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려주일의 의미(마21:1-11)
  • 2013.05.27 22:07:23
  • 오늘부터 이번 한 주간을 우리는 고난주간이라고 합니다. 고난 주간은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간입니다. 이 고난주간은 오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서 시작이 됩니다. 오늘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을 종려주일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은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다가 펴드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부터 많은 유대주의자들에 의해서 죽임의 협박을 당하면서 그의 공생애를 사셨습니다. 3년동안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 줄기차게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바리새인과 제사장 그룹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메시야로 알려지는 것에 대해서 매우 민감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예수님을 고소하기 위한 조건을 찾기 위하여 여러 가지 함정을 가지고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을 제자들은 막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서는 지금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음모가 계속하여 진행되고 있었음을 제자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아는 일을 예수님이 모르시고 예루살렘으로 가실 것을 고집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공생애를 마치시고 떠날 날을 분명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마지막은 화려한 가운데 마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메시야로 오셨기 때문에 홀연히 사람들이 보란 듯이 하늘로 올리우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마지막은 우리의 죄악을 위한 고난으로 마치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입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서 모든 준비를 하고 있음을 이미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오늘 예루살렘에 입성하게 된 것입니다.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에서의 전도사역을 마치신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3대 절기 중의 하나인 유월절 행사에 참석하기 위하여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모든 준비를 하고 있음을 알고 계셨음에도 예루살렘에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에 가신 것은 이미 구약에서 예언되었고 주님 자신이 친히 3번이나 예고하신대로 고난과 죽임을 당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약 3Km정도 떨어진 베다니에 도착하셔서 하루 밤을 보내신 후에 다음날 즉 오늘 다시 감람산 남동쪽 기슭에 위치한 벳바게에 도착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벳바게에 오셨을 때 하나의 이벤트를 준비하셨습니다. 그 이벤트는 바로 당신 자신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목적을 가장 잘 나타태는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제자 두 사람을 한 맞은 편 마을로 보내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제자들에게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2-3절)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즉각적으로 순종하여 나귀를 끌고 왔고, 예수님은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수많은 무리들은 자신들의 옷을 길에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주님을 열렬히 환영했던 것이다. 오늘 이 종려주일의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이 주는 교훈을 함께 생각함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의 선지자로서 오셨다. 
    그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2-3절을 보십시오. 이 말씀을 통하여 이미 준비된 나귀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리심으로 장래 일을 예견하시는 예수의 신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오늘의 이 종려주일의 사건은 예수님은 이 세상에 선지자로 오셨다는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선지자로 오셨기 때문에 모든 것을 미리 아시고 그것을 지시하실 수 있었습니다. 즉 맞은 편 마을로 가면 매인 나귀와 새끼나귀가 있을 것을 이미 아셨고, 그것을 끌고 오려고 할 때에 주인이 물어 볼 것도 아셨습니다. 그리고 주인에게 "주님께서 쓰시겠다"고 말하기만 하면 "즉시 보낼 것"을 예수님은 아셨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은 세상에 선지자로 오셨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을 전하는 자가 선지자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고 했는데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선지자로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선지자로서 오신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에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이 가르침은 선지자의 가르침보다 더 권세있는 새 교훈이라고 사람들은 깜짝 놀랐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에도 선지자로서 태어나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도 역시 선지자보다 더 큰 가르침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께서 마지막 죽기 직전에 선지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위대한 선지자들이 있지만 이 선지자보다 우월하신 선지자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히1:1-2에서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는 말씀은 아들을 안에서(in His Son) 말씀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은 이제 영원하고 완전하신 선지자이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참으로 말씀을 통하여 믿음을 가진 자들이 되었습니다. 선지자되시며, 말씀되는 주님을 믿음으로 인하여 우리들이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어디에 거해야 되겠습니까? 그것은 당연히 주님의 약속의 말씀 안에 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은 오직 말씀 안에 거하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이 세상에 왕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4-5절을 보십시오.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미 선지자의 예언대로 왕으로 오셨다고 선언하십니다. 이 말씀은 슥9:9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마가와 누가는 "아직 아무 사람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라고 더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멍에를 메지 않은 짐승의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것은 구약(사9:6; 11:1; 미5:2)에 이미 예언되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랫동안 대망해온 메시야이심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슥9:9의 메시야 예언을 완성시키기 위한 도구로써 사용된 동물입니다. 
