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다워라(마19:13-15)
  • 조회 수: 35, 2013.05.27 07:02:24
  • 우리는 작년 5월2일 어린이 주일을 어린이를 축복하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들은 지 벌써 1년이 되었다. 얼마나 어린이를 축복하며 지내왔습니까?
    어린이 주일만 되면 어린이에 대한 설교내용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어린이를 사랑하자""어린아이처럼 되어야 천국간다""어린이는 꽃입니다" 성도여러분 오늘도 또 어린이주일을 맞았습니다.

    오늘만 되면 예수님이 어린아이를 품에 안으시고 축복하시는 장면을 뜨오르게 됩니다. 이 장면이 자주 아니 매일 우리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당시에 어린아이를 안아주는 것은 파격적인 행동입니다.
    제자들조차 예수님과 어린아이들을 접촉하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제자들 생각에는 당시 "어린아이와""여자"들은 완전한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은 기성 어른들만이 대상이 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예수님 당시 숫자를 계수할 때 어린이와 여자는 계수하지 않았습니다. 막6:44에 오병이어의 기적의 사건에 오천명의 숫자는 성인 남자만 계수한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린이를 보는 인간관이 조금 달라지긴 했습니다지만 언제나 미숙한 존재로 모자라는 인간으로 아직까지 많은 변모가 있어야 합니다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어린아이를 품에 안으시고 천국에 들어가려면 이런 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결코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정말 충분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너희들이 어린이가 되라고 거꾸로 말씀하고 계신다.

    그렇다면 여러분,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라는, 
    즉 어린이가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라는 말씀은 무슨 뜻의 말씀입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당시 율법의 기준은 이러했습니다.
    율법의 세밀한 규례까지도 잘 지킨 사람으로, 예컨대 정결례를 잘 준수하고, 금식도 철저히 하고, 몸이 건강해야 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새벽기도도 잘 하고, 금식도 잘하고, 전도도 잘 하고, 십일조도 잘 하고, 봉사도 잘 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선발하신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들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숫자에 넣지도 않은 한심한 인물들 이었습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닥아온 사람들은 가난뱅이, 창녀, 병자들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미성숙한 어린아이들까지 찾아왔으니 율법의 기준으로 볼 때는 하나같이 부적격자들 뿐이었습니다.

    성도여러분!
    예수님이 이 어린아이들을 천국의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하나님 나라는 [가장 적은 자(the least)와 가장 나중된 자(the last)들이 모여 만드는 나라]임을 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주님의 깊은 뜻은 "하나님의 나라는 교만한 자들이 낮아지고 겸손한 자들이 높아지는 나라" 라는 뜻이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에는 들어 있습니다. 이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은 어린이 다움 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어린이 다워야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는 뜻입니다. 또 이말은 '어른다우면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 그렇다면 '어린입니다워야 함'은 무엇이고 '어른다워야함'은 무엇인가?
    알아야 우리가 '어른다움'의 가시를 빼내 버리고 '어린입니다움'으로 새로워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첫째, 어린이는 순수하다.
    어린이들은 자신을 꾸미거나 남의 눈을 속이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가식과 위선이 끼여들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게서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나다나엘]이라는 사람에게 간사함이 없다고 헀다.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1:47절) 라고 칭찬하셨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칭찬하신 것은 나다나엘에게서 어린입니다운 순수함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의 칭찬이 있기 직전에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라는 [빌립]의 말을 듣고는 자기가 알고 있던 상식과 달랐기 때문에 잠시 의아해 했지만, '와 보라'는 빌립의 말에 곧 순수한 마음으로 응한 사실입니다.
    끝까지 의심에 의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따지고 재지 않고 순진하게 달려가서 예수님을 뵙는 어린입니다운 순수한 모습이 나다나엘에게는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도 순진 하십니요. 순수하십니요.
    여러분 [삭개오]를 알지 않습니까? 그는 사람들로부터 배척받는 세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님과 사람 앞에서 결코 위장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체면을 벗어버리고 예수님이 보고 싶어 끙끙대며 뽕나무 위로 기어올라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얼마나 순수한가?

    이시대의 우리는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살고있습니다. 
    점점 사람들은 교묘하게 머리를 쓰며 지식으로 포장하기를 좋아하고, 물질과 명예로 차려입기를 좋아합니다. 여러분들은 먼저 이러한 모습에서 벗어나서 있는 그대로 부끄러움 없이 예수님 앞에 달려나가는 순수한 모습이 바로 어린입니다움이라는 사실입니다.

