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복음 01:26-28/ 큰 은혜
  • 조회 수: 646, 2013.11.17 17:11:20
  •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은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눅 1:26-38)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카렌다를 보면 확실합니다. B.C와 A.D가 그 분을 통해서 나뉘었습니다. 역사는 그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인 것을 누구보다도 더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구약은 예언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신약은 예언의 성취로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입니다. 신약을 좀 더 세분화하면 마태복음은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사신 예수 그리스도이고, 사도행전은 전파되신 예수 그리스도, 서신서는 설명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분이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이 세상의 모든 사람과 분명히 다른 것은 구약성경에 그 분이 이 땅에 오실 것이라는 예언이 계속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어떤 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모아놓으면 유명한 수사관이 한 사람의 삶을 수사해 놓은 기록 보다 더 정확하다" 우리들은 특별히 지난주에 말씀을 통해서 그 분이 어떤 분인가를 700년 전에 예언된 소리로 들었습니다. 성경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 아기로 그 아들이 이 땅에 오겠다"고 말합니다. "그의 어깨에는 정사가 걸려있고 그 분 안에 네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그 영광스러운 분이 이 세상 오신 통로를 우리가 오늘 이 시간에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천사의 방문


    사가랴와 엘리사벳이라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아이를 낳을 수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인간의 조건을 넘어서서 그 가정에 아기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6개월 된 후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서 나사렛 동네를 방문합니다.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요셉이라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인 마리아였습니다. 천사가 빛나는 광채로 그 앞에 나서면서 선포합니다. "은혜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 빛나는 천사의 메시지를 듣습니다. 마리아는 황공하기가 짝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이 나사렛이라는 동네는 구약에 한번도 그 이름이 드러난 적이 없는 마을입니다. 그리고 당시 개념으로 말하면 유대인들 가운데도 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는가?" 하고 코웃음치는 동네였습니다. 그 동네에 처녀인 여자입니다. 당시는 남성 위주의 사회였기 때문에 남자가 여성을 만나는 것도 기피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영광의 천사가 이 처녀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은혜 받은 자"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놀라서 깊이 생각하고 있는데 천사가 계속해서 말합니다. "마리아여, 무서워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은혜를 선포한 그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은혜의 내용을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아들을 낳겠다고 하며,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나님께서 작명해주셨습니다.

    태어날 아기 예수! - 큰 자
    그리고 이 아이를 "큰 자"라고 선언합니다. 예수! 33년 짧은 세월 이 땅에 살다가 가셨습니다. 그러나 역사상 예수보다도 더 큰 이름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다른 주장을 해도 예수의 이름을 능가할 수가 없습니다. 2천년 동안 헛소리를 참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그 분의 명성에는 조금도 누가 안되고 무서운 박해 속에서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이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책 중의 하나인 대영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확실합니다. 대개 공자나 석가나 소크라테스는 800자에서 1000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줄리어스 시이저나 알렉산더 같은 영걸들은 500자 내외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설명하기 위해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2만 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그 큰 이름을 능가할 존재는 없습니다. 언젠가 비틀즈라는 가수가 자기가 예수 보다 유명하다고 그러더니 그 친구들 먼저 돌아가셨습니다. 이 이름을 능가할 이름은 없습니다.

