리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란 ‘그리스도(Christ)’와 축제(Festival)라는 뜻을 가진 ‘마스(Mass)’의 합성어입니다. 그런데 불행스럽게도 현대 교회의 크리스마스에 그리스도는 없고, 마스(축제)만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왕으로 고백하고 그에게만 경배(예배)하는 크리스마스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함께 합니다. 예수는 나의 왕이십니다. 왕중의 왕이십니다. 만왕의 왕이십니다. 경배를 받으실 영광의 왕이십니다. 이것이 동방박사들의 크리스마스였습니다. 아니 오늘 우리들의 크리스마스입니다. 왕께 경배! 이것이 성탄의 축제입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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