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자기 희생(히브리서 9장 11-14절)
  • 2013.01.26 17:25:32
  •   저는 오늘 하나님의 자기희생의 절정인 십자가의 은혜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몇 년 전 화재가 난 현장에서 소방관 6명이 아까운 목숨을 던져 순직하는 장면을 TV를 통해 지켜보면서 우리 모두가 가슴을 치며 괴로워 한 일이 있습니다. 방화범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정신적으로 약간 온전치 않은 사람인데 정신병원이나 기도원을 전전하면서 치료를 받은 경력이 있다고 합니다. 그날도 새벽 2시가 넘어서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다투다가 어머니를 때리고 홧김에 불을 질렀습니다. 불이 사방으로 번지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급히 밖으로 뛰어 나와서 소방관을 붙들고 아들이 아직 못 나오고 있으니 살려달라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소방관 6,7명이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우르르 집안으로 들어 갔다가 불더미에 힘없이  쏟아져 내리는 벽돌더미 아래 그 고귀한 생명을 던지고 말았습니다. TV를 보면서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릅니다. 나중에 보니 방화범은 오히려 멀쩡하게 살아서 밖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죽어야 될 놈은 저 놈인데 너무나 아까운 사람들이, 처자가 딸린 6명이 희생을 당했구나. 저 놈이 평생 살면서 자기가 6명의 소방관의 생명을 대신해서 살아남은 사람이라는 빚진 감정을 가지고 살까? 정말 사람이 좀 달라질까? 인간다운 존재로 바뀔 수 있을까? 자기를 위해 희생한 분들과 가족을 위해서, 자기의 몸을 던져 사람답게 살아 보려고 애를 쓸까?' 하는 생각을 하며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다가 제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영생의 복을 누리며 사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앞에 너는 진정으로 변화되어 있는가? 너무나도 고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만큼이나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 시간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맞바꾼 생명답게 가치 있는 삶을 사시고 계십니까? 

      소방관 6명이 그 인간 같지 않은 한 사람을 살리려고 하다가 순직을 당하니까 그 죽음이 얼마나 능력 있었는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찡하게 울렸고, 많은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을 뽑았고 전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소방관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 유족들을 위해서 자기 호주머니를 털고 아까운 줄 모르고 돈을 내 놓게 만들었지 않습니까? 얼마나 소방관의 죽음이 능력이 있었는지 사람들을 변화 시키고 국민의 정서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몇 년 전에 신주쿠 지하철에서 술에 만취 되어 철로에 떨어진 일본 사람을 건지려고 자기 몸을 던졌던 이수현씨의 죽음이 알려지자 전 일본 열도가 열광했고 흥분했고 애도했습니다. 얼마나 그 죽음이 능력 있었는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서 그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고 대한민국에 대한 그들의 시각을 바꿀 정도로 대단한 힘을 발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한 의인의 죽음도, 선한 사람들의 죽음도 이처럼 능력이 있다면 하나님 자신의 죽음,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마주하면서도 우리에게는 왜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첫째,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부활을 믿지 못합니다. 아니 믿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2,000년 전에 분명히 오셨고, 모든 인류를 위해 죄 없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불변의 진리입니다. 당대의 시대에 512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었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이야기 하거나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이 진리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희생과 부활을 반박하기 위해 애를 썼는지..... 역사학자, 과학자, 고고학자....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반박하기 위해 갖은 방법과 애를 썼습니다. 그러면서도 분명한 증거가 드러난 책 한 권도 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은혜를 깨닫고 주님 앞에 돌아와 그 십자가의 은혜를 책으로 저술한 사람들의 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한 두명이라야 예를 들지요.
    반면에 우리는 얼마나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한 번도 죽어보지 않고 천국, 지옥 없다고 하는 사람들 그 증거를 대 보세요. 오늘 예배 마치고 차다고 가다가 차사고 나지 않는 분명한 증거를 대 보세요. 여러분 아파트에 올라가기 위해 에리베이트를 타는데, 그 에레베이트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확실한 증거를 대 보세요. 지금 여러분들 중에는 속이 더부룩하거나 아픈 분들이 있을텐데, 그 것 위암 아니라는 분명한 증거가 있으면 어디 대 보세요. 못대지 않습니까? 어떤 분들은 더 허왕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100명 중 95명은 카지노에 가서 돈을 다 잃는데 자신은 돈을 분명히 딸 것이라고 생각하여 오늘도 강원도 어딘가에 있는 카지노에서 땡기고 또 땡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증거를 두고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못하면 어쩔 수 없는 병입니다. 이 병은 그 수많은 병들을 고치신 주님께서도 고치지 못하는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불치병입니다. 이 병은 오직 자신만이 고칠 수 있습니다.   
     
     둘째, 어떤 사람은 십자가에 대해서 너무 모릅니다. 모른다고 하는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내용을 모른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영적으로 잘 모른다는 말입니다. 십자가에 담겨 있는 영적인 의미와 은혜를 잘 모르고 신앙생활 하고 있습니다.

