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가정, 좋은 가족(골3:18-21)
  • 조회 수: 402, 2013.07.27 21:11:05
  •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어떻게 하면 오늘의 가정의 위기를 극복하고 신앙적인 가정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가정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집단 중에서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1차 집단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가정과 관련을 맺습니다.  죽은 후에도 인간은 자식들을 남김으로 부모들의 얼과 정신을 남겨 놓게 됩니다.  

     가정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성격이 형성되는 가장 중요한 장소입니다.  보통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성격형성은 생후 약 6년 동안에 걸쳐서 형성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 기간을 더욱 짧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약 1년 6개월, 그러니까 태어난 지 1년 6개월 동안에 그 아이의 성격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에릭슨은 갓난아이가 어머니의 품에서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어머니의 사랑을 흠뻑 느낄 수 있는 환경에서 젖을 먹고 성장하면 그 아이의 성격은 좋은 성격을 갖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젖을 먹을 때에 모유를 먹지 못한다든지 어머니와 충분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환경 없이 내 팽개쳐진 상태에서 젖을 먹게되면 그 아이의 성격은 나쁜 성격이 된다고 했습니다.  

      특히 갓난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에는 피부접촉을 하면서 젖을 먹이는 것이 훨씬 좋다고 합니다.  인간의 완전보호 구역인 자궁 안에 잉태한 생명은 어머니와의 사이에 아무 것도 걸리는 것이 없습니다.  어머니와 아이는 피부가 서로 맞닿아 있습니다.  그 사이에 옷이 끼어있지를 않습니다.  때문에 아이를 안을 때에도 서로의 살결이 접촉하는 것이 성격형성에 훨씬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피부접촉이 없는 상태에서 고무로 만든 우유병을 들고 수유를 하면  그 아이의 성격은 나쁜 성격이 되기 쉽다고 합니다. 
    부부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피부와 피부가 맞닿을 때 인간은 행복을 느끼고 안정감과 평온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최근의 어떤 통계에 의하면 부부가 평상시 길을 갈 때 손을 잡고 가면 평균 7년 정도 더 오래 산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7년 더 오래 살고 싶으신 분들은 예배 드리고 돌아갈 때에 꼭 손을 잡고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가정은 한 인간의 성격이 형성되는 온실과 같은 곳입니다.  부부간의 사랑을 바탕으로 가정이 형성되며 그 사랑 속에서 가정은 공동체로서의 사랑의 꽃을 피워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점점 가정이라는 곳이 사랑과 존경을 나타내는 장소가 되기보다는 하나의 하숙집과 같은 곳으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현대인들은 바쁘게 움직입니다.  젊은 부부들은 둘 다 직장생활을 하는 비율이 높아졌습니다.  학생을 둔 가정은 서로의 시간이 맞지 않아서 같은 시간에 온 가족이 식사를 할 수 없게 됨으로 식탁공동체의 모습이 깨어졌습니다.  또 나이가 들면 그때는 자녀들은 다 떠나고 오직 자식들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노부부들은 그냥 소외된 채로 쓸쓸하게 살아가거나 양로원 같은 곳으로 버려지게 됩니다.  오늘날 가정의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가정의 위기는 경제적인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번듯한 집도 있고,  가난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경제적인 풍요로움 속에서 사는 것 같지만 그 가정 속에 위기가 있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 위기는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족 사이의 사랑의 결핍에서 오는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아무리 경제적인 풍요가 주어진다고 해도 가족들 사이의 관계가 사랑의 관계로 회복되지 않고는 결코 오늘날 가정의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가족들 사이의 1차적인 관계회복은 부부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정을 지탱해나가는 힘은 부부 사이의 사랑입니다.  오늘의 성경말씀에서는 부부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18절부터 19절까지 보면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면 이 말씀들은 매우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아!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여자들이 참아야지!  여자들이 복종해야지! 하고 요구할 것입니다.  
