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의 오심은(눅 2:11-14)
  • 조회 수: 793, 2013.08.23 21:31:00
  • 해마다 12월이 되면 상점 곳곳에 성탄 카드가 즐비하게 널려 있고, 캐롤 송이 길을 걷는 이의 발걸음을 한층 가볍게 합니다.
    백화점마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과 함께 바겐세일이 시작되기도 합니다.
    I M F 경제 통치를 받아서인지 예년처럼 그렇게 요란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크리스마스는 뭇사람들의 마음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생명의 축제입니다.
    이때 세속적인 사람들은 성탄절을 이용하여 돈을 벌고, 성탄절을 이용하여 쾌락을 충족시키기 위해 인간 축제로서의 성탄절로 추락시켜 버립니다.
    그러나 진정한 성탄절은 죄인들을 위한 축제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그리스도(Christ)와 축제(Mass)의 합성어입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을 축하하는 축제의 날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크리스마스는 세계적인 축제일이 되었습니다.
    평화의 축제요, 축복의 축제요, 사랑의 축제요, 감사의 축제요, 기쁨의 축제요, 구원의 축제요, 생명의 축제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성탄절을 의미 있게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생명이신 예수님이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성탄절이어야 합니다.
    연말과 맞물려 흥청거리는 성탄절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을 볼 수 있는 성탄절이어야 합니다.
    오늘도 본문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오심은!"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성탄의 본래 의미를 깨닫는 축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1.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본문 11절에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이 사실은 마태복음 1장 21절에서도 밝혀 주고 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라는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함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기 위해 오심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에게 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마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예수님의 오심은 본문 11절의 말씀처럼 '너희를 위하여' 즉 자기 백성을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인생들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지만 그 구원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표현한다면 '제한 속죄'라고 말합니다.
    오직 '자기 백성'만을 위해 주님은 오셨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주님은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사람들만을 위해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하나님의 섭리적 사건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나사렛에 살고 있던 요셉과 마리아가 예언 성취를 위해서 베들레헴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성취시키기 위해 로마의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아구스도는 호적령을 내려 인구조사를 통해 세금 징수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아구스도는 자신이 통치하는 백성들을 정책적으로 이용해 많은 세금을 거두어들임으로 막강한 나라를 구축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서 다른 것을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약 성경에서 예언한대로(미5:2)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베들레헴은 그 뜻이 '떡집'입니다.
    그 뜻에 걸맞게 '생명의 떡'(요6:35,48)이신 주님이 오셨습니다. '하늘로서 내려온 떡'(요6:50)이신 주님이 탄생하셨습니다.
    베들레헴은 구약 시대에 에브랏(창48:7,룻1:2,삼상17:2), 에브라다(미5:2)로 불리웠습니다.
    그 곳에서 라헬이 죽었고(창35:19), 룻기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 곳이요, 다윗이 나서 자란 곳(삼상16:1,삼하23:15)이어서 다윗의 동네로 불리웠습니다.
    예수님은 요즘처럼 좋은 의료기기가 갖추어진 병원에서 탄생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따뜻하고 훈훈한 안락한 방에서 탄생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관에 있을 곳이 없어 구유에서 탄생하셨습니다.
    해산할 여인을 몰인정하게 방치해 버린 민심이었습니다. 누구도 곧 해산할 여인에게 방을 제공해 주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메시야의 탄생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런 사실을 이렇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요1:11).
    이렇게 지상에서 머리 둘 곳이 없이 유랑하신 주님의 생애는 구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비천하고 초라한 탄생, 누구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탄생이었지만 천사가 나타나 목자들에게 메시야의 탄생을 알렸고, 천군 천사가 예수님의 탄생을 찬양으로 영광을 돌렸습니다(13-14절).
    짐승의 먹이통에 누우신 예수님이지만 예수님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10절).
    화려한 왕궁에서의 탄생은 아니었지만 예수님의 탄생은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나심은 온 인류에게 큰 기쁨이요 또 복음이었습니다.
    국적과 나이, 재산의 유무, 교육의 정도, 명성과 지위를 초월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이 기쁨은 세상적인 기쁨과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큰 기쁨을 이렇게 소리치고 있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습니다.
    마가도 예수님의 오신 목적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2:17).
    죽음의 덫에 걸려 있는 인생에게 그리스도의 오심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영원한 사망에서 어쩔 줄 모르는 인생에게 주님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지옥의 저주에서 천당이 있다고 알리신 주님은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나를 믿으면 너희 속에 영생이 있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죄인에게 가장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겠다는 주님은 우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성탄절!
    우리는 이 날에 이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해야만 합니다.
    아직도 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11절)고 외쳐야 합니다.
    이 기쁨, 이 능력을 소유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2.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본문 14절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세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것은 크게 두 가지 목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첫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이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라고 했습니다.
    왜 예수님의 오심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만이 인류 구속 사역을 시작하시고, 진행시키시고, 완성하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자 예수님의 성육신과 속죄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는 다 같이 완성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목적적인 삶을 사셨다면 예수를 믿는 우리들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목적 아래 움직여져야 할 것입니다.
    둘째 목적은 사람들에게 평화입니다.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평화는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제한적인 평화요, 축제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탄은 만인의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만이 가지는 평화입니다. 오직 구원받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평화입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 문제도 아닙니다. 경제 문제도 아닙니다. 사회, 교육의 문제도 아닙니다.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는 죄와 그 죄의 값인 사망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죄가 사망을 가져왔습니다. 우리의 죄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원수된 인간은 평화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평화가 없는 인생들을 위해 하나님은 친히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평화를 제공하셨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원수 관계를 헐어 버리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그늘에서 불안해하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생에게 생명과 영생을 주심으로 평화를 제공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탄의 목적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998년도 성탄절이 여러분 평생에 기억될 만한 표적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저 들뜬 마음보다는 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주님을 만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에서 도무지 얻을 수 없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가지신 여러분은 이제 불안과 초조, 분쟁과 다툼, 절망과 탄식만 있는 곳에 평화를 심어주는 평화의 사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이번 성탄절에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우리 모두 아직도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고 힘있게 성탄을 알리는 복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 0 ...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55 admin 199 2012.12.21
54 admin 808 2013.08.23
53 admin 166 2013.11.05
52 admin 644 2013.08.22
admin 793 2013.08.23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