    당시에는 왕이 입성할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나와서 맞이하고 왕으로서의 위엄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왕이 입성할 때에는 모든 성의 사람들을 동원하여 도열시키고 잘 훈련된 군마를 타고 입성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을 동원하지 않았어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입성을 환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잘훈련된 군마를 타고 오시지 않았어도 그 말은 예수님을 당당하게 예루살렘에 입성시키게 되었던 것입니다. 원래 왕들은 전쟁과 승리의 상징인 말을 타고 입성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타신 것은 말이 아니라 "멍에를 메지 않은 짐승의 새끼"였습니다. 전투를 하는 말이 아니라 전쟁을 할 수 없는 새끼 나귀를 타고 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는 "평화"와 "겸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제 순결한 평강과 겸손과 섬김의 왕이며 이는 예수가 참 메시야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전쟁을 해서 정복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 아니라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하여 오신 분이라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예수님은 정말 이 세상에 참 평화를 가져오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아담의 후손으로 아담의 원죄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죄인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도 없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도 없습니다. 교제가 단절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막힌 담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건널래야 건널 수 없는 담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담을 헐어 버리시고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들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평화를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단절의 결과 인간은 이제 죄악 속에서 시달리고, 전쟁과 질병과 근심과 걱정으로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평화의 왕으로 오셔서 이러한 모든 문제에서 우리에게 참 평화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은 전쟁과 질병으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근심과 걱정과 여러가지 염려가 끊이지 않는 곳에서 이러한 것들을 다 물리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와같이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왕이 되셔서 우리의 마음에 이제는 좌정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멍에를 메지 않은 짐승의 새끼"를 타고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왕이 오는 방식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왕으로 오셨지만 세상 사람들과 같은 권세를 가지고 오신 것이 아니라 낮고 천한 인간을 찾아오기 위하여 "멍에를 메지 않은 짐승의 새끼"를 타고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그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도 평화를 누릴 수 있어서 하늘나라의 시민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과도 화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주님은 우리의 평화를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평강이 넘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오셔서 평화의 왕으로 오신 주님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모시면 평화가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 평화를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예수님은 완전하신 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제사장으로서 오셨습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1년에 한번씩 지성소에 들어가서 온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또 사람들은 죄를 지을 때마다 소나 양이나 염소나 비둘기를 잡아 가지고 가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특히 유월절이 되면 사람들은 양 한 마리씩을 가지고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래야만이 자기의 죄가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에 그들은 바로의 압제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유월절 예식을 가르쳐 주셨는데 유월절 날에 양을 잡아서 자기의 집에 피를 바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피를 바른 집에는 그 피를 보고 죽음의 사자가 넘어가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각자 양을 잡아서 그 피를 자기의 집 문 인방과 설주에 바르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사자가 유월절 날에 돌아다니면서 애굽의 모든 사람들의 장자를 다 죽였지만 오직 그 피를 바른 사람들의 집은 죽이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것을 기념하는 제사를 유월절마다 드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1년에 한번씩 드려야 한다는 것과 죄를 지을 때마다 드려야 한다는 것은 그 제사의 효과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구약의 제사는 우리들에게 계속적인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시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하신 제사장으로 오셨는데 그 자신이 친히 제물이 되셔서 드리시기 위하여 오셨다고 합니다. 요1:29절에서 요한은 세례를 받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말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친히 드리기 위하여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이 바로 유월절인 것입니다. 
    히9:22에서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죄를 없애기 위하여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게 되었디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또 히9:28에서도"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9:12에서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그 결과 10:10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히10:19에서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고 하면서 히10:20에서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이와같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오늘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사역이 없었다면 우리의 죄는 용서함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멸망을 받을 수 밖에 없었지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친히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셨기 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제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만 하면 완전하신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시고 그 죄로 인하여 우리들이 영원히 멸망을 받지 않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를 위하여 완전하신 대제사장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예수님이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제자들은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고서" 예수님께서 그 위에 타시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 이는 나무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예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하면서 예수님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호산나"라는 말은 "우리를 구원하소서"(호시아 나의 음역, 삼하14:4; 왕하6:26)라는 뜻입니다. 이 무리들은 주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할 자이심을 분명하게 알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말은 메시야에 대한 표현으로서 단순히 왕의 후손이는 말이 아니라 구약에서 예언되고 오랫동안 대망해 온 메시야임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는 말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심을 노래한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는 말은 천상에서도 주님을 메시야로서 찬양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오늘 예루살렘 모여있던 수많은 군중들은 주님의 이렇게 입성하시는 장면을 보면서 진정으로 왕으로서 오시는 예수님을 환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선지자로서, 대제사장으로서 오신 예수님을 환영한 것이 아니라 왕으로서 오신 예수님을 환영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다 알지 못하였어도 예수님을 환영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셨고, 왜 예루살렘에 오늘 입성하셨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왕으로서 오신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에 모시고, 선지자로서 오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면서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님과 함께 이 한 주간 고난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오늘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을 환영하는 것입니다. 오늘 입성하신 예수님을 진정으로 환영하여 예수님의 속죄와 사죄의 은총을 받아 누리는 이 한 주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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