     또 여자들의 입장에서는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아내에게 잘해야지!  앞으로 21세기에는 여자들의 시대가 온다고 하는데 여자들에게 잘못하면 남편들은 국물도 없어!  젊을 때 잘못하는 사람들은 일본사람들 처럼 남편이 직장에서 은퇴할 때까지 꾹 참고 기다렸다가 남편이 은퇴를 하자마자 동시에 이혼소송을 내서 위자료를 톡톡히 받고 발로 빵! 차 버려야해!  황혼이혼을 해서 보복해야 하는 거야!]하고 주장하게 될 것입니다.  요즘 일본여자들 보니까 참 지독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젊을 때는 아무리 못했어도 나이가 많아지면서 좀 달라지면 그때는 남자도 용서를 받고, 구제 받을 수 있는데 일본여자들은 기다렸다가 때가 이르렀을 때 이혼을 하고 남자를 내어쫓는 황혼이혼을 당한다고 합니다.  나이 들어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 한국남자들은 행복한 줄 아시기 바랍니다.  젊으신 남자 분들은 아내에게 더 잘 하시길 바랍니다.   나이가 많이 드셨는데도 아직도 변함없이 제왕의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부는 서로 존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의 질서를 위해서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고 또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일찌기 바울 사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말씀의 골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말씀인 골로새서는 주후 61-63년에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있을 때에 기록한 말씀입니다.  이때 당시에 여성들의 위치는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여성들을 집이나 가축과 같은 소유물로 생각했습니다.  모든 특권은 남성에게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남성이 모세의 율법을 이용해서 여성을 학대하는 것을 금지하셨습니다.  여성과 결혼해서 살다가도 싫증이 나거나, 권태를 느끼거나, 남자가 바람이 나게 되면 여성을 합법적으로 내어쫓았습니다.  남자들이 여자를 내어쫓을 때에는 구약의 율법을 이용했습니다.  구약의 모세의 율법에서는  여자에게 이혼증서를 써주라고 했던 것입니다.  물론 여자가 불륜을 저질렀을 경우에만 남자가 이혼증서를 써주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당시의 남자들이 이혼증서를 써주라는 것을 핑계로 여자들에게 억지를 부린다든지 혹은 남성 자신의 잘못을 여자들에게 뒤집어 씌워서 여자들을 합법적으로 내 쫓는데 율법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레 19:12절)  그래서 남자들이 힘으로 여성들을 몰아세웠습니다.  그리고 여자들이 부정한 일을 저질렀다고 뒤집어 씌웠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슴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에 의해서 가정과 남편으로부터 쫓겨나는 일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더군다나 이혼증서를 써주는 것은 남성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기 때문에 남성들은 율법을 이용해서 여자들을 내어쫓고 그리고 새장가를 드는 사람들이 많아졌던 것입니다.   여자들은 이혼증서를 써줄수가 없기 때문에 남성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서 많은 가정들이 파괴되었습니다.  힘이 약한 여성들이 일방적으로 남성들에 의해서 피해를 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를 분명하게 금지 시켰습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의 권익을 세워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9장 4절에서 [사람이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라고 말씀하심으로 남성과 여성은 하나님께서 동등하게 지었다는 것을 나타내셨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예수님의 정신을 바탕으로 가정에서의 부부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가정의 질서를 세우는 사람은 남자이기 때문에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를 물건 취급하듯이 대하지 말고 인격적으로 대할 것이며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라 사랑하는 관계로 대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런 정도의 윤리적 교훈은 도덕가들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일 수 있습니다.  동양의 교훈에는 바울보다 더 고상한 가정교훈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교훈은 도덕가의 가르침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바울은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나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나 자녀들이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것은 모두 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의 가정은 하나님 중심의 가정을 만들어가야 모든 가족관계가 원만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가정은 어디에서부터 나옵니까?  좋은 가족관계가 되어야 좋은 가정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좋은 가족관계는 어떻게 해야 이루어집니까?  좋은 가족관계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신앙을 가지게 될때 형성됩니다.  