    둘째, 어린이는 감격속에 날마다 기쁨이 충만하다.
    어린이는 세상를 보는 신비로움에 항상 감탄 합니다는 사실입니다.
    별것도 아닌데 와 하고 야단을 떤다. 그리고 신기해하면서 손벽을 칩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어린입니다움이며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감격이 없다. 마음이 무뎌지고 강퍅해졌기 때문입니다. 좋아해주기를 싫어하여 남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는 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동스러운 것이 있어도 좀처럼 감동을 받지 않는다. 또 칭찬해 주려고 하지도 아니합니다. 어두움만 보기를 좋아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비판할 일을 찾는 눈이 밝아져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보며 칭찬과 존경과 사랑의 감탄사를 연발하는 사람들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 백성은 항상 감격이 속에 환희가 충만한 나라입니다. 
    [나다나엘]은 마음이 순수했을 뿐 아니라 새롭고 놀라운 것을 보면 진심으로 경탄할 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나다나엘의 경이적인 고백 보라.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입니다." (요1:49절) 하고 경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도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는 나다나엘처럼 얼마나 경이로운 고백을 하지 않았습니까? 나같은 죄인를 구원해 주심에 감격하여 우리는 마음속으로부터 흐르는 눈물을 딱으며 얼마나 울었습니까?
    그런데 그 감격이 지금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마음에서는 예수님께 대한 첫사랑이 식어졌습니다. 지금은 아무 감격도 감각도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교회에 나오고 있습니다. 기도하라고 하니까 기도하고, 찬송하자고 하니까 찬송하는 무감각한 우리가 되지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모두 "나는 진정 천국 백성인가" 를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믿습니까?
    지금 내가 살아 숨쉬고 있음에 감격하고 있습니까?
    가정을 주시고 부모 형제를 자녀를 주시고 구미상모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신안생활 할 수 잇는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격하고 있습니까?
    어린이들은 부모가 조그만 것 하나만 주어도 감격해 어쩔줄 모릅니다.
    큰 것을 욕심 내지 않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감격해하는 모습 말입니다.

    셋째, 어린이는 언제나 겸손하다.
    어린아이는 스스로 설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알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순수한 자랑은 있어도 교만은 없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능력이 없음을 알기 때문에 남을 해칠 마음도 없습니다. 
    언제나 내세울 만한 것이 없음을 알기 때문에 교만할래야 교만할 수가 없는 겸손한 존재가 어린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어린이는 의지할 존재, 자신을 돌봐 줄 보호자를 필요로 하고, 또 자신을 돌보아 주는 부모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어린아이를 놓고서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어린이가 부모를 의지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천국의 주인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바로 어린입니다운 성도의 모습입니다. 사람은 성장할수록 부모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독립성이 강해지고 부모의 품을 떠나려 합니다. 또 의지하는 것도 다양해진다. 돈, 명예, 친구, 건강, 지식을 기본으로 해서 자기가 배우고 익히고 알게 된 모든 것을 수단껏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어려워지고 힘들어지면 결국 부모 품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자식에게는 부모의 품이 가장 안전한 안식처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보다 더 나은 것이 있을 것 같지만, 쓰라린 경험을 해 보면 부모의 품이 얼마나 포근한지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늘 어린이와 같아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에 변함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부모의 품을 떠나면 불안해하는 어린이와 같기를 바란다. 여러분들이 보기에 어린이가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인 것 같지만 사실을 그렇지 않다. 그 부모가 강하면 강한 만큼 자녀된 어린이도 강하다. 자녀를 돌보는 것이 그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의 힘과 능력은 곧 자녀의 힘과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이 어떨 때 강하고 어떨 때 약한가? 
    어린이처럼 순수하게 하나님을 의지할 때 강하고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을 믿고 의지할 때 약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어린이주일에 여러분의 어린 자녀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주는 것도 좋지만, 어린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배워야 합니다.
    어린이들의 그 순수함, 어린이들의 그 감탄할 줄 아는 마음, 어린이들의 그 겸손하게 의존하는 자세를 배웁시다. 
    지금은 어린이들에게, 여러분들의 사랑스러운 자녀들에게 무엇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배우고 받아야 할 때 입니다. 의심의 눈초리와, 무감각한 마음과, 스스로 할 수 있습니다는 교만한 마음을 다 버리고, 하나님을 믿고 그 은혜와 사랑에 감탄하고 감격하고 감사하면서 더욱 하나님을 의존하는 자들이 될 때 이 어린이주일이 그 어느 날보다 더 축복된 날이 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 모두가 어린이처럼 순수해지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탄, 감사, 감격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의존하는 강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오늘 본문 14절의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여러분들을 향한, 그리고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향한 축복의 말씀이 되기를 이 시간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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