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를 영접하고(마19:13-15)
  • 조회 수: 48, 2013.05.27 07:04:21
  •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참으로 변화 무쌍한 시대를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어린이들 특별히 여러분들의 가정에 속한 모든 어린이들 위에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큰 무리들을 가르치고 계실 때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녀들이 예수님께 안수도 받고 기도도 받기를 원하여 그렇게 한 것이었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우리 나라 사람들이나 유대인들이나 자기 자녀들이 잘되기를 원하는 부모 마음은 다 같은 모양입니다. 그들은 자기 자녀들이 훌룡한 선생님께 기도도 받고 안수도 받고 정말 귀한 존재들로 자라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자녀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와 기도를 요청하는 이들을 본 제자들은 그 행위를 꾸짖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피곤하신 주님께 이거 너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아마 나름대로 자신들이 주님을 위한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제자들의 행동을 제제하시고 그 아이들을 가까이 오게 하셨으며 그들에게 손을 얻어 안수하여 주셨다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귀한 교훈들은 무엇입니까?

    주님에 대하여

    1.주님은 자녀들이 복받기 원하는 부모의 마음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 자녀들이 주님의 기도를 받고 안수 받기를 원하여 나오는 그 부모들의 마음을 받으셨습니다. 그런 마음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들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피곤하신 주님의 육신적 상황으로 볼 때 이 부모들의 행동은 조금도 상대방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측면이 엿보입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자식들이 복받는 삶을 살게 하고픈 그 부모의 마음을 이기적이라 비난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의 민망함을 없이 하여 주시고 가까이 다가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것을 봅니다. 
    오늘날도 주께서는 자녀들을 위한 부모님들을 간절한 소원을 들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주님은 아이들을 사랑하시며 그들에게 축복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행동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두 번째 귀한 진리는 주께서 어린아이들을 매우 기뻐하시며 그들을 축복하시는 일을 매우 기꺼이 여기셨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아이들을 안수하신 후 그곳을 떠난 것으로 보면 아마 아이들이 주님 앞에 나온 이 시간이 모든 집회가 끝나갈 즈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매우 지치고 힘드실 시간이었을 것임이 분명한 데 주님은 이 순간에도 그 아이들 모두의 위에 손을 얻어 안수 하신 후 비로소 그 장소를 떠나셨다고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어린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어린아이들을 사랑하신다면 당연히 주님의 몸된 교회가 어린아이들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로 인하여 어린아이들이 주님 앞에 나오는 것이 방해 받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즉 어린아이들이 주님 앞에 나오는 데에 어떠한 장애도 없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런 주님의 마음을 알았다면 주님의 몸된 교회는 바로 이런 체제를 갖출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자유롭게 나와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교육 제도를 갖출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어린아이들을 주님을 자유로이 만날 수 있게 할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온 성도들이 유치 유년 초등부 주일학교 교육에 대한 관심을 더 크게 기울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관심이 온 교회 안에 있을 때 우리 교회가 주님의 책망을 받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생각할 부분은 자녀 양육에 있어서 부모들의 신앙에 대한 것입니다. 

    부모들의 신앙

    1.이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제가 이 부모들의 모습에서 가장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들이 자기 자녀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것이 무엇보다 귀중한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을 예수님 앞에 데려 오기를 기뻐하십니까? 
    저는 이 자리에 계신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께 자기 자녀들을 데려 오기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 어떤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그 어떤 것 보다 "네가 교회 안에서 주를 섬기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 교육하면서 자녀를 가르치시는 분들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세상에서 좋은 선생님과 만나기만 해도 거기에 상당한 발전과 진보가 이루어 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하물며 그들이 예수님과 만나게 된다면 거기에 어떤 일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을 예수님 앞에 세워 보십시오. 거기에 그들의 밝은 미래가 있는 것입니다. 

    2.이들은 자녀들에게 아무 문제가 없을 때 ,아직 평안할 때 예수님 앞에 그들을 데려왔습니다. 
    자녀들이 병들기 전에,그들에게 무슨 아픔이 있기 전에 예수님 앞에 자녀들을 데려왔습니다. 우리는 이런 점을 배워야 합니다. 문제가 일어난 후에는 참으로 수습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미리 주님과 자녀의 관계를 잘 맺어 줄 때 오히려 문제는 사라지게 될 줄 믿습니다. 