신앙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가정 치고 그 가족관계에 문제가 있는 집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들 가운데 신앙의 가정을 이루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족들 사이에 관계가 눈에 띌 만큼 화목하지 못한 가정의 분위기 속에서 생활한다고 한다면 그 가정은 신앙의 기초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무언가 문제 있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중심의 가정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가정문제는 바로 하나님 중심의 가정을 만들어 가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게 되면 사람을 속이지 않습니다.  눈가림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습니다.  23절에는 종들에게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사람을 대할 때에 주님을  맞이하듯이 대하게 됨으로 신중하게 신뢰감이 가도록 대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느 집사님 한 분은 택시를 운전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이분은 늘 자신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특히 자신이 다른 사람만큼 못 배웠다고 하는 것 때문에 늘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못 배웠다고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를 못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늘 괴로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분은 교회에 나오기는 하는데 늘 소극적입니다.  대화 중에 자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어떻게 할까!  이것 때문에 늘 고민합니다.  그런 생각을 갖으니까 자연히 사람을 피합니다.  교회 대예배 시간에만 나왔다가 사람과 마주치기가 싫어서 쏜살같이 집으로 갑니다.  그런데 이러한 심리적인 상처는 점점 깊어갔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를 멀리하면서 술과 담배를 더욱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급기야는 술을 먹으면 이제는 필름이 완전히 끊겨버리는 중독상태에까지 갔습니다.  이렇게 되니 교회와 교인은 점점 싫어지는 것입니다.  자연히 교회와 신앙은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거기다가 도박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한번 집을 나가면 몇일이고 들어오지 않습니다.  남편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아내는 몹시 답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 가정에 이런 시련을 주시는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하나님께 울며 기도했습니다.  울면서 기도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목회자에게도 기도요청을 해왔습니다.   목회자들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도하고 남편을 권면했습니다.  남편은 목사님에게 와서 기도를 받을 때뿐입니다.  기도를 받을 때에는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신앙으로 살겠다고 약속을 해 놓고, 기도 받고 교회 밖에 나가면 또 그런 생활이 반복되는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바로 인간의 가장 약한 점을 틈타서 가정의 파괴를 불러 일으킵니다.  
     그런데 그 집에는 5학년에 다니는 딸아이가 있었는데 그 딸아이가 얼마나 신앙이 좋은지 모릅니다.  늘 자기 어머니를 따라서 저녁예배까지 나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딸아이가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워서 피아노를 곧잘 칩니다.  하루는 아빠가 집에 있을 때에 교회에서 배운 복음성가를 칩니다.  

     [탕자처럼 방황 할 때도 애타게 기다리는 부드런 주님의 음성이 내 맘을 녹이셨네  오 주님 나 이제 갑니다.  날 받아 주소서.  이제는 주님만 위하여 이 몸을 바치리다]  

     딸의 반주에 맞추어 복음성가를 흥얼거리던 이 아빠는 마음이 크게 찔렸습니다.  마음속으로 눈물이 흘렀습니다.  내가 왜 이런 지경까지 오게 되었을까! 후회하는 마음이 가득 찼습니다.  그 길로 나가서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 노름판에 앉아 있을 때에 딸의 피아노 소리와 함께 또 그 가사가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탕자처럼 방황할 때에.......] 
     결국 그 집사님은 몇 번 되풀이되는 고통의 과정에 종지부를 찍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서 건강한 가정을 꾸몄습니다.  그 가정은 딸의 피아노 소리에 맞추어 하나님 앞에 찬양을 부를 때마다 감사가 넘치는 가정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는 신앙의 가정이 얼마나 행복하다는 것을 자신의 일순간의 타락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우리가 왜 좋은 가정을 꾸미고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거꾸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웃음이 넘치는 건강한 가정을 만들어 가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웃음이 넘치는 건강한 가정은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누가 가져다주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합니다.  좋은 가족 관계가 형성되면 좋은 가정은 자연히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좋은 가족관계는 신앙으로 하나가 될 때 이루어지게 됩니다. 

