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서워 말라(눅1:26-38)
  • 조회 수: 642, 2013.08.22 21:58:28
  • "펠리칸이라는 새가 있습니다. 이 새는 열대지방이나 아열대지방에 서식하는 물새종류입니다. 이 새의 특징은 큰 부리 밑에 턱 주머니가 있어 그곳에 먹이를 저장했다가 그것으로 새끼를 먹여 기릅니다. 특히 죽을 때가 되면 마지막에 주둥이로 자기 가슴을 쪼아 피를 내어 새끼들에게 먹이면서 죽어가는 새이기도 합니다. 이 새의 이름을 따서 피를 흘리기까지 봉사하는 사상을 펠리카니즘이라고 합니다.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구원 사랑을 펠리카니즘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악 가운데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 구원을 위해 마지막 수단이요 절대적인 방법으로 자기 자신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 위에 보내시기로 하셨습니다. 사람을 대신하여 속죄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으로 세상에 오셔야 했고, 동시에 원죄를 피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혈통으로서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나셔야 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택함을 받고 부름받은 사람이 바로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였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펠리카니즘에 동참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는 자기의 몸에서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는 천사 가브리엘의 이야기를 듣고 마리아가 놀라며 무서워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 때 천사가 마리아에게 말한 한 마디는 ""무서워 말라.""였습니다. 이 말씀이 곧 오늘의 제목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 사역에 동참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여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위한 부르심을 받을 때 때로는 놀라며 그 엄청난 사명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것으로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하라는 사명으로 자신을 부를 때, 모세는 자기 자신이 이 일을 수행하기에는 너무나도 미약하다고 생각하며 몇 번이고 사양했습니다. 다윗이 왕으로 부름을 받을 때도 그의 부친이나 형들, 그 자신마저도 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놀랐습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첫 왕으로 부름을 받을 때도 그 자신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며 사양하고 놀란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하나님의 교회에서 사명을 받을 때 때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되고,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내심 놀래고 사양하며 무서워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우리를 향해 무서워하지 말라고 권고하였습니다. 왜 입니까? 

    I.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전할 때의 첫 마디는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였습니다. 여자 중에서 특히 당신이 복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자기보다 앞서 이미 6개월 전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례 요한을 잉태한 엘리사벳을 찾았을 때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이렇게 인사하는 내용이 1장 42절에 있습니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네 태중의 아이가 곧 복받은 열매 즉 복의 증거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위한 직분을 맡게 된 것은 복받은 일이요, 그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인줄 아시기 바랍니다. 마리아의 경우에도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하며 답답해하고 막연해하며 때로는 무서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령 사역에 참여하게 된 것이 은혜이기에 축복인줄 믿고 순종하고 충성하면 그것이 은혜요, 축복이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것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것은 은혜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직분을 받는 것은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 그 직분을 잘 감당하느냐, 그 직분에 대해 충성을 하느냐에 따라 증거를 얻고 믿음이 성장하고 좋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에 보면 바울이 세상의 직분과 영의 직분을 비교하면서 세상의 직분도 귀하고 존귀한 것임을 전제하면서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가운데 있으리라(고후 3:8-11)...""고 했습니다. 바울은 교회에서 받은 직분을 참으로 만족하게 생각하고 어떤 곤욕과 어려움이 있어도 기쁨으로 수행하여 후세 모든 직분자들의 본이 되고 교훈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 4:1-5)."" 
    마리아는 놀랍고도 무서운 부르심에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하였으니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이루어지고 그는 존경받는 복받은 여인이 된 것입니다. 

    II. 저가 큰 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31절 이하에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31-33).""라고 했습니다. 보잘 것 없는 한 시골 처녀의 순종이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역사를 이루는데 크게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고 반문했을 때 천사는 다시 말했습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35).""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지만 성령이 임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덮으셔서 가능하게 하시고, 이루어 주시고, 책임져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것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고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충성하는 것이 믿음이요, 복 받는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최근에 윌리엄 로우 박사가 "엄숙한 부르심"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세계 최대의 성자는 어떤 사람인가를 논하면서, ""세계 최대의 성자는 기도를 많이 했거나, 금식을 많이 했거나, 자선을 많이 한 사람이 아니라,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자기 직분(His Calling)에 대하여 충성하고 자기의 최선을 다하는 순종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지금의 작은 순종과 희생이 이토록 인류 구원이라는 엄청난 사건의 실마리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작은 순종과 희생이 인류 역사에서 결코 잊지 못할 일을 해 낸 것입니다. 축복 받은 거룩한 부르심에 대하여 바르게 응답한 것입니다. 
    비록 교회에서 주어진 직분만이 아닙니다. 교계 신문에 게재된 총회장의 회개문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 믿는 신자들에게 사회의 중요한 직위와 책임을 주셨음에도 이를 바르게 수행하지 못하고 줄줄이 감옥에 들어가는 치욕을 내었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직분뿐 아니라 사회에서 받은 세속적인 직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나라 건설에 초석이라는 생각으로 충성을 다하면 그것이 바로 큰 일을 행함인 줄 알아야 합니다. 
    일찍이 서재필 박사는 한국의 병이란 "거짓과 나태와 무책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고치는데 그리스도인이 약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함에도 기독교 무당주의와 교권주의, 물량주의에 휘말려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순종이 큰 일을 낳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작은 직분이라도 순종과 충성이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III.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펠리칸이라는 새가 자기의 몸을 희생하여서라도 새끼를 기르는 것과 같이 인류 구령 사역은 하나님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루신 일이기에 여기에 부름 받은 자가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 부름 받은 자가 반드시 가져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본문의 마리아도 어떤 위험에도 끝까지 인내하고 견디었습니다. 엘리사벳도 끝까지 견딤으로 승리하였습니다. 영적 싸움에서도 끝까지 견디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나폴레옹이 사관 생도였을 때 한번은 교관이 학생들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동일한 군세(軍勢)를 가진 두 군대가 같은 지형 조건에서 싸운다면 누가 이기겠는가?"" 이때 나폴레옹이 ""최후의 5분까지 견디는 자가 이깁니다.""라고 대답한 말이 유명해졌고, 이 말이 후대에 끝까지 싸우라는 말로 남아 전해지고 있습니다. 최후의 5분까지 견디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 일도 끝까지 자기 책임을 다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앗시시의 성자 성 프랜시스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두 가지 소원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영과 육이 괴로움을 당하는 당신의 십자가의 고난을 맛보게 허락하소서.""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당신이 우리 죄인을 위해 그처럼 참을 수 있었던 그 불타는 사랑을 간직할 수 있게 하소서.""였다고 합니다. 참으로 위대한 기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에도 이같은 사랑이 필요합니다. 목회도 전도도 그리고 봉사도 이같은 사랑이 요구됩니다. 이처럼 사랑하고 이처럼 희생할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신념과 확신은 언제나 같은 기초에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 생활 40년동안 굴할 줄 모르는 용기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승리하신다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질 수 있었던 것도 승리의 부활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형제 간에 불화와 다툼이 있을 때도, 때로는 오해를 받을 때도, 하나님의 진리가 승리한다는 확신이 있을 때 견딜 수 있고, 양보할 수 있고, 또 져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나타난 천사는 놀라고 무서워하는 마리아에게 놀라지 말라, 무서워 말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한 해를 보내고 새 천년의 벽두에서 탄생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댓글 0 ...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100 admin 933 2013.08.23
99 admin 729 2012.12.22
98 admin 712 2013.08.23
admin 642 2013.08.22
96 admin 3701 2013.08.23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