    태어날 아기 예수! -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이 분은 보통 분이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한 아기가 났고 그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주신 바 된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희에게 주시리니 정사가 그 어깨에 메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존경하고 소망하는 왕 중의 하나입니다. 그 때 만큼이나 이스라엘이 영광스러울 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완전한 정치의 모형을 늘 다윗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네가 생각하는 최대치의 영광스러운 정권인 다윗의 그 위 같은 위를 누리겠는데 다윗은 잠깐 있다가 갔지만, 그 분은 영원히 왕 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는 무궁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동정녀 탄생의 의문
    이 말을 들은 마리아가 천사에게 묻습니다.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질문합니다. 동정녀 탄생에 대해서 이의가 많으신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그 현장을 보니까 당사자인 마리아도 그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무슨 질문 해봐도 이 마리아 수준입니다. 저는 왜 하나님께서 동정녀 탄생이라는 방법을 주셨을까를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특별한 메시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표적을 주시려면 그 분의 태어나심이 전무후무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무도 부인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다른 사람과 똑같은 방법으로 왔으면 이 사람이 그 사람인지 아닌지 도무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창세 때, 범죄한 아담과 이브에게 여인이 아들을 낳아서 사탄을 내리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고 7백년 전 이사야를 통해서도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처녀를 통해서 아이를 낳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이 처녀는 그것이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처럼 묻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천사가 말합니다. 이것이 정답입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성령으로 되었다고 말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리니 지극히 높으신 분의 권능으로 이 일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 태어날 거룩한 자, 죄 없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겠다고 하니까 여호와의 증인에서 늘 시비를 걸기를 "예수가 어떻게 하나님이냐? 봐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지!" 합니다. 그러면 제가 그 분들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개 새끼는 무엇이요?" "개입니다" "고양이 새끼는?" "고양이요" "말 새끼는?" "말입니다." "쥐 새끼는?" "쥐이지요" "사람 자식은 무엇입니까?" "사람이요" "하나님 아들은?" "...."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제자들이 고백했습니다. 어느 날 도마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고백하기를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크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할지어다"라고 노래합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그 증거를 댑니다. "6개월 전에 인간적으로 자식을 낳을 수 없던 네 친족 엘리사벳이 이미 아이를 가졌다. 그 여자는 수태할 수 없는 조건이지만 벌써 여섯 달이 되었노라.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신용 자체입니다. 인간의 말은 어떤 때는 그것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안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빛이 있으라"고 했더니 빛이 생겼습니다. "물과 뭍이 나눠지라"고 말하니까 물과 뭍의 경계가 온전하게 섰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남극과 북극이 녹으면 지구에 물에 차서 모든 사람이 죽겠다고 생각하십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럴 일 없습니다. 주께서 물과 뭍의 경계로 정하셨다고 말했습니다. 물로는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환경을 파괴하면 안됩니다. 환경 파괴의 보복을 우리가 당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가 죽지 않을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지경을 그의 말씀으로 운행하고 관리하시기 때문입니다. "우주야, 운행하라." 그러니까 그의 명령에 따라서 거대한 우주가 지금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반응 -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마리아는 이 말씀 앞에 이렇게 겸손하게 섭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순종은 겸손의 진정한 표현입니다. 겸손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순종하면 겸손하게 됩니다. 겸손하지 않고는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나도 내 생각이 있고 내 뜻이 있는데 어떻게 그 분 뜻을 따릅니까? 내게도 능력이 있는데 왜 그 분에게 다 맡깁니까? 겸손해질 때 "주의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이 비밀을 그 때부터 가슴에 담았던 것 같습니다. 30년 후 쯤 됩니다. 갈릴리 가나에 혼인 잔치가 있었습니다.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에 갔고 예수님도 초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의 피로연에 꼭 필요한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우왕좌왕합니다. 그 때입니다.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가서 포도주가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했습니다."라고 거절합니다. 그렇지만 이 포도주 해결할 분이 오직 예수님인 것을 확신한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시킵니다. "저 분이 무슨 말씀하시든지 그 분 말씀대로만 해라." 하나님 앞에 서서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했던 그 놀라운 비밀을 가졌기에 자기가 어렵고 힘들 때, 살아계신 전능자의 도움이 필요할 때 그는 자신있게 사람들에게 소개하면서 말합니다. "이 분이 무슨 말씀하시든지 그대로 해라." 그 분은 말합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말한 즉 저들은 채웁니다. "갖다주라"고 합니다. 갖다주었더니 물이 포도주로 바뀝니다. 마리아는 예수 앞에 서야될 오고 오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가르침이 될, "그 분이 무슨 말씀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는 신앙고백으로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이미 그 생애 속에서 배웠던 것입니다. 이 놀랍고 신비로운 한 처녀를 통해서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이 틀림없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할렐루야, 아멘!" 해야됩니다. 이 여인은 큰 이름이 되었습니다. 만고에 이 여인 보다 더 복된 이름이 없습니다. 카톨릭에서는 이 여인을 신격화하는 잘못을 범합니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는 이 여인을 비하하려고 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여인 중에 가장 큰 여자입니다. 이 보다도 더 복된 여인은 세상에 없습니다. 주님께 순종함으로 얻어진 축복입니다.