     때문에 온 가족이 모여서 하나님께 가정예배로 드려야 합니다.   행복의 근원입니다.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가정의 재산입니다.  신앙을 남겨주는 것은 유산을 남겨주는 것보다 더 큰 무형의 자산입니다.  대체적으로 목사나 장로의 가정의 자녀들이 축복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무형의 자산인 신앙을 유산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하나님 말씀도 같이 공부해야 합니다.  부부간에도 자연스럽게 신앙적인 토론이 되어야 합니다.  일주일이 되도록 가정에서 신앙에 관한 이야기 한번 나오지 않는다면 그 가정은 영적으로 죽은 가정일 것입니다. 
    아이들은 가정의 영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에 관한 이야기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가정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자연히 세상적일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아주 세속적인 가정일수록 가정의 영적 분위기가 엉망인 경우가 많습니다.  동요를 다 잃어버린 아이들이 접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의 병들은 노래들뿐입니다.  어른들이 부르는 대중가요 속에서 어떻게 영적인 인물이 나옵니까?  가족들 사이에서도 대화는 없고 오직 TV와의 대화만 이루어진다면 그 속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자연히 세속적일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TV에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가능하면 그 시간에 가정의 영성을 회복할 수 있는 신앙대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족 사이에 관계회복은 대화를 하게 될 때 이루어집니다.  온 가족이 TV의 노예가 되면 대화가 되는 게 아니라 싸움이 일어납니다.  리모콘을 가지고 서로 싸웁니다.  엄마는 [남의 속도 모르고]를 봐야하고, 아버지는 뉴스를 봐야하고, 아들은 재미없는 뉴스는 왜 보느냐고 분쟁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하루종일 바쁘게 각자 움직이다가 서로 만나고 대화할 시간도 없는데 온 가족이 TV의 노예가 된다고 한다면 그 가정은 앞으로 가족관계의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가정은 세속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가정들이 영적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충만함이 가정에 가득할 때 병든 가정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맥아더 장군은 나중에 자기 아들이 아버지를 회상할 때 [전장에서 수십만 대군을 지휘하던 5성 장군으로서가 아니라 가정예배에서 겸손하게 기도하던 아버지로서 자기를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좋은 가정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무런 노력이나 댓가를 치르지 않고 좋은 가정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겸손하게 가정을 위해서 무릎꿇는 남편이 될 때 가정은 화목을 찾게 됩니다.  아내는 겸손하게 가정을 위해서 신앙으로 자녀들을 가르치며 하나님을 섬겨나가는 모습을 보이게 될 때 그 가정은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용서를 배우는 예수님의 가정이 될 것입니다.  자녀들은 신앙 안에서 사시는 부모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영성의 훈련을 하면서 자라날 때 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건강한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여러분 좋은 가정을 이루십시오.  좋은 가정은 좋은 가족관계 속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좋은 가정과 좋은 가족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가정을 이루어 갈 때 주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저는 우리 가은교회에 속한 모든 가정들이 바울이 권면하는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남편의 말에 순종하고 아내를 사랑하며 자녀 또한 부모의 말에 잘 순종하는 하나님의 귀한 가정을 이루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배부름
    부활의 주님! 
    주님께서 죽은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듯이
    세상만물이 그 형체와 색깔을 바꾸어 가는 
    그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를 느낍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죽음과 질병과 고통 속에서 나날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셨듯이 
    계절의 변화와 만물이 소생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의 영혼과 삶에 새 힘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예배를 드릴 때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게 하옵시고
    우리의 영혼이 주님께 대한 경배와 말씀 속에서 
    새롭게 소생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져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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