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사랑이 있습니다 (마가복음15:21-28)
  • 2013.02.07 22:42:02
  • 두 개의 시

    테레사 수녀의 신

    여러분에게 베풀어 주실
    하나님의 사랑을 향해 마음을 여십시오.
    그분은 여러분을 다정하게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은 거두어 가는 사랑이 아니고
    나누어주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한계가 없습니다.
    한계가 없기에 그 깊이 또한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원성 스님의 신

    보고 싶다
    진실로 그렇게 마음 깊이
    가슴 싸하게 느껴 본 적 있으신지요.
    아마 없으시겠지요.
    앞으로도 없으시겠지요.
    하늘을 보고 허공을 보다가
    누군가를 보고 싶어
    그냥 굵은 눈물 방울이 땅바닥으로 뚝, 뚝 떨어져 본 적이 있으신지요.
    없으시겠지요. 없으실거에요.
    언제나 없으시길 바래요.
    그건 그건 너무나 너무나 큰 아픔이에요.

    두 사람의 시가 다 아름다운데 왜 어떤 시는 그 가슴속에서 읽을수록 따뜻함이 배어나오고 왜 어떤 시는 허전과 애탐과 그리움이 사뭇칠까요?

    사랑을 맛본자와 사랑을 맛보지 못한자의 차이일 때문일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하나님의 사랑을 맛본자요 원성 스님은 어려서 어머니의 손에 이끌이러 절에 들어가 도를 닦다 보니 벼쩌리게 미려오는 외로움이 있기 때문일것입니다. 테레사 수녀가 원성 스님 두분다 결혼은 하지 않기는 매일반인에 한 사람은 삶에 따뜻함과 용기와 소망을 주었는데 한 사람은 삶의 아픔과 그리움과 보고싶은 것만을 준 것입니다.

    사랑이 이런 것입니다. 사랑은 생명을 낳습니다. 사랑은 사람들의 외로움을 치료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그 인생을 남기에 합니다.

    오늘 본문 - 왜 종들이 달란트를 남겼는가? 그것은 주인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

    사랑을 남기게 한다. 넘치게 한다. 풍성하게 한다. 여기 인생을 진정 남게 하고, 생명을 풍성히 얻게 하는 사랑이 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 인간들의 죄를 위해서 그 아들 독생자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

    인간들을 죄로 인해서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죄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짓고도 다른 사람이 보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죄를 짓고도 그냥 안지었다고 우기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가 단순치 않는 것은 근본적으로 사람들에게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비된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선하게 살라는 명령을 어긴 사람들, 하나님을 믿으라 하지만 믿지 않고 다른 길로 가는 사람들 이것은 다 하나님을 향해서 죄를 짓는 것이지 인간을 향해서 짓는 죄가 아닙니다. 더군다나 죄가 단순치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죄에 대해서 심판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형벌을 받습니다.

    그런데 형벌 받을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게 하셨습니다. 십자가란 가장 비참하고 저주스러운 것입니다. 신명기 21:23절에도 보면 "나무에 달린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저주받은 자만이 죽을 수 있는 장소가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그 거룩하신 예수께서, 죄가 없으신 예수께서 저주를 받으시고 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진정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죄를 지은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죄를 용서하셔야겠는데 용서하실 길이 없단 말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그 죄값은 반드시 치루어야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로 형벌을 받게 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서 내어 주셨습니다. 이사야 53자에 "그가 상함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죽으심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우리가 다 양같이 각기 제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예수님께 담당시키셨습니다. 우리 대신 형벌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그 비참한 참혹한 저주스러운 십자가였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려며는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는다. 이런 비참한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이제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받아서 그는 영원한 생명, 남는 생명,풍성한 생명을 누리면 살게 하신 것입니다.

    이 시간 다 예수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주로 모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구주로 모신 자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축복이 있습니다. 선물을 받습니다.

    1. 모든 죄가 다 용서를 받습니다.

    죄란 무서운 것입니다. 죄란 그것이 들어가기만 하면 개인이나 가정이나 사회를 파괴합니다.  왜 어린 청소년들이 음란한 곳을 찾습니까? 왜 시랜드와 같은 참사, 인천호프집과 같은 참사가 일어납니까? 다 죄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은 이런 죄를 다 용서받게 만듭니다. 과거에 지은 죄였던, 현재에 지은 죄였던, 심지어 앞으로 우리가 미래에 지을 죄까지도 다 용서받습니다. 그래서 새 사람이 됩니다.