    3.이들은 예수님이 자기 자녀들을 위하여 축복기도해 주시고 안수해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이 부모들은 그 자녀들에게 예수님의 축복하심이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귀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예수님의 축복하심과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심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이 시대에 이토록 자녀들이 예수님의 축복을 받고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이것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되는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을 주님 앞에 데리고 나오는 일에 우리 모두는 열심을 내야 합니다. 
    어떤 교우들을 보면 늘 자식들과 함께 예배에 참석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주일 하루 만이라도 온 가족이 함께 하나님을 찾아 예배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좋아 보입니다. 늘 주님을 사모하는 정신으로 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시대의 문제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자녀문제일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우들의 대화 속에서도 최대의 관심 거리가 자녀문제인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요즘 각 가정은 과거만큼 아이들을 많이 낳지 않습니다. 그리고 몇 안되는 자녀들에게 최대의 관심을 쏟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부모님들의 관심이 많이 있다고 해도 자녀의 문제들이 과거보다 더 가벼워졌다든지 혹은 없어졌다든지 하는 말은 들을 수 없습니다. 아니 시대의 변화와 함께 자녀 교육이 더욱 더 힘들다는 소리만이 들릴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자녀들의 문제에 대한 해결이 단순히 부모님들의 관심만으로 되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부모님들의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부모님들만의 힘으로 자녀문제 전체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생각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너무나도 빨리 달라지고 있습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저들을 바로 세울지 걱정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실 것입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내 자녀들을 복된 자녀로 만들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성경의 교훈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1)말씀이신 주님 앞에 자녀들을 데려와야 합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 보다 좋은 자식 교육방법은 없습니다. 사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영어나 수학 문제 하나를 더 아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인격적인 성숙함이 있고 사랑이 있는 자녀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세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6장)

    날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교훈을 따라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을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그들이 참으로 아름다운 인격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부모가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요즈음의 가정을 빗대어 만든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고층 아파트에 잘 사는 가정에 끔찍한 불상사가 생겼습니다. 부부싸움이 격해진 나머지 남편이 그만 가스 밸브를 열고 방에다 불을 붙였습니다. 집안은 `펑'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불이 났고 옆방에 있던 아들 녀석이 말릴 틈도 없이 창문으로 뛰어 내렸습니다. 엄마 역시 고층에서 뛰어 내렸습니다. 남편은 홧김에 한 일을 후회하고 소화기를 찾았지만 없었습니다. 그래서 별 수 없이 창문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불을 피했지만 고층에서 떨어졌으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세사람이 하나도 다치지 않고 모두 무사했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남편은 `제비족'이고 아내는 `날라리'이고 아들은 `비행청소년'이었답니다.

    이런 우스게 소리들 속에 오늘날 가정의 참담한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최근 미국의 한 주에서는 어떻게 하면 이혼을 막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가장 큰 문제로 삼고 이혼을 막기 위하여 온 수단을 다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혼으로 인하여 발생하는가정 문제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엄청난 사회복지 비용이 발생하여 주예산을 낭비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삶이 모범이 되지 않는 가운데 자녀들은 흔들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3.유해환경으로부터 자녀들을 지켜 주어야 합니다. 
    신명기 6장에는 성도의 가정의 문설주와 이방 심지어는 자신의 손목과 이마 사이에 조차 말씀을 기록하고 자녀들에게 그것을 상기시켜 줄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위 환경을 완전히 신앙적 환경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자라는 환경이 어떠합니까? 혹시 부모로 인하여 주변 환경이 나쁜 것은 아닙니까? 아름다운 환경 속에 자녀들이 자랄 수 있도록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더러운 환경으로부터 자녀들을 지키기 위한 노력들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주변 환경의 감시자로서의 역할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자녀들이 복되게 사는 길이 있습니다. 

    먼저 주님이 우리 시대 부모들의 자녀사랑에 대하여 공감하여 주신 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을 아신 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의 자녀들을 기꺼이 축복하여 주실 분이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우리 자녀들을 데려와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말씀으로 교훈하고 그들 앞에 모범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들이 주님의 축복을 받게 해야 합니다.
    이런 노력 속에 주님의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이 가득한 가정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수 많은 문제들 앞에서 여러분 자녀들의 미래가 밝고 창대하여 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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