    1863년 링컨이 새해 벽두에 노예해방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그 일로 인해서 링컨은 괴한에게 피살 되었습니다. 자기 생명을 흑인들의 행복과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 바친 것입니다. 흑인들은 평생 아브라함 링컨의 은혜를 잊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링컨이 땅에 묻힌 뒤 수년이 지났습니다. 남부에 있는 대 농장에서는 여전히 흑인들은 노예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역사학자가 알라바마에 있는 한 흑인을 붙들고 물었답니다. "당신은 링컨을 압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링컨에 관한 말은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를 해방시켰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링컨이 누군지 잘 모릅니다. 그리고 해방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참 놀라운 이야기 아닙니까? 그러니 이 노예들의 무식함을 농장 주인들은 최대한 이용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던지 무식한 채 내버려 둬라. 가르치지 말라. 그리고 일만 시키자.' 이것이 노예 주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기에 죽으셨습니다. 그 십자가 안에 담겨있는 영적인 의미를 깊이 깨닫는 영적 지식이 부족하면 마귀 좋은 일을 시키는 것입니다. 마귀는 '모르는 것이 좋다. 교회만 다녀라. 그 정도면 됐어.' 하고 우리가 십자가 앞으로 더 깊이 들어가려고 하는 문을 전부 걸어 잠궈 버립니다. 불행입니다. 비극입니다.

     셋째, 또 한 부류가 있는데, 너무 많이 알아 가지고 십자가의 은혜에 대해서 둔감해 진 사람들입니다. 모태신앙 입니다. 주일학교 때부터 교회 다니면서 귀가 아프도록 듣고 또 들었습니다. 성경도 꽤 많이 읽고 배웠습니다. 다 아는 것입니다. 처음 이 놀라운 십자가의 은혜를 가슴으로 느꼈을 때는 주님 앞에 너무 감격해서 남부끄러운 줄 모르고 울기도 하고, 가슴이 너무 뜨거워서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하는 열정을 보인 때도 있었고, 생각 할 때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이 너무 고마워 찬송을 부르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흘러간 옛 노래가 되어 버리고 지금은 덤덤해져 버렸습니다.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병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제 모 당의 후보가 교회 앞 사거리에서 대통령 탄핵 때의 난동 장면을 차 앞에 달린 스크린을 통해서 보여주고 잇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후보를 알리는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잔인한 장면도 몇 번 보면 감각이 무디어집니다. 지난 뉴욕의 9.11테러의 끔찍함도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는 이와 같은 자연스러운 현상을 용인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항상 십자가의 은혜를 새롭게 느끼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는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한두 가지 알았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습니까? 그 깊은 차원은 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끝없이 새로운 은혜를 계속 발견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십자가가 매일매일 새롭게 다가오게 하는 분이 누구십니까?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마음이 둔감해져서 요즘에는 은혜가 안 된다는 식의 소리는 변명이지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에 비추어 보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기도의 부르짖음이 필요합니다. "성령이여 좀 더 강하게, 좀 더 진하게, 좀 더 뜨겁게 우리에게 임하셔서 계시의 영을 주시고 마음의 눈을 밝혀서 십자가의 그 놀라운 죽음을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그 놀라운 십자가의 은혜를 마음에 담을 수 있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 이대로 두셔서는 안됩니다. 우리 모두를 이대로 두어서는 안됩니다. 성령이여 임하소서. 영혼을 깨뜨리시옵소서. 영혼을 울려 주시고 영혼을 깨워 주시옵소서." 저도 십자가 이야기를 너무 많이 설교하다 보니 마음이 식어 있을 때가 많습니다.

      십자가는 몇 마디 안다고 해서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그 은혜를 다 알려면 죽을 때까지 십자가 앞에서 성령의 은혜를 받아도 모자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십자가에 대해서 무식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허리띠를 동여매고 등불을 들고 이 놀라운 은혜를 알아보려고 최선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둔감해 진 사람이 있습니까? 회개하십시오. 어디에다 마음을 다 빼앗기고 십자가의 은혜 앞에 둔감해집니까? 무엇에 마음을 다 빼앗기고 여러분의 마음은 그렇게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로만 가득 차서 십자가가 멀리 보이게 되었습니까? 원인이 어디 있는지 찾으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 앞으로 나오십시오. 성령 앞에 기도하십시오. 답답한 마음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십자가에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과 은혜를 하루하루 알 수 있도록 계시의 영을 주시고 마음의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 십자가의 은혜에 우리가 붙들리기만 하면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이 됩니다 아무도 우리를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우리가 종일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고 우리가 종일 죽임을 당하는 자처럼 취급받지만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를 이기게 하시는 능력이 십자가에 있습니다. 이 고난주간에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이 십자가의 은혜를 발견하고 우리 시민교회가 십자가의 감격, 십자가의 능력으로 다시 한 번 뜨거워지는 놀라운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 설교를 마치면서 186장 찬송을 함께 불러보고 싶습니다. 여러분 마음을 활짝 여십시오.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찬송을 부르면서 십자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은혜를 발견하게 해 주시고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것을 다시 깨닫게 하시고 아직까지도 둔감한 마음을 가지고도 태연스럽게 앉아 있는 우리가 가슴을 찢고 십자가에 그 놀라운 보혈의 피로 가득히 채우는 시간 되게 해 달라고 우리 기도하면서 이 찬송 부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세상의 모든 죄와 죽음을 홀로 지시고 험한 길을 걸으셨던 주님
    오늘도 우리의 죄와 허물 때문에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지 못하시는 주님!
    조롱과 저주를, 날카로운 창에 찔림을 받으시면서도 용서를 외치신 주님!
    오늘도 우리는 가롯 유다의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시 때때로 빌라도의 모습과 행동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죄많은 우리를 위해 살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시는 주님!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바리새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주님을 저주한 제사장의 대열에 서 있습니다.
    우리의 하는 일을 우리도 모른 채 숫한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주님 ! 나약하고 사특한 저희들에게 용서의 손길을 주옵소서.
    주님의 흘리신 피로 저희의 영혼을 소생케 하옵소서.
    용서받기를 원하는 불쌍한 우리 몸에 그 못 박힌 손을 얹어 주옵소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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