    고통의 대가를 지불하는 순종
    그렇지만 우리는 이 순종을 통해서 배워야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했던 그 결심 속에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처녀가 아기를 낳아야 된다는 고통이었습니다. 그 당시 처녀가 임신하면 돌에 맞아 죽던지, 목숨을 부지한다고 해도 평생을 사람들에게 멸시와 손가락질을 받아가면서 살았어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일이 우리 삶 속에 이루어질 때도 내게 조그만 고통만 있으면 이렇게 외쳐댑니다. "하나님, 이 일이 좋긴 좋은데, 왜 납니까?" 저희 부모님은 안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제가 목사 되어서 목회 안하고 바쁘게 C.C.C. 일만 하니까 아버님이 저를 불러놓고 말씀하시기를 "네가 하는 일이 좋기는 좋은데, 네가 왜 그 고생하냐? 고생 안할 길도 많은데..." 하시더라구요. 이것이 부모의 편견이라고 생각됩니다. 자식이 고통 당하면 그 고통을 옆에서 못 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일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져도 조그만 고통스러우면 짐을 벗겠다고 말합니다. 여기, 이 거룩한 여인은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그대로 수납합니다.
    기독교 역사를 자세히 보면 고통 없이 위대하고 아름답게 이루어진 큰 일은 역사상 한번도 없었습니다. 아니, 교회가 짐을 벗어버리고 고통을 겪지 않으니까 그 문화가 망합니다. 18세기입니다. 산업혁명으로 영국이 엄청난 발전을 했습니다. 또 청교도의 부흥운동으로 영국은 완전히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부자와 가난한 자가 갈라져서 싸우게 되었습니다. 그 때, 영국의 빈민들은 돈 많은 사업주들과 귀족을 향해서 "당신들의 지갑이 회개하기 전에는 그 회개는 가짜입니다."라고 외쳤습니다. 한편 부자들은 영국의 노동자에게 "당신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처럼 이 땅에서 일해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외쳤습니다. 그 일로 말미암아 칼 막스는 만약 이 땅에서 공산화가 된다면 가장 먼저 공산화될 나라가 영국일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위기를 벗어났습니다. 한편 러시아는 인구의 99%가 러시아정교회 교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계속 부자가 되었습니다. 저들은 엄청난 부를 축적해서 전 국토의 8할을 교회의 재산으로 삼았습니다. 모든 사람을 농노처럼 부리면서 "너희들이 수고하고 고생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호도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망했습니다. 러시아가 망할 즈음에 만들어놓은 호사스러운 것을 지금도 크렘린 궁 안에 있는 예배당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고통을 당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 위해서 댓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그 문화는 망합니다.