    죤 뉴우톤의 생애를 살펴보십시오. 그는 노예상이었습니다. ... 그런 그가 예수를 믿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사랑, 그 은혜가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노래를 한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찼았고 광명을 얻었네"

    예수를 믿으므로 죄로부터 멀어지며 광명을 얻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과 아주 가까워집니다.

    예수의 십자가가 하나님과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죄를 지었을 때에는 멀고 서먹서먹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에게 올래야 올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수돗물을 틀어도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행복하게 살고 싶어도 행복해 질 수 없고, 아무리 아름답게 살고 싶어도 아름답게 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제는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에게로 옵니다. 예수님은 저수지와 수도꼭지를 이어주는 수도관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영원히 믿으심시오. 그 믿음을 성숙시키십시오. 그러면 그럴수록 여러분의 삶은 아름다워 질것입니다...

    3. 우리가 영원한 나라를 얻습니다.

    영생입니다. 장차 지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만약에 지금 당장이라도 이 세상을 떠난다면 마귀가 와서 데리고 갈까요, 천사가 와서 데리고 갈까요? 마귀가 와서 데리고 가기를 원하는 분이 있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천사가 와서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데리고 갑니다.

    저는 3부 때에도 말씀드렸습니다. 천사가 저를 데리고 갈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천사가 데리고 가기를 원합니다.

    이 땅에 살 때에도 마귀에 종이 되면서 힘들게 살다가 죽어서도 영원히 마귀의 종이 되어서 산다면 그것 이상 불행한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 믿음을 정진시키십시오. 그럴 때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 나라를 더욱 느끼며 체험하며 정말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것처럼 살 것입니다.

    자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하나님을 나라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이 여기에서 끝이 날까요? 아닙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해야 될 일이 하나있습니다. 그것은 그 구원을 남기는 것입니다. 그 구원을 남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태리 어느 소읍에 동상 하나가 서 있습니다. 개의 모습을 한 동상입니다. 그 동상의 이름은 "피도"라고합니다. 그 개의 이름입니다. 그 개는 물에 빠졌다가 죽음 일보직전에 어떤 신사양반에게서 구출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신사양반은 그 개를 집에 데려다가 키웠습니다. 미물인 개, 아무것도 아닌 짐승에 불과하지만 그 개는 주인의 은혜를 알았습니다. 얼마나 주인을 따르고 사랑하는 지 주인이 직장에 갈 때는 매일 뻐스 정류장까지 따라와 주인을 전송하고 주인이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뻐스를 타고 다시 퇴근할 때쯤이면 먼저 가서 정류장에서 기다렸습니다. 이렇게 주인을 생명처럼 여겼는데 2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 주인이 버스를 타고 돌아오다가 그만 버스가 폭탄을 맞아 주인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 개는 그날도 어김없이 정류장에 와서 주인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오지를 않습니다. 그래도 그 개는 낮이고 밤이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장장 13년 동안이나 그 정류장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음식을 가져다가 그 개한테 먹여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개는 그 주인이 돌아오기를 밤낮없이 기다리다가 그 정류장에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자리에 동상을 세운 것입니다. 자기를 죽을 자리에서 건져준 주인의 은혜를 기억한 개를 기념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다가 후에 예수를 믿었서 기독교의 변증론자가 된 C.S 루이스는 말했습니다. "예수를 우리는 단순히 하나의 성자로 보아서는 안된다. 예수의 음성을 한번 들어보라. 그분의 말을 귀에 대고 진지하게 들어보라. 그 분의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겨보라. 누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다고 한 사람이 있는가? 누가 역사에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마다 생명을 얻었다고 말하는 자가 있는가!"

    예수는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는 우리를 위해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영원히 죽어야 할 사람들을 영원히 살게 만드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할 일은 이것입니다.

    1. 주님의 받은 그 사랑을 남겨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내가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도전해야 합니다ㅣ.

    2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해서 부름을 받았다고 합니다. 거짓, 악한 생각, 싸움, 음란 이런 것들은 생각지 맙시다.

    3.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헌신해야 합니다.

    * 예수님을 향한 사랑

    예수님은 내가 살고 싶은 생명이요
    비추고 싶은 빛이요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요
    내가 표현하고 싶은 사랑이요
    내가 나누고 싶은 기쁨이요
    내 주위에 퍼뜨리고 싶은 평화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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