    저는 밀알학교 건물을 볼 때마다 기적 같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지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이 건물이 이처럼 정성스럽게 지어졌기 때문에 지금 대한민국에서 우리 학교 이후에 장애인 학교를 짓는 곳마다 가보면 정말 잘 짓습니다. 괴짝처럼 규격품의 학교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학교 마다 설계자가 정식으로 설계한 건물로 지어졌습니다. 가보면 넓은 실내 체육관도 있고 국제 규격의 풀장도 있고 건강한 아이들에게는 없는 시설들이 특수 학교에 가득 차있습니다. 실제로 쓰지 않는 것들도 많더라구요. 우리 밀알학교가 정성스럽게 지어졌더니 장애인 학교는 잘 지어야 된다는 편견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또 제가 장애인 부모들이 당하는 고통 중에 이런 이야기도 들어보았습니다. 일산에 사시는 한 장애아의 어머님이 밀알학교가 참 부럽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건물 잘 지어서 부럽다는 말이고, 학교 선생님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열심이어서 부럽다는 말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닙니다. 모든 장애학교에 어른이라고 다니는 사람은 선생님 아니면 부모 밖에 없답니다. 다른 사람은 장애학교에 아예 들어가지를 않는답니다. 그런데 밀알학교는 교인도 들어오고 봉사자도 들어오고 누구든지 맘대로 들어와서 누가 장애아를 가진 사람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되어서 참 좋다는 말인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찌릿하게 아파왔습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학부형은 밀알학교 선생님은 천사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나도 내 자식이지만 꼴도 보기 싫어서 외면할 때가 있는데 우리 밀알학교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찡그리는 얼굴 한번 안 보여주면서 품어주는 모습을 볼 때 꼭 천사 같다." 한국에서 장애인 교육을 말할 때는 건강한 아이들과 함께 하는 통합교육이 지상목표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장애인과 통합교육을 어느 학교가 가장 잘 시키는가 하는 그 모델이 이 학교입니다. 3년 밖에 안된 학교에 하나님께서 엄청난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런 축복이 우리에게 주어지기 전에 우리 속에 주셨던 지난날들의 세월을 뒤돌아보십시다. 우리가 중동학교 강당에서 예배드렸습니다. 그 때는 예배 전에 접의자를 다 꺼내어 펴고 예배만 끝나면 스탠드 위에 다시 다 접어서 올렸습니다. 또 지금은 저희 교회 교육 부서들이 본 교회 건물과 이 밀알학교에서 분산되어 예배를 드려 불편하다고 하는데 그 때는 복도 이곳 저곳에서, 지하실에도 방을 만들어서 주일학교를 했습니다. 얼마나 불편했습니까? 삼성재단에서 중동 학교를 인수해서 우리 교회가 비켜주어야 되었는데 어느 날은 강당 수리를 한다고 해서 저희들이 한 두어 주간을 운동장에서 예배드렸습니다. 그 때 마음 속에 "하나님, 우리가 예배드릴 때 휴거시켜 주시옵소서. 이대로 올라가서 구름 위에서 잠깐 예배드리고 내려오게 해주시옵소서." 그런 마음이 들더라구요. 그랬더니 교인이 200명 정도 줄었습니다. 그 고통의 대가를 우리 주님께서는 크게 갚아주신 줄로 믿습니다. 밀알학교, 우리가 지은 학교가 아니더라구요. 그 이유를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저희가 이 학교 지을 때 교인이 800명이었습니다. 그래서 헌금하자고 해서 400가정이 했으니까 아마 거의 전 교인이 헌금을 했던 것 같아요. 지금 정확하게 액수는 기억을 못하는데 처음에 27억인가, 28억인가 헌금이 되었어요. 그런데 그 27, 28억이 어디로 들어갔는 줄 아세요? 은혜교회가 가지고 있던 빚 갚느라고 20억 들어갔구요. 그리고 교회 건물 수리한다고 5억 들어갔어요. 그러면 몇 억 남습니까? 그런데 주께서 이 밀알학교 건물을 주셨습니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저는 여자들이 그렇게 사나운지 처음 알았습니다. 제 아내도 상당히 사납다고 생각했는데 동네 여자들이 제가 설교만 하면 저를 정, 좌, 우로 싸고는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하고, 또 어떤 때는 회의하던 도중에 끌려가서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우리 성도들 그 때 많이 고통 당했습니다. 특별히 이 앞 동네 사는 남서울교회 성도들의 수난은 아마 말도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도 교회 옮기지 않은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그 고통을 당해 뒤로 물러섰으면 이 아름다운 것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큰 은혜는 어떤 때는 고통을 수반해서 옵니다. 우리는 은혜라고 하면 좋은 것, 영광스러운 것, 아름다운 것, 귀한 것으로만 오는 줄 압니다. 아닙니다. 너무 귀하기 때문에 어떤 때는 아프게도 옵니다. 어떤 때는 손해로도 옵니다. 그 손해를 감내할 때 전능하신 주님께서는 그 손해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십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통로였고, 그것이 세계 역사에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문화를 꽃피운 발자국이었고, 그것이 우리 남서울은혜교회가 여기까지 오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었습니다. 저는 남서울교회를 20년 목회하면서 가장 영광스러운 때가 언제였느냐고 물으면 자신있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아껴쓰면서 에어콘도 달지 않고 창문도 없는 예배당에서 땀흘리며 예배드렸던 그 예배를 받으시고, 밖으로 선교와 농어촌교회와 다른 기관들을 돕게 하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에 그 많은 교회를 놔두시고 남서울교회를 남서울교회 되게 하신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고통을 통해서 더 크고 아름답게 일어납니다. 오늘도 고통 중에 아파하시는 분 있습니까? 절망하시는 분 있습니까? 이 고통을 왜 나만 당해야 되느냐고 외쳐대시는 분 있습니까? 여러분이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세워놓고 보시면서 만약 잘못된 것 있으면 회개하십시오. 회개하기 전까지 그 고통은 물러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회개했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섰는데도 그 고통이 떠나지 않으면 그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역사를 일으키실지를 기대하십시오.
    그저께 송명희 시인이 오랜만에 날씨가 풀려서 제 방에 와서 한 시간 정도 같이 놀다 갔습니다. 지금도 밤에 기껏해야 한시간 반 이상은 못 잔다고 합니다. 지금도 심장 눌리는 아픔 때문에 누울 수가 없어서 앉아서 잠을 잡니다. 그런데 함께 이야기해보면 그 때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부인할 수가 없게 됩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 여자에게 이런 은혜를 주실 수 있을까?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이번 24일 날에 있을 열린 음악회 때 송명희가 "공평하신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해 방송 출연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 불평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송명희가 "우리 하나님 공평하시다"고 노래하면 끝입니다. 거기다가 더 말을 붙이면 잔소리입니다. 그 고통을 주님 앞에 드렸더니 그 고통을 통해서 주께서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메시아는 한 여인의 고통의 결심 속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짐을 교회가 질 때, 나라가 바로 섭니다. 제가 이 나라를 요즘 위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교회가 민족의 고통을 지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은 앞으로도 과거에도 밤낮 정치적인 책략 밖에 안 할 것입니다. 정주영씨든, 이건희씨든 장사꾼은 계속 사기치며 장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어떤 길로 가든지 하나님의 뜻이면 그 고통을 묵묵히 지고 믿음으로 달려갈 때, 하나님은 그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실 줄로 믿습니다. 두려운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고통 당하는 것을 두려워해서 비겁하게 물러서는 것입니다. 순종은 죽는 길이 아니라 사는 길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삶 속에 이루는 통로입니다. 이 성탄절에 영광의 주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마리아의 고백을 우리 주님 앞에 드려야될 것입니다.
    "주의 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고통을 각오할 때 주께서 이 땅에 오셨고 주의 뜻은 성취되었습니다. 이런 은혜가 이번 성탄절에 우리 성도들의 삶 속에 넘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순종할 때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역사합니다. 이런 귀한 생애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 0 ...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admin 646 2013.11.17
139 admin 531 2013.09.09
138 admin 144 2021.12.13
137 admin 922 2013.11.08
136 admin 618 2013.09.07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